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62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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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베이비부머 목수가 되다

▲ 목공인들의 최대 온라인 카페 네이버 ‘우드워커’의 스태프들. 왼쪽부터 대장으로 불리는 ‘고물’과 ‘나무노래’ ‘도현아빠’ ‘초대박’. 이들은 본명 대신 온라인 닉네임을 사용한다. 왼쪽 의자 사진은 ‘고물’이 15년 전 만든 첫 작품. 지금도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강호 무림의 숨은 고수들처럼, 목공(木工)의 세계에도 내공을 자랑하는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온라인 목공계에서 대장으로 통하는 이가 있다. 그는 ‘고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고요한 물’의 줄임말이지만 원체 고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고물’ 대장이 목공계에 입문한 것은 14년 전. 이사가 계기였다. 새 집으로 가면서 새 가구를 주문했다. 1000만원 넘는 거금을 투자했는데 가구를 받고 보니 전부 값싼 목재의 ‘메이드 인 차이나’에다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만들자! 근거 없는 자신감만 믿고 가구를 반품했다.
   
   서울 용산 공구상가에 가서 당장 목공에 필요한 공구를 샀다. 아는 공구라고는 톱, 드릴, 끌이 전부였다. 요즘처럼 목공을 가르치는 공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재를 자를 때 사용하는 기본 작업대인 ‘테이블소’가 뭔지 구경도 못 했다. 목공이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생초보의 첫 작품은 간이의자였다. 전통 목공 방식대로 못은 안 쓰고 짜맞춤 기법으로 만들었다. 나무판에 구멍 뚫어 대충 끼워 완성해 놓고 보니 짜릿했다. 제대로 된 나무도 아니고 못 쓰는 선반을 잘라 만든 어설픈 의자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다.
   
   의자를 시작으로 집안 가구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테이블, 서랍장, 침대, 아이들 책상…. 가구가 하나씩 늘 때마다 내공이 다져졌다. 가구 개수에 비례해서 공구 욕심도 늘었다. 공구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수공구, 전동공구, 기계 등 수천 가지가 넘는다. 초보용만 해도 용도가 다른 각종 드릴에다 수압대패, 자동대패, 그라인더, 샌더, 라우터, 스크롤 소…. ‘지름신’이 수시로 왔다 갔다. 공구에 투자한 돈이면 웬만한 원목가구로 집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목공을 알고 나니 더더욱 접착제 투성이의 가구를 집안에 들일 수 없었다. 아예 아파트 방 하나를 공방으로 만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일명 ‘방바닥 공방’이라 이른다. 10년 전쯤엔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개인 공방까지 만들었다.
   
   
   ‘고물’이 초보 목수에서 강호의 고수가 되는 동안 목공인구의 저변도 확대됐다. 특히 은퇴를 전후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목공 붐이 뜨겁다. 취미 수준을 넘어 목공으로 제2인생을 꿈꾸거나 이미 실행에 옮긴 이들도 많다. 네이버 카페 ‘우드워커’(http://café.naver.com/woodworker)에는 이런 목수 베이비부머들이 모여 있다. ‘우드워커’는 온라인 최대의 목공 관련 카페이다. 회원 수는 23만8000여명. 충성 회원 수도 많다. 인터넷 즐겨찾기에 추가해놓고 매일 출석체크하는 사람들이 4만여명에 달한다. 2005년 만들어진 이후 총 방문자는 4100만명에 육박한다. 회원의 연령대는 40~50대가 70%에 이른다. ‘우드워커’의 대장이 바로 ‘고물’이다.
   
   
▲ 서울 논현동 ‘우드워커’ 대표공방 작업실 입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목수를 꿈꾸는 베이비부머들
   
   지난 6월 11일 서울 논현동에 새 공방을 마련한 ‘고물’을 만났다. 개인 공방은 정리하고 ‘우드워커’를 위해 최근 확장 이전했다. ‘우드워커’ 대표공방을 내세운 이곳은 목공 교육 등 카페 회원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할 계획이다.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분 좋은 나무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목공을 즐길 준비가 되셨나요?’ 작업실 입구 문 위쪽에 커다랗게 써서 붙여놓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에서는 닉네임 ‘고물’로만 통하기 때문에 개인 신상은 알 수 없다. 우드워커 대표공방까지 차리고 나선 만큼 직업 목수인가 싶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고물’의 본업은 의사이자 한의사이다. 본명은 나도균(65), 나도균의원한의원 원장이다.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하다 40세에 경희대 한의대에 다시 입학해 한의학 박사가 됐다. 대한의사한의사복수면허의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1주일 중 4일은 병원 진료를 하고 나머지 3일은 공방에 나와 목공인으로 살고 있다. 그는 카페 ‘우드워커’의 목적은 목공의 저변확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목공을 시작할 때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한 게 많았습니다. 모르는 공구 사대느라 불필요한 투자도 많이 했습니다. 최근 목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누구든 목공을 하고 싶은 사람은 쉽게 접근하고 도전해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실수를 먼저 한 선배들이 조언을 해주고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은 겁니다.”
   
   그의 말대로 목공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가 들어와서 ‘눈팅’만 해도 이론적으로는 중급 실력을 갖출 수 있을 만큼 ‘우드워커’의 콘텐츠는 풍부하다. 초급강좌부터 시작해 공구, 목재, 디자인, 설계까지 필요한 콘텐츠가 분류돼 있고 기본 자료는 물론 새로운 정보 교환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우드워커’의 장점은 개방적이다. 초보 회원에게 특히 너그럽다. 회원 가입하는 순간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 ‘고수’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게시판에는 ‘선배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초보들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내가 만든 작품’ 코너에 회원들이 올린 작품을 보면 프로 가구작가 못지않은 실력들이다.
   
   대부분 ‘나만의 가구’를 만들고 싶어 목공을 시작하지만 우드워커의 부매니저인 김의호(54)씨는 좀 다르다. 그는 닉네임 ‘나무노래’로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매니아인 그는 오디오 스피커를 직접 만들고 싶어 15년 전 목공을 시작했다. 더 좋은 소리를 찾아 기성 스피커를 사느라 당시 강남 아파트 2채 값을 투자했지만 만족스러운 소리는 없었다. 결국 ‘직접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목공을 시작했다. 스피커 통의 나무 소재, 디자인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전혀 달라진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스피커는 400여개. 요즘엔 ‘나무노래’표 스피커를 사겠다는 사람이 종종 있다. 고가에 판매한 작품도 있다.
   
   그도 본업은 따로 있다.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 한편을 아예 공방으로 만들었다. ‘고물’ 대장과 함께 공방에서 만난 그가 휴대폰에 있는 자신의 작품 사진을 보여줬다. 그의 사무실 책상 옆에 놓인 대형 스피커였다. 스피커 한쪽이 대형 양문 냉장고 크기였다.
   
   친구 따라 목공에 입문한 경우도 많다. ‘나무노래’가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한 친구가 은퇴하고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간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원목 주문 가구를 맞춰놓고 목재에 대해 잘 아니 가구점에 함께 가서 봐달라고 했다. 원목을 이유로 견적이 수천만원에 달했다. 계약금도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척 보니 원목이 아니라 무늬목을 겉에 붙인 가짜 원목이었다. 다행히 가구점 주인이 우드워커의 회원으로 ‘나무노래’의 내공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 속일 수가 없게 된 주인은 계약금을 돌려줬다. 친구는 가구 한 점 없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마당 한쪽에 공방을 만들고 목공을 시작했다. 기초부터 배워가며 가구를 하나씩 만들어 텅 빈 집을 채워나갔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창조나무 공방’을 운영하는 이중기(55)씨는 목공 입문 10년 차. 초보에서 전업 가구디자이너가 됐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악스튜디오를 운영했다. 대학 시절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20대에는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독주회 무대에 오를 만큼 실력이 있었지만 유학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음악 기획사에 입사했다. 행사 음악을 진행하면서 외주제작팀과 손을 맞추다 아예 음악스튜디오를 만들어 독립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일로 20여년 빠져 살았다.
   
   마음먹고 목공에 입문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아이가 책상이 없어 조그만 탁자에 앉아 공부하더란다. 직접 만들어주면 특별한 기억이 되겠다 싶어 인터넷을 뒤져 재료를 주문했다. 재단된 목재, 반제품 다리를 조립하는 수준이었지만 목공의 매력에 푹 빠졌다. 베란다에서 뚝딱거리다 자신의 음악작업실 한편에 아예 간이공방을 만들었다. 인터넷 자료 뒤적이며 독학으로 목공을 배우다 내친김에 정부지원 직업훈련학교에 지원했다. 1년 과정으로 점심값, 차비까지 주고 목공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만큼 지원자가 많았지만 운 좋게 합격했다. 개근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다녔다. 2008년의 일이다. 직업훈련학교 동기생 7명이 공동 작업실을 만들었다. 다들 생업이 있다 보니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결국 그만 남았다. 음악일도 접고 아예 공방을 접수했다.
   
   그는 주문가구 생산보다는 작품 가구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전시회도 하고 ‘가구디자이너’ 이중기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자투리 나무를 재활용해 만든 ‘그라비티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다. 음악이 그의 인생 전반기를 채웠다면 후반은 목공과 함께 살려고 한다. 공방 운영을 위해 목공 수업 등을 고민 중이다. 목공 붐과 함께 교육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가구의 꽃인 의자 디자이너로 승부를 걸고 싶은 욕심도 있다. 가구 공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가구디자이너의 전망도 밝다.
   
   
▲ 클래식 매니아인 김의호씨는 스피커를 직접 만들기 위해 목공을 배웠다. 초대형 스피커부터 모두 김씨의 작품이다.

   목공을 하는 이유
   
   늦바람 난 목수들이 외치는 목공의 매력은 비슷하다. ‘생각하는 것은 뭐든 만들 수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다. 완성 후 짜릿한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이다. 왕년에 공구 좀 만져본 경우라면 특히 착각에 빠져 있다.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만해 보이는 만큼 발을 쉽게 들여놓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 이중기씨의 말이다. 때려맞추고 대충 두드리면 될 것 같지만 사실 정밀한 과학과 섬세한 감각이 필요하다. 절대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 도전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의 몰입도도 또 다른 매력으로 꼽는다. 1㎜까지 계산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만큼 딴생각을 할 수 없다. 나무가 주는 위로도 크다. 자연친화적인 재료가 주는 따뜻함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채워준다.
   
   목공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이다. 작업환경에 따라 공구와 목재 등 가능한 작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 작업 공방은 모든 취목인(목공이 취미인 사람)의 꿈이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 열악하지만 취목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 ‘베란다 공방’이다. 퇴근 후 언제든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방음·방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초보 목공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목공방이다. 최근에는 서울 도심에도 목공 교육을 해주는 목공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구를 살 필요 없이 공방의 공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적인 면에서도 유리하다.
   
   ‘열쇠공방’도 최근 늘고 있다. 열쇠를 만드는 공방이 아니라 열쇠를 공유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월 사용료를 내고 공방 시설과 장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목공 관련 커뮤니티에 보면 ‘열쇠회원 찾습니다’라는 게시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친한 목공인들끼리 아예 공동작업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포터블 공방’족도 등장했다. 차에 공구를 갖추고 소음·먼지 걱정 없는 야외로 나가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취목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지름신’과 ‘마눌님’이다. ‘지름신’도 잡는 존재가 ‘마눌님’이다. 돈과 시간은 물론이고 집안을 작업장으로 만드는 목공 취미가 부인 입장에서 반가울 리 없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보면 ‘마눌님’을 목공 지지파로 만드는 비법이 고급 정보로 대접받는다. ‘마눌님을 감격시킬 가구를 먼저 만들어주고 환심을 사라’는 조언도 그중 하나다. 공구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세상은 넓고 탐나는 공구는 사도사도 부족하기만 하다. 특히 초보 목수의 경우 자칫하다가는 취미가 목공이 아니라 공구 수집이 될 수 있다.
   
   취목 인생 20년이 넘는 한인섭(62)씨는 우연찮게 생긴 전동드릴 때문에 목공을 시작했다. 집에 수도가 고장 나서 기술자에게 맡기려니 당시에도 20만원 가까운 비용을 요구했다. 그 돈으로 드릴을 사서 직접 수리를 했다. 전동드릴이 생기니 뭐든 만들 수 있었다. 거실 좌탁부터 시작해 그의 ‘베란다 공방’에서 책상, 책장, 침대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가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공구가 더 많이 늘었다. 공구 욕심이 남다른 그가 지금까지 새 공구를 좇아 투자한 돈은 1000만~2000만원은 될 것이라고 한다. 수리비 아끼자고 산 전동드릴이 비싼 취미를 만든 셈이다. 그는 작품을 완성한 후 나뭇결을 만질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최근 작품은 지난해 결혼한 딸에게 만들어준 좌탁이다. 어린 시절부터 손때 묻은 ‘아빠의 좌탁’이 그리웠던지 특별주문을 하더란다.
   
   굳이 복잡한 공구가 없이도 목공을 즐길 수 있다. ‘언플러그드(unplugged) 목공’에 빠진 사람도 많다. 전동공구를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톱, 끌과 같은 수공구만 사용해서 목공을 즐기는 방식이다. 기계음 대신 손맛을 느끼고, 느림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 취미로 목공을 시작해 전업 가구디자이너가 된 이중기씨의 대표작 ‘그라비티 시리즈’. 버려진 나무조각을 재활용한 작품으로 목공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만들었다.

   목공의 미래
   
   목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핸드메이드에 대한 가치가 높아질수록 목공에 대한 대우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목공 기계가 발달하면서 기술보다 디자인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여성 목수들이 급증하는 이유이다. 카페 우드워커 회원 중 여성 비율은 30%에 달한다. 힘과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공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원하는 디자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가구뿐만 아니라 펜던트, 우든펜, 미니어처, 악기, 액세서리, 카약, 서각 등 전문화할 수 있는 분야도 많다.
   
   아직 목공을 생업으로 할 만큼 목공의 가치가 대접받고 있지는 않다. 취목 고수 중에는 목공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한 사람도 많지만, 실패한 사람도 많다. 나도균 원장의 말이다. “아직은 힘들다. 목공의 저변이 넓어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시장도 커진다. 목수를 아티스트로 인정하고 가구를 작품으로 대우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이다. 목공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 년 부쩍 많아졌다. 심리치료에도 목공이 활용되고 대학에 목공학과도 생겼다. 전망은 밝다.”
   
   나 원장은 목공을 배우고 싶다면 일단 저질러 보라고 조언한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작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실수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빨리 고수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과정이 재미있는 거죠. 그게 목공입니다. 일단 나무부터 잘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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