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메인 화면에 뜬 학교 화장실 관련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사는 우리나라의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교직원 화장실과 학생 화장실을 따로 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직원 화장실에 대한 학생들의 사용 제한이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며 차별이라는 것이었다.

기사를 읽은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에 동조해 비판적인 댓글을 많이 올렸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댓글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지저분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매너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 많은 네티즌들은 학교 화장실에 얽힌 자신의 추억과 경험담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어떤 네티즌은 수업 시간에 숨어서 담배 피우던 경험을 얘기했다. 학교 화장실 변기에 앉아 과자를 먹었다는 고백도 있었다. 학생으로 짐작되는 어떤 네티즌은 화장실에서 교사에게 쌍욕하고 맘껏 떠들었는데 옆 칸에서 그 선생님이 볼일 보고 나왔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이 네티즌은 “그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아느냐”며 “화장실은 학생들의 유일한 자유공간이라서 선생님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썼다.

학교 화장실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공간’이다. 시설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좋아졌지만 그 속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에게는 일탈과 해방과 장난의 공간이고, 교사들에게는 골칫거리의 현장이다. 10여년 전 서울의 한 재래시장 주변에 위치한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학교에는 유독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셔서 아이도 일찍 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에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서 학교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일찍 등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관에 새로 지은 최신식 화장실이 문을 연 지 이틀 만에 변기가 막히는 사고가 터졌다. 한 학생이 급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휴지가 없자 입고 있던 팬티로 뒤처리를 하고는 그냥 변기에다 버린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너무 화가 나서 ‘범인’을 잡으라고 했지만 전교생 팬티를 다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부분의 학교는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비치했다가 치우기를 반복한다. 화장지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요구를 들어주면 아이들은 휴지를 둘둘 말아 물을 묻힌 후 천장에 던져 붙이는 장난을 한다. 이뿐 아니다. 매일 청소를 해도 대소변을 보고 물을 잘 내리지 않아 악취와 쓰레기로 난장판을 만들기 일쑤다.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분들의 하소연으로 공용 화장지를 치우면 학생들은 이를 핑계로 교직원 화장실을 넘보고 또 엉망으로 만든다. 특히 남학생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친구가 볼일을 보면 옆 칸 문 위로 기어 올라가 놀리면서 낄낄대는데, 이러한 장난이 싫다며 교직원 화장실 이용을 정당화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과 화장실을 같이 쓸 경우 교사들도 위에서 누가 내려보지 않는지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왜 교무실에만 에어컨을 틀어주느냐, 왜 우리는 귀걸이를 못 하게 하느냐며 교사와 자신들의 처우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배움의 공간이지만 교사들에게는 직장이다. 볼일도 제대로 못 보는 화장실을 둔 직장이 좋은 직장일 순 없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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