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여행사가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앞. 이곳에서 15년 넘게 여행사를 운영해왔다는 한준영(가명)씨는 “해외여행 인구 2000만명 시대가 왔다고 하는데 여기는 점점 쇠락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재미를 봤는데 요즘은 그것도 좀 덜하고, 한국인 여행객은 온라인 여행사를 찾지 소규모 여행사는 거의 찾지 않아요.”

미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12월 26일 5~10년 새 사라질 직업으로 꼽은 다섯 개 분야 중 하나가 소규모 여행사다. 한씨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건 몰랐지만, 우리가 망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다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걸요.”

가까운 미래에 이런저런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나온다. 지난해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인공지능, 로봇 등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금융·보험 관련 직종은 81.8%, 기계 관련 직종은 55.8%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온 직업의 변화

대격변의 원인은 ‘4차 산업혁명’이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언급된 이후 새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된 4차 산업혁명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연결’이다. IoT, 인공지능(AI) 등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사회가 온다는 설명이다. 로봇공학, 3D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기술같이 떨어져 있던 분야들이 경계를 넘어 ‘융합’하고 하나로 ‘연결’된다.

1960년대 이후 반도체, 컴퓨터, 인터넷 등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이 정보화·자동화 시대를 불러왔다면, 4차 산업혁명의 결과는 더욱 광범위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술은 서로 합쳐지고 연결되며 급격히 발전한다. 제조업 기반이던 산업구조가 완전히 바뀌어 AI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산업의 핵심은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공정이 완전히 디지털화되고 AI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대신 우버(Uber) 같은 공유경제 업체,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생활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 등이 핵심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의 변화는 거시적 산업구조의 변화만 일컫는 것이 아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곧바로 각 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게 된다. 마치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차를 몰던 마부가 사라지고 디지털 인쇄가 보편화되면서 조판공(組版工)이 사라진 것처럼 사라질 직업도 생겨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자마자 각 기관에서 앞다투어 직업 전망을 내어놓는 이유는, 직업의 변화를 통해 산업 변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직업군이 대체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가장 많이, 빨리 대체될 직업 중 하나는 텔레마케터다. 매뉴얼에 따라 고객을 응대하는 텔레마케터 업무는 지금도 AI가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영국의 BBC가 2015년 옥스퍼드대학과 딜로이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웹사이트가 있다. ‘로봇이 당신의 직업을 대체할까?(Will a robot take your job?)’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 구체적인 직업군을 입력하면 그 직업이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술로 대체될 확률이 나온다.

기자(Journalist)를 입력해 보자. 최근 들어 AI 로봇 기자가 등장했다는 뉴스도 나오지만, 결국 기자가 완전히 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은 8%에 불과해 366개 직업 중 285위다. 로봇 기자가 글은 대신 쓸 수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건을 대하는 취재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자의 대체율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사서(Librarian)는 일부는 살아남고 일부는 대체될 전망이다. 51.9%의 사서가 책을 대신 정렬해주고 필요한 책을 찾아주는 AI에 대체될 것이지만,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역할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반면 회계사(Accountant)는 빠른 속도로 AI에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 웹사이트에 따르면 회계사의 94%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366개 직업 중 26위에 해당해 꽤 위험한 상황이다. 회계사의 업무 중 상당수가 정해진 법과 규칙에 따라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볼 때 가능한 얘기다. 세무사·노무사 같은 직업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기관의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앞으로 있을 직업의 변화를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흐름대로 직업은 물론 산업구조 또한 변할 것이다.

1. 3D프린터

3D프린터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하기만 하면 신체 장기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3D프린팅 기술로 신체 장기의 일부분까지 대체하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는 사람의 치아나 뼈를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 이식하는 기술도 실현됐다. 기존의 인공 뼈는 지나치게 딱딱해 잘 부러지는 데다 혈관이 자라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3D프린터로 새로운 인공 뼈를 만들 수 있다. 원래 사람 뼈에 있는 성분과 고분자 물질을 섞어 만든 잉크를 사용해 부작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제작 공정도 간편해진다. 서로 다른 재질의 잉크를 한꺼번에 출력할 수 있는 프린터도 개발됐다. 원하는 재료로 원하는 크기, 원하는 모양의 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이처럼 원하는 제품을 복잡한 공정과 장비 없이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는 제조업에 일대 혁신을 불러올 예정이다.

소규모 부품 공장은 이런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대구 북구 3공단에 있는 한 금형 제작업체 대표 김제원(가명)씨는 얼마 전 10년간 함께 일해온 33살 직원을 퇴직시켰다.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저희 공장에서 일했던 조카 같은 직원인데 다른 공부를 해보라고 떠밀었어요. 이 일은 10년 내로 없어질 거예요. 옛날에야 기술자 취급을 받았지 앞으로는 누구나 3D프린터와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알면 자기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 줄 알 텐데, 다른 직업을 찾아야죠.”

3D 프린터가 널리 보급되면 될수록 기존의 제조업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위의 BBC 웹사이트에서 금속 제조업자가 대체될 확률은 88%다. 금속가공기계 조작원은 87%가 사라질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서도 사라질 5대 직업 중 하나로 부품 제조업을 꼽았다.

(왼쪽부터) 3D 프린터 photo 브륄레코리아 / 일본 오사카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얼터’ photo 뉴시스 / IBM의 인공지능 로봇 ‘나오미’ photo IBM
(왼쪽부터) 3D 프린터 photo 브륄레코리아 / 일본 오사카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얼터’ photo 뉴시스 / IBM의 인공지능 로봇 ‘나오미’ photo IBM

2. AI 로봇

3D프린터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제조업에 대한 혁신은 3D프린터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AI 로봇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 이전에도 제조업 분야에서는 자동화 로봇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많이 빼앗아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동화 로봇이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와 같은 직군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로봇은 입력된 프로세스에 따라 단순 작업을 하는 데 그쳤지만, AI가 탑재된 로봇은 작업 환경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널리 활용될 수 있다. 상호 작용도 가능한 데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속도와 힘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몫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BBC의 웹사이트를 보면 대체 가능성 높은 직업의 대부분은 제조업 직군이다. 가구 제작자는 91.6%가 사라진다. 이미 자동화가 상당히 진행된 대장장이는 93.5% 없어질 전망이다. 재단사는 84% 대체되고, 제빵사 역시 88.8%가 없어진다.

제품 설계와 제작에 관련된 직업만이 아니다. 기계·화학·재료 등 다양한 분야 기술자들의 설 자리도 AI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전기·전자제품 수리공의 92.4%는 AI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성형 제작자의 90.7%, 재봉사의 89.2%, 철도 건설 및 유지 관리사의 88.3%도 AI 로봇으로 대체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학·재료·기계 관련 직종의 사람들은 55~61%가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업무 내용도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벌써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거나 5년 내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중도 80% 안팎에 달했다.

AI 로봇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직종은 또 있다. 한국고용정보원과 BBC, 세계경제포럼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금융·보험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BBC에 따르면 보험 사무직(Insurance clerk)은 97.0%가 사라진다. 은행원(Bank or post office clerk)은 96.8%가 AI에 대체된다. 경리(Financial accounts manager)나 회계 관리자(Financial administrative worker)는 96.8~97.6%의 높은 대체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직군이 금융·보험 관련직이었다. 이들 중 81.8%의 사람들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벌써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응답도 과반 안팎의 응답률을 보였다. 경기도의 한 은행 지점에서 일하다 지점 간 통폐합으로 보직을 변경한 은행원 이소영씨도 회사 선배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10년, 15년 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선배들이 많아요. 창구 업무는 지금 당장 AI가 대신할 수 있고, 조금 더 복잡한 업무도 앞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니까요.” 이씨는 금융 직종에 한해서는 ‘직업 전문성’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전망했다. “책 몇 권짜리 금융 지식 얻으려고 시험까지 치는데, AI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정확하게 처리하잖아요.”

금융과 기술의 융합을 뜻하는 핀테크(Fintech)가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거래가 손쉬워지고 기존 은행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금융 지식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개별 은행원의 역할은 적어지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정보기술이 차지했다. 인공지능의 빠른 정보처리 속도 때문에 개인이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금융 정보도 손쉽게 처리 가능해졌다.

호주의 ANZ은행은 인공지능이 고객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일본 미즈호은행은 인공지능 로봇을 이용해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들을 상대하도록 하면서 호평을 얻고 있다.

AI는 사회 곳곳,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줄 것이다. 소규모 여행사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AI 기술의 발달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맞춤형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은 물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예약을 돕는 것까지, 굳이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면 AI가 여행사를 대체할 것은 명확해 보인다.

운행 중인 구글의 자율주행차 ⓒphoto 영상미디어 구글
운행 중인 구글의 자율주행차 ⓒphoto 영상미디어 구글

3. 자율주행차

가장 각광받는 AI 기술 중 하나인 자율주행차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70만마일을 달리는 동안 사고를 내지 않았고, 테슬라의 자율주행차는 스스로 주차하는 기능까지 탑재해 시연을 마쳤다.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를 점령하기 시작하면 운전사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자가용 운전자뿐만이 아니다.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 운전사 역시 자율주행차가 대신할 수 있다. BBC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대체율은 56.8~61.2% 정도다. 그러나 이들 종사자의 수가 영국에서만 33만명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서도 많은 편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체감하는 변화의 폭은 더욱 클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율주행차가 보험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선진국 자동차보험 시장 규모는 2040년까지 지금의 8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직접 차를 모는 것보다 사고가 적게 날 것이고, 사고의 유형도 비교적 단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외국의 보험사들은 자율주행차에 맞는 보험 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의 도쿄해상은 보험 상품을 새로 개발 중이다.

실제 배송에 사용된 아마존의 드론 ⓒphoto 아마존
실제 배송에 사용된 아마존의 드론 ⓒphoto 아마존

4. 드론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드론을 이용한 택배 배달에 성공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주민이 주문한 TV 셋톱박스와 팝콘 한 봉지가 주문 13분 만에 드론을 이용해 배달된 것이다. 드론의 비행 능력에 한계가 있어 케임브리지 인근 8.3㎢ 내에서 2.3㎏ 이하의 물건만 배달 가능하지만, 앞으로 배송 능력이 늘어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배달원의 일자리가 드론에 빼앗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BBC에서는 우편 배달부를 비롯한 배달원의 대체 가능성을 86%로 봤다. 영국에서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16만5000여명이니 가까운 시일 내에 2만여명만 남기고 드론이 이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용산에서 택배업체 대리점을 운영해온 윤형윤씨는 “5년 뒤에는 운전 능력이 아니라 드론 조종 능력을 가진 직원을 고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경기에 관계 없이 성장해온 택배 사업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드론은 단지 배달원의 일자리만 빼앗는 게 아니다. 벌써 드론이 농업에 활용되는 사례는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일자리가 부족한 농촌에서 드론이 대신 농약을 살포해주는 시범을 보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일손을 대신해주는 데서 나아가 인공지능을 탑재한 농부 드론이 등장할 가능성도 많다. 싱가포르의 가루다 로보틱스(Garuda Robotics)의 드론은 농장의 상태를 파악하고 온도·습도 등 주변 환경을 파악해 적절한 농사 방법을 제안해주는 기능까지 탑재했다. 만약 드론이 AI 로봇과 협업할 수 있다면 농부의 일자리 또한 대체될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일자리에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에서도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2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난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드론의 경우 택배원의 자리는 빼앗겠지만 드론 조종사, 엔지니어 일자리를 만들 것이고 자율주행차에 맞는 교통 모니터링 전문가, 응급상황 처리 전문가 등이 새로 생겨난다. 이처럼 앞으로 10년은 지난 10년과 같은 기술, 같은 직업으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사라질 직업을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기술과 비전을 갖는 것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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