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의원회관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에 지명돼 소감을 말하는 도종환 의원.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 5월 30일 의원회관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에 지명돼 소감을 말하는 도종환 의원.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고려의 국경선은 원산만 이남이 아니라 중국 랴오닝성 랴오양 부근이다.”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과 인하대 고조선연구소가 연 세미나였다. 이 자리에서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최근 정부 지원으로 한국 고대사 쟁점 사항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1945년 일본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를 번역하고 원문대조 정밀 해제했다”며 “이 과정에서 ‘조선사’에 기록된 고려의 국경선이 ‘고려사’와 ‘요사’에 기록된 바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고려 영토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것보다 더 컸다는 얘기다.

개최 당시엔 이 세미나가 대중에게 별 화제가 되지 않았다. 뒤늦게 거론되는 이유는 참석자 때문이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5일 후인 5월 30일 도 의원은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예상 밖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역사학계에서였다.

바로 이튿날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많은 이들이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종환 의원의 지나친 민족주의와 이에 따른 유사 역사학에의 동조 혹은 가담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믿고 있다.” 심 교수는 ‘일단 페이스북에 올린 의견만 봐달라’며 공개 인터뷰를 사양했다. 다른 사학과 교수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이들의 우려는 하나였다. “도종환 후보자는 이덕일 소장 등 ‘유사 역사학자’들과 친분이 깊은 것 같다. 그쪽 생각에 경도되어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

근거로 든 것은 국회에서의 발언이다. 구체적으로는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이른바 ‘역사특위’에서의 발언. 도 의원은 19대 국회 시절 역사특위에서 활동했다. 소속 정당과 연고가 다른 김세연 의원과 도종환 의원이 만난 곳도 이곳이다.

“조조의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지배?”

역사특위는 2013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활동했다. 초대 위원장은 남경필 현 경기도지사. 첫 회의에서 남 지사는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또 위안부와 관련된 일부 일본 정치인의 역사왜곡 발언, 또 왜곡된 역사의 교과서 수록 문제, 또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도발행위는 한·일 양국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위원회 활동목표를 설명했다. 명칭 그대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로 출발한 셈이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회의의 성격은 조금 묘하게 바뀌어 갔다. 한국 ‘고대사’ ‘상고사’ 문제가 핵심이 되어버린 것. 역사특위의 분위기는 국회 위원회로서는 이례적이었다고 한다. “국정교과서 문제를 빼면 여야 의원 간에 특별한 의견대립이 없었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최봉홍 전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최 전 의원은 역사특위에서 초기부터 활발히 활동했다.

도종환 의원은 역사특위 회의에 열심히 참석했다. 2014년 7월 4일 합류한 이후 31차례 중 24회 참석했다. 2015년 6월 12일 회의에서는 인하대 복기대 교수와 질의답변을 나누기도 했다. 참고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의원도 특위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지만 한 번 출석하고 그 후로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특위인 줄 알았는데 상고사 위주로 회의가 흘러가는 걸 보고 참석하지 않은 듯하다.

도 의원의 역사특위 발언 중 사학과 교수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2015년 4월 17일 회의에서의 발언이다. 이날 역사특위엔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참고인 자격이었다.

도 의원은 5세기 초 고구려의 지도를 작성하는 문제와 관련해 임 교수에게 질의를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을 해왔다. 예산 46억800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지도 내용에 의문이 든다. 조조의 위나라가 한반도의 경기도까지 지배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4세기 지도에는 백제, 신라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된 일인가.”

여기서 말하는 동북아역사지도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강역을 시대별로 표기한 지도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연세대·서강대 산학협력단에 제작 용역을 줬다. 8년간 제작했지만, 독도 표기가 안 되어 있는 등 ‘지도학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부실 판정을 받았고 결국 폐기됐다. 이후 동북아역사재단이 직접 다시 제작하겠다고 방침을 세운 상태다.

역사지도 제작과 운명을 같이한 건이 또 있다. 바로 ‘하버드 한국고대사 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EKP)’. 동북아역사재단이 돈을 지원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고대 한국사를 연구하도록 한 작업이다. 마크 바잉턴 교수가 연구를 맡아 책을 발간하고 세미나를 열었다. 2013년 EKP가 여섯 번째 책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에서의 한 군현)’을 발간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한 군현은 기원전 108년 전한(前漢)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에 그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4개의 군(낙랑군·진번군·임둔군·현도군)과 그 속현을 말한다.

이 중 낙랑군이 과연 현재의 어디에 해당하는가는 고대사 분야의 ‘뜨거운 감자’다. 일단 ‘평양 대동강 남안’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통설이다. 이덕일 소장은 낙랑군의 위치가 중국 요서지방이라고 주장한다. 낙랑군의 위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민족사의 지리적 배경을 한반도에만 한정할 것이냐, 더 넓힐 것이냐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역사특위는 이 문제를 지적했고, 논쟁 끝에 EKP는 조기 종료됐다.

사학계 반발은 이유 있나

이 문제는 한국 역사학계의 뿌리 깊은 반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위 ‘강단 사학’ ‘식민 사학’과 ‘재야 사학’ ‘유사 역사학’의 반목이다. 대학 강단에 서는 사학과 교수진들은 이덕일 소장 등 재야 사학자들을 유사 역사학자, 즉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사학과 교수 중에는 기자에게 도종환 의원을 언급하며 “회의에서 ‘이덕일 교수가, 이덕일 교수가’ 이러면서 의견을 말하더라”며 불만을 제기한 이도 있었다. 교수가 아닌데 교수라고 칭했다는 얘기다. 이덕일 소장을 향해서는 “왜 학술 발표를 국회에서 하나? 우리 사학자들은 국회의원을 만날 필요가 없다. 이 소장 같은 재야 사학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접근해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중이 학자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역사를 꾸며내라 강요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최봉홍 전 의원은 역사특위 활동을 하며 목격한 사학계의 병폐를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 사학자들은 본인이 A를 가지고 박사학위를 받으면, 평생 그것을 옹호하려 하더라.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귀를 기울여봐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특위가 새로운 관점을 소개했다고 생각한다.”

소위 ‘강단 사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이덕일 소장 등이 저서를 통해 인기를 얻으며 대중에게 지지를 받고 있고, 이것을 국회의원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 탄생에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 수정뿐 아니라, 문체부 산하 재단을 통한 연구비 지원 같은 당장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가 걸려 있다. 한 학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역사특위가 활동을 하며 ‘위대한 상고사’ 식의 관점으로 연구비 지원을 받은 학자들이 많다. 기존 학자들이 이런 결과물을 심사에서 통과시켜 줄 것 같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도종환 장관 후보자 측은 일단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도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천준호 보좌관의 말이다. “한겨레에 ‘역사관 비판 싸울 때 싸우겠다’는 제목으로 나간 인터뷰는 보도를 전제로 한 게 아니었다. 격의 없이 전화통화로 나눈 얘기를 시간이 흐른 후에 기사화했다.”

최봉홍 전 의원에게 도 후보자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젊은 사학자들이 예전 일에 집착한다”면서 “옛날 일을 끄집어내면 이성계나 세종대왕도 구속감”이라며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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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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