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민족이 남진(南進)하고 있다. 외교부와 재외동포재단에서는 격년으로 재외국민과 현지 시민권을 가진 외국 국적 동포 인구를 전수조사해왔다. 그 결과 중국에 거소를 신고한 재외국민과 시민권을 가진 외국 국적 동포(중국 국적 조선족 동포) 중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11년 광둥성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11만399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3년 14만9902명, 2015년 17만9000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재외국민이 6만9000명, 조선족 동포가 11만명이다. 현재 광둥성의 성도(省都) 광저우에 주재한 광저우 총영사관과 교민단체에서는 현지 교민(재외국민) 및 조선족 동포 숫자를 집계 중인데, 올해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수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화북(華北)지역과 전통적으로 조선족 동포들이 밀집거주하는 동북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급감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민족은 2011년 19만7600명으로 광둥보다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2013년 16만7475명, 2015년 12만4858명으로 7만명 이상 급감했다. 동북3성에서도 2011년 182만7232명에 달하던 한민족이 2015년 165만1900명으로 20만명 가까이 급감했다. 칭다오(靑島)를 중심으로 한 산둥반도 일대는 28만~29만명, 상하이는 8만~9만명 내외로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베이징과 동북3성 등 중국 북방에 거주하던 한민족 상당수가 대규모로 중국 남부로 이주해 간 셈이다.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는 2294㎞, 고속열차로 10시간 거리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延吉)에서 광저우까지는 3455㎞, 일반열차와 고속열차를 갈아타면 총 33시간이 걸린다.

광저우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표하는 통계치는 동포사회 등 각 기관에서 합산하는 수치라 실제와 차이가 날 수 있다”며 “광둥은 상사주재원 등 유동인구가 많아서 집계하기가 힘든데, 항공편 이용 등을 참고해 보수적으로 집계해도 재외국민 3만명, 조선족 동포는 5만명 등 대략 8만~9만명 정도로 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광둥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분의 1, 한·중 무역에서는 4분의 1 정도 된다”며 “경제적으로 가장 든든한 곳이라 교민이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했다. 외교부 재외동포과는 올해 통계는 상반기 중으로 집계해 하반기쯤 발표할 예정이다.

한·중수교 25년 만의 대변화

1992년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 같은 대규모 인구변화는 25년 만에 이뤄진 급격한 변화다. 한민족의 대규모 남방 이주 역시 전례가 없는 현상이다. 태평양전쟁 때 상당수 한인들이 일제에 의해 징집 또는 동원돼 학도병, 포로감시원, 위안부 형태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같은 남방전선까지 내려간 적은 있다. 대개가 강제로 끌려간 비자발적 경우였다.

최근 중국 내에서 한인의 대규모 남방 이주는 숫자도 월등할 뿐 아니라 자발적 요인이 크다.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인구 1억849만명의 광둥성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 제조업 메카다. 홍콩과 가까워 중국에서 제조해 홍콩 등을 거쳐 해외로 수출하는 대규모 제조공장은 광둥성에 많이 입지한다. 중국 개혁개방 1번지로,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선포한 4개 도시 중 선전,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 등 3곳이 모두 광둥성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일찍부터 대규모 제조공장은 광둥성 최남단 선전에서 둥관, 광저우로 이어지는 주강(珠江) 연변에 포진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1992년 한·중수교 초창기에는 대기업 현지 본사는 수도 베이징이나 경제수도 상하이에 둥지를 틀었다. 대신 제조와 영업 등 대규모 고용이 이뤄지는 제조공장은 한국과 거리가 가까운 산둥반도 일대,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밀집한 동북3성 일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북한과 가까운 동북3성 일대는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물류 사정도 열악해 큰 재미를 못 봤다.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산둥반도 일대 역시 한국과 연결하는 물류비용이 저렴해 꾸준한 인기를 모았지만, 중국 경제의 중심축과는 괴리가 있었다. 산둥반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칭다오도 아직은 ‘2선 도시’에 불과하다.

‘중국의 경부축(軸)’에 해당하는 ‘베이상광(北上廣·베이징, 상하이, 광둥)’ 라인에 자리 잡은 광둥성은 애초에 별로 진출 고려 대상이 안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광둥성 일대에서 사용하는 광둥어는 베이징 기반의 보통어를 쓰는 다른 지역 사람들과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된다. 동북지방 말을 쓰는 조선족 동포, 산둥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는 재한 화교(華僑)들과 자연히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된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 진출 초기 ‘거간꾼’ 역할을 했던 조선족 동포와 화교들에게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상당 부분을 의존해야 했던 우리 기업들의 진출 방향은 자연히 산둥지방이나 동북지방이 됐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기업 스스로 독자 결정을 내릴 시점이 되자 광둥성은 적극 진출 대상지로 떠올랐다. 광둥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문호를 개방한 지역이다. 홍콩과 가까워 국제 상거래 관행에도 익숙했다. 광둥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제약은 광둥성 자체에 외부인구 유입이 급증하면서 자연히 해결됐다. 광저우의 바이윈(白雲)공항, 선전의 바오안(寶安)공항, 광저우항, 선전항 등 공항·항만 투자가 급증하면서 수출입 물류기반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일례로 광둥성 선전항은 컨테이너 항만 물동량 처리 순위에서 2013년 홍콩항을 제친 이래 상하이항,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3위 자리를 고수 중이다. 이로 인해 홍콩에 있던 외국 기업마저 홍콩을 탈출해 광둥으로 이주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광저우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과 교민들 가운데도 홍콩의 비싼 주거비 탓에 선전으로 넘어온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세계의 공장’이란 별명답게 중국의 실력 있는 주요 제조업체 역시 광둥에 둥지를 틀고 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휴대폰 제조업체인 화웨이(華爲), 2위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중싱(中興·ZTE), 중국 1위 메신저 텅쉰(텐센트), 중국 최대 TV 제조업체인 TCL,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인 비야디(BYD)가 모두 광둥에 본사를 두고 있다. 자연히 이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주요 제조업체 모두 광둥에 자리를 잡았다. 글로벌 물류공급망으로 엮여 있는 한국 기업들 역시 광둥에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광저우 총영사관에 따르면, 광둥성은 중국의 31개 성, 직할시, 자치구 가운데 한국과 최대 교역 대상 지역이다. 2015년 기준 한국과 광둥성 간 수출입 총액만 639억달러(약 75조7400억원)에 달한다.

중국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 광저우타워(왼쪽) 아래로 주강이 흐른다.
중국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 광저우타워(왼쪽) 아래로 주강이 흐른다.

수출 대기업이 주도하는 남방행

자연히 지난 수년간 국내 수출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 역시 광둥 일대에 집중됐다. 삼성전자와 LG이노텍이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에,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둥관(東莞)에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다. LG디스플레이도 2014년 9월, 광둥성 광저우에 8.5세대 LCD디스플레이패널 생산라인을 구축해 본격 운영 중이다. 2013년에는 SK텔레콤도 선전에 ICT와 헬스케어를 접목한 R&D센터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 최대 화장품 위탁생산업체인 코스맥스도 광저우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광저우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삼성을 중심으로 핵심사업들은 베트남 등 더 남쪽으로 옮겨갔다”며 “그래도 중국 시장을 고려해 법인은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한국수출입은행이 집계하는 해외투자통계를 확인하면, 지난 수년간의 집중적인 광둥성 투자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체결 당시 산둥성과 랴오닝성의 투자 건수는 각각 120건과 74건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4500만달러, 1500만달러로 압도적 1, 2위를 차지했다. 반면 광둥성에 단행된 투자는 숫자로 14건, 금액으로는 850만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 수출 대기업의 투자가 집중된 2013년부터 광둥성에 단행된 투자는 5억2000만달러로 3위를 찍었다. 2014년에는 3억9000만달러(약 4552억원)로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한국 기업의 전통적 투자처인 산둥성과 비교해서는 두 해 모두 투자 건수는 뒤처졌지만, 총투자금액에서 산둥성을 제쳤다. 수출 대기업 위주의 대규모, 대단위 투자가 단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 대기업들이 광둥으로 몰려가자 자연히 1·2·3차 협력업체들도 광둥으로 남하를 시작했다. 중국 정부 공식통계에 따르면, 1200개 한국 기업이 광둥에 적을 두고 있다. 홍콩에 적을 두고 실제로 광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있어서 대략 2000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코트라 광저우와 선전무역관은 광저우와 선전에 둥지를 튼 한국 기업을 각각 1200여개와 1000여개로 추산한다. 코트라 선전무역관의 박은균 관장은 “지난해 중국 전체 경제성장률이 6.9%를 찍었는데, 광둥성은 8%, 그중 선전은 8.9%를 찍었다”며 “선전은 관광보다는 순수 비즈니스 타운인데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양호한 만큼 교민들과 조선족 동포들이 자연히 몰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인천~광저우, 인천~선전 구간을 연결하는 항공편 공급도 증대됐다.

자연히 현지 주재원과 교민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조선족 동포들 역시 광둥으로 남하를 시작했다. 주재원 수요를 기반으로 밥집, 술집, 민박집, 가정부, 보모뿐만 아니라 환치기, 사기꾼, 유흥업소 종업원, 꽃뱀들까지 대규모 동반이주가 이뤄지는 식이다. 실제 광둥성 거주 17만9000명의 한인(韓人) 가운데 11만명이 조선족 동포들이다. 광저우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 사람과 같이 사업을 많이 하는데, 정착력 등은 훨씬 더 탁월하다”며 “과거 한국 기업에 있다가 독립한 사람들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족 동포들에게 광둥은 한국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거점이다. 이 같은 한민족의 대규모 동반이주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산시성 시안(西安)과 충칭(重慶)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향후 중국 진출을 고려하는 한국 기업들도 이 같은 인구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돈을 따라가고, 돈은 사람은 따라간다. 위안(元)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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