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57호]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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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窓 | 교사의 窓] 지리산 종주 기철이에게 부모님이 지워 준 짐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bonghack@chol.com 

여름방학 첫날 학교에 모여 학생들과 지리산 종주길에 오를 때의 일이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까지 이동, 구례구역에서 버스로 성삼재휴게소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 산장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더운 여름 날,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와서 또 버스를 타고 올라와 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몸이 적응하기 쉽지 않다. 산장으로 가기 전에 휴게소에 들러 몸풀기 체조를 하고 출발했다. 본격적인 산행도 아니고 비교적 걷기에 편해 보이는 전체 산행에 비해 긴 길도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고도를 150m나 높여야 하는 코스가 있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르면 만만치 않다.
   
   그때 유난히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멘 기철이(가명)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 무게 때문인지 처음부터 뒤로 처져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기철이는 평소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으로 인해 다른 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사전에 꼭 필요한 물품 목록을 유인물로 알려주고 주의사항도 알려주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 부모님 입장에서 혹시 없거나 부족하면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품들을 하나둘 넣어주다 보니 기철이의 배낭은 큰 짐이 돼 버렸다.
   
   다행히 동행하신 아버님 두 분이 기철이 가방을 번갈아가면서 들어주셨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 아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져서 지리산 종주를 함께하며 관계를 개선했으면 좋겠다며 자원한 분들이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산악부를 한 경험이 있어서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셨다. 혼자 학생들을 인솔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어른 두 명이 함께하셔서 든든했다.
   
   산장에 도착해 가방 무게를 덜기 위해 부식과 쌀을 꺼내려고 기철이의 가방을 열어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쌀은 일행 전체가 두 끼를 먹고도 남을 양이었고, 필요 이상의 옷에 수많은 간식,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챙겨준 짐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화장품과 손거울도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기철이의 짐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철이 부모님이 기철이를 위해 넣어준 물건들이 오히려 기철이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된 것이다.
   
   산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뿌리를 든든하게 내려 웬만한 장마나 가뭄에도 잘 견디지만 교실에서 화분에 기르는 식물들은 생명력이 약하다. 물이 부족할 때만이 아니라 너무 많이 주어서 잎이 마르고 시드는 경우가 많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뿌리가 감당하지 못하고 썩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에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관심 부족 못지않게 지나친 관심도 자녀의 학교생활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교실 현장에서 보면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부모님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걸 절감할 때가 많다. 학생이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자존감을 키우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기회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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