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꿀! 밥도둑.”

“앙 기모띠.”

“안물안궁.”

“낄끼빠빠.”

“뚝배기 깬다.”

“복붙 절반임.”

“ㅇㅈ? ㅇㅇㅈ.”

“ㅇㅇㄴㅇ.”

“ㅇㄱㄹㅇ?”

“ㅂㅂㅂㄱ ㄹㅇㅍㅌ.”

외계어처럼 보이는 이 대화는 중학생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다. 자음 대화는 주로 온라인상에서, 축약어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인다. 기성세대에게는 해독기가 필요한 수준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나 중학생 대부분은 의미를 알고 있다. 풀이하면 이렇다.

“운 좋다! 운 최고네!”

“아~ 기분 좋아.”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

“가만두지 않겠다.(‘뚝배기’는 머리를 저속하게 부르는 말)”

“복사 붙여넣기(로 한 것이) 절반이야.”

“인정? 응 인정.”

“응 아니야.”

“이거 레알?(이것 사실이야?)”

“반박불가 리얼팩트(반박이 불가능한 진짜 사실).”

10대들의 비속어와 축약어 사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SNS가 일반화되면서 축약어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효용성 면에서 편리하고 활용도도 높다. 자음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시간절약 측면에서도 장점이다. 문제는 축약어가 점점 ‘그들만의 언어’로 좁혀지고 있으며, 뜻도 모른 채 사용하면서 원래의 의미조차 파괴하고 있는 현실이다.

‘관종(관심종자)’이나 ‘노잼(NO 재미, 재미없다)’은 이미 유행이 지난 구닥다리 언어다. 하루가 다르게 축약어와 비속어가 등장하고 광속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밥도둑’이라는 의미를 아시는지. ‘입맛을 돋워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맛있는 반찬’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기성세대다. 요즘 아이들은 밥도둑의 의미를 ‘의외의 행운’ 정도로 여긴다.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나타나도 “밥도둑이네”, 친척들한테 용돈을 받아도 “밥도둑이네” 한다. 더 흔하게는 “레알 밥도둑”이라고 사용한다.

중1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씨의 말이다. “심부름을 한 아이에게 용돈을 줬더니 ‘밥도둑이네’ 하더라. 반응이 이해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니?’ 물었더니 아이가 ‘몰라요, 애들이 이럴 때 밥도둑이래요’라더라. 원래 밥도둑의 의미를 설명해줬더니 ‘그런 뜻인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어떤 뜻으로 밥도둑이라는 말을 썼는지 따져 물었더니 ‘개꿀과 비슷하다’고 대답하더라.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잊었다.”

“응 아니야”도 그렇다. 긍정과 부정을 묻는 질문에 습관처럼 “응 아니야”라고 답한다. 뜻은 “아니야”다. ‘응’은 긍정어이고, ‘아니야’는 부정어다. 양립할 수 없는 반대어가 나란히 쓰인다. 이 단어를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왜 꼭 ‘아니야’ 앞에 ‘응’을 붙이는지” 물었다. 아이들의 답은 엇비슷하다. “그냥요”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쓰니까요” “재밌잖아요.”

이런 말들은 수두룩하다. 10대들은 ‘개꿀’이라는 단어를 운이 좋다는 뜻으로 쓴다. ‘꿀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꿀재미’를 뜻하는 ‘꿀잼’에서 긍정의 맥락을 지닌 ‘꿀’이 접미어처럼 파생됐고, ‘매우’를 뜻하는 비속어인 ‘개’와 합쳐지면서 신조어가 탄생했다. ‘개’는 여기저기 유용하게 사용한다. ‘개이득’이라는 말도 자주 쓰이고, 대단하다는 의미를 지닌 ‘오지다’ ‘지리다’ ‘쩐다’라는 비속어 앞에도 ‘개’를 붙여서 쓴다.

10대의 카카오톡 언어를 보면 외계어 같다. 단순한 축약 정도가 아니다. 자주 사용하는 몇 개만 꼽아 보자. ‘ㅈㅁ:잠만(잠깐만), ㄴㄴ:노노(NO NO), ㄱㅅ:감사, ㅅㄱㄹ:수고링(‘링’은 왜 붙이는지 알 수 없음), ㅇㅎ:아하, ㅂㄷ:부들, ㅈㅂ:제발, ㄱㅊ:괜찮 혹은 귀찮(둘 중 어떤 뜻인지는 맥락을 봐야 알 수 있음), ㅁㄹ:모름, ㅁㅊ:미친’

특히 ‘미친’이라는 뜻은 활용범위가 넓다. 긍정과 부정을 강조할 때 두루 쓰인다. 공부를 아주 잘해도 “미친”,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뻐도 “미친”,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을 해도 “미친”이다. “대박”이 긍정과 부정에서 두루 쓰인 상황과 비슷하다.

‘패드립’은 새롭게 등장한 비속어류(類)다. ‘패륜 애드립’의 준말로 부모님이나 조상 등 윗분을 욕하거나 놀릴 때 쓰는 말이다. ‘패밀리 애드립’의 의미도 담고 있다. 대표적인 말은 ‘느금마’. ‘너희 엄마’를 비하할 때 쓴다. 패드립은 10대 사이에서 아주 흔하다. 한 학교에서 초등학교 6학년 7학급을 대상으로 “패드립을 해보거나 당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욕설·비속어가 이중언어

축약어와 비속어의 진원지는 주로 1인 방송과 웹툰이다. 앞서 “패드립을 어디에서 어떻게 경험하느냐”라는 질문에는 65%가 “영화나 인터넷, 특히 웹툰”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학교선배나 친구(30%)가 차지했다. 학교에서 금기어 1순위로 꼽는 ‘앙 기모띠’ 역시 1인 방송에서 나왔다. 한 유명 BJ가 별풍선을 받고 기분이 좋을 때 쓴 반응이 급속히 퍼지면서 유행이 됐다. ‘기모찌’는 기분이 좋다는 뜻의 일본어. 원래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일본 AV(성인비디오)에서 자주 쓰이면서 의미가 왜곡됐다. “인정? 어 인정?”이나 “응 아니야”도 인기 BJ가 유행시켰다고 한다. ‘개꿀’ 또한 인기 게임 BJ가 전파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조사한 ‘청소년 언어문화 실태연구’(2016년 12월, 국립국어원 의뢰 연구)에 따르면 욕설이나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고 응답한 ‘학교 안’ 청소년들은 무려 70%에 달했다. ‘학교 밖’ 청소년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이들은 욕설과 비속어를 이중언어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문제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다가도 교사나 부모님 앞, 공적 의사소통 등의 상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학생들은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장난으로’ 또는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언어학자들은 이를 ‘또래동조성’으로 불렀다.

언어는 생물과 비슷한 속성을 지녔다. 사용자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어느 시대에나 10대들은 또래집단끼리 어느 정도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가 급속히 퍼지면서 언어파괴 양상은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즉각적이고 광범위하다. 민병곤 교수는 “청소년 언어 순화를 위한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개발, 청소년 언어문화 관련 도서 및 영상물 창작, 청소년의 구어 의사소통 역량에 대한 진단도구 개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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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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