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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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다녀와 처가에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 승용차 안이었다. 회사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옆 회사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우리 회사 발렛파킹 계약이 바뀌고 있어요.” 처가에 인사만 드리고 부리나케 서울로 올라왔지만 계약은 이미 모두 넘어간 후였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 8명이 법인을 만들어 발렛파킹 계약을 모두 뺏어간 것이었다. 계약을 바꾼 임차인들은 평소 자신들을 만나주지도 않던 젊은 건물 관리업체 대표를 알은체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운전대를 잡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정처 없이 떠돌다 강원도 홍천의 한 여관에 도착했다. 침대에 혼자서 불을 끄고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창피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어떻게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까 생각했다.

죽음 코앞에서 발길을 돌리게 한 사람은 아내였다. 생전 교회 근처에 가지도 않던 아내가 휴대폰으로 성경 구절을 보냈다. 이삭이 자신을 시기하던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쫓겨나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더니 다시 물이 나왔다는 구절(창세기 26장)이었다.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여관을 나섰다. 건물관리업체 ‘랑코리아’ 대표 장덕성씨가 2012년 2월에 겪은 일이다.

건물관리 실패서 교훈

장덕성(36)씨는 현재 ‘커피랑도서관’ 대표가 되어 있다. 커피랑도서관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39개 점포가 있는 카페 프랜차이즈다. 이름 그대로 카페와 도서관을 합쳐 공부하기 좋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시류를 잘 타 사업에 성공한 젊은 프랜차이즈 대표로 보인다. 하지만 사업이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장 대표의 관심 분야는 건물관리였다. 건물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관리를 대행하는 것이다. 건축 일을 하던 아버지로 인해 어려서부터 건물 임대업과는 익숙한 편이었다. 장 대표는 대학 3학년이던 2007년, 영국의 한 건물관리업체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영국 본사에서 1년간 인턴생활을 한 후 한국 지사에 취업했다. 다시 1년간 일을 배우며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한 후 건물관리업체를 만들었다.

장 대표는 경제적 여건이 좋은 편이었다. 집에 사업 계획을 설명드리니 아버지가 1억원을 사업 밑천으로 선뜻 내주었다. 초반에는 강남 60개 건물을 관리할 정도로 사업이 잘됐다. 강남 일대 대형 주차장 5곳을 관리하면서 받는 발렛파킹비가 주 수입원이었다. 그러다 시련이 찾아왔다.

“제가 그때 굉장히 교만했어요. 임차인들은 만나지도 않고 건물주들하고만 어울렸죠. 양복 가슴주머니에 현찰을 꽂고 다니면서 돈을 펑펑 썼어요.”

결혼을 하고 처가에 인사를 드리러 내려가던 사이 지인 8명이 랑코리아의 발렛 용역계약서를 몰래 바꿨다. 계약 자체가 주먹구구라 대표 서명 없이도 계약을 바꿀 수 있었다. 임차인들과 직접 만나 계약을 하지 않았던 점이 실책이었다. 뒤늦게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계약이 모두 바뀐 후였다. 계약을 뺏긴 데서 오는 손해보다도 믿었던 이들로부터 받은 배신감이 뼈아팠다.

“건물관리 할 때는 술을 먹고 밤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사업에 실패한 뒤 철저하게 반성하고 그동안을 돌아보게 됐죠. 그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술, 유흥과는 관계없는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첫 사업 실패 후 장 대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건물관리 할 때 보고 들은 간접경험이 아이템을 고민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카페 같은 경우가 빛 좋은 개살구가 많았어요. 소규모 병원도 의외로 어려운 곳이 많았고요. 특히 강남에서는 정말 돈 벌어 건물주 갖다주는 경우가 많아요. 임대료가 워낙 비싸니까요.”

독서실에 주차장 관리 기법 도입

장 대표가 눈여겨본 아이템은 독서실이었다. 그가 독서실을 눈여겨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임대료가 싸다. 들어서야 할 층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인건비가 들 일이 별로 없다. 총무 한두 명만 두면 더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 없다. 학생들이 꽉 차는 성수기와 그렇지 않은 비수기가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 점만 해결하면 쏠쏠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수년간 무수히 본 사업 실패 케이스도 참고했다. “가게가 망하는 이유는 대부분 임대료 때문이에요. 임대료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는 거죠.” 이 때문에 장 대표는 임대료가 비싼 1층은 무조건 피했다. 대부분 1층에서 영업하는 일반 카페와 다른 점이다. 그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경우 1층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만 그 임대료가 적용돼야 하는데 옆 골목까지 비슷해져서 1층에서 사업해 이익을 남기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2013년 11월 서울 석촌호수 근처에 커피랑도서관 첫 지점을 냈다. 콘셉트는 카페에 도서관을 합친 것이었지만, 실제 경영에는 자신이 관리하던 주차장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방 형태의 독서실을 내부에 만들고 여러 명이 들어가 회의를 할 수 있는 방도 마련했다. “주차장 관리할 때 요금 상품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매출이 좋았어요. 발렛도 하고 상품권도 팔면서 상품을 다각화했죠.” 현재 커피랑도서관의 요금제는 17가지에 달한다. 요금제가 다양하다 보니 찾는 연령층도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하다.

사업이 잘되면서 가맹 문의가 밀려들었다. 2014년부터 언론을 통해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코피스족(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 등이 유명해지면서 바람을 탔다. “저희가 의도한 것은 거의 없어요. 손님들이 스스로 분위기를 잡으셨고 흘러가듯이 지금까지 오게 됐죠.” 커피랑도서관의 점포는 39개로 현재까지 폐점률 0%다. 이 중 6개 지점이 순수 직영점이다. 올해 중으로 100호점을 내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 장 대표의 설명이다.

장 대표가 밝힌 커피랑도서관 지점 하나의 월 매출은 1200만원 안팎이다. 이 중 고정비용으로 월 700만~800만원 정도가 나간다고 한다. 임대료가 월 300만원이 넘으면 아무리 유동인구가 많은 지점이라도 입점을 꺼린다. 1호점인 석촌호수점의 경우 4층에 입점해 있지만 월 매출이 2000만원을 넘을 때도 있다.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공부하는 이들로 인해 회전률이 낮다는 일반 카페의 단점을 시간별 이용료로 보완했다.

“주말에 엄마 아빠하고 자녀분들이 와서 카페 방을 이용할 때를 보면 가장 뿌듯해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이번엔 처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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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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