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3회에 걸친 난임일기를 연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두 번째 난임일기, ‘돈보다 힘든 마음’을 쓰고 나서였다. 퇴근하는 길 안부를 물으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우리 딸” 전화를 받은 친정 어머니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방금 네가 쓴 난임일기를 읽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 것 같아 눈물이 나왔어. 힘들다고는 했지만 어떤 마음인 줄은 몰랐지. 기사를 읽고서야 알게 되었네.”

한 독자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말로 시작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저희 부부도 10년 난임으로 지냈는데 참 많이 싸웠더랬습니다. 그런데 난임일기를 읽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잘 몰랐습니다.”

여행 경험, 창업 경험, 육아 경험, 실직 경험…. 각종 경험담이 홍수를 이루는 요즘이지만 유독 난임 경험담만은 찾아보기 힘들다. 매년 난임 진단을 받는 사람만 2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은 애를 잘만 낳는데 왜 유난스럽게 구느냐” “진즉에 건강관리 잘하지 그랬냐” “누가 낳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낳고 싶다고 나서 놓고는 왜 우는 소리를 하니” 등과 같은 편견 섞인 비난 때문에 난임 부부들은 입을 다물었다. 저출산 시대를 역행하는 선택에 ‘별난 사람’이라는 얘기까지 듣는 게 요즘 난임 부부다.

난임일기를 쓰기 위해 만났던 난임 여성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은 “이런 얘기 처음 해본다”는 것이었다. “갓 태어난 아들이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너무 힘들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 가지는 것도 힘들더라’ 얘기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진 경험이 있어요. ‘아이 없냐’는 일상적인 질문에 ‘난임이라서’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이 어쩔 줄 몰라 해요.” 시험관 시술만 6번을 받은 조은영씨의 이야기다.

난임 경험을 제대로 털어놓았던 게 처음이라는 난임 여성 조은영씨, 이영란씨, 김소연씨를 다시 만났다. 지난 2월 27일, 서울 강남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일까. 이영란씨는 난임 인구도 늘고 있는 만큼 난임에 대한 지식도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임을 마음의 문제로만 알고 있는 분들도 있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어요.”

이씨의 이야기는 많은 난임 여성들이 동의할 만한 얘기다. 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 위로의 말 중 하나는 “마음을 편히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춘선 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그냥 ‘힘들겠구나’ ‘도와줄 일 없니’라는 위로를 해주는 게 낫다”고 말한다. 박 회장의 말을 이어 들어보자.

“난임은 순전히 몸의 문제입니다. 다른 질병과 같아요. 의료적인 처치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물론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면 다른 모든 질병이 그렇듯 상태가 좋아지지요. 그러나 ‘너는 마음을 잘못 써서 임신이 어려운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영란씨는 “난임 시술을 받고 임신 여부를 통보받을 때까지 난임 여성의 몸과 마음은, 시험을 끝내고 결과만 기다리는 수험생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져요. 깜박하고 커피 한 잔 마시려다가도 아차 싶어 내려놓는 걸요. 완전히 마음을 놓기란 불가능해요.”

난임에 대한 공감대 넓어졌으면

난임 여성들은 난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임신과 출산처럼 말이다. 김소연씨는 “특히 회사나 학교에서 난임 시술을 하는 여성들에 대해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사인 김소연씨는 주변 난임 부부들이 휴가 하루를 얻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난임 시술이라는 게 다른 치료처럼 날짜를 정해 원하는 시간에 시술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시술 날짜가 결정되고 또 변동이 가능한데 회사에서는 그걸 이해를 못 하니 결국 회사를 그만두느냐, 임신 시도를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더군요.”

난임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난소기능저하, 자궁내막증 같은 신체적 문제도 있지만 원인 불명의 난임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난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대개 ‘난임=문제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저 같은 경우는 원인 불명의 난임인데 시어머니는 제 탓을 했어요.” 김소연씨의 말이다. “시어머니가 여자 형제분들에게 조심스럽게 ‘며느리가 난임이다’라고 털어놨대요. 그랬더니 ‘쟤가 평소에도 성격이 예민해 보였다’거나 ‘만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난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난임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배아를 이식하고 착상시키는 과정이 여성의 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난임 여성들은 부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시험관에 네 번, 다섯 번 실패하고 나니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매번 휴가 낸다면서 눈치를 주고 집에서도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듣게 되니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됐어요.”

안팎으로 눈치를 받는 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구 절벽’을 눈앞에 둔 저출산 시대에 난임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라’고 외치지 않아도 알아서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을 위해 별다른 캠페인을 펼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정부 내에서도 존재한다. 그 증거로 난임 문제는 다른 것에 비해 소홀하게 관리된다. 지금껏 난임 시술 성공률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다. 난임 시술비에 대한 기준도 없어 병원마다 병원비가 제각각이다. 난임 전문병원에 대한 관리도 잘 안 돼 성공 건수 0건인 병원도 난임 전문병원의 이름을 달고 영업 중이다.

난임 부부 주변에서는 난임 부부를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사람’쯤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자발적인 딩크족(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이 느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는 난임 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난임 부부라면 한번쯤 “굳이 아이 가질 필요가 있느냐”며 난임 부부들의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난임 여성들은 입을 다물게 된다. 혼자, 알아서 정보를 찾고 치료를 받고 문제를 해결한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안고 있다 보니 두 번째 난임일기에 나온 것처럼 ‘난임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이라는 결과까지 나오는 것이다.

해마다 난임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한 해 실시되는 난임 시술 수만 10만여건에 달한다. 10만가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이다. 난임일기를 읽고 메일과 댓글, 그리고 편지로 감상을 보내온 독자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제 아내의 문제인데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많이 힘들었겠다고 다독여주며 얘기를 들어주고 싶습니다.” “깊이 공감하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더 많은 난임일기가 필요하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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