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당신의 꿈은 무엇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습니까?”

이 질문이 던져진 곳은 어디일까?

대학입시? 입사면접? 아니다. 초등학교 영재시험 문제다. 저학년과 고학년, 과학과 수학, 융합정보와 예체능 영역을 불문하고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아이는 10세 이전에 꿈을 정해야 하고, 그 구체적 꿈을 이루기 위해 해당 분야 독서는 기본, 관련 체험도 많이 해둬야 한다. 왜 그 꿈을 정했으며, 그 꿈을 이룬 후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지까지 스토리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우리 사회는 꿈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한국 어른들은 어린아이와 친해지고 싶을 때 주로 이렇게 묻는다. “넌 꿈이 뭐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의 답은 원대할수록 좋다. 대통령이나 과학자, 의사나 변호사 등. 만약 아이가 “아직 못 정했어요”라고 답하면 여지없이 실망스러운 반응이 돌아온다. 한편 “포메라니안을 키우는 거요”라거나 “엄마한테 맛있는 복숭아를 사드리는 거요”라고 답하면 엉뚱한 아이라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확실히 한국 사회에서는 꿈을 일찍 정할수록, 그 꿈이 원대할수록 똑똑하게 보이고, 늦되도록 꿈을 정하지 못하면 뒤처지거나 낙오자처럼 비쳐진다. “넌 꿈도 없니?”라는 비난의 말로 들린다.

미디어나 출판물을 봐도 ‘꿈’이 넘쳐난다. 여기도 꿈, 저기도 꿈이다. 꿈을 부추기며 꿈을 가지라고 한다. EBS 교육채널이 가장 그렇다.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라는 문구가 수시로 화면을 스친다.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꿈에서 시작해서 꿈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 책을 찾아보려 온라인 교보문고 사이트를 보니 교보문고 표어가 ‘꿈을 키우는 세상’이다.

가뜩이나 꿈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사회,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현 교육제도는 이를 한층 부추기고 있다.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 홍모씨는 “꿈 정하기 공식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폭넓게, 2학년 때에는 그보다 조금 좁혀서, 3학년 때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독서활동도 그 범위에 맞춰서 해야 생기부(학생생활기록부)가 아름답게 완성된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 과정이 그대로 또다시 반복된다. 1학년 때에는 포괄적 직업군으로, 2학년 때에는 지원학과를 염두에 두고, 3학년 때에는 구체적인 직업으로 범위를 좁힌다. 중요한 게 또 있다. 롤모델을 정해두고 그 인물 관련 책을 읽어둬야 면접 때 막히지 않는다.”

위에서 제시한 초등학교 영재시험 문제는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고교를 통틀어 내내 요구되는 비교과 영역의 핵심이다. 일찌감치 꿈을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펙을 차곡차곡 쌓아둬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 물론 꿈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고,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입시제도에서 꿈은 ‘희망진로’라는 허울을 쓰고 대입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대부분 현재의 진로교육에 대해 회의적이다.

신규진 경성고등학교 교사는 “진로 강요는 독”이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진로의 꿈은 성장하면서 키워가야 하는 것인데, 잘못된 교육 탓에 사람들은 꿈을 줄여가면서 산다.” 고3 담임을 다년간 맡은 김소영 홍대사대부고 교사 역시 “학종에서 꿈을 향한 한 방향의 진로활동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 1 자유학기제로 진로탐색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고 3이 되어서도 진로에 대해 막연한 아이들이 많다. 십대들이 해본 적도 없는 일에 대해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확신하고 준비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 아닌가. 십대는 꿈을 찾아서 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도중에 그 길이 아니라고 느껴도 스펙을 쌓아야 하는 중·고생들은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생기부에 진로가 바뀌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밀어붙이는 아이들도 많다.”

진로교육법 시행

‘진로교육법 시행령’이 제정된 건 2015년 6월. 중 1 자유학기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서서히 진행돼오던 진로교육이 교과과정으로 안착했다. ‘진로와 직업’ 교과목이 신설되고 ‘창의적 체험활동’(창체)이 강화됐으며, 진로진학전문교사를 각급 학교마다 배치하기 시작했다. 교육당국 주도로 직업체험관을 신설하고 확충해갔다.

‘희망진로’는 비교과 영역의 핵심이다.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희망진로’를 정하고 꿈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학생부를 통해 증명해 보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치밀함과 일관성이 중요하다. 교과성적은 기본, 독서활동, 동아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이 모두 ‘꿈’으로 일관성 있게 수렴되는 활동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원칙적으로는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희망진로’에는 어른들의 가치관과 기대가 투영돼 있다. 그 치밀한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서 요구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아이들이 속속들이 알 리 만무하다. 진로의 설계도를 꿰뚫고 있는 사교육과 부모의 경제력이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희망진로에 맞는 ‘소논문’ 작성에는 어른들의 입김이 상당수 작용한다. 입김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다. 300만원을 주고 소논문 대필까지 한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해당 분야 대학교수에게 몰래 감수를 요청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엄마, 나 뭐해?”라는, 아이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의 이면에는 이런 현실이 내재돼 있다.

진로교육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진로교육의 아웃풋이 입시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서서히 변질되는 게 문제다. ‘희망진로’는 ‘꿈 정하기’와 ‘꿈 키우기’를 강요하면서 ‘희망고문’이 돼갔다. 이런 현실에서 ‘꿈 정하기’는 학생들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다. 실제로 통계청이 조사한 청소년 고민거리를 보면 ‘직업’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졌다. 직업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2002년에는 5.2%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무려 두 배가 넘는 11.7%를 차지했다. ‘공부’ ‘외모’는 수치의 변화가 거의 없었고(각각 48.949.5%, 18.418.0%), ‘이성교제’와 ‘가정환경’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줄었다(각각 5.51.6%, 6.85.5%).

10대는 마음껏 방황하고 고민하는 시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마음껏’ ‘그냥’ 방황할 수 없다. 방황조차 진로 스토리로 탈바꿈하자면 ‘의미 있는’ 방황이 되어야 한다. 한 해 한 해 걸어온 길이 차곡차곡 빅데이터로 쌓이기에 진로와 무관한 ‘짓’을 하면 불안해한다. 아이들 스스로도, 이를 바라보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성장기 학생들에게 ‘희망진로’를 구체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자체가 황당한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의 미래 설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의 미래 설계를 남에게 구체적으로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부모나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의 희망진로는 하루에 수십 번이 바뀌어도 된다. 희망진로를 일찍 선택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희망진로를 선택하지 못하거나 자주 바꿨다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으로 현재의 직업 중 절반 이상이 사라져버릴 시대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게 희망진로를 일찌감치 강요하는 것은 독이 된다.”

이 교수는 ‘자라나는 아이들’과 ‘경력관리’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경력관리는 공직에 나가고 싶은 어른들이 하는 것이지,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못 하는 경력관리를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지위 편향적 꿈

현재 교실 현장에서 행해지는 진로교육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현장 교사들은 “허울뿐인 진로교육”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직업에 대한 귀천이 두드러지는 현실에서 급하게 도입한 직업교육은 겉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현 진로교육은 ‘직업세계에 대한 정보 제공과 체험’ 측면에 맞춰져 있다. 잡월드나 키자니아 등 진로체험 시설이 나날이 성행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행해지는 직업체험은 지극히 겉핥기 식이라 오히려 직업에 대한 섣부른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수 있다. 진로교육은 체험보다 가치교육이 먼저다. 직업가치관 정립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진로특강 또한 제한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군은 수천 개가 넘지만 진로특강에 초빙되는 연사들의 직업은 몇몇에 불과하다. 건축가와 셰프, 연구원과 교수, 의사와 컴퓨터프로그래머 등 전문직 몇 개에 한정된다. 생기부에 기록하는 학생들의 희망진로 또한 엇비슷하다. 김소영 교사의 말이다. “생기부에 꿈을 구체적으로 쓰도록 지도하지만 대체로 뻔하다. 꿈이라기보다 입시를 위해 특정학과를 겨냥한 직업군일 경우가 많다. 이과라면 로봇공학자, 소트프웨어 엔지니어, 화학공학자, 건축가가 대다수다. 하지만 직업반은 좀 다르다. 주얼리디자이너, 항공정비사, 기타리스트, 사진사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이고 다채롭다. 입시를 위한 보여주기 꿈이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꿈인 경우가 많다.”

비현실적인 ‘헛된 꿈’일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소수가 가질 수 있는 꿈을 다수가 좇는다. 극소수의 위인을 꿈꾸게 하는 영웅지향 교육이다. 우리 사회는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어라” “별을 꿈꾸면 달이라도 도달할 수 있다” “꿈은 원대할수록 좋다”. 신규진 교사는 “꿈은 원대해야 한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며 말을 이었다. “어떤 꿈이 원대한 꿈인가? 권력, 명예, 부를 좇는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직업은 진로발달의 성숙과 함께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먼 훗날 이뤄질 수도 있는 우연적 목표라야 한다. 꿈을 높게 잡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먼저 평범한 시민으로 아름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현실의 눈높이에 맞춘 직업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생긴다. 위인을 꿈꾸던 아이 대다수는 자라면서 평범한 어른으로 살게 된다. 실패와 평범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낙오자의 삶으로 여겨진다. 이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현재를 즐길 줄 모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너무 일찍 꿈을 정해버릴 경우 세 가지의 부작용을 염려한다. 첫째, 자신을 옭아매는 강박이 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면서 달려가다 보면 노력중독, 열정중독자를 양산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피로사회가 된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를 즐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둘째, 보상심리로 인한 특권층을 양산한다. 하나의 원대한 꿈을 위해 현실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고진감래, 와신상담한 사람들이 마침내 그 꿈을 이루면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쉽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걸 이루려고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쉽고, 과거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성공을 이루어냈으니 특권적 지위 등 달콤한 열매를 누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사회의 ‘지위편향적 꿈’에는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

꿈을 일찍 정하면 창의적 사고 방해

마지막은 발산적 사고가 아닌 수렴적 사고를 하게 된다. 일찌감치 꿈이 정해지면 진로와 상관없는 상식 공부나 독서는 ‘쓸데없는 공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로봇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미술관 기행에 심취하고, 철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과학동아리에서 활동하면 완성도 높은 생기부가 될 수 없다. 결국 진로를 위한 공부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신규진 교사는 “영재교육과 창의성 교육은 발산적 사고가 기본이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열린사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꿈을 일찌감치 강요하면 발산적 사고를 방해한다.”

꿈이라는 말이 잘못 통용되고 있다. 직업은 꿈이 될 수 없다. ‘명사형 꿈’(되고 싶은 것)과 ‘동사형 꿈’(하고 싶은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진짜 꿈’과 ‘가짜 꿈’도 구별되어야 한다. 초·중·고교생 상당수는 입시를 위한 가짜 꿈을 꾸고 있다. 어른들이 강요한 꿈,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꿈을 꿈고 있다. 강요한 꿈과 흉내 내기 꿈은 진짜 꿈이 아니다. 진짜 나만의 꿈을 찾아야 한다.

10대는 꿈을 꾸는 시간이지, 꿈을 이루는 시간이 아니다. 방황해도 되고, 실수해도 되고, 꿈 같은 건 없어도 된다. 좌충우돌하면서 진짜 나만의 꿈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박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 아이들에게 ‘아직 꿈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왔다. 신학기마다 작성하게 되는 학생정보조사서에서 ‘자녀가 무엇이 되길 바라십니까?’라는 질문에 늘 ‘특별히 없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시키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담임교사가 난감해 하더라. 빨리 꿈을 정하게 하라고. 그래야 그에 맞춰서 진로지도와 진학지도를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다고.”

어릴 적부터 소질과 적성이 뚜렷한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문·이과 성향도 애매한 경우가 상당수인데 말이다. 꿈을 너무 일찍 정해버리면 되돌아나오기도 힘들다. 또 일찍 정한 꿈은 뻔한 꿈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나와 있는 꿈들, 이미 있는 직업,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꿈일 확률이 높다. 세상은 그런 뻔한 꿈을 꾸라고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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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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