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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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5일 정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영화 캐릭터며 애니메이션 캐릭터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한곳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코엑스에서는 ‘코믹콘 서울 2017’ 행사가 열렸다. 코믹콘(Comic con)은 미국 서부 해안도시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 22개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적 팝 컬처(Pop culture·대중문화) 행사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SF, 피규어 등 대중문화 장르를 망라하는 가장 잘 알려진 대중문화 전시회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고, 새 영화 예고편이 공개되는 대중문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뉴욕이나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코믹콘과 같은 행사예요?” 이날 코엑스를 찾은 시민들이 행사장을 기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티켓을 구입해 입장해 볼까 고민하던 시민들의 등을 떠민 것은 관람객의 반 가까이 차지하는 외국인들. 웬만해서는 평상복 차림으로 오지 않았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여러 명 있어 평범해 보일 지경이었다. 요즘 제일 인기 있는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겐지와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온몸이 파란 ‘기쁨이’ 분장을 한 외국인부터 스타워즈 시리즈의 병사 ‘스톰트루퍼’ 갑옷을 손수 제작해 입은 직장인까지, 수많은 관람객이 옷을 차려입고 참여했다.

메인 무대에서는 영화 ‘한니발’ ‘007 카지노로얄’ ‘닥터 스트레인지’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 매즈 미켈슨이 팬들과 대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감탄사를 내뱉는 팬들 너머로 피규어를 구입하고 VR 영상을 체험하며 아티스트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코믹콘을 한국에서 보다니”라는 감탄사가 곳곳에서 들렸다.

성황을 이룬 ‘코믹콘 서울’을 주최한 전시 전문기업 ‘리드코리아’ 손주범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한국은 잠재력 있는 팝 컬처 국가 중 하나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영화 회사 마블의 몇몇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게임은 한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분야 중 하나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드라마, 영화 팬도 많아졌다. K팝은 요즘 서구 10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음악 장르 중 하나다. 분야별로 따져 보면 각각 경쟁력 있고 인기 있는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사실은 전시(exhibition)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손주범 대표의 설명이다. “보통 전시라면 그 주제에 맞는 몇몇 업체들이 모여서 제품을 소개하는 부스를 마련하고 판매하는 전시만 생각하기 쉬운데, 현대의 전시는 ‘제품 판매’ 그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산업과 고객, 업체와 업체를 연결해주고 그 산업의 트렌드를 엿보게 하며 그 분야의 축제를 만듭니다.”

매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모바일·IT 전시 ‘MWC’는 그해 모바일 산업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자 축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나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하고 자율주행차가 첫선을 보이며 드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바일산업의 축제 자리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시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돼왔다. “제대로 된 전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부터 그 분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 각 업체는 어떤 미래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긴밀하게 협의하는 전시가 없었습니다. 공간만 빌려줄 뿐이었지요.”

외국인 관광객 유치 효과 기대

제대로 된 전시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것이 손주범 대표다. 그는 1년4개월 전 갓 설립된 리드코리아의 대표로 취임했다. 리드코리아는 전 세계 1위 전시 기업 리드(Reed)사에서 한국 전시 시장을 노리고 만든 회사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드사는 전 세계 43개국에서 500개 넘는 전시를 기획·주최하는 업체로 세계적 정보분석 업체인 RELX의 자회사다. 이곳에서 한국의 전시 시장을 개척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만든 것이 리드코리아다.

“전시가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긴밀히 연계해 산업의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떤 전시를 기획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됩니다. 저는 한국 전시 시장을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눠 봤습니다. 하나는 뷰티산업입니다.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뷰티 브랜드는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죠. 좋은 기술자도 많고 소비자는 더 많습니다. 의료·바이오 산업도 한국의 경쟁력 있는 분야이자 아직 한창 발전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해양수산도 그렇죠. 그리고 가장 주목했던 것은 팝 컬처, 대중문화 시장입니다.”

한국의 팝 컬처 시장의 흐름을 보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잘 연결되지도 않을 뿐더러 소비자가 한데 어우러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없다. “그냥 혼자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죠.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다른 분야로 관심을 확장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팝 컬처 전시회가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영화 ‘아이언맨’이 좋아서 코믹콘에 왔는데 ‘요즘 인기 있는 게임은 이런 것이구나’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네’ 등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도 생길 겁니다. 업체 입장에서도 전체 참가 업체를 보면 트렌드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협업이 이뤄지게 됩니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한바탕 문화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거예요.”

이미 첫발을 뗀 ‘코믹콘 서울’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관람객의 수도 예상을 뛰어넘었고 행사 분위기나 관람객의 수준도 모두가 놀랄 만큼 흥겨웠다. “기회가 없었을 뿐 한국 소비자들은 문화 축제를 즐길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상이 맞았던 거죠.” 첫 행사라 참여하는 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대중문화 기업도 태도가 변하는 게 느껴졌다. “축제 기간에만 장소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함께 어떤 전시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반응이 기껍습니다. 내년에는 저희가 바라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손주범 대표가 꿈꾸는 ‘코믹콘 서울’, 팝 컬처의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가 되고 스타들이 한국을 찾습니다. 코믹콘 기간에 맞춰 공개되는 게임 신작 발표회도 열리고, 게임팬들이 모여서 팬미팅을 가지죠. 한국만의 특성을 가진 K팝, 드라마 스타와 팬이 만나고 드라마의 뒷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고 K팝 스타의 굿즈(기념품)를 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될 겁니다. 오로지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팝 컬처를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누구나 ‘코믹콘 서울’에 가보기를 꿈꾸는, 그런 축제로 만들 겁니다.”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코믹콘만으로도 전 세계 매니아들의 ‘성지순례’ 도시가 됐다. 서울 역시 매니아들의 꿈의 도시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게 손 대표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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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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