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44호] 2017.02.13

서울시 ‘35층’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 재건축을 앞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왼쪽)와 재건축된 잠실지구 아파트.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인턴기자
서울 잠실대교 북단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아파트군이 거대한 장벽을 이룬다. 강 서쪽에서부터 시작해 잠실엘스(34층), 잠실리센츠(33층)를 비롯해 잠실대교 동쪽의 잠실파크리오(36층) 등이다. 각각 잠실주공 1단지, 2단지, 잠실시영을 재건축한 아파트인데 35층 내외로 층수가 형성돼 있다.
   
   35층 내외의 아파트가 연이어 들어선 결과는 끔찍하다.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한강에서 바라보는 남쪽 조망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나마 하늘을 향해 돌출한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아니었다면 단조로운 스카이라인에 숨이 막힐 정도다. 이는 서울시가 수립한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에서조차 “기조성된 단지(잠실엘스, 잠실리센츠, 잠실파크리오)는 일률적인 높이와 단지 배치로 인해 경관거점지역의 차별성이 부재”하다며 “수변 및 한강대안(對岸)부에서 조망 시 획일적 경관, 경관차폐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적시했을 정도다.
   
   잠실은 서울시가 내세우는 ‘35층’이 ‘절대선(善)’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반면 서울시는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주공 5단지에 또다시 ‘35층’ 높이를 강요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 2월 1일 서울시 본관 6층 기획상황실에서 ‘제3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조합이 제출한 최고 50층 높이 재건축 계획안을 ‘보류’했다. 서울시 높이 규제인 ‘35층’을 넘어선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같은 날 서울시 도시계획위에 회부된 신반포 14차 재건축 계획안은 최고 층수를 34층으로 제출한 결과 ‘수정가결’ 결정을 받아 심의를 통과했다. 앞서 지난 1월 18일 열린 제2차 도시계획위에서 잠실진주아파트와 미성·크로바아파트 모두 35층 이하의 재건축안을 제시한 결과 각각 ‘수정가결’과 ‘조건부가결’로 통과했다. ‘35층’이 성패를 좌우한 것이다.
   
   
   35층이 만든 스카이라인
   
   서울시 고집대로 잠실주공 5단지가 35층으로 재건축되면 잠실대교 남단은 35층 내외의 아파트로 완전히 차폐(遮蔽)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35층’ 높이 규제가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도시경관을 파괴한다는 지적이다. ‘도시계획’이란 미명(美名)하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잠실은 전임 오세훈 시장 때인 2010년 수립한 ‘서울시 수변경관계획’에 따라 압구정, 용산, 여의도와 함께 ‘높이완화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들 네 곳은 한강 물길이 크게 굽이지는 ‘물굽이’란 공통점이 있다. 당시 계획은 “굴곡부 등 경관 중요지역 및 전략거점 개발지역으로 한강을 통해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랜드마크 경관 창출이 기대되는 지역”이라며 “새로운 수변 랜드마크 경관 창출을 위해 최고 층수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창의적 디자인의 건축물을 유도한다”고 적시했다.
   
   박원순 시장 1기 때인 2013년까지만 해도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대체로 유지됐다. 이에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조합 측은 한강변에서부터 건축물 높이를 서서히 높여 단지 가운데 50층 4개동을 세우고, 지하철 잠실역과 인접한 모서리에 4개동, 총 8개동을 세운다는 계획을 입안해 이번에 제출했다.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조합의 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있을 때인 2013년 서울시에서 50층으로 가이드라인을 주어서 그에 따른 계획안을 만든 것”이라며 “정비계획을 만들려면 적어도 2~3년은 걸리는데 다시 35층으로 하라고 하니 주민들 가지고 장난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35층 이상 건축된 한강변 기존 아파트들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잠실 5단지에서 불과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잠실파크리오는 36층이다. 신반포 1차를 재건축한 반포아크로리버파크는 38층, 이촌동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첼리투스는 56층에 달한다. 한강 지류인 여의도 샛강변의 여의도 자이는 39층, 금호리첸시아는 40층, 대우트럼프월드도 40층인데 모두 주거용으로 쓰인다. 한강변 성수동 트리마제도 47층으로 신축 중이다. 이들 단지는 서울시가 조망권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남산, 북한산 등과 더 가까워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한강변 아파트의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는 주된 까닭은 주요 산의 조망권을 확보한다는 차원이다. 남산(270m)·관악산(632m)·북한산(835m) 등이 그 대상이다. 이들 산을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한강 아래 잠실은 사정이 다르다. 조망권 확보 대상인 주요 산과 거리가 먼 평지라, 일괄적으로 35층 높이를 규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실제 잠실은 서울시 한강변 관리기본계획 수립 때 설정한 주요 경관 시뮬레이션 10개 지점에서 제외된 바 있다. 당시 10개 기준점 설정 때는 그나마 270m에 불과한 남산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반포대교 남단과 한남대교 남단이 대상이 됐다.
   
   사실 건축물 높이는 조망권과는 별 상관이 없다. 높이를 고층화하는 방식으로 동간 거리를 최대한 널찍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35층 3동을 올릴 자리에 100층 한 동만 올리면 동일 가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다. 한강변 최고층인 56층의 래미안 첼리투스가 조망을 가리는지, 35층 이하의 잠실엘스와 잠실리센츠가 조망을 가리는지는 실제 두 눈으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높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아파트 건물 자체의 건축 미관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한강변에 들어선 반포아크로리버파크는 동별 높낮이를 차별화하고 외관 디자인을 특화한 까닭에 전임 오세훈 시장 때 38층으로 올릴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시가지계획령
   
   서울시 관료들이 고도제한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도시계획의 영향이 뿌리 깊은 탓이다. 지진과 태풍에 취약하고 자원도 부족했던 일제는 건축물 최고높이를 ‘100척(尺·약 30m)’으로 제한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조선총독부는 1934년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인 ‘조선 시가지계획령’을 제정하면서 주거시설은 20m, 기타시설은 31m로 고도를 꽁꽁 묶어 버렸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1931년 뉴욕에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지어올릴 때였다.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2년 국내 최초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을 제정했을 때도 주거시설은 20m로 유지됐고, 기타시설만 35m로 완화되는 데 그쳤다.
   
   개발연대 때는 건축물 높이제한에 불가피한 사정이라도 있었다. 건축기술 수준이 열악했고 돈도 없었다. 5층 이상의 아파트를 신축하려고 하면 철골구조를 써야 했고, 엘리베이터 설치도 불가피했다. 건축비가 증가해 입주민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난방 연료도 지금과 같은 도시가스가 아니라 재가 풀풀 날리는 연탄을 주로 쓸 때다. 당초 중랑천 판자촌 철거민을 위한 대단위 주거지역으로 개발된 잠실주공 1~4단지와 잠실시영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아파트 높이가 5층으로 정해졌다. ‘5층 이상 아파트는 어린이 정서발달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금 들으면 실소(失笑)가 나오는 논리도 횡행할 때였다.
   
   잠실은 역사유적 보호 차원에서 높이규제 필요성을 인정받는 서울 사대문 한양 도성 안과는 역사적 뿌리도 다르다. 원래 잠실은 한강의 하중도(河中島·잠실섬)로 누에를 치는 뽕밭에 불과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경기도 고양군 뚝섬면에 속했다. 1974년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의 ‘3핵(核) 도시 구상’에 따라 비로소 개발이 시작된 신흥개발지역이다. ‘3핵 도시 구상’은 서울 사대문 안 구도심과, 영등포·여의도, 강남·잠실을 3개 핵으로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이에 홍익대 박병주 교수에게 의뢰해 1974년 ‘잠실지구종합개발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한강 공유수면을 연탄재 등으로 매립한 곳을 중랑천변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을 수용하기 위한 대단위 주거지로 조성했다. 건설부 고시에 따라 1976년 ‘아파트 지구’로 지정됐다.
   
   그 당시에도 잠실역과 맞닿은 잠실주공 5단지는 1978년 준공 당시 아파트로 최고층인 15층 높이로 지어졌다. 잠실역과 인접한 입지를 고려해서다. 바로 옆 5층 높이로 지어진 잠실주공 1~4단지의 3배 높이였다. 주택공사(현 LH)가 최첨단 공법을 사용해 2중벽과 2중창으로 시공했고, 동간 간격은 일반 민간 아파트(40m)보다 훨씬 더 널찍한 70m로 지어졌다. 잠실 5단지 서남쪽에는 국내 아파트 사상 최초로 실내체육관과 실내수영장이 있는 새마을체육관(현 송파 YMCA)이 지어졌다. 서울시장을 지낸 양택식 시장이 주택공사 사장으로 옮겨 잠실단지건설본부를 꾸려 심혈을 기울여 지었다. 이 기준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35층 내외로 재건축된 잠실 1~4단지보다 3배 높은 105층 높이로 지어올려도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1978년 최고층 잠실 5단지
   
   잠실은 서울의 대표적인 ‘광역교통중심’이다. 서울시 지하철 수송통계에 따르면, 지하철 2·8호선이 지나는 잠실역의 지난해 연간 이용객은 6171만명이다. 강남역(2호선·신분당선)과 고속터미널역(3·7·9호선)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잠실역의 하루 승하차 이용객만 16만9602명으로 서울역보다도 많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 터미널형 지하 광역환승센터도 잠실역에 들어섰다. 지하버스환승센터로는 수원의 광교중앙역에 이어 두 번째다. 신흥개발지라 서울 시내 어떤 광역교통중심보다 널찍한 동서 왕복 10차선의 광폭도로망을 갖췄다. 같은 한강변으로 역시 서울시와 35층 규제로 옥신각신하는 압구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
   
   이런 잠실역 서북쪽(잠실주공 5단지) 모퉁이를 통째로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묶는 것은 다중(多衆)이 공유해야 할 잠실역을 아파트 입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사유화하는 것이다. 이는 신규공급을 묶어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진입장벽을 높이고 기존 지주들이 가진 땅의 희소성만 높인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잠실은 용도지역 규제 자체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잠실 5단지와 길 건너편에는 각각 36층과 46층의 롯데캐슬골드와 갤러리아팰리스가 들어서 있다. 상업지역에 들어선 주상복합이지만 실제는 주거용 아파트로 쓰인다. 지도상에서 선으로 그어놓은 용도지역 규제가 탁상공론에 불과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울시의 ‘35층’ 집착에 경기회복의 호기를 놓치는 것도 문제다. 부동산은 건축·이사·가전 등 연관산업 및 서민경기에 미치는 효과가 그 어느 산업보다 크다. 1974년 잠실주공 1~5단지 건설에 착수했을 때다. 직전 해인 1973년은 ‘제4차 중동전쟁’ 발발로 인한 1차 석유파동이 있던 해다. 물가가 앙등하고 서울 시내에 실업자가 쏟아졌다. 잠실 1~5단지는 엄청난 건설 물량으로 넘쳐나는 실업자를 일거에 해소했고 불경기 극복의 단초가 됐다. 중랑천변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들도 새 터전을 마련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잠실 공사는 광범위한 연관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바닥을 헤매던 국내 경기를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서울시와 직접 경쟁도시인 중국 상하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황푸강(黃浦江)은 한강보다 협소하다. 옛 서양 열강의 조계(租界)로 역사건축물이 많은 황푸강 서안 푸시(浦西)는 엄격한 고도제한을 적용하고, 신흥개발지인 황푸강 동안 푸둥(浦東)은 건축물 높이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기존 빌딩과 디자인만 겹치지 않으면 된다. 그 결과 높이와 디자인에서 자유경쟁이 일어났다. 푸둥 개발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탑을 시작으로 진마오타워(88층), 환구금융센터(101층), 상하이센터타워(118층) 등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냈다. 푸둥 개발이 상하이를 중국 제1의 경제도시로 끌어올렸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내수 경기가 최악이라는 지금 서울시에서는 ‘35층’ 집착에 묶여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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