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연진이의 쌍둥이 언니가 “하늘나라로 기차 여행을 떠난 지” 두 달이 갓 넘었다. 연진이는 그대로 병원에 머물러 있다. 언제 퇴원하게 될지 기약이 없다. 척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어서다. 영양제를 맞고 체력을 키우고 있지만 언제 몸 상태가 좋아질지 모르는 일이다.

연진이의 몸에서 말썽을 부리는 것은 척추만이 아니다. 연진이와 쌍둥이 언니는 2001년 태어날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연진이 어머니 이은영씨는 임신 30주가 지나던 때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연진이가 골반에 걸려 있어 위험한 상태였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도 쌍둥이들은 1분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짧은 순간 뇌출혈이 발생했다.

태어난 직후 연진이와 언니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연진이의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2003년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2013년부터는 만성호흡부전도 겪고 있다. 일상생활이 힘든 것은 물론 인지능력도 떨어지는 상태다. 연진이 자매가 잠시 퇴원해 집에서 머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병원에서 보냈다.

연진이 언니의 몸 상태는 더 안 좋았다. 발작을 일으키는 일도 잦았다. 그래도 고개를 돌리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자매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지난 2월까지는 그랬다.

지칠 법도 한데 연진이 어머니 이은영씨는 씩씩했다.

“왜 안 울었겠어요. 한때는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앞에서 줄줄 울었어요.”

한 명 병간호하는 것도 힘든데 자매를 간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큰애가 따라 우는 걸 보고 나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울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울어 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대신 이씨는 주변의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에 아픈 아기들이 많아요. 특수 분유를 먹어야 하는 아기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 분유가 너무 비싸거나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워서 엄마가 몸소 찾아서 힘들게 구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아이를 보살피기 어려운 상황이다. “큰애가 올해 들어 세상을 떠나기 전 1년 반 동안 든 병원비가 3억원이었어요, 3억원. 그런데 병원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고 심사해서 겨우 건강보험으로 해결했죠.”

이씨의 남편은 군인이다. 군인 월급으로 연진이와 언니의 병원비를 다 대기는 역부족이다. “큰애는 면역 때문에 다인실을 쓰지 못했어요. 1인실, 2인실 쓰다 보면 몇천만원은 우습게 나갔죠.” 연진이 언니는 발작을 억제하는 약을 맞곤 했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드는 약값은 5만원. 이걸 하루에 두 번 맞아야 했다. 지금 연진이가 맞는 영양제도 한 번에 2만5000원이 든다. 그나마도 보험처리가 돼서 6만~7만원가량 줄어든 것이다.

“병원 입원비가 가장 비싸기는 하지만 그것만 드는 게 아니거든요. 집으로 퇴원했을 때 드는 생활 치료비, 부수적인 비용까지 다 합하면 어마어마하죠. 진 빚만 1억원이에요.” 이씨의 친정 부모가 한때 신용불량자가 될 정도로 의료비 부담은 크다. “매번 병원의 호의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으로 살 수는 없을 텐데 아이 앞에서는 웃고 있어도 마음은 늘 막막해요.”

77.6% 기초수급 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지난 3월 조사한 결과를 보자.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린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 1년에 평균 쓰는 의료비는 2476만5000원이다. 보통 한 가정의 전체 지출 중 의료비 지출이 40%가 넘어가는 것을 ‘재난적 의료비’라고 한다. 이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도 52%에 달했다.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하지 않은 가구는 평균 연 1194만원을 의료비로 쓰지만, 52%의 가구는 연 3500만원 이상의 의료비를 쓴다.

대부분 어린이 중증 질환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은 장기적인 치료를 필요로 한다. 쌍둥이 자매가 뇌병변을 앓은 연진이네 가족만 해도 연진이가 태어난 후 16년 동안 병원을 오간 상황이다. 게다가 상당수 어린이가 1인실이나 2인실 등 상급 병실을 쓸 수밖에 없다. 면역력도 약할 뿐더러 자기통제력이 약하고 주변 상황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입원·병원비가 많이 든다.

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의료비 2476만원 중 입원·병원비는 1032.4만원이다. 특히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에서 입원·병원비 비중이 크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는 평균 의료비로 3685만원을 쓰는데 이 중 42%가 입원·병원비다.

당연히 가정 경제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조사가구 192가구 중 아이의 발병 이후에 기초수급자가 된 가구만 77가구, 40%에 달한다. 원래 기초수급자였던 가구까지 합하면 중증·희귀난치성 질환 아동 가구의 77.6%가 기초수급자다.

다섯 살 때 소아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는 김진우씨가 그런 사례다. 김씨는 아이 병원비로만 1억50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원래 김씨는 10년 넘게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고 나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누군가 꼭 붙어 있어야 했는데 아내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장에 문제가 생긴 거였는데, 그건 아들이 죽고 나서야 알게 됐지요. 결국 제가 간병인으로 아이를 돌봐야 했습니다.”

수입이 없는데 병원비는 쌓여만 갔다. 결국 김씨는 모아둔 돈도 다 쓰고 빚을 냈다. “아이는 그냥 그렇게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노력했지만 남은 건 빚뿐이더군요. 그 사이 아이 엄마도 건강이 많이 악화돼서 이제는 아이 엄마 병간호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아프고 난 후 가족 내에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응답한 가구는 과반이 넘는다. 경제활동자가 실직하게 된 경우도 30% 가까이 된다. 아예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 근육이 마비되는 희귀병을 앓는 딸 정아(가명)를 두고 있는 조혜정(가명)씨는 정아가 태어난 이후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뒀다. 정아가 돌이 될 때까지만 해도 조씨의 남편이 가계를 책임졌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조씨 남편은 “더 이상 못하겠다”며 정아와 조씨를 떠났다.

“정아가 태어나기 전에는 제가 월 200만원, 남편이 월 300만원 벌어서 부유하지는 않아도 여유롭게 살았어요. 그러나 정아가 아프고 나서는 한 달 수입을 모두 병원비에 쏟아붓고도 빚을 내야 했지요. 도움 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역부족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에 조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는 거지요.”

아픈 아이는 부모의 몫?

어린이 병원비가 많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에 속하지 않은 비급여 항목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14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표’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를 살펴보자.

어린이 한 명이 한 번 입원했을 때 드는 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건강보험이 아니라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34.7이다. 이 중 비급여 항목이 23.8로 성인의 의료비와 비교해 보면 약간 높은 편이다. 상급 병실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 중증환자 중에는 유전 질환이나 희귀난치병 환자 비중이 큰 만큼 신기술을 적용해 보는 경우도 많다. 희귀성 질환의 특성상 질병코드가 나오지 않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면 된다. 실제로 2014년 기준으로 입원진료비 총액은 1조5500억원,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용은 5368억원이다. 현재 본인부담률이 34.7%이다. 원래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산정특례 제도를 이용하면 암이나 뇌혈관 질환 같은 중증환자는 전체 진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된다.

이 제도를 어린이 중증 질환이나 희귀난치병 환자에게도 적용한다고 해보자. 김윤 교수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본인부담률을 5%로 산정특례를 적용했을 때 추가로 드는 비용은 4594억원이다. 2016년 말 기준 건강보험 누적 흑자는 20조656억원. 단순히 따져도 흑자 규모 중 2.3%의 비용만 들이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소장은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하는 일이야말로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아동 복지를 강화하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어집니다. 어렵게 결심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불행하게도 아이가 아프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이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가정을 보는 다른 부모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회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겁니다.”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정책이 단순히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 낳고 기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저출산 시대에 일종의 사회적 보험이 된다는 얘기다. 아이를 기르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짐을 나눌 수 있다는 안전망이 설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 병원비를 국가가 100% 보장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2006년에 잠시 어린이 입원비를 무료로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증 환자까지 모두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막상 중증 어린이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래서 단계적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윤 교수는 “비급여를 전면 부정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15년 이상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비급여 풍선효과 때문입니다. 하나씩 비급여 항목을 전환했는데 그때마다 다른 비급여 항목이 생겨나곤 했어요.”

김 교수가 비급여를 억제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 중 하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이다. 지금은 비급여 진료와 급여 진료가 함께 이뤄지곤 한다. 같은 병을 치료하는데 어떤 항목은 비급여이고 어떤 항목은 급여로 책정되는 식이다. 그러나 급여 범위가 충분히 넓어지고 혼합진료를 금지한다면 굳이 비급여 진료가 이뤄질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여기에 보완돼야 하는 부분도 있다. 혼합진료를 금지한다는 얘기는 거꾸로 비급여 항목 진료는 부유한 사람만 가능하게 된다는 얘기다. 효과가 뚜렷하지 않거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경우에는 이 신기술을 쓸 수 있는 어린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김윤 교수는 “대학병원 같은 공공병원을 신의료기술 전담 병원으로 지정해 이들 병원에서는 예외로 비급여 신의료기술에 대한 혼합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진료받고 싶어요

비급여 항목을 줄여 본인부담률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은 중증·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에 대한 가정의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정의료란 장기 입원 환자가 병실에서 제공받듯이 전문 의료인력이 환자 집으로 방문해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어린이 환자 가족들이 가정의료를 희망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뿐만이 아니다. 김윤 교수가 소개하는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가정의료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

태어난 지 네 달 만에 근위축성 질환으로 진단받은 수아(가명)는 인공호흡기로 호흡하고 비위관으로 영양을 섭취했다. 가정간호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수아의 엄마가 24시간 수아를 돌봐야 했다. 수아의 오빠는 부모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마저도 수아는 생후 19개월 되던 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엄마가 조는 사이에 수아의 인공호흡기가 분리됐고 저산소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얼마 전 큰딸을 떠나보낸 연진이 엄마 이은영씨도 가정의료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연진이 언니가 사망한 게 패혈증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병원에서 감염된 균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만약 집에 있었으면 연진이 언니가 아직 괜찮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남은 연진이를 위해서라도 가정의료가 필요하다. 연진이의 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데 연진이가 차 안에서 버티기에는 긴 시간이다. “퇴원을 해도 병원을 왔다갔다 해야 하잖아요. 연진이처럼 제 몸 가누기도 어렵고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의료가 활성화됐으면 해요.”

우리나라에는 가정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다. 수요가 적기 때문에 병원들이 쉽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려 하는 탓이 크다. 이와 관련 김윤 교수는 “만성 질환이 대부분인 어린이 환자 가정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문적인 가정의료 인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어린이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 대한 정서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은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에만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환자 가족이 무너지는 이유로 정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남편과 별거 중인 정아 가족은 정서적 지원이 제일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아 어머니 조혜정씨는 “상담을 받으려고 해도 1시간에 10만원씩 든다고 해 엄두도 못 냈다”며 “같은 병원 다니는 부모들과 이야기를 가끔 털어놓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어린이 환자 가족이 모이는 자조모임도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조사해 보면 ‘양육 부담 때문’이라는 이유가 순위권으로 꼽힌다. ‘양육 부담’이라는 말을 풀어 써 보자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책임과 부담이 모두 부모에게만 얹혀지는 상황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망도 없고 지원책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픈 아이를 껴안고 살아가는 부모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는 사회는, 저출산 극복 의지가 없는 사회일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도 분명히 있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다가도 연진이 얼굴을 보면 힘이 나요. 아이가 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지쳐버리면 연진이는 의지할 사람이 없죠. 저는 끝까지 힘내야 하고, 힘낼 거예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16년간 아이를 간병해온 연진이 어머니의 말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서명 캠페인’에 적극 동참해주세요. 아동이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도록 정기후원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서명 캠페인 www.childfund.or.kr

아동 정기후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콜센터 1588-1940

연진이네 가족 물품지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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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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