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신역사와 구역사(오른쪽).
서울역 신역사와 구역사(오른쪽).

서울역 vs 용산역.

통일 한반도의 중앙역 자리를 둘러싼 100년 만의 재대결이 벌어질 조짐이다. 발단은 지난 5월 24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일을 대비한 서울역 통합개발 기본구상’ 착수보고 공청회. 최근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공원인 서울로7017 개장과 함께 추진 중인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해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KR) 주최로 열린 착수보고였다. 서울시가 만든 ‘서울역 일대 미래비전’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을 위해 만든 ‘서울역 일대 종합개발 기본구상’을 종합해 중앙정부인 국토부 차원에서 ‘서울역 통합개발 계획’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서울시와 코레일은 그간 서울역 일대 개발에 관해 이견을 보여왔다.

이날 국토부가 주최하고 한국교통연구원이 주관한 착수보고 공청회는 ‘서울역 통합개발 기본구상’에 ‘통일을 대비한’이란 수식어가 붙으면서 철도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간 철도계에서는 통일 후 북한 철도망, 나아가 중국·러시아 철도망과의 연계를 두고 통일 한반도의 중앙역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서울역과 용산역. 이날 공청회에서는 서울역을 한반도 중앙역으로 기정사실화했다. 국토부 철도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서울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도심과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서울역 외에 다른 대안을 놓고 별도로 고민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역은 북한 지역의 기존 철도망과 연계가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서울역 경유 옛 경의선은 차치하더라도 최대 약점은 한반도 동부 철도교통의 중심인 청량리역까지의 단절구간(Missing Link)이다. 물론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는 지하철 1호선(옛 국철)으로 연결돼 있다. 기존 지하선로를 활용할 경우 열차가 아예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하구간에 고속열차, 일반열차를 다 들어가게 할 경우에는 지하철 1호선의 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서울)시청역에서 종각역으로 꺾어지는 급곡선 구간 때문에 20량씩 달고 다니는 고속열차는 투입이 어렵다.

이 같은 서울역과 청량리역과의 단절로 인해 서울역에서는 한반도 북부는커녕 동부와의 연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원선, 경춘선, 중앙선 등 철도는 모두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이 기점이다. 심지어 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주 교통로가 될 인천공항~평창~강릉 간 KTX올림픽선 역시 기술적인 이유로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과 청량리역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정해졌다. 이로 인해 충분한 검토 없이 ‘통일 한반도 중앙역’으로 서울역을 상정하고 서울역 역세권 개발을 진행할 경우 한반도 북쪽과 동쪽을 커버할 수 없는 반쪽짜리 중앙역이 될 공산이 크다.

사정이 이런데 국토부는 이전 정부와 서울시, 철도계 관계자들이 대안으로 신중히 검토해온 용산역 중앙역 안(案)을 성급히 배제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착수보고서를 낸 한국교통연구원은 추진 배경을 ‘한반도 통일 대비’라고 적시했다. 그리고 기존 서울역의 기능 대부분은 ‘불변항목’으로 둔 채, 서울역의 일반철도 기능을 용산역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을 ‘가변항목’으로 제시했다. 국토부 철도정책과 관계자는 “용산역을 한반도 통일 후 허브역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통합개발 계획의 최종 제출 시점은 오는 12월. 이에 한반도 공간구조를 왜곡하고 중복투자를 야기하는 졸속 계획이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용산역 민자역사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역 민자역사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접근성 서울역 vs 개발가능성 용산역

물론 국토부가 서울역 통합개발 기본구상에서 ‘불변항목’으로 설정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일산~수서), B노선(송도~청량리)을 활용하면 서울역을 경유해 한반도 서북쪽(경의선)이나 동북쪽(경원선) 등과도 이론적으로 연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GTX의 경우 재정사업이 아닌 민자(民資)사업이다. 서울 도심 지하를 관통하는 터라 GTX-A, GTX-B에 사업비만 각각 4조6000억원 이상 들 것으로 보여 사업 성사 자체가 불투명하다. GTX-B 노선의 경우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사업편익비용(B/C)이 0.33에 불과해 낙제했다. 이에 추진되더라도 사업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강 하저터널 건설이 필요 없는 송도에서 여의도까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용산역은 비록 서울 도심과의 접근성은 서울역에 비해 떨어지지만 북한 철도망과의 연계가 최대 장점이다. 용산역을 기점으로 한 경의중앙선을 따라 한반도 서북쪽은 물론 옛 한강제방을 따라 왕십리역, 청량리역으로 이어지는 선로를 이용해 한반도 동쪽이나 동북쪽으로 어디든지 열차를 올려보낼 수 있다. 이 노선은 한양도성을 멀찍이 비껴가기 때문에 선로 추가 확장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부담이 서울역 지하 통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실제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확정고시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에는 용산역~청량리역~망우역 간 17.3㎞ 구간에 2복선(복복선)전철을 추가 신설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런 까닭에 용산역은 한반도 중앙역 자리를 두고 줄곧 서울역을 위협해왔다. 경부고속철 건설 초기에 서울시가 강력히 주장해 당시 중앙정부와 고속철 중앙역으로 낙점한 곳은 용산역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용산역 철도차량기지 부지를 활용한 용산역세권 개발계획을 추진했을 때도 용산역은 서울역의 자리를 위협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확정고시된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1~2020)’상의 수도권 광역철도 역시 용산역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신경의선(용산~문산) 복선전철이 완공돼 용산역에서 중앙선과 직결돼 2014년 12월부터 직결운행이 시작됐다. 경의중앙선 직결 개통 후 용산역의 최대 약점인 연계 교통도 많이 개선됐다. 신분당선(강남~광교)의 북부 연장선은 용산역~강남역으로 노선이 정해졌다.

국토부가 배제한 용산역은 추가 개발이 가능한 광대한 배후부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울역은 북부를 제외하면 배후부지가 협소하다. 서울역의 협소한 부지 문제는 1925년 경성역(서울역 구역사, 현 문화역서울284)을 신축할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현재도 구(舊)역사 서쪽으로 서부역과 선상역사(현 롯데마트 서울역점), 남쪽으로 KTX고속철 신역사, 공항철도 등이 이미 들어서 추가 확장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한반도 통일에 대비해 서울역을 또다시 확장하려면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좌) 서울역의 전신 옛 남대문역. (우) 옛 용산역.
(좌) 서울역의 전신 옛 남대문역. (우) 옛 용산역.

지하개발은 지상개발에 비해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기존 철도를 그대로 운행하는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해 기술적 난이도도 높고 공기도 오래 걸린다. 서울역 지하에 공항철도 서울역과 지하철 1·4호선 간에 고작 300m 지하 환승통로를 개착하는 데도 무려 4년이 걸렸다. 결국 국토부와 서울시가 제시한 서울역 지하개발 구상은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머릿속 공상’으로 그칠 공산이 다분하다. 이날 공청회에서 국토부 철도정책과 관계자는 “지방과 형평성 차원에서 이미 교통인프라가 잘 구축된 서울에 또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하역사를 건설하는 것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설사 지하개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서울역의 경우 비좁은 공간 탓에 미로(迷路) 같은 공간배치를 감수해야 한다. 미로 같은 공간배치는 열차 이용객의 환승동선이 길어져 불편하다. 이 같은 공간배치는 언제든지 테러의 잠재표적이 될 수 있는 국가중앙역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역의 평균 환승시간은 7분30초 이상으로 최하등급인 ‘F등급(5분 이상)’에 머물고 있다. 기존의 미로 같은 역에 지하역사가 추가로 건설되면 화재나 테러가 발생했을 경우에 역사 이용객들의 신속한 탈출이 어려워 자칫 대형참사로 변할 우려도 있다.

용산역은 개발 가능한 배후부지가 서울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 과거 용산 철도차량기지가 있던 곳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때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을 앞두고 관련 시설을 모두 철거해 현재 공터로 방치돼 있다. 남북으로 길쭉하고 협소한 서울역 부지와 달리 용산역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넉넉해 여러 가닥의 선로를 배선하기도 용이하다. 여기에 용산역은 남쪽의 한강철교를 통해 한강 이남으로 곧장 연결된다. 힌강철교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 지하로 땅을 파서 역사를 건설할 필요도 없다. 한강 이남과의 연결은 한강철교를 추가 증설하는 식으로 무한정 늘릴 수도 있다.

물론 서울역의 서울 도심과의 탁월한 접근성은 용산역의 미래 개발가능성을 압도하는 매력이다. 교통평론가 한우진씨는 “철도는 공항과 달리 도심으로 곧장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통일 후에는 모르겠지만 서울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에 용산역을 키울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국토부 착수보고 발표를 담당한 한국교통연구원 오재학 부원장은 “서울시의 서울역 미래비전 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금의 서울역 남부에 유라시아 국제철도 기능을 넣는 것으로 나온다”며 “현재 서울역의 국가중앙역 위상이 통일 후에도 유지되지 않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X자 철도망 중심 용산역

한때 지정학적·군사적 중요성으로 서울역보다 큰 규모

용산을 중심으로 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철도노선도.
용산을 중심으로 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철도노선도.

용산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심이다. 구한말 임오군란(1882) 때 청(淸)군이 상륙해 진을 친 곳이 용산이다. 청일전쟁(1894) 때 일본군이 청군을 몰아내고 자리를 잡은 곳도 용산이다. 광복후 미군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주둔한 곳도 용산이다. 외세(外勢)가 용산을 선호한 것은 용산이 가지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용산에 있으면 한반도 전역 어디든지 가장 빠른 시간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용산을 중심으로 철도망을 구축해 놓아 한반도 전역으로 병력을 수송할 수 있었다.

용산역과 서울역이 들어선 것은 1900년이다. 국내 최초 철도로 1899년 개통한 경인선(인천~노량진)이 이듬해인 1900년 한강철교 부설과 함께 한강을 건너 강북으로 올라오면서다. 한강철교를 넘어 한강을 건너온 경인선 철로는 지금은 폐역이 된 ‘경성역(서대문역)’까지 들어왔다. 지금의 서울역(당시 남대문역)과 용산역은 경인선의 중간 정차역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용산의 지정학적·군사적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용산역의 규모가 서울역보다 훨씬 컸다고 전해진다. 용산역의 보조역할에 그친 서울역이 용산역을 넘어선 것은 1925년 르네상스 양식의 신역사 준공 이후다.

그런 까닭에 일제가 골간을 만든 한반도 철도망은 모두 용산역을 기점으로 형성됐다. 일본이 러일전쟁 와중에 병참수송용으로 경의선(용산~신의주)을 속성으로 부설할 때도 시발역은 용산역이었다. 이미 한양도성 내의 시가(市街)가 형성돼 있는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시발역으로 철도를 부설하려면 시가를 가로질러야 했다. 전쟁으로 한시가 다급한 와중에 주택철거에 따라 건설공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무력으로 한반도를 사실상 점령했다지만 조선인들의 반발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이유로 한반도 서북쪽을 연결하는 경의선은 용산역을 기점으로 건설됐다.

경의선 개통 후인 1908년 초량역(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운행한 한반도 최초 급행열차인 ‘융희호(隆熙號)’도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을 경유해 운행했다. 이후 한반도에서 만주로 향하는 국제열차도 모두 용산역을 경유해 달렸다. 1914년 개통한 경원선(용산~원산) 역시 용산역을 기점으로 원산까지 부설됐다. 지금의 용산역에서 왕십리역, 청량리역, 의정부역을 거쳐 원산까지 올라가는 노선이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철도노선도에는 용산 또는 용산의 일본식 영어표기인 ‘류잔(RYUZAN)역’이 한반도 X자 철도망의 중심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을 비롯해 철도학교(현 용산공고), 철도병원(옛 중앙대 용산병원)이 모두 용산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용산역의 서울 도심과의 불편한 접근성은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1919년 일제는 부산~신의주를 연결하는 한반도 종관(縱貫)철도의 핵심인 경의선이 경성역을 경유해 가도록 변경했다. 이 노선이 바로 서울역에서 신촌역(지상)을 거쳐 수색역으로 연결되는 철도노선이다. 1925년에는 기존의 남대문역을 대대적으로 개축해 ‘경성역’으로 명명하고 관문 역할을 부여했다.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당시 동양 최대 역이었던 도쿄역에 이은 동양 제2의 기차역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X자 철도망의 중심이자 군사철도의 중심으로서 용산역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용산역의 위상이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6·25전쟁 와중 1950년 7월 16일 미 공군의 ‘용산 대폭격’으로 인해 폐허로 변해버리면서다. 용산역도 이때 공습으로 무너졌다. 6·25전쟁 이후에는 국토공간이 한반도 남쪽으로 줄어들면서 서울역에 비해 중요성이 밀렸다. 이후 용산역은 간이역과 같은 초라한 신세를 면치 못했고, 군인들만 오가는 역사로 위상이 격하됐다. 하지만 한반도 철도에서 용산역이 가지는 위상으로 인해 2004년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에 맞춰 서울역과 함께 민자(民資)역사 개발이 진행됐고, 2003년 10월에야 지금의 모습처럼 바뀌었다. 서울역과 용산역의 경쟁은 100년째 진행 중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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