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있는 ‘이메텍’의 본사 전경. ⓒphoto 이메텍
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있는 ‘이메텍’의 본사 전경. ⓒphoto 이메텍

세탁기, 전기면도기, 커피머신의 공통점은? 바로 가전제품(家電製品·home appliances)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기기’를 일컫는 가전은 흔히 대형가전과 소형가전으로 나뉜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이 이른바 4대 대형가전이고, 믹서기·커피머신·전기매트·진공청소기·전기다리미·전자레인지 등이 소형가전이다.

지난 7월 말 기자가 방문한 이탈리아 가전업체 ‘이메텍(IMETEC)’은 소형 가전을 주로 생산하는 이탈리아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이다. 연매출은 1억5000만유로(약 2065억원) 규모다.

가전제품은 특성상 전형적인 ‘레드마켓’이다. 제품별로 제작 노하우가 전혀 달라 중소업체들도 얼마든지 특정 제품의 강자가 될 수 있는 분야다.

한국 내수 가전시장의 경우 보통 삼성과 LG가 제품별로 평균 40~45%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이 국내 판매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업계 불문율’이어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일례로 지난해 6월, 5대 가전제품(4대 대형가전+김치냉장고)의 하나인 김치냉장고의 회사별 국내 점유율을 대유위니아가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공개하자 타 업체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한 일도 있다.

대유는 ‘자사 추정치’라는 단서를 달아 2015년 김치냉장고 시장점유율이 대유위니아가 34.98%로 1위, 삼성전자가 34.49%로 2위, LG전자가 25.92%로 3위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삼성전자 측은 “우리 자료로는 5대 품목 모두 우리가 1위”라면서도 해당 자료를 공개하지는 않았고, LG전자는 “대유 1위 체제는 무너진 지 오래고 대유·삼성·LG의 3강 체제”라며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누가 1등인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만큼 어느 특정 기업이 내수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2016년 3분기 미국 대형가전시장 점유율 순위를 보면 1위 삼성전자 18.8%, 2위 월풀 16.3%, 3위 LG전자 15.3%, 4위 GE 13.8% 등이었다.

이메텍 본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요를 제작하고 있다. OEM 없이 제품을 100% 이탈리아 현지에서 제작한다. ⓒphoto 이메텍
이메텍 본사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요를 제작하고 있다. OEM 없이 제품을 100% 이탈리아 현지에서 제작한다. ⓒphoto 이메텍

이탈리아 소형가전 점유율 1위

이메텍 본사는 이탈리아 최대의 상공업 도시 밀라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베르가모(Bergamo)에 있다. 패션과 디자인의 도시 밀라노는 전통적인 섬유공업의 바탕 위에, 알프스 산록의 수력발전을 기초로 하여 금속·화학·기계공업 등 중화학공업이 발달한 이탈리아 최대의 공업도시다. 인구 404만명으로 이 나라 최대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메텍 같은 가전업체로선 주요 타깃 마켓인 셈이다.

거대한 컨테이너 모양의 이메텍 본사 직사각형 건물 안에서는 250여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1973년에 전기요를 만들면서 설립된 이 회사는 창립 20년 만인 1993년 영국에 지사 ‘이메텍UK’를 세우며 국제시장에 진출, 현재 러시아·아르헨티나·호주·미국 등 42개 국가에 진출한 다국적회사다. 2007년 회사 이름을 ‘테낙타(Tenacta) 그룹’으로 변경하고 이메텍은 가전 브랜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기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답게 다양한 연구소와 실험실을 본사 내에 운영 중이었다. 연구원 수는 80여명. 출입문 창에 ‘security(보안)’라고 표시해 놓은 한 실험실에서는 실내온도 변화에 맞추어 전기요의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을 연구 중이었다.

이메텍이 ‘인텔리히트 테크놀러지(Intelliheat Technology)’라 이름 붙인 이 기능은 이탈리아 특허 기술로 오로지 이메텍 전기요에서만 볼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 실내온도가 변하면 이메텍 인텔리히트 센서가 그 변화를 감지, 사용자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스스로 전원의 공급량을 가감하며 온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다른 방에서는 ‘열 압축 스티치’를 실험 중이었다. 전기요는 사람의 몸과 장시간 직접 맞닿아 있는 제품의 특성상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메텍 전기요는 지름 2㎜의 미세열선을 사용함으로써 오래 사용해도 열선이 등에 배이거나 이물감이 없어 편안한 수면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미세열선이 5중 구조의 연질특수선으로 되어 있어 과전류 및 과열 시 전원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제품 사용 때 발생하는 전자파를 억제한다고 한다. 덕분에 이메텍의 전기요는 각국의 전자기장환경시험(EMF) 테스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탈리아 품질표시협회(IMQ) EMF 테스트는 물론 독일 최대 인증시험기관이자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데크라(DEKRA)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연구원(KTL)의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영국 다이슨(Dyson)의 진공청소기, 스웨덴 블루에어(Blueair)의 공기청정기로 ‘대박’을 낸 ㈜게이트비젼(대표 김성수)이 공식 수입·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게이트비젼 관계자는 “한국에 들어온 지 4년이 된 이메텍은 온라인 마켓, 백화점, 하이마트 등의 판매망을 통해 지난해 225%의 판매 신장률을 달성했다”고 전했다.

이메텍 전기요는 온도조절기의 연결부가 버클 형태로 되어 있어, 조절기를 분리한 전기요 본체는 직접 물빨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 제품이 물세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메텍은 또한 유럽식 디자인을 접목해 일반 전기요와 다른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이메텍은 이런 기술력과 판매망을 바탕으로 헤어·뷰티 브랜드 ‘벨라시마’, 전문 미용도구 브랜드 ‘콜렉시아’, 케이터링 브랜드 ‘카페 델 카라바지오’, 아르헨티나 의료 분야 ‘아스펜’, 영국 전기요 브랜드 ‘드림랜드’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메텍 본사에서 연구원들이 생산품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이메텍 본사에는 연구원 80여명을 포함, 25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photo 이메텍
이메텍 본사에서 연구원들이 생산품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이메텍 본사에는 연구원 80여명을 포함, 25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photo 이메텍

물세탁까지 가능한 전기요

그 결과 이탈리아 소형가전 내수시장에서 헤어 스트레이트너(속칭 ‘고데기’) 45.4%, 스킨케어 디바이스 49.9%, 광선 제모기 31%, 스타일러 25.2% 등의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주력 상품인 전기요는 2015년 이후 64~7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실제 기자가 베르가모와 로마의 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 시민들에게 “이메텍이라는 회사를 아느냐”고 묻자, 담요 덮은 포즈나 머리를 말리는 포즈를 취하며 “내 집에도 이메텍 제품을 한두 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전기요, 진공청소기, 헤어드라이어 등 소형가전을 중심으로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큰몫을 하고 있다. 엘리아 모간디(Elia Morgandi) 이메텍 CEO는 “우리 회사에는 20년 이상 근속자가 직원의 60%가 넘는다. 집이 어디고 자식을 몇 뒀는지까지 훤히 알고 있을 정도”라고 자랑했다. 본사 건물 옆 제조공장에서 만난 카를로 알비노(55)씨는 “이메텍에서 일한 지 21년째”라며 “근무환경이 만족스럽고 공장 노동자도 식구처럼 아끼는 회사라 내 아들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이를 ‘이탈리아식 가족경영’이라 부르면서, 라틴계 특유의 속성쯤으로 여기지만 사실 이탈리아는 지역별로 매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서로 다른 기업문화를 가진 나라다. 모두 15개 주로 이뤄진 이탈리아에서 밀라노와 베르가모가 속한 롬바르디아주는 6세기 북부 스칸디나비아에서 내려온 롬바르드족에 200년 동안 점령됐던 지역이다.

이후 이곳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프랑크족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곳이라 토박이 라틴족과 점령했던 게르만족의 핏줄이 반반씩 흐르는 땅이다. 이는 9세기에 이슬람교도인 아랍족에 의해 점령된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와, 동로마 제국과 활발히 교류해 비잔틴문화의 큰 영향을 받은 동부지역과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북부지역은 일찍이 상공업이 발달, 게르만족 고유의 전투성과 엄격한 계급 구분에 따른 충성심 등의 DNA가 흐르고 있는 곳이다. 기업 내부 분위기도 다분히 영미식 성과주의에 따른다.

그러나 이메텍은 ‘공동체 의식’과 ‘사람의 가치’ 쪽에 방점을 둠으로써 군소업체들이 난립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소형가전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실제 기자가 본사를 방문한 기간에도 아르헨티나의 리테일러(retailer·생산자 측에서 보는 전문점, 대형매장, 백화점 등의 소매업자) 20여명을 초청해 공장 견학은 물론 인근 고도(古都) 볼로냐 관광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형 쇼핑몰에서 일하고 있다는 후안 페르푸모(42)씨는 “독일 지멘스(Siemens)와 보쉬(Bosch)를 비롯한 세계 유명 브랜드들을 취급하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현지 본사로 초청하고 저녁 식사 자리까지 마련하는 곳은 이탈리아 이메텍뿐”이라면서 “비슷한 품질의 물건이면 소비자들에게 이메텍 물건을 권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엘리아 모간디 이메텍 CEO 인터뷰

“이탈리아인의 편안한 잠자리를 책임진다”

1973년 설립된 이메텍은 베르가모 출신의 모간디(Morgandi) 가문이 3대째 경영하고 있는 회사다. 이탈리아 본사를 비롯, 42개국에 진출해 있는 이메텍 해외지사 직원 450여명의 총 관리는 엘리아 모간디(Elia Morgandi·50) CEO가 책임지고 있다. 이메텍UK 이사와 유럽총괄 이사를 거친 모간디 대표는 큰아버지가 이끌던 이메텍을 2008년부터 맡은 뒤 사명을 테낙타그룹으로 바꾸면서 이메텍 제2의 전성기를 주도하고 있다.

- 회사 설립 제품으로 전기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1970년대 이탈리아는 전기요가 서서히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이메텍 설립자인 할아버지 레나토(Renato) 모간디는 ‘이탈리아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안정하고 가장 편안한 전기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운영했고, 이메텍은 짧은 기간에 마켓 리더가 될 수 있었다.”

- 이메텍이 단기간에 전기요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970년대 이탈리아 전기담요의 대부분은 덮는 방식(오버블랭킷·overblanket)이었다. 초기 브랜드인 ‘스칼다소노(Scaldasonno)’는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몸 밑에 까는 방식(언더블랭킷·underblanket)의 전기매트를 생산, 이를 대중화했다. 현재 이탈리아 전기매트의 대부분은 언더블랭킷이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만 오버블랭킷이 대세(약 70%)다.”

- 신발이나 의류는 물론 TV나 냉장고 등 대형가전도 중국이나 동남아, 남미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는 OEM이 일반적이다. 이메텍은 인건비가 싼 해외에 공장을 두지 않고 이탈리아 현지에서 제품을 100% 생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전통적인 섬유 강국이다. 전기요는 신체와 직접적으로 닿는 제품이라 소재의 친환경적 요소가 무척 중요하다. 또한 안전성이 최우선이기에 제품의 마감처리 과정이 매우 꼼꼼해야 한다. 이메텍은 이탈리아의 오랜 장인정신(craftsmanship)을 제품에 직접 반영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인 이탈리아 디자인도 포기할 수 없는 요건이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는 이메텍의 프리미엄 제품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며 전 세계 소비자들은 그런 프리미엄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전기요 외에도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업다각화가 당면과제인 셈인가. “뷰티, 쿠킹, 홈, 웰니스 등의 카테고리를 설정,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메텍 제1의 관심사이자 주력사업은 여전히 전기요다.”

-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이메텍 전기요의 장점을 몇 가지 내세운다면. “한국인은 순면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메텍 전기요는 몸이 닿는 면에 국제적으로 퀄리티를 인정받은 100% 순면 원단을 사용하고 있다. 면 소재 특유의 통기성으로 쾌적한 잠자리가 가능하다. 또한 천연성분의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대한아토피협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 ‘아토피 안심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

- 한국의 주부들은 가전제품의 에너지효율에 민감하다. “이메텍 제품은 급속 히팅을 제외한 모든 단계의 전기소모량이 최대 55W(1인용 기준)로 일반 전구와 같은 수준이다. 매우 경제적이다. 2인용(90W)의 경우 좌우 분리난방이 가능해, 온도 차에 민감한 부부가 각자 선호하는 온도로 조절해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잠을 잘 자면 하루가 경쾌하다. 이메텍 전기요가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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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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