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44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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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 나의 난임일기] 불임과 비임 사이

무자녀 부부를 위한 변명

▲ 일러스트 이철원
시험관 시술 성공률은 평균 20~30%에 달한다. 바꿔 말하면 10명의 시험관 부부 중 7명은 실패한다는 얘기다.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난임 부부 중 30% 안팎은 도중에 시술받는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비용, 신체적 부담, 비관적인 전망이 어우러진 결정이다. 이런 부부들에게는 새로운 가족계획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것이 ‘정상’이라고 믿는 우리 사회에서 특이한 ‘비정상’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 불안감은 떨칠 수 없다.
   
   
   “결혼한 지 몇 년 됐지? 이제 슬슬 아이 낳아야지.”
   
   명절 때마다 수십 번 듣는 얘기다. “부모님께 좋은 소식 들려 드려야지” “이제 그만 놀아”라는 얘기는 흔히 듣는다. 말하는 본인은 덕담인 줄 알고 건네는 “이제 어른이 돼라”는 말도 들었다. 사람들은 으레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거라 생각한다. ‘좋은 소식’은 언제 들리느냐고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모습은 낯설다. “에이,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야지.” 평범하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처음 시험관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결국 임신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 임신한다더라”는 주변 사람의 격려가 꼭 이뤄질 것처럼 생각하던 날도 있었다. 점점 하루 24시간, 하는 일 모든 것을 임신과 연결하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목적과 수단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왜 아이를 갖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봤다. 아이를 낳으려 했던 것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탓이었다. 연애할 때도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말이야”라는 얘기를 참 많이 했다. 그건 30년 넘게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이를 어떻게 낳고 기를지 얘기하다 보면 어떻게 자라왔는지 얘기하게 되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나누게 된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다 보면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즐겁고 행복한 일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몇 번의 시험관 실패를 거치면서 그런 마음은 희미해져 갔다. 임신과 비임신을 판가름하는 데만 온 신경을 쏟게 됐다. 이제는 실패를 인정해야 할 때였다.
   
   남은 문제가 생겼다. 아이 없이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가족이라는 틀을 지켜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난 후 불안감에 시달리는 날이 많았다. 무엇이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줄 것인지, 내가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해 할 때마다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그대로 살다 보면 우리답게 늙어가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늙어가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은데, 아이 없이 함께 늙는 부부의 이야기는 아직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세계일주를 함께 다녀왔다든가 창업에 성공했다든가 하는 성공담밖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족의 어려움과 즐거움은 아이를 낳지 않은 나에게도 익숙한데, 아이 없는 부부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실패에 따른 좌절과 상실감, 불안감을 이기고 새 가족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졌다.
   
   여러 번 실패를 겪은 난임 부부의 진로는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끝까지 노력해 보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도중하차’한다. 보건복지부의 ‘2015 출산력 조사’ 결과를 보면 난임 시술을 받다가 중단한 사람은 전체의 34.4%다.
   
   5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임신에 실패한 37살 조미희씨가 그런 사례다. 조씨는 조기폐경을 겪었다. “난임(難姙)이 아니라 불임(不姙)이 되고 나니 더욱 아이가 갖고 싶었다”는 조씨에게 누군가 난자를 공여받으라고 권했다. “알아 보니 돈거래가 없이 순수하게 난자만 공여받는 건 불법이 아니래요. 자매의 난자는 거의 같다고 하니까 자매가 있었다면 부탁해 봤겠지요. 자매가 없으니 생판 모르는 사람의 난자를 공여받아야 하는데, 누가 그걸 주겠어요.”
   
   조씨처럼 생식세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생식세포를 기증받는 일을 고민하게 되지만 신체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 중에는 대리모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리모를 통한 출산은 불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련 법률이 없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다.
   
   
   위험한 대리모
   
   201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2014년 한 해에 적발된 대리모 등 불법 사이트가 90개에 달했다. 대리모를 알선해주는 것은 물론 난자나 정자를 매매하는 사이트도 있었다. 아예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해 6월 전주지법에서 벌금형을 받은 30대 여성은 난임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난자를 공여해주겠다’며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어떤 방법으로든 ‘피’로 이어진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난임 부부들의 소망이 생식세포 공여나 대리모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해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우려를 표했다.
   
   우선 생식세포 공여나 대리모가 갖는 위험성이 문제가 된다. 최 센터장은 “본인의 난자를 채취하는 데도 난소 출혈, 난소과잉자극증후군 같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고 생식능력을 떨어트리게 되는데 누가 순수한 선의(善意)로 그걸 대신해주겠느냐”고 되물었다.
   
   “대리모는 더욱 문제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비율, 즉 모성사망률은 2014년 기준 10만명당 17.2명으로 OECD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탈 없이 아이를 낳더라도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매우 커요.”
   
   금전적인 거래가 오가지 않을 경우에 우리나라에서 대리모나 난자 공여는 주변의 압박 때문에 이뤄질 때가 잦다. “나이 어린 자매나 친지가 있으면 주변에서 ‘너희 언니가 이렇게 힘든데 그걸 못 도와주느냐’고 강요하는 식이지요.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깁니다.” 난자를 공여받거나 대리모를 통해 임신했는데 아이에게 기형이 있을 경우, 뒤늦게 공여자나 대리모가 친권을 주장하는 경우 등등 윤리적인 문제는 수없이 많다.
   
   최 센터장은 “난임 시술은 기본적으로 난임 부부 본인들의 가임 능력을 키워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를 낳겠다는 식의 난임 ‘치료법’은 난임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만 보는 시선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원하는 난임 부부들에게 입양을 권하는 편이다. 박춘선 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임신과 출산은 긴 가족계획의 겨우 첫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저는 난임 부부들에게 항상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입양은 그래서 좋은 선택이라고 봐요. 실제로 입양한 난임 부부 중에는 일 년이라도 먼저 입양할 걸,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양을 선택하는 난임 부부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난임 부부 중 입양을 고려한 사람은 29.7%로 꽤 높은 수치를 나타냈지만 실제 입양 경험률은 0.8%에 불과했다. 복잡한 입양제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조사에서 기혼여성에게 “입양한 아이도 내가 낳은 자식과 같이 잘 키울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수가 57.9%가 넘었다. 기혼남성도 56.7%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도 가족의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과정을 겪지 않은 아이, 즉 입양한 아이를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고 지적했다.
   
   
   난임, 불임이 아니라 비임(非姙)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이 상당해서다. 성미애 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교수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처음부터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하고, 난임 등 상황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면 불행할 것이라 단정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위기로 다뤄지는 상황에서 ‘자녀가 없음’은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받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출산 경험이 없는 ‘무자녀 부부’의 비율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낮게 나오는 편이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발표한 ‘한국의 무자녀 부부 가족’ 보고서를 보면 출산 경험이 없는 무자녀율은 2010년 기준으로 만 30~34세는 7.7%인데 40~44세로 넘어가면 1.8%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 중 부부의 가치관에 따른 판단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겨우 12.9%. 나머지는 난임이나 부부의 건강 문제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 문제가 있는 부부를 제외하고는 결국 대부분의 부부가 자녀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시험관 시술 11년 만에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신주란씨는 “아이 안 낳을 거야?”라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적당히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아이 있다고 해요. 업무 관계로 한두 번 만난다든가 네일아트 받으러 간다든가. 아이 없다고 하면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신씨는 한 중년여성이 “저출산이 문제라는데 그래도 아이 낳아야 나라가 살지”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인희 연구위원은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자녀 없는 부부의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저출산의 해법은 무자녀 부부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있는 가족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의 무자녀율은 낮은 편이다.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평균 15~20%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고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프랑스도 가임연령을 넘긴 여성 10명 중 1명은 아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난임 부부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 한 해 2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를 비춰 볼 때 앞으로 가치관이나 경제적 문제, 건강 문제로 우리나라에서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일도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불임, 난임을 넘어서 ‘비임(非姙)’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비임’은 선택의 문제다. 둘만 아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난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둘만 사는 것도 아니다. 부부가 처한 경제적·물리적 환경 속에서 선택한 문제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앞으로는 자녀가 있는 부부만큼 비임 부부도 늘어날 것”이라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로 비임 부부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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