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 산장의 저녁은 무척 활기차다. 본격적인 종주를 앞둔 사람들의 기대감과 두려움, 호기심과 자신감이 어우러져 운동회날 분위기다. 저녁 먹고 산장 한쪽에 모여 앉았다. 한여름인데도 서늘하게 부는 바람과 총총한 별이 설렘을 더해준다. 서울 학생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 것 같은 지리산 밤하늘의 별들을 신기한 듯 올려다봤다. 부모님 계신 서울 쪽을 향해 밤 인사를 드리라고 하였더니 방향을 잘 찾지 못한다. 평소 별자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두철이(가명)가 나섰다. “밤에 방향을 알려면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찾으면 된다.”

두철이는 신이 나서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등의 별자리를 찾는 방법과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그 가운데 유독 밝은 별 3개를 가리키며 위쪽 가운데에 하나, 오른쪽 하나, 왼쪽 아래 하나 이렇게 삼각형이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밝은 오른쪽 별이 직녀성이고, 왼쪽 아래가 견우성이며, 두 별 사이에 많은 별이 모여 강처럼 보이는 것이 은하수라고 알려준다. 학생들에게 문제까지 하나 낸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7월 7일에는 정말 비가 올까?” 비가 온다, 안 온다며 분분한 학생들의 반응까지 지켜본 후, 두철이가 설명한다. “7월 7일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인데, 주로 장마철이나 태풍이 자주 오는 시기여서 비가 올 가능성이 높아. 칠석이 지나면 농촌은 농번기인데, 농부인 견우는 너무 바빠서 직녀를 만날 시간이 없어지지. 슬퍼서 운다는 얘기도 있어.” 나는 두철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신나서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학생들도 박수를 쳐주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학생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진로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두철이에게 먼저 물었다. 좋아하는 별을 보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두철이 모습이 아름다웠다. 두철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격려의 박수를 쳐 준다. 다른 아이들도 한 명 한 명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꿈 발표가 끝난 후, 별들을 보며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을 상징하는 자신의 별자리를 하늘에 만들어 보라고 하였다. 일명 ‘희망 별자리 만들기’이다.

장군별자리를 만든 일표, 황소별자리를 만든 호원이, 미생물학자가 되겠다며 현미경별자리를 만든 희철이,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 로봇별자리를 만든 동철이, 사회복지사가 꿈이라며 천사의 날개를 만든 현동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참하신 동철이 아버지가 동철이에게 뜻밖의 고백을 하셨다. “미안하구나. 할아버지도 그렇고, 우리 가족은 장손인 네가 당연히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해왔어. 네 의사는 묻지도 않았지. 네가 그토록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어하는지 몰랐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이제부터는 네 꿈을 밀어줄게.”

동철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동철이는 꿈을 향해 묵묵히 걸었고,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으로 꿈을 이뤘다. 지금 동철이는 로봇연구원이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 학생이 꿈을 세우고, 그 꿈을 따라 성장하게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어른들의 뜻이 강요될 때는 바른 성장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본성을 잃고 얼마 자라지 못하고 만다. 꿈을 키워주는 일은 여린 잎을 보호하고 잘 자라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기다려주어야 씨앗의 속성대로 쑥쑥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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