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수사기법인 디지털포렌식(Digital Forensic)이 수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포렌식은 PC·노트북·휴대폰 등의 기기나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을 말한다. 디지털 기록매체에 복원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암호 보안을 해제한 뒤 메타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자나 이를 통해 오간 정보를 추적하고 조사하는 것이 디지털포렌식의 일반적 실행 방법이다.

지난 5월 26일 서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206호에서 ‘2017 춘계 과학수사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대검찰청·형사정책연구원·한국포렌식학회·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한국저작권보호원이 공동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는 선진국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직접 발표자로 나섰다. 참석자들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최신 디지털포렌식 기법과 노하우를 공유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스티븐 모런(Steven Moran) 뉴욕검찰청 첨단범죄 분석팀장이 ‘미국에서의 스마트 단말기 압수·수색 관련 실무사례’를, 요이치 구모타(Yoichi Kumota) 일본 경찰청 첨단범죄 수사부 부국장이 ‘일본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증거수집 관련 실무사례’를, 이연주 대검 과학수사부 디지털포렌식연구소 수사관이 ‘모바일 암호화 현황 및 대응방안’을, 김현수 한컴GMD 대표가 ‘모바일 포렌식 도구를 이용한 증거분석 동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이연주 대검 수사관은 “스마트폰 데이터 암호화로 인해 복호화 문제가 발생하는데, 암호와 보안 기능 우회를 위한 기술이 부족할 뿐더러 포렌식 분야, 암호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패스워드 확보를 위한 협력을 구할 수 있는 입법도 미비하다”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고 보안기능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 인력과 예산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포렌식 기법에 대한 수사기관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학술대회에는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영대 대검 과학수사부장(검사장)을 포함한 대검 검사·수사관들과 경찰, 군검찰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김영대 검사장은 이 자리에서 스티븐 모런 분석팀장에게 뉴욕검찰청의 별건수사 관행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디지털포렌식 기법은 최근 인양된 세월호에서 발견된 희생자들의 휴대전화를 복구하는 과정에 활용되면서 특히 주목받았다. 앞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휴대폰 데이터 전문복원업체 모바일랩과 함께 디지털포렌식을 진행해왔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휴대폰에서 수천~수만 건의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전화번호부와 통화목록, 사진, 영상, 음성 등의 데이터를 복구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디지털포렌식으로 복구된 데이터를 세월호 참사 당시의 분위기와, 사건과 관련된 실마리를 파악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포렌식 기법을 통해 확보한 증거는 최근 법정에서 더 인정받는 추세다. 이날 학술대회에 참석한 강구민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과학수사학과 초빙교수에 따르면 우리 법원은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 비해 디지털 증거를 엄격히 해석해왔다. 디지털 증거를 간접증거, 정황증거 정도로는 취급했지만 법관이 해당 죄의 유무를 판단할 만한 직접적 증거로 활용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간접증거와 정황증거로만 취급받던 과학적 증거들이 최근에는 법관의 유죄심증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17 춘계 과학수사 공동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석한 스티븐 모런 뉴욕검찰청 첨단범죄 분석팀장(왼쪽)과 요이치 구모타 일본 경찰청 첨단범죄 수사부 부국장. ⓒphoto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7 춘계 과학수사 공동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석한 스티븐 모런 뉴욕검찰청 첨단범죄 분석팀장(왼쪽)과 요이치 구모타 일본 경찰청 첨단범죄 수사부 부국장. ⓒphoto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법정서도 직접 증거로 활용

이런 추세에는 지난해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국회는 진술서와 그에 준하는 디지털 증거의 진정성립은 과학적 분석결과에 기초한 디지털포렌식 자료·감정 등 객관적 방법으로도 인정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했다. 예전 형사소송법 제313조는 피고인이 작성한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직접 공판정에 나와 진술서 성립의 진정을 인정해야 했다. 즉 피고인이 공판정에 직접 나와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내가 작성한 내용과 일치한다”고 진술해야만 진술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법은 “진술서의 작성자가 공판준비 혹은 공판기일에 진정을 부정해도 과학적 분석결과에 기초한 디지털포렌식 자료, 감정 등 객관적 방법으로 성립의 진정이 인정됨을 증명할 경우 증거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그동안 공판정에서 진술이 담긴 디지털 증거에 대한 진정성립을 당사자에게만 확인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디지털포렌식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포렌식 역시 여타 DNA분석, 지문분석, 혈흔분석 등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증거방법의 하나로 볼 수 있게 됐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적용된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10월 24일 JTBC보도로 국민적 관심을 받은 ‘최순실 사태’다. 당시 JTBC 보도에 등장한 최순실씨가 사용하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의 경우 개정되기 전 형사소송법을 적용한다면 피고인이 스스로 작성한 서류(태블릿PC 내 문서들)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개정된 형사소송법으로 인해 최씨가 태블릿PC를 사용했다는 것을 검찰이 입증한다면 최씨가 태블릿PC를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더라도 증거로 쓸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당시 ‘검찰이 태블릿PC의 사용자가 최씨라는 객관적 증거를 찾아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당시 피고인 측 변호인이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을 물고 늘어진 것은 법이 개정된 점을 놓쳐 엉뚱한 포인트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포렌식과 관련된 새로운 수사기법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논란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2017 춘계 과학수사 공동학술대회’에 참석한 경찰의 한 관계자는 모런 뉴욕검찰청 분석팀장에게 “뉴욕 경찰은 피의자의 휴대전화 패스코드를 풀기 위해 어떤 기법을 이용하냐”고 질문했다. 한국은 전 국민의 지문을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로 확보하는 세계 3개국 중 하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경찰은 실험 삼아 지문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피의자의 지문을 3D프린터를 이용해 손가락 형태로 복원해낸 결과 피의자 휴대전화의 터치 잠금을 풀어낼 수 있었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휴대전화 패스코드를 풀려면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따로 발부받아야 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지 않아도 피의자의 휴대전화에 담긴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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