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 ⓒphoto 조선일보
지난 3월 25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 ⓒphoto 조선일보

지난해 12월 ‘자로’라는 익명의 네티즌이 올린 ‘세월X’ 동영상으로 인해 한때 “세월호가 잠수함 같은 외부 물체와 충돌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주목을 받았다. 세월X는 당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저장된 세월호 레이더 영상을 토대로 ‘자로’가 편집한 영상으로, 총 8시간49분 분량이다. 이 동영상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세월호가 J자 형태로 급변침한 궤적이 나타난 뒤 세월호 6분의 1 크기의 또 다른 물체 궤적이 등장한다”는 것. 이를 토대로 자로는 세월호 침몰 원인이 동력을 가진 물체와의 충돌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자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인사가 이화여대 김관묵(56) 교수였다. 김 교수도 자로와 마찬가지로 해상교통관제센터의 세월호 레이더 영상을 확인한 후 “레이더에 잡힐 수 있는 건 쇠붙이인데 이 정도로 잡히려면 상당한 크기여야 한다. 잠수함밖에 생각할 수 없다”면서 자로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당시 이 레이더 영상에 등장하는 물체가 세월호에서 유실된 컨테이너라는 분석도 있었으나, 김 교수는 ‘잠수함 충돌설’을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화학을 전공한 인물로 현재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공학이나 해양 문제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지난 3월 25일 인양된 세월호의 선체가 언론을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세월호 외관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특정 물체와 충돌이 있었다면 세월호 외관에 큰 변형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점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도 육안상 선체는 큰 변형이나 파손 등 외부 충격에 의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이와 관련 “일부 시민들이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 같은 주장은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고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자로와 김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우선 자로의 경우 익명의 네티즌이기 때문에 직접 그의 입장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는 지난해 JTBC와 한 차례 인터뷰를 한 적은 있다. 당시에도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 얘기가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그 영향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충돌이 아니라면 저도 뭔가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을 거다. 비전문가라지만 저도 뭔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 조선공학, 해양학과 같은 유관 학문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닌데, 왜 세월호 침몰에 관심을 갖게 됐나. “일반 시민 입장에서 연구하고 조사했던 거다. 일반 시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안 아니냐. 내 전공은 화학이다.”

서울대를 나온 김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파 교수다. 캐나다에서 1년간 ‘포닥’(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할 때도 그의 전공은 화학 분야였다.

- 일반 시민이 아니라 현직 교수이기 때문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 단순 호기심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 어떤 계기로 세월호 침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2014년 6월, 그러니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JTBC에서 방송한 레이더 영상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개인적 의구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인터넷에 글도 올렸다. 그런 논쟁을 하며 더 깊이 들어가게 됐다.”

- 자로를 어떻게 만났는가. “인터넷상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와중에 자로와 연결이 됐다. 자로 그분도 상당히 많은 조사를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상에서 ‘항적수사’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 자로는 익명의 네티즌이라 일반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분이 신상 공개를 원치 않는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대로 40대 중반의 남성이다. 직업도 있다.”

- 자로는 조선해양 전문가 또는 관련 분야 종사자인가. “대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노력하는 분이라고 느꼈다. 그도 세월호에 핵물질이 실렸다거나 일부러 닻을 던졌다는 식의 루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관묵 교수 ⓒphoto JTBC
김관묵 교수 ⓒphoto JTBC

- 세월호 침몰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했나. “(온라인에) 의견을 제시하면 계속 반론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조금 더 깊이 연구해야 했다. 결국 레이더 영상 분석 이후 세월호 무게중심을 정확히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물 조사도 했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세월호 CCTV 영상을 보고 거기 출입한 화물을 다 조사했다. 어디에 배치됐는지까지. 그걸로 세월호 무게중심을 추정했고 그에 따른 복원력을 도출했다. 검찰 수사 결과와 전문가들이 시뮬레이션한 복원력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잔잔한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할 정도로 복원력이 나빴다고 보기 힘들었다.”

- 검찰 조사 등에서 밝혀진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건가. “검찰 등 정부기관의 관련 보고서에도 복원력 부분에 있어서 정확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불신이라기보다 부정확한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조사해 보자는 차원이다.”

- 잠수함 충돌설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운 측면이 크다. “사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지적을 하는 분들이 전화도 많이 걸어왔다.”

- 정치권과 관련 내용을 협의한 적 있나. “정치권과 커뮤니케이션한 적은 없다.”

- 이미 드러난 세월호 외형상으로 충돌설은 사실 무근 같다. “그렇다. 하지만 아직 체크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우선 좌현 부위를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영상으로 보면 리프팅 위 선체가 빨갛다. 원래 파란 계열이었는데 그 부분이 왜 벌게졌는지 의아하다.”

- 컬러는 변형이 생길 수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건지, 녹이 쓴 건지 아니면 리프팅할 때 하중이 많은 부위라 상처가 난 건지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충돌 등의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인가. “행여라도 접촉에 의한 흔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선저에 페인트가 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자국도 있다. 세월호 페인팅은 2014년 2월에 새로 했다. 뭔가 접촉에 의한 게 아니라면 두 달 만에 페인팅이 벗겨진 게 이상하다. 이제 인양됐으니까 그런 부분은 확인하면 된다.”

- 잠수함 충돌설 제기에 앞서 전문가와 상의해 봤나.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이 사안에 대해 관심 갖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난 부분이기도 했다. 비전문가가 남의 전문 영역에 범접하기도 쉽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 자로도 세월호 외부 충돌설을 아직 상정해 두고 있나. “언론에 나온 대로 조금 더 살펴보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저도 마찬가지로 조금 더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 분석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다.”

김 교수는 “아직 기름이 안 벗겨지고 좌현을 제대로 못 본 상황이기 때문에 (충돌설 여부를)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고 원인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그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잠수함 충돌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동안 주장이 잘못됐다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으나(한숨), 어느 정도 책임감은 느낀다. 그러나 선체가 올라왔고 사고 원인이 분명해지고 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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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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