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생활 31년 차, 나에게는 멋지게 성장한 제자가 여럿 있다. 그들의 성장 스토리는 후배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온다. 며칠 전 나는 한 제자에게 전화해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락하기에 앞서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안 할 건데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기쁜 마음으로 후배들 앞에 서겠습니다.”

그 제자는 학창 시절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학급회장과 전교회장을 지낸 모범생이었기에 그의 얘기는 의아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남들이 가는 길을 마다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도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회사를 만들고, 삭막한 도시 공간에 아름다운 축제를 표현해내는 멋진 일들을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돈’보다 ‘가치’를 소중히 여긴 결과였다.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특강에 초청된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현명하게 공부하는 법을 알려준다. 앞으로 펼쳐질 멋진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며 인내하고 집중하여 노력하기를 당부한다. 그런데 그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후배님! 다름, 틀림, 기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세요.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또한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세상의 눈치 보지 마세요. 주변의 일반적 사고방식에 막연하게 따르지 마십시오.”

그는 눈치 보지 않는 삶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먼저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일이 좋았는지 왜 그 일을 하려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또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삶을 살지 말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또한 정답을 찾지 말고,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말고 지금 행복하자고 주장했다. ‘성공한 삶’보다는 ‘가치 있는 삶’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할 것을 권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는 학생들의 개별적 성향을 파악하고 각자에게 맞는 진로를 밀어줄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학교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다만 세상이 많이 변해 이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그래서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선배의 강의가 끝나고 후배들은 궁금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제한된 시간이었기에 질문을 다 수용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첫 번째 질문은 “그 선배는 어떻게 창업할 수 있었나요?”, 두 번째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였다. 이 질문을 들으며 나는 학생들이 세상에 대하여, 또 자신에 대하여 너무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답변들을 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회가 있다고….

15년 전 나는 제자의 가능성의 크기는 가늠했지만 그의 세상을 향한 엉뚱한 생각을 눈치채지 못했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김경원

경기도 성남 풍생중 교사

김경원 경기도 성남 풍생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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