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연년생 남매는 이른바 엄친아였다. 전교 1·2등을 자주 했고, 전교회장 출신에 전교임원을 도맡았다. 서울대 진학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3인 아들이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저 자퇴할래요.” 고2 딸마저 오빠를 따라 자퇴했다. 남매는 1년 반 동안 폐인으로 살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게임과 폭력물에 갇혀 살았다. 발레를 하던 딸은 점점 살이 쪄 83㎏까지 불었다. 순했던 두 아이는 짐승처럼 변했다. 마주치기만 하면 하면 죽일 듯 싸워 응급실까지 실려간 적도 있다.

엄마 때문이었다. 교사 엄마는 완벽주의자였다. 서울교대를 수석으로 졸업해 각종 연수에서 1등을 휩쓸고 맡은 반마다 성적우수반을 만들었다. 두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드는 데 귀재였던 엄마는 두 아이도 모범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는 아이의 소질과 적성은 논외였다. 대화도 거의 없었다. 부모와 자식 간 관계는 지시와 명령이었고, 집안의 규율은 ‘SKSK, 시키면 시키는 대로’였다. 그로부터 10년 후, 두 아이는 각자의 길을 찾아 신나게 살고 있다. 엄마 때문에 자살하려던 아이는 현재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제의 엄마는 서울 종로구 명신초등학교 이유남(55) 교장. 지난 9월 1일, 교장실에서 이유남 교장과 마주 앉았다. 교장실에는 전교생 400명의 사진이 한 벽을 메웠다. “교감 시절에는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웠는데, 지금은 직접 만나는 일이 적어서 30% 정도만 외워요.” 완벽주의자 근성은 여전해 보였다. 먼저 두 아이에 대한 기대를 진짜 내려놓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지금도 스멀스멀 올라오죠. 특히 잘나가는 아이를 둔 친구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도 저 정도는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는 10년 전을 생각합니다. 방문도 안 열어주고 눈도 안 마주치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에 감사해요. 살아 있어줘서 고맙고, 할 일 있어 나가주니 고맙고, 친구를 만나줘서 고마워요. 그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두 아이의 ‘폐인’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자 방문을 걸어잠그고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빛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어 창마다 신문지를 붙였다. 하루 일과는 자고 먹고 컴퓨터 하기. 컴퓨터 게임과 엽기적인 동영상을 즐겨 봤다. 엄마가 해준 밥은 먹지도 않았다. 한 집에 있어도 밥은 따로따로,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웠다. 어쩌다 둘이 마주치면 죽일 듯 싸웠다.

이유남 교장은 “나는 아이들의 원수였다”며 과거 자신을 털어놓았다. “두 아이를 자랑거리로 만들고 싶었어요. 엄마가 풀라는 문제집을 풀고 엄마가 가라는 학원을 가고 엄마가 읽으라는 책을 읽으며 자랐죠. 갖고 다니면서 자랑할 악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들은 클라리넷, 딸은 플루트를 시켰어요. 칭찬은 안 해주고 혼내기만 했어요. 큰 아이는 다 잘하는데 수학을 못하고, 둘째는 다 잘하는데 언어가 약했는데 큰 아이는 수학을 못한다고 혼내고, 작은 아이는 언어를 못한다고 혼냈어요.”

이유남 교장은 교사 시절 학교에서 유명했다. 그가 맡은 반은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학부모는 좋아했지만 학생들에겐 기피대상 1호 선생님이었다. 멀리서라도 보이면 도망갔다. 심지어 그의 두 아이마저 엄마를 피해 다녔다. “교단에 서서 보면 맘에 드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단점만 보였죠. 교육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은 인정, 존중, 지지, 칭찬입니다. 이론에 정통해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으면서 실천은 제로였죠. 죽은 지식이었어요. 내 자식에게는 더 엄했습니다. 내 아이들은 적어도 나보다 잘해야 하고, 내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잘하는 학생보다 잘해야 한다고 여겼으니까요.”

두 아이의 목표와 전공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없었어요. 그게 문제였죠”라며 말을 이었다.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것이 내 진로교육이었어요. 딸이 ‘엄마는 꿈이 뭐였어?’ 물으면 ‘꿈같이 사치스러운 게 뭐가 필요해? 공부 잘하면 갈 데는 많아’라며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고 다그쳤어요. 오염된 성공의 개념을 갖고 있었죠. 1980~1990년대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시대였어요.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가서 돈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완벽주의 엄마의 함정

두 아이는 신경성 장염과 위염을 자주 앓았다. 밥 먹을 때에도 선택권이 없었다. 늘 엄마의 감시와 잔소리 속에 살았다. 이런 식이다. “너 엄마가 뭐라고 했어. 엄마가 도착하기 전까지 숙제 다 해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많긴 뭐가 많아? 그리고 뭐가 어려워? 너 놀았지? 딴짓 했지?” 순둥이 아이들이 “죄송해요” 하면 “너 엄마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뭔지 알아? 바로 죄송하다는 말이야. 죄송하다고 말할 짓은 하지 말라고 했지? 얼른 들어가. 6시까지 숙제 못 끝내면 저녁밥 못 먹을 줄 알아!”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식의 말을 날이면 날마다, 눈 뜨면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했다고 한다. 지시와 명령, 확인과 다그침이 대화의 전부였다.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다. 무서운 엄마와 엄마 편을 드는 아빠 사이에서 아이들은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꿈도, 목표도 없이 타인 주도, 엄마 주도의 삶을 살아온 두 아이는 몸도 마음도 아팠다. 고3이 된 아들은 학교만 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 출신의 담임 또한 그에게 스트레스를 더했다. 담임은 부모에게 전화를 해 “올해 한 건 해봅시다”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특목고를 갈 수 있었지만 내신 때문에 일반고를 선택한 터였다. 전과목 내신 1등급에 모의고사 성적도 좋았으니 서울대 진학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자퇴 선언은 승기를 눈앞에 둔 선수의 기권패나 다름없었다. 알고 보니 공황장애였다. 결국 아들은 고3 8월 31일에 자퇴서에 도장을 찍었다.

두문불출 폐인이 된 아들은 어느 날 엄마를 구석에 몰아붙이고 소리소리 질렀다. “내가 이러고 있는 것, 당신 때문이야! 그동안 당신이 나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이게 사는 거냐고!” 이유남 교장은 그때를 회상했다. “아들의 눈에서 살기가 등등했어요. 키 180㎝ 아이가 다가오니 무서웠어요. 한두 마디 더 하다가는 아들한테 목이 졸릴 수도, 두들겨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망치듯 집을 나왔어요. 밤새 울면서 ‘뭐가 잘못됐을까’ 생각을 했죠.”

딸도 터졌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집앞에 모여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온 집안이 쑥대밭이 돼 있었다. 장롱문은 부서져 있고,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아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두 손은 피투성이였다. “딸이 대성통곡하면서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어댔어요.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친다면서요. ‘저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상담도 받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상담치료사 앞에서 두 아이는 입을 꾹 닫았다. 아들은 엄마한테 “왜 내가 치료를 받아, 당신이나 받아”라고 쏴 붙였고, 딸은 “그 돈 나를 주면 낫겠네”라며 째려봤다. “어느 날 아들이 저한테 ‘이거나 읽어’ 하며 책 한 권을 던져줬어요. 제목은 ‘내려놓음’이었죠. 아들은 답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보다 똑똑한 아이를 가둬두려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래도 제가 변하지 않으니 ‘더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가져다주더군요.”

아이들도 아팠지만 엄마도 아팠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 1년 반 동안 세 번 교통사고를 내고, 세 번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평소 과호흡이 있어 세 번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꿈쩍도 안 하더군요.”

문제아는 없다, 문제부모만 있을 뿐!

그때 만난 것이 ‘코칭’이었다. 트렌드 읽는 눈이 예민한 그는 ‘티칭’이 아닌 ‘코칭’이 대세가 될 것을 알고 자기계발 차원에서 배우던 참이었다. 머리로만 이해되던 코칭이 가슴으로 와 닿기 시작했다. “코칭을 배우며 깨달았죠. ‘내가 한 번도 칭찬을 해준 적이 없구나. 한 번도 눈 마주치고 대화한 적이 없구나. 내가 한 말들이 모두 원수를 만드는 말들이었구나’ 하고요.”

하지만 50년 넘게 살아온 가치관과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뭐가 잘못됐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눈곱만큼씩 마음가짐이 변해갔다”고 말했다. 엄마가 마음을 바꾸자 신기하게도 아이들도 바뀌어갔다. 잠겼던 방문이 어느 날엔 열리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기 시작하더니 신문지를 걷어냈다. 엄마는 진심을 담아 눈물로 사죄했다. “너희들의 행복한 유년기, 행복한 청소년기, 행복한 고교시절을 빼앗은 엄마를 용서해다오”라고.

지금은 기적적으로 관계가 회복됐다. 아들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와 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 중이다. “세상을 더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려면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딸은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일한다. “학교에는 잘못된 교육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요. 나처럼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을 위해 심리상담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유남 교장은 요즘 바쁘다. 체험담을 녹여낸 특강이 주는 울림이 크다. ‘그렇고 그런 강의겠거니’ 하며 팔짱 끼며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엄마들은 나중에 절반 이상이 펑펑 운다. “많이 반성했습니다”라는 후기가 가장 많다. 그의 두 아이는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시시콜콜한 개인사 공개에 기꺼이 동의했다. 더 나아가 딸은 엄마의 책(‘엄마 반성문’) 출간까지 도왔다. 딸은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뒤늦게라도 깨달았지만 세상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부모들, 교사들이 많아요. 엄마가 널리 알려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인터뷰 도중 이유남 교장은 눈물을 여러 번 보였다. 그는 “지금 돌이켜보면 나 같은 엄마 밑에서 살아있어 준 것이 기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이 한 마디를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문제아는 없습니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이유남 교장의 관계회복 tip

코치형 부모가 아이의 뇌를 강하게 만든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이고, 선택은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기본 요소다. 코칭과 컨설팅, 카운슬링은 다르다.

코칭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 코치 스스로 ‘자아(ego)’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해결책이나 답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자기 나름의 답이 있지만 상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컨설팅 전문적이고 정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전문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조언과 답을 해야 한다.

카운슬링 대화의 상대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 집중한다. 치료의 개념이다.

원수 되는 대화

비난의 말

너는 도대체 어떻게 된 아이가~/ 정말 잘하는 게 뭐가 있니?/ 왜 일을 이따위로 해?/ 도대체 뭐 하느라고 이제 오는 거야?/ ‘맨날, 언제나, 한 번도, 절대로, 결코, 항상. 왜’가 들어가는 말

방어의 말

그러는 너는 뭘 잘했는데?/ 너도 그랬잖아/ 왜 나만 잘못했다고 그래/ ㅇㅇ도 잘못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건데?/ 네 탓이지, 내 탓이냐?

경멸의 말

네 주제 파악이나 좀 해라/ 어휴, 이 돼지야/ 이 멍청아, 돌대가리야/ 어쭈, 놀고 있네/ 그 얼굴에 화장을 하면 뭐가 달라져?/ 그 다리에 짧은 치마가 어울려?/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래?/ 넌 누굴 닮아 맨날 그 모양이니?/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내가 너 때문에 정말 미치겠다/ 동생(ㅇㅇ)만도 못하니?/ 도대체 왜 그러니? 한심하다, 한심해

담쌓기

그래 너 혼자 잘 떠들어라/ 얼씨구, 잘해봐라 /신물나고 지겹다/ 나도 지쳤다/ 그저 안 보는 게 마음 편해/ 어휴 지겨워, 그만하자

- ‘엄마 반성문’(덴스토리) 중에서

키워드

#교육
김민희 차장대우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