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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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오후 8시. 지상파 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 그리고 리얼미터, 한국갤럽, 리서치뷰가 각각 조사한 후보별 예상득표율이 동시에 발표됐다. 리얼미터 예측조사 결과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2.7%, 홍준표 후보 22.8%, 안철수 후보 19.1%, 유승민 후보 8.2%, 심상정 후보 6%로 나타났다. 다섯 명의 후보가 받은 실제 득표율은 문 후보 41.1%, 홍 후보 24.0%, 안 후보 21.4%, 유 후보 6.8%, 심 후보 6.2% 순이었다. 리얼미터의 예측조사 결과는 ±2.9%포인트 내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KBS·MBC·SBS 등 지상파 3사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발표한 출구조사에 버금가는 정확한 수치였다.

이에 반해 방송사 출구조사와 리얼미터의 예측조사는 비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지상파 출구조사 비용은 약 12억원. 리얼미터 예측조사 비용(2500만원)의 50배에 달했다. 리얼미터는 또 이번 대선 예측조사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업체보다 정확도에서 앞섰다. 한국갤럽의 경우 수치의 오차범위가 리얼미터보다 컸고, 유승민·심상정 후보의 순위 예측도 빗나갔다. 한국갤럽은 심 후보를 4위로, 유 후보를 5위로 발표했다. 2005년 설립된 리얼미터의 업계 매출 규모는 20위권 안팎.

지난 5월 24일 서울 여의도 소재 리얼미터 본사에서 만난 이택수(48) 대표는 “2008년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 리얼미터가 정확하게 선거 결과를 예측한 것은 다른 업체와 달리 ARS(자동응답시스템)와 전화면접을 절반씩 섞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팀과 함께 부동층 표심을 파악하기 위해 ‘내재적 선호도 측정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게 적중률을 높인 또 하나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화면접조사 위주의 기존 조사 방식 대신 ARS조사 방식을 전면 도입한 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기존 조사기관들은 “ARS조사 방식은 부정확하다” “ARS는 가격을 낮춰 시장을 위축시킨다”면서 리얼미터의 시도를 외면했다. “사업 초기 경쟁업체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ARS조사를 도입하면 업계가 망한다는 시각이 있다.”

리얼미터는 2005년 설립 때부터 약 7년간 적자를 냈다. 이 대표는 투자자를 모아 적자를 메워 나갔다. 한편으로 기존 업체들로 구성된 마케팅협회에 대응할 별도 협회의 결성을 추진했다. 그는 정치조사협회를 조직해 신생업체 위주로 진용을 갖추며 대형 업체들과 경쟁에 나섰다. 2009년부터 여론조사를 매일 실시하고 이를 모아 매주 월요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정례 조사 방식으로 오히려 치고 나갔다.

“ARS조사의 단가는 1명당 3000원 정도다. 반면 전화면접조사는 1명당 1만~1만5000원, 대면조사는 3만원가량이다.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기존 업체는 전화면접조사 위주로 사업을 했고 지금도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통계학계 일각에서는 일종의 담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ARS조사 방식을 들고 시장에 들어왔으니, 기존 업체들이 볼 때 꽤나 미웠을 것 같다. 우리가 저렴한 비용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바람에 시장에서 ARS조사 방식은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

- 이제는 ARS조사 방식이 널리 사용되고 있나. “그렇지 않다. 기존 대형 업체 위주로 구성된 마케팅협회 소속사들은 전화면접조사만 한다. 이들은 대외적으로 ‘ARS조사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얼미터가 주도해 만든 정치조사협회 소속사들만 ARS를 사용한다. 리얼미터는 ARS와 전화면접을 혼용하는 유일한 여론조사기관이다.”

이 대표는 1997년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에 잠시 몸담은 적이 있다. 당시 여연은 처음으로 ARS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 기존 업계의 눈총에도 굴하지 않고 ARS 방식을 고수한 까닭이 궁금하다. “업계를 대표하는 모 인사가 ‘ARS가 정확하다 해도 절대로 도입하면 안 된다’고 내게 충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ARS 방식이 싸고 정확하다면 이 방식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건 옳지 않다.”

- 2016년 4월 총선에서 여론조사기관의 예측이 빗나간 이유는 뭐라고 보나. “당시 모든 여론조사기관은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최소 150석 이상의 과반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결과는 민주당이 123석으로 원내 1당이 됐다. 유선전화 위주의 여론조사가 가진 한계를 보여준 선거였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가능해졌다. 성별, 연령, 지역을 구분한 안심번호를 이동통신사로부터 제공받아 조사한 결과 정확도가 높아졌다. 이통사는 번호 1개당 300원, 그리고 안심번호로 통화 연결 시 별도 통화료를 받는다.”

- 전화면접조사의 단점은 없나. “전화면접 방식은 누굴 지지하느냐고 묻고 말로 답변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속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걸 말로 답하는 걸 꺼리는 사람과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번호로 누르는 방식으로 하면 더 정확하고 전화를 받는 사람도 편안하다. 전화면접에서 거짓 응답이 2~3%씩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들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 여론조사 업계의 구조적 한계는 무엇인가. “전국적으로 등록된 조사기관만 8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일부 ARS 전문 조사기관은 적정가격을 받지 않는다. 여론조사에 대한 과도한 책임과 권한 부여가 출혈경쟁과 부정의 유혹을 키우고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여론조사기관을 설립하고 폐업하는 일이 반복된다.”

- 이번 대선에서 투표일 일주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해 가짜뉴스가 횡행했다. “이른바 블랙아웃 기간에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추이를 알 수 없도록 규제하는 바람에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했다. 투표일 일주일 전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실버크로스가 발생했는데도 이걸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지지율 관련 가짜뉴스로 유권자 표심이 왜곡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투표 전날까지 여론조사를 공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

이 대표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의 규제 정책이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심위는 규제를 강화하고자 노력한다. 조사기관이 언론사 의뢰를 받아 선거 여론조사를 하면 언론사와 여심위 홈페이지에 동시에 자료를 올려야 한다. 그 결과 여심위가 여론조사 포털사이트가 됐다. 이런 구조라면 비용을 지불하고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언론사는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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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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