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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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의 노학자는 정정했다. 간암 말기, 그것도 폐로 전이된 말기암을 극복한 80대의 명예교수, 하면 상상되는 이미지를 한번에 날려버렸다. “정정하십니다”라는 첫인사에 한만청 산학정(産學政)정책과정 원장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답했다.

“그럼 다 죽어가는 줄 알았어요? 허허허.”

한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은 지난 7월 21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산학연종합센터에서 한만청 원장을 만났다. 원장실은 3층이었다. 사진을 위해 2층 갤러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한 원장은 계단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음성은 우렁찼고 기력이 넘쳐 보였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골프 라운딩을 나가고 실내 사이클을 즐긴다고 한다.

한만청 원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나는 생존율 5% 미만의 말기암을 극복하고 활기찬 노년을 즐기는 삶에서, 또 하나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 명사로 구성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산학정정책과정(이하 서울대 산학정정책과정)을 이끈다는 점에서다.

한 원장은 이 과정의 상징적 존재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그는 퇴임 후 2001년에 개설된 서울대 산학정정책과정의 초대원장을 맡아 5년간 자리를 지켰고, 건강이 악화되면서 명예원장을 지내다 2014년 9월부터 다시 원장을 맡았다. 17년의 역사 중 무려 9년째 원장을 지내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성진 장관이 상근명예원장을 맡고 있으며, 황선우 센터장이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한다.

이 과정의 초빙교수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를 비롯해 정재계·학계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즐비하다. 정치인 또한 여야를 막론한다. 올 9월에 개설되는 산학정정책과정 33기 강사들의 면면을 보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수성 전 국무총리, 정희원 전 서울대학교병원장, 송광수 전 검찰총장,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해찬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 원장의 말이다. “‘여기에 초빙교수로 안 끼면 명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야당 여당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리더들을 강사로 초빙하려 했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산학정정책과정에는 어떤 수강생들이 오나. “기업 CEO들이 많이 온다. 공기업 종사자가 35%, 금융기관 종사자가 25%, 대기업 임원이 15%, 중소기업 임원 및 경영자가 25%다. 연령대는 50~60대가 많고, 여성 수강생은 15% 정도다. 부부가 함께 오면 학점을 더 준다. 총 6개월 과정의 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한 회당 100명의 수강생이 주 2회 명사의 특강을 듣게 된다.”

- 대학에도 최고경영자과정이 많은데, 이 과정만의 차별화된 특장점은. “이론 중심이 아니라 현장 중심의 경험이 녹아든 강연이라는 점이다. 틀에 박힌 교과서 같은 강연보다 산 교육을 강조한다. 애초에 출범할 당시 ‘민간 벤처스쿨’을 표방했다.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보다 권위있는 교수진이 많고 수강생 수준도 높은 편이다. 지금까지 32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는데, 그들끼리 다지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 상당하다. 역사가 길고 수료생이 많다 보니 하나의 전통으로 쌓이는 듯하다.”

- 이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어느 사회나 지도층 역할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특히 더 그렇다. 기업의 CEO라면 우리 회사만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다 같이 잘되기를 바라는 공동체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각계 각층 명사들의 경험이 녹아든 철학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시각이 넓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년 전 1년짜리 ‘CEO 정책과정’을 하나 더 개설했다. 초빙교수 면면은 비슷하지만 CEO로서의 마인드를 강조해 커리큘럼을 짰다.”

(좌) 김성진 상근명예원장. (우) 황선우 센터장.
(좌) 김성진 상근명예원장. (우) 황선우 센터장.

- 산학정정책과정의 상징적 존재다. 언제까지 이 자리를 맡으실 건가. “정년퇴직하자마자 이 일을 맡았는데, 그만두려 해도 그만두기 힘들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때문인 듯하다. 할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진짜 그만두려 한다.(웃음)”

- 말기암을 이겨낸 신화로 유명하다. 자서전 성격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도 호응이 높았다. 암을 졸업한 건가. “이제는 병원에 아예 안 다닌다. 지난해부터 1년에 한 번 건강검진만 받는다. 두 달 후 검진이 예정돼 있는데 이상징후가 없다.”

- 완치율 5% 미만의 암을 이겨낸 비결은. “5%는 내가 만든 말이다. 사실 0%였다. 가망이 없었다. 내가 방사선과 의사이니 누구보다 잘 안다. 간암이 폐로 전이되어서 살아남은 경우는 내가 알기론 없다. 수술하면 2~3년, 안 하면 3~6개월을 내다봤다. 내가 봐도 살아남은 건 기적이다.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우리집에는 상비약이 없다. 감기약, 설사약 한 알 안 먹었다. 배탈 나면 하루 굶고, 열 나면 아스피린 정도는 먹었다. 그러니 내 몸은 처녀지였다. 거기에 약이 들어오니 약효가 대단했다.”

- 약을 먹지 말라니, 의사 출신으로서 의외다. “이런 말을 하려거든 의사면허 내놓고 하라고들 한다.(웃음) 과잉섭취가 문제가 되는 시대다. 칼슘이나 비타민도 필요없다고 본다. 과거 못 먹고 못살 때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루 세끼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면 그 이상의 건강법은 없다.”

- 커피와 술은. “오전에 하루 한 잔 커피는 꼭 마시고, 포도주와 정종은 가끔씩 한잔한다. 이 정도는 약주다. 담배는 몸에 이로울 게 없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40분씩 한다. 계단 오르내리기는 좋지 않다. 내려갈 때 체중이 실려 관절에 해롭다.”

- 여생 동안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특별히 없다. 딸 셋인데 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다. 일간지 3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일본어로 된 ‘문예춘추’와 영자지 ‘타임’을 구독한다. 새로운 단어나 개념이 보이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한다. 검색엔진은 구글을 이용한다. 국내 검색엔진은 약하다. 이렇게 가끔 골프 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알아가는 하루하루 일상이 소중하다. 원래 긍정적이었지만 암을 이겨낸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긍정적이 됐다. 이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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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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