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단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오는 10월 초로 예정된 총무원장 선거는 현 자승 총무원장의 불출마가 확정됨에 따라 후보군이 난립하는 양상이다. 대표적으로 월정사 정념 스님, 안국선원 수불 스님,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스님,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원행 스님 등 10여명이 자천타천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4년 임기의 총무원장은 조계종 행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는 친(親)자승파와 반(反)자승파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친자승파 내부의 경쟁구도로 흐르고 있다.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스님 중 다수가 자승 원장 체제에서 조계종단 간부를 지냈거나 자승 원장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럴 경우 자승 원장의 지원을 받은 후보가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자승 원장이 섣불리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익명의 재가불자는 이렇게 예상했다. “자승 원장 주변의 인사들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자승이 누군가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할 경우 그 즉시 다른 스님들은 반발할 것이다. 자승은 선거 목전까지 발언을 삼갈 것 같다.” 만약 차기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총무원 측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경우 친자승파의 분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지난 8년간 자승 총무원장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반자승 세력은 자신들을 대변할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반자승파로 분류됐던 스님들은 징계를 받거나 제적당해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계종 총무부장 등을 거친 영담 스님의 경우 지난해 4월 종단을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로 공권정지 10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종단 일각에서는 50여년간 승려로서 조계종을 대표해온 영담 스님에게 과도한 징계를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조계종 사법기구인 호계원은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명진은 재심청구권도 스스로 포기”

종단 내 대표적 야당 인사인 명진 스님도 지난 4월 5일 조계종 호계원으로부터 제적 통보를 받았다. 조계종 측은 봉은사 주지를 지낸 그가 종단을 비방했고 사찰 재산에 대한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제적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호계원의 결정은 명진 스님의 차기 총무원장 출마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조계종 종책특보를 지낸 김영국씨는 이에 대해 “명진 스님에 대한 제적사유가 조각(阻却)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어 진보진영 원로 인사들과 민변이 나서 지원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특별사면복권의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간의 행보로 미루어 볼 때 명진 스님을 상대로 통합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명진의 제적사유로 조계종 측이 거론한 한국전력 부지 환수 및 개발 계약 건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명진 측은 “종단과 자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적 징계를 할 수 없으니까 7년 전 봉은사 주지 시절 있었던 일로 사유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옛 한전 부지는 지난 2014년 현대차가 10조5000억원을 들여 매입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땅(33만㎡)으로 원래 봉은사 소유였지만 1970년 불교회관 건립과 동국대 예산 확보를 위해 조계종이 정부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가격은 3.3㎡당 5300원. 이후 한전의 지방 이전이 확정되자 조계종 일각에서는 해당 부지의 원소유권자인 봉은사가 부지를 다시 매입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의 개발계획에 떠밀려 해당 부지를 헐값에 매각했기 때문에 재매입 권한을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명진은 “당시 장윤(스님)이 재매입 건을 추진할 사업가(은인표)를 봉은사로 데려왔다”고 했다. 하지만 한전 부지는 조계종의 바람과 달리 현대차에 팔렸고, 당시 부지 재매입을 추진하던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은인표씨는 얼마 뒤 불법대출 등의 사건에 연루돼 구속수감됐다. 명진 측의 한 인사는 “당시 봉은사를 찾아왔던 은인표씨는 총무원을 직접 접촉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 부지 재매입 및 개발사업 추진 계약서를 은씨와 총무원 측이 작성할 때 명진 스님 직인을 관리했던 진화 스님과 조계종단 총무부장인 현문 스님이 배석했고 명진은 없었다. 부지 재매입 실패 책임을 명진에게 뒤집어씌운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지난 1월 국립공원 문화재관람료 폐지 등의 개혁공약을 앞세워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3개월 뒤 조계종 호법부는 그의 제적안을 호계원에 넘겨 처리했다. 이에 대해 명진은 “내부를 향해 비판했다고 승적을 발탁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적어도 수행자 집단이라는 불교에서 이런 적폐는 걷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무원 측은 이에 대해 “단순히 조계종을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진 스님의 제적을 결정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총무원 측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재직할 때 종단에 보고를 누락한 채 봉은사가 한전 부지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것을 전제로 독자 개발권을 부여한 계약을 맺었다. 사찰 관리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호계원에 출석해 소명하라고 했지만 이를 거부했고 재심청구권도 스스로 포기했다.”

조계종 호계원도 명진 스님의 징계와 관련해 “우리 종단은 인내와 끈기를 갖고 적법한 절차를 진행했다”면서 “이런 과정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방적으로 징계를 받은 것처럼 외부에 호도하는 것은 종단 중책을 역임한 스님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자승 원장이 2013년 총무원장 선거 당시 공약으로 검토했던 원장직선제 또한 불씨가 살아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25개 교구본찰과 중앙종회 의원 등 321명이 선출권을 갖는 간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진다. 승가와 재가불자 단체들은 총무원장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하고 투명한 종단 운영을 위해 원장직선제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선원수좌회(의장 월암 스님)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명예대표 법안 스님), 정의평화불교연대(대표 이도흠) 등 승재가 단체들은 지난 6월 7일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를 발족하고 직선제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조만간 범불교도대회를 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신대승네트워크 등의 단체는 ‘한국 불교 10년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지난 8년간 자승 총무원장의 종단 운영에 대한 평가와 적폐청산 등을 논의하고 있다. 조계종이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 등 일부 언론을 ‘해종(害宗) 언론’으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서도 언론탄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측은 “종단은 취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계종서 제적당한 명진 스님

“돈 냄새 진동하는 조계종 희망이 안 보인다”

“지금 조계종단은 모든 자리가 돈으로 연결됩니다.” 지난 6월 8일 충북 제천시 보광암에서 기자와 만난 명진(67) 스님은 임기말로 접어든 자승 총무원장 체제와 각을 세웠다. 명진 스님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승려다. 명진은 “지금 조계종은 자리를 사고파는 게 일상화됐다”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집단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종권이 총무원장 선거를 계기로 새롭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하나. “그렇다.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거다. 적어도 자승 측근이 다시 총무원을 장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왜 비(非)자승세력이 총무원을 이끌어야 하는가. “한때 나는 자승이 사판(事判·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하면 잘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총무원장이 되고 나서 비판에 귀를 막았다. 돈이 판치는 상황이다.”

- 종단 내에서 왜 돈이 문제가 되나. “주지, 종회의원, 총무원장 등을 선출할 때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돈이 오간다고 한다.”

- 그럼 사판 승려들은 그 돈을 어떻게 조성하나. “일부 승려는 정부가 보조하는 문화재 관리비와 각종 사업비를 빼돌리기도 한다. 마곡사의 경우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주지가 구속됐다. 그동안 정부 예산으로 집행된 천문학적 규모의 문화재 보수관리비와 템플스테이 지원비는 점검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문화재 보수비를 지원받은 전국 사찰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려 했으나 유력 정치인이 나서 이를 막았다고 한다.”

그는 “총무원은 정치 권력을 멀리해야 하고 자금 운영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개혁하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송담 스님처럼 스스로 탈종하는 사례가 늘어나 결국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한편, 명진 스님의 ‘금권 선거’ 주장에 대해 자승 총무원장의 한 측근은 “금권선거 개혁을 위해 자승 총무원장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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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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