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48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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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세계의 축제 日 애니메이션 100년

2020 도쿄올림픽 장식할 새 국가브랜드로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최근 일본 NHK가 ‘일본 애니메이션 100’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낸 특집 화면. 애니메이션 1만편 중 시청자가 뽑은 베스트 100을 형상화했다.
로마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 탄생 2000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100주년,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사망 50주기, 박정희 탄생 100주년….
   
   올해 1월 1일 각국의 신년호 신문을 읽다가 알게 된 역사적 절기 관련 소식들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현지 일본어 발음은 ‘아니메이션(アニメ一ション)’, 줄여서 ‘아니메’)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은 일본 신문 1월 1일자 특집을 통해 알게 된 뜻밖의 정보다.
   
   위대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해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일본 신문의 새해 첫 특집지면이다. 올해 일본 메이저 신문 신년호 상당수가 ‘도널드 트럼프와 세계경제’라는 국제면 특집 바로 옆에 ‘일본 아니메 100주년’이란 특집기사를 실었다. ‘앞으로의 아니메 100년의 준비’ 같은 글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올해 초 한국 사회를 강타한 유행어는 ‘4차 산업혁명’이다. 입사시험에 나올 만한 키워드이고 대통령 자리에 마음이 있는 정치인들도 관심을 기울일 용어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100주년’이란 뉴스를 접하면서 필자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애니메이션은 과연 몇 차 산업혁명의 범주에 들어갈까? 콘텐츠산업의 한 분야로 풀이하지만, 영화나 노래와는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종이 위에 조금씩 움직이는 그림들을 여러 장 엮어 스토리를 만드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의미에서 전통적인 제조업일까?
   
   1차에서 4차에 이르는 산업혁명의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0차(零次) 산업혁명’의 영역이 애니메이션 아닐까. 1만5000년 전 크로마뇽인의 라스코 동굴벽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림은 인간의 본능과 생활의 한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은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업그레이드된 그림, 즉 동화(動畵)다. 고전적 의미의 영화와 달리 상상 속의 세계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동화다.
   
   움직이는 그림 정도가 아니라 3D 입체감과 컴퓨터그래픽으로 무장한 환상적 세계를 통해 상상력을 한층 더 북돋우는 것이 21세기 애니메이션의 현장이다. 모바일 시대에서의 상상력은 돈으로 연결된다. 따지고 보면 이미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오랫동안 인간이 다져온 상상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같은 세상을 이미 100년 전부터 열었다. ‘0차 산업혁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과거사가 아니다. 4차, 나아가 5차, 6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류 문명의 보고일지 모른다.
   
   현재 일본은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올해 일본 문화와 산업은 물론 외교 영역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이벤트의 주제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갖가지 행사와 기획이 준비되고 있다.
   
   특히 ‘외교 영역’이란 말을 꺼낸 이유는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은 핀란드와의 관련성 때문이다.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일본 주재 핀란드대사관이 ‘특별 아니메’를 만들어 전 세계 핀란드대사관과 공유하기로 했다. 도쿄의 핀란드대사관이 선보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핀탄(フィンたん)’이란 이름의 소녀다.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의 도움으로 탄생된 캐릭터다. 일본과 핀란드 국기를 함께 흔들면서 양국의 우호증진에 앞장서는 소녀다. 100주년이란 공통 기념일을 통해, 핀란드 애니메이션의 대표격인 ‘무민(Moomin)’도 발레리나 캐릭터로 분장해 오는 4월 도쿄를 찾는다. 무민 캐릭터를 통해 핀란드 홍보도 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이벤트에 참가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한 외교와 비즈니스의 협업(協業)쯤에 해당한다.
   
   
   ‘쿨 재팬’ 프로젝트 가동
   
   일본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기념 이벤트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물론 중심은 일본이다. 일본은 3년 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을 떠올려 보면 지금까지 브라질과 영국에 남아 있는 올림픽 흔적은 극히 드물다. 순간적인 감동은 있었지만, 한여름밤 불꽃놀이처럼 한순간 불타다가 사라진 것이 스포츠 제전이다. 일본은 다르다. 스피드 경기에 활용되는 100분의 1초 기록용 전자시스템과 탄환열차 신칸센(新幹線)을 개발, 활용한 곳이 1964년 도쿄올림픽이다. 전자대국과 테크놀러지 재팬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출발점이 당시 도쿄올림픽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내세울 일본의 새로운 브랜드가 될 전망이다. 수소자동차, 무공해 에너지와 더불어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문화 콘텐츠를 3년 뒤 도쿄올림픽의 상징이자 올림픽 이후의 비즈니스 기회로 확장시켜나가자는 생각이다. 이른바 ‘쿨 재팬(Cool Japan)’ 프로젝트다.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은 이 프로젝트를 키워나갈 절호의 찬스다.
   
   일본 국영방송인 NHK는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기념 총본부에 해당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미디어를 통해 분위기를 잡아가는 식이다. 2월 들어 거의 매주 ‘아니메 500선’ ‘아니메 음악 200선’ ‘최고 인기 아니메 100선’ 같은 특집이 등장하고 있다. 모든 결과는 시민들의 설문조사에 근거한 것으로 참가자 수도 엄청나다. 애니메이션에 얽힌 개인과 사회, 시대에 관한 스토리텔링도 무궁무진하다. 단순히 재미 여부만 따지는 게 아니라 특정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분위기도 전한다. 이를 기초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해설이 이어진다. NHK의 애니메이션 특집에는 애니메이션 전문가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문제 전문가도 다수 출연한다.
   
   일본동화(動畵)협회를 비롯한 민간 단체들도 지난해 12월 ‘아니메 100년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면서 관계자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나섰다. 그동안 여러 곳에 분산돼 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하나로 모은 ‘아니메 아카이브(www.animation.filmarchives.jp)’도 지난 2월 22일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 주관하에 일반에 공개됐다. ‘일본 아니메 1호’를 비롯한 고전작품 64편과, 아니메 감독 오후지 노부로(大藤信郞) 관련 작품과 자료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망가 내셔널센터(MANGA National Center)’도 올해 중에 설립될 전망이다. 망가(MANGA)란 만화(Manga), 애니메이션(ANimation), 게임(GAme)의 영문 앞 글자를 모은 신조어다. ‘망가 내셔널센터’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애니메이션 관련 자료 확보와 인재 개발의 본산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서는 아주 드물지만, 콘텐츠산업을 매개로 한 국회와 대학 간 협업이라 볼 수 있다. 교토(京都)의 세이카(精華)대학, 도쿄의 메이지(明治)대학이 망가 센터를 연결하는 허브로 활약할 전망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한 성지순례 프로젝트도 지방창생(地方創生), 즉 지방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장소나 배경, 문화를 체험하자는 것이다. 일본 관광청이 발행한 ‘아니메 투어리즘 가이드’를 통해 전국 곳곳에 분산된 애니메이션 관련 스토리를 개발해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다. 현재 일본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호텔 숙박률 100%에 근접한 상태다.
   
   최근 국내에서도 소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은 상영 한 달 만에 무려 350만명의 한국인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스토리의 배경이 된 곳은 기후현(岐阜県) 히다(飛騨) 지역이다.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300㎞ 떨어진 곳으로 자연풍광이 수려하다. 일본인조차 찾아가기 어려운 오지(奧地)지만 최근 신칸센 개통과 더불어 외국인 여행객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애니메이션 하나 보고 거기에 찾아갈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애니메이션은 원래 오타쿠(オタク), 즉 하나만 파는 매니아(Mania)적인 성격이 강한 문화다. 대충 보고 흘리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의 유대나 정보교환을 통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캐내는 문화다. 애니메이션 100년은 바로 오타쿠 문화 100년을 의미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100년의 출발
   
   비겁한 사무라이 내세운 ‘엄청나게 무딘 칼’이 최초
   
   일본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의 기점은 어디일까. ‘엄청나게 무딘 칼(なまくら刀)’이란 제목의 2분짜리 애니메이션이 바로 100년사의 출발점이다. 일본 민주주의 개화기에 해당하는 1917년 6월 30일 공개된 작품으로, 당대의 만화가인 고우치 준이치(幸內純一)가 제작자 겸 감독으로 나섰다.
   
   세계적으로 볼 때 애니메이션의 기원은 프랑스인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lis)가 만든 ‘달나라 착륙(Le Voyage dans la Lune)’이다. 1902년 작품이다. 멜리에스는 세계 최초로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창출해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첫 달나라 탐색이다. 전체적으로 정지 만화 느낌이 강한 초보적인 영상이다. 마지막에 동영상이 조금 등장하는 정도다. 로켓이 지구로 돌아올 때 뒷배경의 배가 움직이는 장면이다. 이것이 인류 애니메이션의 출발점이다. 일본에서 첫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은 이로부터 15년 뒤다. 한국의 경우 1956년 제작된 HLKZ TV 방송국의 ‘OB시날코’ 음료 광고가 첫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효시인 ‘엄청나게 무딘 칼’에 나타난 일본이란 나라의 DNA다. 새로운 장르의 문화는 나라·민족·인종의 원형(元型)을 배경으로 한다. ‘엄청나게 무딘 칼’도 마찬가지다. 사무라이가 새로운 칼(眞劍)을 구입한 뒤 칼의 품질을 테스트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을 살해하면서 느껴지는 감각을 통한 테스트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뒤에서 공격하려다가 실수로 사무라이 스스로가 넘어진다. 심부름꾼으로 달려가는 사람을 습격하려다가 오히려 얻어맞는다. 자막으로 처리됐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무라이의 반응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비명 한마디. 웃어넘기는 코미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어둡고 잔인하며 비겁한 스토리다. 칼의 질을 알아보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뒤에 숨어서 공격하는 사무라이가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의 캐릭터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대국으로 정착된 듯하지만, 100년 전 첫 애니메이션을 접한 외국인이라면 전혀 반대로 생각했을 듯하다. 숨어서 장난처럼 사람을 살해하려는 겁쟁이 사무라이를 보면서 ‘일본=야만대국’으로 느꼈을 법하다. 애니메이션 대국과 애니메이션 스토리 대국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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