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 가운데 흰 수염을 기른 사람이 플라톤, 그와 대화하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 가운데 흰 수염을 기른 사람이 플라톤, 그와 대화하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우리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다. 2016년은 세계가 터널 안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해였다. 대표적인 예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IS는 무작위 테러를 일삼았고, 영국에선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그 불안한 기운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이 원하는 리더가 아닌, TV 프로그램에 나와 거침없고 상스러운 말을 일삼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잘난 미국 방송들과 신문들, 그리고 지식인들은 미국 대중의 마음을 잘못 읽었고, 그들을 교육하는 데 실패하였다. 자신들만의 리그에서 우월감과 편안함에 취해, 미국 중산층 백인들의 속마음을 읽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궁지에 몰린 쥐처럼,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들을 가지고 노는 겁이 없는 비행소년처럼 행동한다. 이런 불길한 기운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1970~1980년대 독재자와 노동자들의 땀이 절묘하게 만나 대한민국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진보하게 되었고, 우리 스스로 선진국의 문턱에 왔다고 착각하였다. 정치적·경제적 성숙은 문화적 성숙의 자연스러운 결과란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우리는 바보상자 TV에서 남들이 부르는 노래, 먹는 음식, 신세 한탄하는 잡담, 욕망과 욕심을 자극하는 드라마들을 지난 수십 년 동안 보면서, 자신을 성찰할 능력을 잃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런 무기력한 상태를 그리스어로 ‘아포리아(aporia)’라고 정의했다. ‘아포리아’란 희망이 없는 상태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전진하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가 미래를 위한 자신만의 비전을 만들 능력을 상실한 절망적인 상태를 ‘아포리아’라고 부른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아포리아’라는 지점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랑’ ‘용기’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주제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전문가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정의’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구축한 이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정작 자기 자신이 ‘정의’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명확한 정의를 내놓을 수 없다. 플라톤은 자기 스스로 검증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범부들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제시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갇힌 자들이라고 진단한다. 범부들뿐만 아니라 소위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어두운 이기심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혁명을 주장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외부에 돌리고 외부를 혁명하겠다는 공허한 말만 떠벌인다. 전형적인 졸장부들의 마음이다.

정치가에서 철학자로 목표가 바뀌다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 아테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테네의 마지막 왕인 코드로스의 자손인 아리스톤이며, 어머니는 아테네 법을 제정한 솔론 집안의 자손인 페릭티오네다. 그의 두 형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투스는 ‘국가’에 등장한다. 어머니 페릭티오네는 아버지 아리스톤이 일찍 죽자 아테네의 영웅 페리클레스의 친구인 퓌릴람페스와 재혼한다. 플라톤은 당대 최고 귀족의 자제로 어려서부터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에 벌어진 아테네의 몇 가지 정치 혼란은 그를 정치가가 아니라 철학자로 탈바꿈시켰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페르시아제국과 마라톤전쟁과 살라미스전쟁에서 맞붙었다. 이 두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였다. 아테네에는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북아프리카와의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상인계급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금력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전쟁 말기에 ‘사백인위원회’와 ‘삼십인 위원회’를 등장시켰다. 이들은 금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과두제(寡頭制)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삼십인위원회는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한 후 아테네에 들어선 친(親)스파르타 귀족들이다. 이들은 정권을 장악한 13개월 동안 아테네 인구의 5%를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페리클레스의 민주주의를 말살하였다. 플라톤의 동생 글라우콘의 아들인 카르미데스가 삼십인위원회 일원이었다. 플라톤은 이들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삼십인위원회가 기원전 403년에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다시 정착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399년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아테네 배심원 500명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는다.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국가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도입하고 젊은이들의 교육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당시 정치범들에게는 사면이 허락되었다. 소크라테스에게도 사면 여부를 묻는 투표가 허락되었다. 아테네의 미래를 위해 ‘철학’이라는 교육체계를 들여와 아테네의 정체성을 허물었다는 이유를 달고 사면 여부를 묻는 투표가 실시되었다. 여기서 근소한 차로 유죄로 판명되어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는 정치가로서 꿈을 접고, 이상적인 국가 형성을 위해 철학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지중해를 두루 여행했다. 그러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피타고라스 사상의 본산지인 시칠리아섬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한 교파의 교주와 같았던 피타고라스가 크로론에 설립한 공동체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그 공동체처럼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이 함께 지내는 공동체”를 아테네에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또한 철학적 사고와 과학과 도덕의 기본은 추상적인 생각과 수학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아테네에 만든 아카데미에는 수학을 10년 이상 공부한 사람들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고 전해진다.

플라톤과 피타고라스는 “영혼과 그 위치에 관한 신비한 접근”을 공유하였다. 심지어 로마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는 “Platonem ferunt didicisse Pythagorea omnia”, 즉 “사람들은 플라톤의 모든 것을 피타고라스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고 기록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서양철학의 역사가 플라톤 사상에 대한 각주”라고까지 말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피타고라스가 플라톤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면서, 피타고라스를 서양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상가로 꼽았다.

플라톤은 기원전 387년 아테네에 오늘날 서양 대학의 원형인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그와 다른 학자들은 아테네의 학생들과 세계에서 몰려온 학생들에게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정치학, 자연과학, 수학을 가르쳤다. 이 학교를 나온 졸업생들은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이 되었다. ‘아카데미’는 기원후 529년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폐교될 때까지 912년 동안 지속되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서양정치사에 가장 중요한 책인 ‘국가’를 기원전 380년에 저술하였다. 그는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시칠리아를 두 번 방문하였다. 특히 기원전 367년 시칠리아의 참주였던 디오니소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이며 플라톤의 제자인 디온이 플라톤을 시칠리아로 초청하였다. 디온은 자신의 조카인 디오니소스 2세가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첫 번째 ‘철학자 왕’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디오니소스 2세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아테네 시내에 있는 플라톤상.
아테네 시내에 있는 플라톤상.

왜 인간은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나

플라톤은 ‘국가’에서 묻는다. “왜 인간은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가? 형벌이 두려워 정의롭게 행동하는가? 신의 보복이 무서워 떨고 있는가? 왜 강자는 약한 자들을 법의 이름으로 다스리는가? 정의는 상벌과는 상관없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에 정의가 필요한 것인가?” 플라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정의’를 정의하고 싶어하며 정의는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1권은 소크라테스가 주도해온 ‘엘렝코스(elenchus)’라는 대화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며 시작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방식으로 정의를 정의해 보려고 시도하지만 곧 난점에 부딪힌다. 그는 2권에서 다시 이 질문을 상기시키지만,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대화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부분 강의를 하고 플라톤의 두 형제들이 가끔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다. 플라톤은 누구나 엘렝코스를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것 같다. 그는 ‘국가’ 7권에서는 소크라테스 대화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는 철학적인 논증은 그것을 고민하고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성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검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에 대한 존경심이나 자기 수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옳은 것을 찾기 위해, 엘렝코스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과 그것에 유리한 여론을 악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는 다른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그가 아테네 아카데미를 건립한 데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

플라톤은 사회와 정치적인 정의를 인간 개인의 정의와 대비하여 설명한다. 그는 ‘국가’ 2·3·4권에서 이상적인 사회에서의 시민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장인·농부와 같은 ‘생산자들’, 군인들과 같은 ‘조력자들’, 그리고 통치자와 같은 ‘보호자들’이다. 한 사회는 이들 간의 구분과 기능이 구별될 때 정의롭다. 플라톤은 제4권 마지막 부분에서 개인의 정의가 사회적 정의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영혼 역시 사회와 마찬가지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개인에 대한 정의는 서로 밀접하다.

우리가 어두운 동굴에서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착각하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거기에 안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그 이유를 인간의 영혼에 숨어 있는 ‘욕망’에서 찾았다. 플라톤은 ‘국가’ 제4권에서 인간의 영혼(프시케)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성(로지스티콘)’ ‘기개(시모에이데스)’ 그리고 ‘욕심(에피시메티콘)’이다. 이 세 부분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세 부류 시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정의는 각자가 자신이 속한 부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성’을 지닌 자들은 배움을 통해 사회를 다스리고, ‘기개’로 충만한 자들은 ‘이성’을 지닌 자들의 명령을 따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 ‘욕망’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이기심과 쾌락에 탐닉한다. 이들이 자신이 누구인가 깊이 숙고하지 않고 욕망에 사로잡힌 민중들의 헛된 바람에 편승한다면 그 사회는 아포리아 늪에 더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한 영혼만을 소유하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개의 영혼을 지닐 수 없다.

‘이성(로지스티콘)’은 영혼에서 사고하는 부분이다. ‘이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다. ‘이성적인 사람’은 실제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구별한다.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것과 거짓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구별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참된 것은 그것을 추구하려고 오랫동안 훈련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선물이다. 그는 진실한 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실 그 자체이거나 진실을 향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참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 행동한다. ‘이성적인 사람’들도 한 사회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두 부류, 즉 ‘기개 있는 자’들과 ‘욕망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성적인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동의해야 한다.

‘기개(시모에이데스)’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시모스(thymo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열(熱)’이다. ‘기개’는 영혼 중 열정적인 부분으로 우리가 감정에 휩싸일 때 작동하는 부분이다. 플라톤은 그리스 북부에 살고 있는 트라키아인들과 스키티아인들의 성격을 ‘기개’라고 묘사했다. 정의로운 사회에선 ‘기개로 넘치는 자들’이 ‘이성적인 자들’과 연합하여 ‘욕망으로 가득한’ 민중의 이기심에 영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보이는 용기를 지녔다. 만일 기개로 넘치는 자들이 욕망으로 가득한 민중들과 연계한다면, 그 사회는 아포리아 상태로 전락한다.

‘욕심(에피시메티콘)’은 육체의 쾌락과 관련된 영혼의 상태로 세 부분 중 가장 크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지옥 ‘인페르노’에 가면 육체의 쾌락, 오만, 폭력, 그리고 사기를 일삼는 자들이 감금되어 있다. 이들은 음식, 음료, 육체적 쾌락, 그리고 다양한 취미들을 위해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플라톤은 이들이 인간의 생식과 관련된 육체적 쾌락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긴다고 본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고유한 존재를 음미하고 신장시키기보다는 남들이 소유한 물건이나 성취를 부러워하고 그것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간다. 플라톤은 이 부류에 페니키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을 귀속시킨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돈이 이들의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에는 생존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기본적이고 필요한 욕망도 있다. 그러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음료를 탐닉하려는 불필요한 욕망과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불법적 욕망도 포함된다.

철인왕이 다스리는 칼리폴리스

플라톤은 한 사회에서 정의를 실천할 사람으로 철학자 겸 통치자, 즉 철인왕(哲人王)을 상정했다. 그는 지혜를 사랑하고 지적이며 믿을 만하고 단순한 삶을 살 의지가 있는 인간이다. 이런 지도자가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칼리폴리스(kallipolis)’라고 불렀다. 철인왕은 모든 현상의 형상에 숨겨진 원형, 즉 이데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다. 그는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다. 지식 자체,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 자체가 된 자다. 그는 철인왕을 항해를 떠난 배의 선장으로 비유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당시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인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융합과는 다른 선동주의나 다수주의에 가깝다. 다수의 투표로 뽑은 선장이 해로(海路)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그 배는 좌초하고 만다. 플라톤은 민중들을 항해 지식이 없는 선원들과 비교한다. 불평이 많은 선원들은 선동가들이거나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배를 운항하는 항해사는 철학자다. 선원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배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플라톤은 “진정한 선장이라면 배를 다스리기 위해서 항해에 필요한 계절, 하늘, 별, 바람, 그리고 모든 기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철인왕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개의 알레고리를 연달아 소개한다. ‘태양의 알레고리’에서는 대치할 수 없는 선(善)이란 이데아를 소개하고, ‘선분의 알레고리’에서는 철인왕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적인 네 단계를 말한다. 그리고 ‘동굴의 비유’에서는 인간 영혼의 교육의 효과에 대해 설명한다.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하찮은 순간이 영원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입구가 열려 있는 동굴 속 깊숙한 곳에는 어려서부터 다리와 목이 고정된 채 동굴의 벽을 향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뒤에서 다른 이들이 꼭두각시를 들고 동굴 벽에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족쇄에 묶여 일생 한곳만 보아온 이들은 꼭두각시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그림자를 실재하는 사물이라고 착각한다. 진실이 아닌 허상, 진상이 아닌 가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그림자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림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에 이제껏 자신이 매달려온 안전장치이자 자신을 속박했던 억압의 족쇄를 부순다. 그런 다음 ‘한순간에’ 일어나 일생 동안 보아온 동굴 벽에서 눈을 뗀다. 동굴 벽이 아닌 빛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 뒤 고개를 높이 든다. 빛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행위는 그에게 너무도 낯설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더군다나 태어나 처음 보는 태양은 너무도 눈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제 태양이 빛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된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가 진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리더가 된다.

플라톤의 마지막 작품 ‘법률’에서는 ‘국가’에서 묘사한 이상적인 국가와는 다른 국가가 소개돼 있다. ‘국가’에서는 철인왕이 다스리는 도시에는 법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률’에서는 사회 규범이 되는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법에 복종해야 하는 전체주의적인 성격의 나라를 강조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철학자 칼 포퍼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의 ‘철인왕’에서 찾았다. 그는 ‘철인왕’ 개념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러시아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의 등장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비평하였다. 특히 1979년 이란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1920년대 이슬람 시아파의 본산지며 자신의 고향인 ‘쿰(Qum)’이란 도시에서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플라톤의 ‘국가’에 심취하여 혁명을 기획하였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에서 필요한 리더는 사물과 사람을 깊이 보고, 자신을 항상 성찰하며, 급변하는 정세에 잘 대처하는 지혜로운 선장이어야 한다. 19세기 말 미국 남북전쟁 후 새로운 지도자를 그리던 시인 헨리 롱펠로는 ‘오, 국가라는 선박이여(O! Ship of State)’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국가라는 선박이여, 항해하십시오! 항해하십시오! 오 미주연합이여, 강하고 위대하게!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공포와 희망으로 맞이합니다. 인류가 당신의 운명에 숨죽이며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선장이 용골을 놓고, 일꾼들이 선박 강철을 만들었으며, 누가 돛대와 돛과 밧줄을 만들었는지, 어떤 모루가 울리고 어떤 망치가 두들겼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희망의 닻이 용광로와 열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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