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자 슈칸신초의 광고 지면과 본문. ‘분슌포는 더렵혀진 총탄’이라는 제목을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분슌포는 분슌이 특종을 잘 터뜨린다고 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5월 25일자 슈칸신초의 광고 지면과 본문. ‘분슌포는 더렵혀진 총탄’이라는 제목을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분슌포는 분슌이 특종을 잘 터뜨린다고 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신초 특종 분슌이 훔쳐갔다!’

‘슈칸분슌, 특종 도둑?’

최근 일본 언론을 장식한 뉴스 제목이다. 특종 경쟁이 치열한 일본 주간지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특종이 나왔다. 일본 3대 주간지로 꼽히는 슈칸신초(週刊新潮)는 최근호 5월 25일자에 경쟁사인 슈칸분슌(週刊文春)이 자신들의 특종기사를 몰래 빼냈다는 주장의 특종기사를 실었다. 문제의 기사는 일본 신문·방송들이 앞다퉈 보도할 만큼 언론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신초는 지면 전면에 ‘특종 지상주의의 그늘에서 산업스파이, 신초 포스터 계속 커닝… 분슌포(文春包), 더럽혀진 총탄’이라는 제목을 대문짝만 하게 내고 10쪽에 걸쳐 자신들의 주장을 싣고 증거 등을 제시했다. ‘분슌포’는 슈칸분슌이 특종을 펑펑 터뜨린다는 뜻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신초는 기사와 함께 분슌의 부정행위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진을 실었다.

신초 측의 주장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신초와 분슌은 매주 화요일 저녁 제작을 마감한 후, 목요일 잡지를 발행한다. 양사 모두 마감 전인 화요일 오전, 그 주의 기사를 소개하는 광고를 미리 제작해 유통업체에 넘긴다. 일본 전철을 타면 통로 천장에 각 주간지 광고판이 커튼처럼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광고판 교체는 각 주간지들의 위탁을 받아 유통업체가 맡고 있다. 그런데 신초 측이 유통업체 ‘도한’에 넘긴 광고판을 분슌의 영업사원이 빼돌렸다. 영업사원은 근처 편의점에서 광고판을 복사한 후 본사인 분슌에 보고해왔다는 것이다. 신초는 광고 시안을 입수한 분슌 측이 자신들의 아이템을 보고 추가취재를 하는 식으로 특종을 가로채왔다고 주장했다. 신초가 지면에 공개한 결정적 증거 사진은 분슌 측의 영업사원이 편의점에서 신초의 광고 포스터를 복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에는 신초의 기사 제목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신초는 또 분슌 측이 그렇게 빼낸 정보를 수요일 온라인을 통해 기사 속보로 내보내 신초의 특종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신초는 3년 전부터 분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초는 2014년 9월 11일자에 일본의 유명 언론인 이케가미 아키라 칼럼니스트가 아사히 연재를 그만뒀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그 주 분슌 지면에도 똑같은 기사가 실렸다. 양사 모두 취재를 했을 수 있지만 신초가 의심을 한 근거는 분슌의 광고에는 해당 기사가 안 들어가 있었다. 화요일 오전까지 분슌의 기사 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은 기사가 수요일 온라인에 보도가 된 것이다. 신초는 2016년 6월 2일자 ‘도쿄대생 성희롱 사건 실태’ ‘게이오 대학생의 음주 폭행 사건’ ‘폭행 사건으로 체포된 탤런트 다카하다 유타’ 기사 등도 동일한 방식으로 분슌 측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신초는 증거를 잡기 위해 ‘도쿄대생 성희롱 사건’의 경우 기사에 들어 있는 중요한 증거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일부러 넣지 않고 광고를 내보냈다. 그런데 분슌의 기사도 역시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는 것. 신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유통업체 ‘도한’이 정보 누설지인 것을 확인했다. 신초가 이렇게 ‘분슌 고발’ 특종을 건지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와 관련 ‘도한’ 측은 지난 5월 20일 홈페이지에 “슈칸분슌에 광고를 빌려준 것은 부적절했다. 신초사와의 거래에 있어 성실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슈칸분슌의 영업사원이 신초의 광고를 빼돌려 복사하는 장면.
슈칸분슌의 영업사원이 신초의 광고를 빼돌려 복사하는 장면.

주간지 시장 과열경쟁의 그림자

‘도한’의 광고 유출 인정에도 불구하고 분슌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부정하게 입수하거나, 재구성한 사실이 일절 없다’면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정보 수집 과정에서 타 매체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가끔 있다. 그런 정보전쟁은 여러 미디어에서도 비슷하게 행해지고 있다. 슈칸신초 기사에서 보면 마치 분슌이 의도적으로 특종을 훔친 것처럼 쓰여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 당사자는 지속적으로 취재하기 때문에 타 매체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취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시간 차가 있는 광고와 지면이 다른 것은 흔한 일이다.’

분슌의 신타니 마나부 편집장이 ‘독자 여러분에게’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의 일부이다. 일본 언론계의 특종은 주간지에서 많이 나온다. 메이저 신문, 방송도 주간지발(發) 보도로 뉴스를 시작하는 일이 흔하다. 지난해만 해도 분슌에서 보도한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재생담당장관의 뇌물수수 의혹’ ‘유명 탤런트 벡키의 불륜’, 신초발 ‘오체불만족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불륜’ 뉴스 등이 열도를 뒤흔들었다. 올 4월에도 신초는 자민당의 나카가와 중의원의 불륜 특종으로 그를 경제산업정무관에서 사임시켰다. 분슌은 연예인 스캔들, 신초는 정치인 스캔들에 강하다.

일본 잡지협회에 따르면 올 1~3월까지 슈칸분슌의 평균 발행부수는 65만1000부로 주간지 1위이다. 2위는 슈칸겐다이(週刊現代)로 48만7000부, 3위가 슈칸신초로 44만7000부이다. 이들이 한 주가 멀다 하고 특종을 쏟아내면서 침체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분슌은 특히 특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취재기자 60여명 중 40명이 특종팀이다. 특종 제조기로 유명한 신타니 분슌 편집장의 철학은 ‘미디어는 팩트로 싸운다’이다. 지난해 아마리 장관 기사도 총리 관저로부터 “TPP 조인 때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거절했다. 이번 신초의 분슌 고발 파문은 과열경쟁이 빚은 사건이다. 신초는 최근 겐다이에 2위 자리를 내줬다. 분슌에 크게 밀리면서 위기감이 커진 것도 그 배경으로 보인다.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인 다카이 야스유키 변호사는 마이니치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초사와 유통업체 간 광고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에 대한 계약이 없었다면 신초 측이 분슌 측에 민사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형법인 업무방해죄를 묻는다고 해도 주간지의 발행 자체가 방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립이 어렵다. 부정경제방지법 위반의 구성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법적 책임과는 무관하게 분슌은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일본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 분슌의 부정행위를 비난하는 글이 많지만 미디어의 과열경쟁을 비난하는 시각도 상당하다.

‘연예인, 정치인 사생활 사진 몰래 찍고 돈 받은 자들이 윤리를 말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

‘사람의 약점만 파는 업계에서 불문율 운운은 이상하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당신들의 일, 독자는 상관없다.’

도쿄 릿쿄대학 핫토리 다카아키 명예교수도 이렇게 꼬집었다. “특종 경쟁이 법칙 위반으로 이어졌다. 이번 의혹으로 주간지들 간의 싸움은 미디어의 자살행위임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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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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