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연립주택. “이사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좀 어수선해요.” 집주인 조혜진씨가 문을 열어줬다. 조씨의 뒤에 반갑게 짖으며 꼬리를 흔드는 두 마리의 개가 보였다. 35개월 된 ‘두부’와 이제 7개월 된 ‘조로’다. 기자 뒤로 반려동물행동교정사 박병준씨가 따라 들어왔다. 박씨는 두부와 조로를 만나러 두 번째 방문했다.

“예전에는 두부가 많이 짖거나 산책할 때 과도하게 흥분하는 행동 같은 것을 바꾸려 방문했었어요. 오늘은 새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 보러 왔습니다.”

반려동물에게 이사는 꽤 큰 사건이다.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전에 없던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에 따른 문제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박병준씨는 두부와 조로에게 간식을 주고 장난감을 던져주는 일을 반복하며 조혜진씨에게 두부와 조로의 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30분이 넘게 질문하며 간식을 주고 관찰하던 박병준씨는 “두부가 평소와 달리 너무 얌전해서 걱정”이라고 입을 열었다. 박씨는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두부가 화장실에 있는 배변 패드에 제대로 볼일을 보나요?” 조씨가 깨달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배변 훈련이 참 잘된 아이인데 남편 말로는 아침에 화장실 문 앞에 소변을 봤다고 하더군요. 소변을 볼 때도 이상한 자세가 많았어요. 밤에는 화장실 문턱에 겨우 걸터앉아 멀리서 소변을 보기도 하고, 한 번은 네 발로 엎어져서 소변을 보더라고요.”

박병준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건 소변을 본 게 아니라 지린 거예요. 지금 두부는 집에 적응을 못 하고 있거든요. 무서워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이사온 집을 ‘놀러온 곳’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하루이틀이 지나도 엄마 아빠가 ‘집’에 갈 생각을 않는 거죠. 어, 왜 이러지, 여긴 어디지, 겁을 먹고 지금 얌전해진 거예요.” 박씨는 특히 두부가 화장실을 무서워한다고 지적했다. 화장실에 있는 배변 패드에 볼일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낯선 냄새가 나는 새 공간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한다는 얘기다.

박씨는 조씨에게 간식을 쥐여주고 화장실로 들어가게 시켰다. 조로가 간식 냄새를 맡고 금세 뒤따라 갔다. 두부는 화장실 문턱에서 멈칫 했다. 간식을 먹고서도 두부는 화장실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듯 얼른 뛰쳐나왔다. 박씨는 “배변 훈련이 잘 돼 있던 개라도 이렇게 스트레스 상황이 닥쳤을 때 잘 적응하게 도와주지 못하면 ‘문제행동’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됐으니 이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남았다. 박씨와 조씨는 30분 가까이 같은 일을 반복했다. 화장실 제일 안쪽까지 조씨가 간식을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때로는 간식을 주기도 하고 그냥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조씨를 따라 두부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간식을 주면서 샤워실 안쪽까지 유도해 잠시 머무르도록 했다.

“반려동물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아주 단순하지만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일들이에요. 저 같은 전문가가 방문하고 나서도 평소에도 계속 해줘야 하는 일이에요. 지금은 두부에게 ‘화장실이 무서운 공간이 아니다, 네 집은 여기’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주인 조혜진씨가 박병준씨의 지시에 맞춰 때로는 달래듯 때로는 엄하게 두부를 부르고 유인하기를 30분째. 잠시 조혜진씨가 화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두부는 화장실에 머물러 있었다. “어머!” 지켜보던 기자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박병준씨가 간식을 잘게 부숴 화장실 안쪽으로 던졌다. 두부는 화장실 제일 안쪽까지 들어가 냄새를 맡으며 간식을 찾았다. 뒤따라 발랄하게 들어간 조로와 잠시 엉키기도 했다.

조혜진씨는 2년 전 두부를 입양할 때부터 반려동물의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반려동물 교육 세미나도 찾아가 보고 책과 동영상을 섭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직접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행동교정’을 통해서 두부, 조로와 저를 서로 이해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부’와 ‘조로’를 돌보고 있는 반려동물행동교정사 박병준씨.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두부’와 ‘조로’를 돌보고 있는 반려동물행동교정사 박병준씨.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해하고 함께 사는 방법

박씨와 같은 반려동물행동교정사는 2014년 처음 한국에 도입된 신(新)직업이다. 2014년부터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에서 자격시험이 시행돼 지금까지 200여명이 배출됐다. 반려동물행동교정사가 하는 일은 얼핏 간단하다. 반려동물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문제행동’이라는 단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 직업을 한국에 소개하고 자격시험을 개발한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 장호원 이사의 설명을 들어 보자. “인간의 눈높이에서 보면 반려동물의 ‘문제행동’들은 문젯거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반려동물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에요. 짖고 무는 행동들은 그 상황에서 반려동물이 선택하는 가장 최선의 행동이에요.”

반려동물행동교정사라는 이름과 달리 반려동물행동교정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반려동물 주인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 것에 있다는 게 장호원 이사의 말이다. 반려동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그 원인을 제거해주면서 ‘함께 살도록’ 만드는 것이 반려동물행동교정사의 역할이다.

반려동물행동교정사의 활동이 기존에 있던 반려동물 ‘훈련소’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기존의 훈련소는 반려동물이 원래 살던 곳에서 떨어져 새로운 장소에서, 특정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하도록 만드는 일방적인 훈련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장 이사는 그동안은 “반려동물의 행동이 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훈련되다 보니 반려동물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행동교정사는 반려동물이 원래 지내는 곳으로 직접 방문한다. 반려동물의 ‘문제행동’이 무엇 때문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주인의 행동, 말, 반려동물이 지내는 환경, 반려동물의 경험 모든 것이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정사와 주인, 반려동물이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으로 해결책을 세우고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반려동물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반려동물행동교정사가 하는 일이다.

반려동물의 문제행동 교정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반려동물행동교정사가 하는 일은 반려동물과 사람이 편안하게 함께 살 수 있도록 서로의 대화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이 넘은 상황에서 진짜 ‘반려’의 의미를 실천하게 하는 것이 반려동물행동교정사의 몫이다.

장호원 이사는 “반려동물이 쉽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려동물행동교정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반려동물 주인의 입장에서 ‘문제행동’을 진단하고 일방적으로 고치려는 일이 많았다. 고쳐지지 않으면 은밀하게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려동물행동교정사처럼 반려동물을 이해하고 주인과 반려동물을 연결하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진짜 ‘반려사회’가 찾아올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1000만명.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연평균 8만마리에 달한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의 어두운 그늘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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