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닦되, 닦지 않는다. 수불(修弗), 영어로 옮기면 두(do)와 돈트(don’t)를 나란히 붙여놓은 셈이라고 할까. 공안(公案) 처럼 알듯 말듯한 법명이라 생각하며 문간을 넘었다. 7월 17일 아침 9시, 수불 스님(64)의 거처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스님이 일주일의 반을 머무르는 곳이다. 서울 안국동에 있다. 공안은 불교 수행자들이 참선할 때 과제로 붙드는 수행의 재료다. 화두(話頭)를 볼 수 있는 도구라고 할까. 선가에선 1700여개의 공안이 전해온다.

계단을 오르니 한옥 기둥 위에 주련이 붙어 있다. ‘조사입멸전개망(祖師入滅傳皆妄) 금일분명좌차대(今日分明坐此臺) 장두유안명여칠(杖頭有眼明如漆) 조파산하대지래(照破山河大地來)’ 경허 스님의 시다. 경허라면, 조선 말기 간화선 수행으로 불교를 부흥시킨 선사다. 최인호 소설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출가해 크게 깨달은 후 말년에 환속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이의 눈에는, 파격 그 자체의 삶이다. 시는 이런 뜻이다. ‘원효대사께서 입멸하셨다는 말은 전부 허망한 전언. 오늘도 분명 여기 앉아계신다. 지팡이에 눈이 있어 밝기가 칠흑 같다. 산하를 비추어 깨트리니 대지가 드러난다.’

건물 안에서 수불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爲)와 무위(無爲)가 견주고 있는 이름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얼굴 표정이나 말투가 상당히 온화하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같다. 이력에 어울리는 인상일 수도 있겠다. 스님은 선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한다. 1989년에 시작해 28년째다. 3만여명이 서울, 부산, 창원의 안국선원을 거쳐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쓴 혜민 스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마주 앉자마자 물었다. “불교 교세가 점점 위축되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결과’를 보면 불교 신자는 약 762만명이다. 10년 새 약 300만명이 줄었다. 같은 기간 개신교 신자는 123만명이 늘었다. 968만명이다. 조사 이래 처음으로 개신교가 불교를 제치고 교세 1위에 올랐다. 스님의 답이 돌아왔다 “시대의 흐름이 빨라졌어요. 첨단 정보화 시대 아닙니까. 사찰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르침을 접할 수 있어요. 종교 교단 자체가 변화에 구태의연한 탓도 있습니다.”

교세 약화를 지적한 건 불교계의 최근 풍경 때문이다. 조계종 내엔 연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조계사 앞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1인 시위를 하는 이들, 이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을 들여다보는 이들로 북적인다. 7월 17일, 기자가 그 앞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는 종로경찰서에서 경찰까지 출동했다. 팻말에 적혀 있는 글귀는 ‘종단 적폐청산’. 그 아래 글귀는 좀더 구체적이다. ‘명진 스님(봉은사 전 주지) 제적, 직선제 무시, 300만 불자 감소’. 조계종에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스님들의 룸살롱 출입, 원정 도박 등 선거 전후마다 이어져온 의혹들과 불자 감소가 무관하지 않을 터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단지 일개 종교 단체장이 아니다. 조계종은 전국에 2900여개 사찰을 두고 있다. 믿는 종교에 관계 없이 평생 조계종의 땅을 한 번도 밟아 보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보면 된다. 총무원장 권력의 원천은 크게 두 가지다. 임명권과 종법 개정안 제출권이다. 전국 조계종 직영 사찰의 주지와 주요 직책을 바로 총무원장이 임명한다. 총무원장은 국회에 해당하는 중앙종회를 소집해 종법 개정안도 낼 수 있다. 선거법 등 주요 법령 개정에 영향력을 미치기 수월하다는 얘기다.

수불 스님은 이번 총무원장 선거의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현응 스님(조계종 교육원장), 정념 스님(월정사 주지), 지홍 스님(조계종 포교원장), 자광 스님(동국대 이사장), 원행 스님(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등과 함께다. 명진 스님도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지난 5월 조계종 호법원의 결정으로 승적이 박탈됐다.

수불 스님과 자승 스님(현재 총무원장) 사이엔 이미 날 선 공방이 시작됐다. 지난 7월 13일 ‘총무원장 유력후보 A 스님이 금품을 살포했다’는 내용을 한 불교계 매체가 보도했다. 그러자 수불 스님은 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요지다. “A 스님이 나다. 금품 살포가 아니다. 선원의 불자들이 다른 사찰의 스님들을 위한 돈이라며 모아준 돈을 전달했다. 이런 대중공양을 동안거, 하안거 때마다 20여년간 해왔다. 20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했다는 얘긴가.” 그러면서 “자승 스님이 지난 6월 18일 ‘이번 선거에는 나오지 말고 단일 후보를 추대하는 쪽이 어떻겠나. 다음 선거에 나오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조계종 측은 “수불 스님이 먼저 선거를 도와달라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선거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 선거에 사실상 출마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 벼슬은 닭 벼슬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있어요. 이런 자리를 두고 갈등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지금쯤 여러 후보가 나와야 해요. 아무도 안 나오고 있습니다. 눈치 보기 바빠요. 총무원장을 추대로 뽑는다? 그 이상 바람직한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특정 세력이 특정 목적을 위해 추대한다면 문제입니다. 현재 종단의 권력을 쥔 측이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말이에요. 만약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종단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수행자가 ‘사판’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신 이유가 뭡니까. “범어사 주지를 하며 종단과 사회 전체 문제에 눈을 떴어요. 선원에서 일대일로 많은 사람과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나만의 수행을 위해 살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내가 여태까지 수행한 것을 전체 대중을 위해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

- 대중공양이 문제가 됐습니다. “대중공양은 승가의 전통이에요. 신도들이 안거철마다 대중공양 다녀오라고 공양금을 모아주십니다. 받아서 전달하지요. 20년 동안 해오던 걸 했을 뿐입니다.”

조계종 선거법에는 ‘선거에 입후보하고자 하는 자는 해당 선거일 기준 1년 이내에 어떠한 명목으로도 금품을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공식적인 기부금 전달도 잠재적 범죄 행위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이전엔 없다가 자승 총무원장 재임기간 신설됐다. 속세의 법인 공직선거법과 비교하면 상당히 포괄적인 규제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전 150일부터 선거일 후 60일까지의 기간만을 규제한다. 이 기간에도 (정치자금법상) 후원금 기부는 허용된다.

- 명진 스님 문제는 속세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사회 모임까지 결성됐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한때는 친했으면서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고 물어뜯고 있어요. 종단이 망하든 흥하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식이라 종단의 권위가 상실된 게 아닙니까. 신도들도 우왕좌왕하다 이탈합니다. ‘금품 살포’ 의혹에 즉각 반박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수행자 하나 나오기도 힘든 판인데 왜 종단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려 합니까.”

- 총무원장을 지금처럼 간선이 아닌 직선으로 뽑자는 주장이 있지요. “직선제도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현재 불교 신도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봅니다. 직선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원로 스님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7월엔 미국인 승려 현각 스님이 조계종을 비판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승려로 이름을 알린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의 기복신앙,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 국적·남녀 차별’을 거론하며 “외국인 제자들에게 조계종 출가를 권하지 않는다. 계룡산의 국제선원이나 일본의 선방으로 보낸다. 나도 한국을 떠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물었다.

“기복 불교 맞습니다.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기복 불교를 수행 불교로 전환하기 위해 종단이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을 하고 있다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정리해 볼 때예요. 현각 스님도 감정을 삭이고 때를 기다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대화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현응 스님(조계종 교육원장)과 지난해 ‘깨달음’을 두고 논쟁을 주고받으셨지요. 깨달음이 ‘돈오돈수(이루는 것)’인지 ‘돈오점수(이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였습니다. 현응 스님은 ‘깨달음은 이해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더 활발한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워요. 현직 교구장으로 종단 교육원장과 계속 논쟁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 깨달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의식세계의 변화라고 할까.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 ‘수행자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봅니까.(‘선지식’은 불도를 깨치고 덕이 높은 지도자를 뜻한다.) “선지식을 알아보려면 일단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 입문하는 수행자라면 실질적으론 잘 알려진 분들 가운데서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전생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분들은 만나자마자 느껴지기도 해요. 직접 경험한 일입니다. 처음 뵌 분인데 ‘아 저분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년 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어요.”

동국대 국제선센터에서 간화선 집중수행을 지도하는 수불 스님. ⓒphoto 안국선원
동국대 국제선센터에서 간화선 집중수행을 지도하는 수불 스님. ⓒphoto 안국선원

- 불교에서는 업보를 쌓는다고 합니다. 출가까진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자신이 쌓은 업보를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수행 방법도 있습니다. 호흡을 살핀다든지,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수행자처럼 완벽한 노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수행의 맛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교와 상관없이 선원의 참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화 시작 후 1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스님은 내내 안정된 자세였다. 30대의 기자는 허벅지가 저려왔다. 스님의 성장 환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선사에게 출가 전 일을 캐묻는 것은 실례일 듯하지만, 과거 법문을 하며 ‘어릴 때부터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서다.

- 어릴 때 왜 기도를 하셨나요. “아버지가 천도교를 믿었어요. 천도교 주문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시절까지 6년간 매일 주문을 외웠어요. 아침저녁으로 각각 1시간씩 말입니다. 그러니 많이 자야 6시간밖에 못 잤습니다. 제가 장남이었기 때문인지 아버지가 매우 엄격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저는 잘 따랐는데, 동생들은 못 하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아버지가 사람이 좋아 빚보증을 잘못 섰지요. 정신적 여유가 없어져서인지, 아버지가 기도는 그만두자 하셨지요. 지금도 그 주문을 기억합니다.”

- 스물두 살의 나이로 출가하셨지요. “전생에서부터 불가와 인연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부산 범어사에 처음 들어서는데 전부터 살고 있었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 출가를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단 한 번도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좋으니까.”

- ‘끄달린다’고 할까.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실 텐데 부대끼신 적은 없는지요.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가, 즐거워요. ‘즐겁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즐겁습니다.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나를 욕해도 나쁜 감정이 잘 안 일어나요. 나쁜 감정 때문에 내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러면 수행할 것이 더 보이겠지요. ‘사판 일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싶을 때가 있어요. 남들이 보면 서툰 모습이겠지만, 새로운 나를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 스님도 목표가 있습니까. “불교에서는 부처를 최고의 경지로 보지요. 부처 되는 것 이상의 목표가 있겠습니까. 현실로 눈을 돌리면 이런 생각은 듭니다. 이 세상에 다툼 없는 평화가 찾아오고, 개개인이 근심걱정 없이 이웃과 잘 살 수 있도록 헌신해야겠다. 그럴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겠다, 생각하지요.”

- 한국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에 비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들 하지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는 건 부각하지 않고 마치 범죄자들에 둘러싸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조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우리 젊은이들은 똑똑합니다. 빨리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췄어요. 이들이 희망입니다. 종교인의 역할이 뭔지 화두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공안 하나를 요청했다. 질문이 돌아왔다. “스스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있습니까?” 답이 쉬 안 나온다. ‘거울을 보면 볼 수 있다’고 하면 어쩐지 무식함을 넘어 불경이 될 것 같다. 선가의 답은 ‘그렇다’이다. 질문에서 답으로 가는 길을 고민하는 사이, 일상 속 수행은 시작된다. 힌트를 위해 스님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다. “자기 눈을 보지 않고 보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앞의 모든 것은 이미 자기의 눈을 먼저 봤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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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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