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56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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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백지선 아이스하키팀 감독

키예프 기적의 주문 “할 수 있다고 믿어라”

임경업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up@chosun.com 

▲ 백지선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지난 4월 29일 한국팀 승리 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다. photo 연합
한국 아이스하키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 새 역사를 썼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지난 4월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끝난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세계 2부리그 격)에서 6팀 중 2위(승점 11)로 톱 디비전(1부리그) 승격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난 1928년 국내에 아이스하키가 소개된 지 89년, 1979년 처음 국제대회에 출전한 지 38년 만에 이룬 일이다.
   
   톱 디비전은 캐나다, 러시아 등 아이스하키 최강 16개국이 겨루는 ‘꿈의 무대’였다. 랭킹 23위의 변방 한국은 이 무대에 발조차 디뎌 보지 못했다. 20여년 전엔 세계 3~4부리그,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2부와 3부리그에서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이런 처참한 국제대회 성적 때문에 IIHF(국제아이스하키연맹)가 한국에 평창올림픽 개최국 자동 출전권을 부여하는 것을 고민할 정도였다. “올림픽에서 민망한 스코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랬던 한국은 2015년 3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승격, 2017년엔 2부리그 1·2위만 올라가는 1부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내년 5월 열리는 톱 디비전 팀 중 유일한 아시아팀이 됐다. 3년 만에 한국 동계 스포츠의 기적을 쓴 것이다. 팬들이 이번 한국 아이스하키의 돌풍을 두고 ‘키예프의 기적’이라 부르며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빗대는 이유다.
   
   이런 기적의 중심에는 백지선 대표팀 감독이 있다. 지금 팬들은 그를 ‘백딩크(백지선+히딩크)’라고 부르고 있다. 백지선을 2002 월드컵 때 축구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 비유한 것이다. 2014년 7월 부임 이후 3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대표팀을 완전히 개조한 그의 리더십 때문이다.
   
   그의 영어 이름은 ‘짐 팩(Jim Paek)’, 국적은 캐나다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아이스하키를 접하고 선수가 됐다. 세계 최고의 아이스하키리그인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서 수비수로 뛰며 통산 217경기 34포인트(5골 2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두 번(1991·1992)이나 들어 올린 레전드다. 한국계 최초의 NHL 선수이자 유일한 우승 경험자다.
   
   
   한국계 최초의 NHL 출신
   
   북미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그는 왜 아이스하키 변방 한국에 오게 됐을까.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너는 한국인이다. 언젠간 한국 아이스하키를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직후 한국에서 감독직 제의가 들어오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감독을 맡기 전에도 “한국은 너의 뿌리”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에서 아이스하키 강의를 여는 등 많은 관심을 쏟았다.
   
   백지선은 열세 살 때 형과 함께 모국을 찾았다. 1981년 전국체전 동계대회 아이스하키 고교부 대회에 캐나다 교민 대표로 출전한 것이다. “링크가 있긴 했는데 캐나다와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기억했다. 백지선은 그런 한국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오고 큰 충격을 받았다. 로커룸은 장비가 사방에 어질러져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선수들은 슬리퍼를 신고 숙소 밖을 배회했다.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은 찾기 어려웠고, 한 골을 먹고 경기에서 뒤지면 ‘또 끝장났네’라며 패배의식에 빠졌다. 패잔병 같던 대표팀의 모습을 본 백지선 감독은 ‘작은 것부터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로커룸에는 항상 태극기를 걸고, 모든 장비와 유니폼을 ‘각’ 맞춰 정리하도록 했다. 경기장 이동 시엔 짧은 거리라도 반드시 정장에 넥타이를 하도록 했다. 훈련에 지각하는 선수는 아무리 뛰어나도 선발하지 않았다. “대표팀에 대한 존중(respect), 우리가 최고라는 긍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백지선 감독은 태극마크에 대한 자긍심부터 심어줬다.
   
   그러자 대표팀의 승리욕과 정신력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의 주장 박우상은 어깨탈골 부상, 김원중은 손목을 다쳤지만 진통제를 맞고 최종전을 뛰었다. 귀화 선수인 에릭 리건은 하키 스틱에 눈을 맞고 안와골절을 당했지만 눈에 시커먼 멍이 든 채로 동료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들이 ‘패잔병’이 아닌 ‘빙판 위 전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옥의 10주 여름 훈련
   
   백지선 감독은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가능성을 찾은 인물이기도 하다. 보디체킹(Body Checking)이 허용되는 거친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에선 체력과 체격이 중요하다. 유럽이나 북미 선수들에게 신체조건이 밀리는 한국 선수들은 “우린 어차피 신체 때문에 세계 수준까지 갈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스피드가 빠르다. 체력만 기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백지선 감독은 특별 체력 훈련을 도입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전문 트레이닝 업체와 계약해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방식으로 한국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주도했다. 과거 강도만 높았던 주먹구구식 체력 훈련이 아니라 전문 트레이너들이 세부 근육의 힘과 순발력을 높여주는 정밀 훈련이었다. 선수들은 이 훈련을 ‘지옥의 10주 여름 훈련’이라고 부른다. 과거 대표팀에 없던 훈련이다.
   
   이제 한국은 경기 후반에 더 강한 팀이 됐다. 마지막 3피리어드에 역전한 경기가 5경기 중 2경기다. 유럽 선수들이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발이 무거워지는 반면, 한국 선수들을 가벼워진다. “귀화 선수가 많아서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라는 편견도 깼다. 이번 대회 한국이 넣은 14골 중 2골을 제외한 12골은 모두 한국 선수의 스틱 끝에서 터졌다. 진정한 의미의 ‘원팀(ONE TEAM)’이 된 것이다.
   
   그가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믿어라(Believe We Can)”이다. 40여년 전 타국으로 건너가 동양인에게 낯선 아이스하키에 도전했던 그의 인생처럼, 그는 모두가 ‘안 된다’는 것을 깨부쉈다. 그것도 자신의 뿌리를 찾아온 척박한 아이스하키의 땅 한국에서 이뤘다. 승격이 확정되는 순간 그는 눈물을 흘렸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포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은 12팀이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세계 강호인 캐나다(세계 1위), 체코(6위), 스위스(7위)와 같은 조에서 조별리그를 치른다. 그가 평창에서 도전할 ‘드라마’의 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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