예전부터 생각했지. 시한부 인생이 된다면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의 비법을 죽기 전에 꼭 알아야겠다고. UFO도 내 눈으로 직접 봐야 여한이 없겠다고. 그런데 내가 얼마나 한가한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 7일. 한숨도 안 잔다 해도 허용된 시간은 168시간. 다시는 같은 요일을 맞이할 수도 없고, 주말드라마도 다음 주를 기대할 수가 없겠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것보다 꼭 해야 할 일이 뭘까.

아프리카 해변에서 일몰을 보며 북을 쳐보고 싶고, 남미 대륙을 떠돌며 대낮에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싶다. 스페인의 골목을 자전거로 누비며 해질녘 이슬람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와 가톨릭 성당의 종소리를 마주 들으며 세상을 다 품은 듯 으쓱대 보고도 싶다.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도 마땅치가 않다. 비행기에서 일주일의 반 이상을 낭비할 순 없기에.

마지막이 이리도 급히 닥칠 줄 알았다면 햇볕을 많이 쬐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 걸 그랬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들이 잔뜩 적힌 공책들을 보니 아쉬워서 눈물이 난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여전히 더 빛나는 영화들을 세상에 내놓겠지.

집안에서 끌탕을 치다가도 시간이 아까워 밖으로 나가 본다. 하지만 마음이 초조하여 멀리 가지도 못 하겠다. 오늘따라 저 나무는 왜 이리도 눈부실까? 원래 저랬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난다. 나와 같은 처지는 아무도 없겠지. 이웃에 사는 중학생이 사방에 욕설을 뿌리며 지나간다. 볼 때마다 항상 불만에 차 있다.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다. ‘넌 계속 살 수 있잖아!’ 앞으로 7일 이상 살아 있을 사람들, 내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살아갈 사람들에게 무한한 질투가 솟는다. 내가 저들과 뭐가 달랐을까? 이러는 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단지 7일 이상 살고 싶다는 욕구만이 강렬하다. 2주일이 남았다면 뭔가를 할 것 같다. 1주일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1분 1초를 아끼고 아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뭘 할지도 못 정하고 투정만 부리다가 6일을 넘겨버렸다. 골방에서 머릿속으로 우주를 들었다 놨다 했을 뿐이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밖으로 나가 본다. 항상 보던 풍경이다. 내가 죽어도 변하는 건 없겠지. 욕쟁이 중학생이 친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간다. 따라가 뒤통수를 치는 대신 그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줌마가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혼자 먹기가 그래서. 같이 가줄래?”

분식집에 마주 앉아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그 아이가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낼 수 있게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내일이면 나는 없겠지만 이 아이를 둘러싼 세상은 조금 변해 있으리라. 이 아이가 한결 누그러진 마음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비로소 7일간을 알뜰하게 살아낸 기분이다. 낭비한 6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시나리오에 허점은 없다. 완벽하다…라고 믿고 싶다. 안녕.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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