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새로 도입한 보잉 B787-9 1호기.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대한항공이 새로 도입한 보잉 B787-9 1호기.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5월 초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난 김모(36)씨는 일찌감치 타고 갈 비행기로 ‘보잉 787-9(이하 B787)’를 점찍었다. 국내 항공사로는 대한항공이 유일하게 B787을 김포~제주 구간에 투입 중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새 비행기를 타 보고 싶어서였다. 실제 김씨가 탑승한 B787은 여느 항공기와 달랐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1.5배 정도 커진 창문으로 인해 시야가 확 트인 점이다. 창문은 위아래로 여닫는 셔터식이 아니라 창문 아래 버튼을 눌러 채광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김씨는 “천장 높이도 다른 비행기에 비해 조금 높았고, 머리 위 짐칸 역시 조금 커 보였다”며 “1시간 비행거리에 투입하기에는 아까운 비행기”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2월 미국 찰스턴의 보잉공장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B787 1호기를 인수해왔다. ‘드림라이너(Dream Liner·꿈의 비행기)’란 별명을 가진 B787은 보잉이 선보인 최신 비행기로 비(非)금속 탄소복합소재로 제작한 항공기다. 압력에 강한 신소재를 50% 이상 사용해 실내기압을 지상에 보다 가깝게 맞춘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개 기내 기압이 해발 2400m 정도에 맞춰진 기존 항공기와 달리 B787은 1800m 정도 수준이다. “산으로 치면 백두산에서 한라산 정도 내려온 셈으로, 비행 시 귀가 멍한 느낌이 덜하다”는 것이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비금속소재로 동체를 만든 터라 부식 걱정도 덜하다. 이에 기내 습도 역시 기존 비행기에 비해 한층 높아 실내 건조함도 덜하다고 한다.

실제 대한항공이 김포~제주 구간에 매일 3회 투입하는 B787은 승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연간 이용객 1100만명 이상으로 세계에서 항공교통량이 가장 많다는 김포~제주 노선에 대한항공이 현재 투입하는 기종은 주로 단거리에 취항하는 B737을 비롯해 중장거리용인 B747, B777, B787을 총망라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입소문 덕분에 승객들의 관심은 온전히 국내에 첫선을 보인 B787에 쏠린다. 기종 불문하고 운임이 동일한 까닭에 B787이 다니는 시간대 좌석이 먼저 팔려나갈 정도다. 여세를 몰아 지난 4월 25일 B787 2호기를 추가로 인수한 대한항공 측은 “B787 김포~제주 투입을 매일 6회로 늘리고 오는 6월부터는 후쿠오카(일본), 토론토(캐나다)를 시작으로 국제선에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쟁사인 대한항공의 연이은 B787 도입에 맞서 아시아나항공이 꺼내든 카드는 에어버스의 A350-900(이하 A350)이다. A350은 보잉의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출시한 신기종 비행기로 B787과 같이 비금속 탄소복합소재로 제작했다. B787과 같이 실내기압을 해발 1800m급으로 맞춘 데 더해, 2~3분마다 공기를 정화하는 헤파필터를 장착했다. 동급 항공기에 비해 4~8dB(데시벨) 정도 소음이 감소된 정숙한 기내환경이 특징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적항공사 최초로 A350을 도입했고, 지난 4월 26일 인천공항에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첫선을 보였다. 아시아나항공은 5월 중순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천~마닐라(필리핀), 인천~홍콩 구간에 A350을 투입해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오는 7월경에는 2호기도 추가 도입한다.

신기종 항공기가 항공시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항공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비행기를 골라 타는 승객들이 늘어나면서다. 비좁고 시끄러운 옛날 항공기 대신 이왕이면 최신기술이 적용돼 조용하면서도 쾌적한 신기종 비행기를 골라 타는 것이다. 특히 장거리 노선의 경우 같은 값이면 신기종 항공기를 선호하는 승객들이 많다. 항공기시장을 양분하는 보잉과 에어버스가 각각 최신 기종으로 내놓은 B787과 A350이 대표적인 선호 비행기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B787과 A350을 앞세워 보잉과 에어버스의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으로 전개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도입한 에어버스 A350-900. ⓒphoto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도입한 에어버스 A350-900. ⓒphoto 아시아나항공

기존 항공기 대비 25% 연료 절감

항공사 입장에서도 신기종 도입은 해볼 만한 도전이다. 최첨단 설계에 신소재를 적용해 제작한 신기종 항공기는 연료효율성이 탁월하다. 금속에 비해 가벼운 탄소복합소재를 50% 이상 사용한 B787과 A350은 기존 항공기보다 무게가 20% 정도 가볍다. 덕분에 기존 항공기에 비해 25%까지 연료를 덜 소비한다고 한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인건비와 함께 가장 큰 경영 부담인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보유 항공기의 평균 기령을 낮출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평균 기령은 각각 9.7년, 10.8년 정도였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A350 도입으로 평균 기령이 10.8년에서 10.6년으로 조금 내려갔다”고 말했다.

최근 저가항공사(LCC)들의 운임 공세에 시달리는 대형항공사(FSC) 입장에서는 신기종 도입으로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효과도 있다. 저가항공사들은 운항효율성을 우선 고려해 대개 단거리 노선에 특화된 중소형 B737이나 A320으로 기종을 통일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국내 최대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은 보유한 29대 항공기 모두가 B737 단일 기종이다. 저가항공사의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신기종을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신규 조종사 훈련이나 정비 효율화 면에서도 이미 검증이 완료된 단일 기종 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항공기 회전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저가항공사로서는 탑승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2개 통로의 대형 항공기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결국 대한항공이 B787, 아시아나항공이 A350을 경쟁적으로 도입한 것은 저가항공의 운임 공세에 서비스 고급화로 맞서는 측면이 있다. 이를 통한 항공사 이미지 개선은 덤이다. 실제 2013년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외항사 최초로 B787을 인천~홍콩(경유)~델리 구간에 투입한 인도 국적 ‘에어인디아’는 당시 신기종 마케팅으로 이미지 개선을 이뤄냈다. 이와 함께 저렴한 운임을 앞세워 인천~홍콩 구간의 한국 승객들을 대거 유치해 제법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항공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늘어 반가운 경쟁이다.

키워드

#항공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