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에 필요한 학생들의 준비물을 아이들이 가져오지 않고 담임교사가 일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자녀의 준비물을 구하려고 늦은 밤에 문방구와 마트를 돌아다녀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수고도 덜고 선생님 한 분이 수고하면 한 반, 혹은 학년 전체가 편할 수 있으니 경제적이고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올라온 학생들도 초등학교 때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학교와 교사들에게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실제 많은 중학교에서도 실기과목의 준비물을 학생이 구입하지 않고 학교 예산으로 구입해 나눠준다. 보통 5000원 미만의 바느질 재료나 목공 재료 등이다. 똑같은 기본 재료를 가지고 가방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책꽂이도 만든다.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실습을 하는 과목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참 유용하다.

문제는 개별적으로 준비해야만 하는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이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고 버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야외 풍경을 그리는 사생대회에 물감도구를 가져오는 아이들은 요즘 거의 없다. 그나마 성실한 아이 하나가 팔레트와 붓을 가져오면 반 아이들이 모두 몰려들어 그 재료로 돌아가면서 그린다. 그러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무 하나 그리고 3가지 색만 사용한다. 예술의 기본인 ‘더 나음’과 ‘남과의 다름’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귀찮을 뿐이다. 준비물을 미리 공지하여도 늘 빈손으로 와서 기본만 하려는 아이들의 학습 흥미와 즐거움을 위해서 교사들은 흥미유발용 재료와 학습 자료들을 미리 챙겨 놓아야만 한다.

요즘은 학교에 사물함이 잘 갖추어져 있고 도시락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인지 빈 가방을 메거나 아예 가방 없이 등교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시험기간에도 책과 공책은 사물함에 두고 다니고 공부는 학원 교재로 한단다. 귀찮아서 실내화도 교실에 두고 다니거나 아예 집에서부터 실내화를 신고 오기도 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방을 2~3개씩 가지고 다녔다. 들고 다니는 학생용 가방에 두꺼운 책과 공책을 넣으면 공간이 부족해서 보조가방에 도시락과 체육복을 넣어야 했다. 사물함도 없고 학교 급식도 없어서 모든 것을 매일 들고 다녀야 했던 그 시절에도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혼나거나 수업을 아예 못 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준비물은 당연히 가져와야 하는 것이고, 없으면 다른 반에 가서 빌려서라도 수업에 참여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당당하다. “저는 준비물이 없어서 못 하겠는데요” “네가 그럴 줄 알고 선생님이 미리 준비해 놓았지” “저는 도저히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 이거 못 하겠는데요” “그래서 선생님이 참고하라고 이렇게 자료들을 복사해 놓았지”…. 교사가 학습 준비물을 미리 다 마련해 놓으니 안 하고 버티는 아이는 거의 없다. 마지못해 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밥상을 다 준비해 놓고 숟가락을 입에까지 넣어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회의는 떠나지 않는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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