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 졸업식은 교사들에게 공포와 근심의 시간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노는 아이들’ 몇 명이 모여 밀가루, 달걀, 케첩을 서로 뿌리고 교복을 찢는 엽기적인 뒤풀이 문화가 골칫거리였다. 자기들끼리는 억눌리고 강요되었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했다는 자축일지 몰라도 3년을 함께한 교복을 찢고 머리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행동은 치기 어린 장난을 넘어 혐오감을 일으키게 했다.

모든 교사들은 졸업식 전부터 교문을 통과하는 수상한 물건들을 일일이 검사하였고 학교 화장실이나 사물함에 미리 갖다 숨겨놓은 밀가루 등을 찾아내어 없애기도 하였다. 졸업생 선배 ‘일진’들이나 논다는 인근 학교의 ‘위험인물’들이 졸업식장에 나타나면 학교는 초긴장 상태가 되곤 했다. 학교 내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아이들이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학교 주변 골목이나 으슥한 곳에서 자신들만의 졸업식 행사를 치를까봐 교사들은 조를 이루어 학교 주변을 순찰했다. 아이들이 찢어놓은 교복과 밀가루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교사들이 알아서 깨끗이 치워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은 대부분 강당이 없어서 교실에서 졸업식이 이루어졌다. 방송 화면으로 진행되는 졸업식은 형식적이고 권위적이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와 귀빈소개, 성적우수자 상장 수여식이 전부였다.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다수의 학생들은 교실의 TV 화면을 보며 인사나 하고 박수나 치는 들러리였다. 졸업생들은 방송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졸업앨범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졸업식이라고 해봤자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가족들에게도 오지 말라고 하고 졸업식이 끝나면 자기들끼리 축하하고 노는 뒤풀이 문화로 이어지기 쉬웠다. 졸업식 날까지 입던 낡은 교복도 더 이상 필요 없으니 애착도 없었을 것이다. 벗어난다는 해방감만 있고 헤어져 섭섭하고 추억하고픈 기억도 별로 없으니 교복을 밀가루로 범벅하여 버려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졸업식 뒤풀이가 많이 사라졌다. 학생들의 졸업식 일탈행위를 막고자 처음에는 단속과 처벌로 접근하였는데 차츰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많은 학교에서 그 학교만의 개성 있고 독특한 졸업식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졸업식 사회를 후배들이 맡고 있으며 졸업생 얼굴 하나하나가 식장의 메인 화면에 크게 띄워진다. 후배들의 축하공연도 있고 담임교사들이 식장에서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시간도 주어진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가족들도 더 많이 참석한다. 상장 수여 시간도 대폭 줄이고 귀빈 소개도 간단히 인사만 한다. 개인상을 받는 학생들을 졸업식 전에 교장실에 따로 불러 상을 주는 것도 획기적인 변화이다. 지역유지나 국회의원 등 외부 인사들이 주는 상을 사양하는 학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변화된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3년 동안 활동한 사진과 영상물을 집중하여 본다. 나도 모르게 찍힌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찾느라 졸업식장은 진지해진다. 함께한 시간들이 떠올라서인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남의 상장보다 더 중한 자신의 졸업장을 담임의 격려와 친구들의 박수 속에서 받으니 자랑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입던 교복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교복 물려주기에 동참하면 상품권도 받을 수 있으니 ‘교복 찢기 퍼포먼스’는 점점 외면받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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