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66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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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窓 | 교사의 窓] 약골 준범이의 지리산 종주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bonghack@chol.com 

노고단 산장의 아침은 일찍부터 분주하다.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지리산 10경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노고단 운해는 장관으로 꼽힌다. 이를 보려는 기대감으로 산행을 서두른다.
   
   학생들도 긴장하고 있었는지 깨우지 않았는데도 모두 일찍 일어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서로 조심하면서 부산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에 주변 청소까지 미리 나눈 각자의 역할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요즘 청소년들이 어른 말을 잘 안 듣고 스스로 할 줄 모른다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늘의 목적지인 벽소령 산장은 학생들 걸음으로 11시간에서 12시간 정도 걸린다.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매우 가파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배낭의 무게도 무겁게 느껴지고, 길을 올려다보면 마치 땅이 하늘로 훅 들어올려진 것 같아 아찔하다. 학생들은 아무리 주의를 줘도 연신 물을 들이켜며 제자리에서 도무지 발을 떼려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속았다” “왜 왔지?” 하는 후회의 말들을 내뱉는다.
   
   모두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 준범이가 보란 듯이 혼자 가볍게 치고 올라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평소 체력이 약하고 체육시간에 운동능력이 떨어져 힘들어했던 준범이다. 산행이 결정됐을 때 준범이와 부모님에게는 특별 부탁까지 했었다. 그런 준범이가 당당하게 앞서서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본 다른 학생들은 경쟁하듯 손으로 배낭의 밑을 받쳐 올리며 힘을 내서 올라갔다. 드디어 노고단에 도착했다. 발밑으로 넓게 펼쳐진 노고단 구름바다는 학생들을 시인으로 만든다.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감탄사들을 연신 쏟아내고 있다. 소중한 땀방울로 얻어낸 훌륭한 경치를 즐기는 귀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을 몸에 담고 있다. 이 길에 오기까지 준범이의 역할이 컸다.
   
   준범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준범아, 너는 체력이 약하니 특별히 더 잘 준비해야 한다. 꼭 함께 종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준범이는 저녁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버지와 함께 동네 낙산 성곽 길을 걸었고, 집에서도 배낭을 메고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고 한다.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데에는 아버지의 응원이 있었다. 준범이 아버지는 힘든 훈련을 함께하면서 “너는 해낼 수 있다”는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후 준범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교 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반 학생들도 준범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체력이 좋은 학생으로 통해 체육시간에도 활동적이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 있게 도전하는 학생이 되었다. 성적도 올랐다.
   
   부모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해도 위축되지 않고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급함’은 버리고 ‘느긋함’을 갖는 거다. 학생 스스로 도전하고 이루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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