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62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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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안양 공원에 45도 기울어진 한옥 등장한 이유

정장열  부장대우 jrchung@chosun.com 

▲ 안양예술공원의 ‘안양 파빌리온’에 설치된 공공예술 작품들. 서가 역할을 하는 벽은 최화정 작가의 ‘무문관’이고, 돌 모양의 쿠션 더미는 재미작가 크리스티나 김의 작품 ‘돌베개 정원’이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안양예술공원. 과거 안양유원지로 불리던 이곳 초입에는 ‘안양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하얀색 단층 건물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시각적인 즐거움이 확 느껴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기둥 하나 없는 널찍한 공간 한쪽에 거대한 벽이 버티고 서 있다. 자세히 보면 벽이 아니라 서가다. 그런데 서가 앞을 유화 캔버스를 이어붙인 것 같은 또 다른 조형벽이 가리고 있다. 앞쪽의 조형벽을 좌우로 밀면 뒤에서 서가가 나타나는 구조다. 벽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자개장들이 죽 이어붙여져 있다.
   
   이 거대한 벽은 설치미술 작품이다. 최화정 작가의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작품으로 2016년부터 파빌리온 안을 장식하고 있다. 조형벽을 장식하는 소재는 캔버스가 아니라 건설현장 등에서 쓰이는 거푸집 합판이고, 뒤쪽을 장식한 자개장은 안양 시민들이 기증한 실제 자개장을 이어붙인 것이다. 조형벽 뒤의 서가에는 예술 관련 서적 등 약 2000권의 책들이 들어차 있다. 누구나 이곳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다가 서가에서 책을 빼내 독서를 즐길 수도 있다.
   
   파빌리온 바닥에도 무문관을 배경으로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언뜻 보면 강가에 뒹구는 크고 작은 돌로 보이는 쿠션들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다. 이 역시 재미작가 크리스티나 김의 ‘돌베개 정원’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도 ‘참여와 감상’이라는 이중성이 녹아 있다. 고정된 형태의 작품이 아니라 누구나 쿠션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옮길 수 있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찾아와 쿠션을 쌓거나 깔아놓고 그 위에서 책을 읽고 뒹군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기는 공공성 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파빌리온도 그 자체가 공공예술 작품이다. 포르투갈의 세계적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Alvaro Siza)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정면에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개 껍데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이 건축물은 설계자의 이름을 따 ‘알바로 시자홀’로 불리기도 한다. 2005년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열릴 때 참가한 작품 중 하나다. 당시만 해도 이 건축물은 알바로 시자가 동양에 선보인 첫 번째 작품이었다.
   
   
▲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트의 ‘티하우스’. 안양 중앙공원에 전시돼 있다. photo 안양시

   5회째 개최된 공공예술프로젝트
   
   오래된 소비도시로만 인식되어온 안양에는 이 같은 수준 높은 공공예술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관악산 등산로 입구 양쪽으로 펼쳐진 안양예술공원에만 건축물, 조각, 설치미술 등 50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많다. 안양예술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전망대는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그룹인 NVRDV의 작품이다. 산의 등고선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파빌리온의 독특한 모양을 비롯해 예술공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양예술공원에만 공공예술 작품들이 있는 게 아니다. 공원에서 나와 안양 도심으로 들어가도 곳곳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작품들과 마주친다. 예컨대 안양시청 앞 잔디광장에서는 세계 곳곳의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앞에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형상화한 작품을 설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 작가 실비 플뢰리의 UFO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 안양 중앙공원에 가면 태국 작가인 리크리트 티라바니트가 한국의 전통가옥을 45도로 기울여 만든 ‘티하우스’라는 작품이 눈길을 끈다.
   
   현재 안양에는 예술공원에 전시된 작품들을 포함해 모두 80점의 공공예술 작품이 도시 곳곳을 수놓고 있다. 공공예술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안양이 ‘공공예술의 메카’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수준 높은 건축 작품들이 많아 국내외 건축학도들이 안양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안양예술공원 초입에는 한국 근대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인 김중업을 기리는 ‘김중업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이 자리 잡은 곳은 본래 안양이라는 도시명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고려시대 최대의 절 ‘안양사’ 터였다고 한다.
   
   
▲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헬로, 안양 위드 러브’. 안양 평화공원에 전시돼 있다. photo 안양시

   시 전체를 장식하는 80점의 작품들
   
   사실 공공예술은 모든 사람이 즐기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같은 속성으로 인해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자신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공예술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퍼붓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역 앞 ‘서울로’에 설치됐던 대형 설치미술 ‘슈즈트리’가 “혐오스럽다”는 비판 끝에 결국 철거된 것이 공공예술의 한계와 숙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안양의 공공예술은 그 자체가 주목할 만한 도전이자 성취다. 시민들과 어울리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예술의 장(場)으로 한 도시의 정체성을 가꿔온 예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안양이 공공예술의 메카로 발돋움한 계기는 2005년부터 시작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였다. 세계적 수준의 공공예술 전시회를 표방하고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당초 안양유원지 정비 작업에서 비롯됐다. 놀자판, 먹자판 이미지가 강했던 안양유원지를 정비해 한 차원 높은 공간으로 활용해 보자고 아이디어를 모으다가 공공예술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안양유원지를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특히 3~5대 민선시장을 지낸 신중대 당시 시장이 공공예술이 안양시의 새로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강하게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05년 제1회 APAP가 개최됐고, 이후 3년마다 한 번씩 국내외 작가들을 초청해 공공예술 행사가 열리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나 부산 비엔날레가 있지만 시 단위 지자체에서 국제적 예술행사를 개최하는 건 안양시가 유일하다. 현재 안양시 곳곳에 전시 중인 80점의 공공예술 작품들은 APAP에서 지난 12년간 선보인 120점의 작품 중 일부로, 작가들이 안양시에 기증한 안양시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2016년 5회에 이어 2019년 6회 행사를 앞두고 있는 APAP는 그동안 매회 콘셉트를 조금씩 달리하며 진화해왔다. 2회 때는 도심 속 공공장소에 현대미술을 설치하는 작업에 주안점을 뒀고, 3회 때는 ‘새 동네, 열린 도시 안에서’라는 주제로 일반 시민을 위한 교육과 디자인 중심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4회 때는 공공예술 작품의 사후관리와 관객 접근성 강화에 방점을 뒀고, 지난해 열린 5회 때는 시민참여 확대와 공공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뒀다. 5회 대회의 경우 개막 후 53일간 1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안양예술공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인터뷰 | 이필운 안양시장
   
   “공공예술이 시의 자산이자 경쟁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공공예술은 이제 안양시의 브랜드이자 자산입니다.”
   
   지난 6월 13일 안양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이필운 안양시장은 공공예술이 안양시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누가 시장이 되든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안양시의 핵심 경쟁력이 공공예술이라는 것이다.
   
   안양이 공공예술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사실 정책 연속성이 중요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2005년 한나라당 소속의 신중대 시장 때 시작돼 2007년 보궐선거로 시장이 된 같은 당 소속의 이필운 시장이 이어받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필운 시장을 물리치고 승리한 민주당 소속의 최대호 시장 때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현 이필운 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최대호 시장을 꺾고 두 번째 시장직을 수행 중이며 내년 지방선거에도 나설 예정이다.
   
   “처음에는 공공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시민들 사이에서 반발이 있었죠. 왜 세금을 들여 외국 작가들을 불러오느냐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소외된 지역 예술인들도 반발했죠. 하지만 지금은 공공예술이 안양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데 다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에 따르면,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관 주도로 시작된 행사이지만 지금은 민간 주도로 전환됐다. 시에서는 예산만 배정할 뿐, 매회 행사 전체를 주관하는 감독 선임과 주제 선정 등은 안양문화예술재단이 담당한다고 한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매회 30억원가량. 이 시장은 “30억원을 들여 공공예술 행사를 앞으로 10년간 이어간다면 지금까지의 투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가 생겨날 것”이라며 “당장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자산이 되도록 문화예술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안양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공공예술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공원과 도시 곳곳을 다니면서 일상적으로 예술작품들을 접합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공공예술을 경험하는 셈이죠. 안양은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힐링 도시’를 실현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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