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대구소년원
ⓒphoto 대구소년원

“당장 반성문 제출해.”

생활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자 한 학생이 부리나케 지도실로 달려갔다. 복도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두 남학생이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교사는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두 학생을 제지했다. 한 남학생이 “쳐다봤다고 쟤가 먼저 쳤단 말이에요”라고 교사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두 학생은 서로 격리된 채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학생들은 반성문을 쓰면서 격양된 감정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이곳에 새로 입소한 학생들이 초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다툼이다. 이 학교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70여명의 남녀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읍내정보통신학교라 불리는 이곳은 대구소년원이다. 이곳에서 소년범들은 학생으로, 교도관은 교사라 불린다.

지난 9월 1일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사건이 알려지면서 소년법 폐지 여론이 들끓었다. 미성년자인 피의자 4명은 또래 여중생을 부산 사상구의 한 골목으로 데려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집단 폭행했다. 최근 미성년자들이 벌인 끔찍한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이 빈번하면서 소년법 폐지 찬반 논쟁이 뜨겁다. 범행 자체가 잔혹할 뿐 아니라 일부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로 인해 국민들은 분노했다. 반면 소년법 폐지가 흉악범죄를 해결하는 방책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소년법 적용을 받는 범법소년은 나이에 따라 나뉜다. 범죄소년(만 14세 이상~만 19세 미만), 촉법소년(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 범법소년(만 10세 미만)으로 구분한다.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문제는 ‘소년법’이 아닌 ‘형법’ 개정으로 가능하다. 형법 제9조는 14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만 10~13세 청소년은 소년법에서 ‘촉법소년’으로 분류해 형사처벌 대신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소년법이 폐지되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은 불가능해진다.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서도 가해자 4명 중 1명은 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에 해당돼 형사처벌을 면했다. 현행 소년법은 18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해 최대 형량을 징역 15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살인 같은 특정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최대 징역 20년까지만 선고가 가능하다. 지난 3월 발생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 김양(17)은 형사재판에 넘겨졌지만 소년법 적용을 받아 징역 20년을 구형받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촉법소년 기준연령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그 논란의 중심에 선 소년범들은 소년원에서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지 궁금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소년원이 10개가 있다. 주간조선은 법무부와 대구소년원의 협조를 받아 대구소년원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9월 13일 대구 북구 읍내정보통신학교. 이 학교는 아파트단지와 인접해 외관만 보면 일반 중·고등학교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4m가 넘는 대형 철문이 한눈에 보였다. 철문 양옆으로 약 3m 높이의 담장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철문 너머로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생활관과 강당 등의 학교시설만이 보였다.

교사를 따라 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 입구도 철문으로 닫혀 있어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분확인 절차를 거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복도 중앙을 기준으로 양옆에 생활관이 분리돼 있었다. 9호와 10호 처분을 받은 소년범들이 따로 생활하는데 이는 마찰방지를 위해서라고 했다. 생활관은 9호실 17개, 10호실 12개, 심신안정실 1개, 신입반 1개 등 총 31개다. 신입반은 처음 입소한 소년범들이 빠른 적응을 위해 10일 동안 생활하는 곳이다. 소년법원이 부과하는 보호처분의 종류는 10가지인데, 대구소년원에서 생활하는 경우는 9호와 10호다. 9호는 단기 소년원 송치(6개월 미만)이고, 10호는 장기 소년원 송치(12세 이상 소년만 가능·2년 미만)이다.

대구소년원 생활관 복도 전경.
대구소년원 생활관 복도 전경.

CCTV 300여대 24시간 감시

소년원은 영화 속 교도소 이미지와는 달랐다. 콘크리트 바닥에 변기가 놓인 허름한 공간이 아니었다. 4인실에 1인용 침대가 각각 놓여 있었고, 방 안마다 칸막이가 쳐진 화장실이 있었다. 생활관마다 TV와 각자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관물함이 있었다. 관물함에는 분홍색 베이비로션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속옷·양말 등도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이곳에선 모두 다 같은 속옷과 생필품을 지급받는다. 소년원에서는 샴푸 샘플 한 개조차 내부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외부 물품이 반입되면 도난사고와 같은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얼핏 보면 군대 생활관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생활관 내부에 설치된 CCTV와 창살은 이곳이 소년원임을 실감케 했다. 대구소년원에 설치된 CCTV는 300여대에 달한다. 학생들이 조금만 딴청을 피우거나 돌발행동을 할 경우 스피커에서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후 1시30분이 되자 10호 처분을 받은 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이 시작됐다. 노란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교육관으로 이동했다. 수업은 3시간가량 진행되는 제과제빵 수업이다. 학생들은 빵모자를 쓰고 파티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오늘 만들 빵 종류는 소시지빵이다.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가위질로 빵 모양을 만드는 솜씨가 능숙했다.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학생들의 손놀림이 매우 능숙해서 가르치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면서 “일반 성인들에 비해 집중력이나 손재주가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반죽을 마치고 오븐에 빵을 굽는 동안,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왼팔에 잔뜩 문신을 한 이민성(가명·19)군은 올해 폭행으로 소년원에 들어왔다. 그는 원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교내 육상부에서 활동하며 중장거리 육상선수를 꿈꿨다. 그 당시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곧 재혼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하고 동네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된 일탈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사실 그리웠어요. 그냥 한 번만이라도 저를 붙잡고 나쁜 짓이라고 호되게 혼내줬더라면 더 빨리 깨달았을 텐데, 중학생 때 저는 생각이 성숙하지 못했어요. 이제라도 열심히 살아보고 싶습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박찬호(가명·19)군은 “저도 제빵을 배우면서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조금씩 깨닫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박찬호군은 상습공갈죄로 소년원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 친구에게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했다. 6년간 한 친구에게 갈취한 돈만 무려 3600만원에 달한다. 그의 말이다. “친구에게 돈을 뺏기 시작했을 때도 부모님은 제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쉽게 돈을 얻을 수 있게 되자 그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아요.” 그는 기자에게 “이 자리를 빌려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인질강도죄로 들어온 황민기(가명·18)군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아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부터 동네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들이 한 남자를 모텔로 끌고 왔다. 형들은 모텔에 남성을 가둬놓고 돈, 귀금속, 휴대폰 등을 갈취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민기군이 한 말이다.

“나쁜 짓인 줄 알았지만 저 역시 그 무리에 끼어 있었기 때문에 형들을 막진 못했어요.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 가출을 시작했는데, 범죄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 선택이 정말 잘못됐다는 걸 알아요. 관심은 그렇게 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의 소년범은 2015년 79.5%에 달했다. 한부모가정의 소년범은 2015년 17.9%에 불과했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우리나라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자녀 가구는 44.2%, 한부모가정은 9.4%로 집계됐다. 이 둘의 수치를 비교하면 한부모가정의 자녀라고 해서 범죄를 더 저지른다는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기란 어려웠다. 문제는 부모 가운데 한쪽이 없는 결손이 아니라 가정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기능적 결손’에 있었다.

결손가정보다 기능적 결손이 문제

대구소년원 김현옥 계장의 설명이다. “십중팔구가 가정 문제가 있는 학생들입니다. 부모가 있어도 재혼한 가정이거나 별거 중인 경우가 많아 친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소년원에 들어오고 나서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무관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고백한 소년범도 있었다. 소년원의 맏형 격인 이창혁(가명·19)군은 강도상해죄로 이곳에 들어왔다. 지난해 그는 길을 가다가 행인과 시비가 붙어 흉기를 휘둘렀다. 부모 얘기를 꺼내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년원에 들어오기 전에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그는 죗값을 치르고 나가면 대학교에 진학할 생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게 됐어요. 당시에는 부모님의 무관심이 저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많이 소통하면서 제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구소년원에서 만난 10명이 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재혼한 가정이거나 편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가 많았다. 정상적인 가정교육을 받은 경우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곳 교사들은 소년범이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는 아니라고 했다. 일차적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바로잡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당시 피의자 김양의 부모는 피해 초등학생의 신발이 현관에 있다는 것을 경찰이 조사하러 올 때까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녀에게 무관심했다. 이 때문에 소년범 교정과 관련해 소년법 폐지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소년원 역시 소년범들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 직업훈련 및 검정고시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9개 소년원에서는 19개 직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0호 처분을 받은 소년범들을 대상으로는 용접, 제과제빵, 자동차정비 등 11개 직종 교육이 이뤄진다. 9호 처분을 받은 소년범들에게는 가발전문, 바리스타, 소형건설기계운전 등 7개 직종 교육이 실시된다. 2016년 직업교육을 받은 551명의 소년범들이 1238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1인당 2.24개의 자격증을 딴 셈이다. 소년원에서는 검정고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2016년 소년범들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760명이 응시해 676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은 88.8%에 달한다.

대구소년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제빵수업 시간에 소시지빵을 만들고 있다. ⓒphoto 대구소년원
대구소년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제빵수업 시간에 소시지빵을 만들고 있다. ⓒphoto 대구소년원

2009년부터 소년원은 교육과정을 개편해 인성교육을 교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성교육으로 집단상담, 집단지도, 체험교육, 봉사활동 등이 실시된다. 생활예절 교육, 독서지도, 범죄예방교육 등이 주로 이뤄진다. 소년범들은 주말마다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눔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다. 인성교육을 통해 소년범들의 범죄율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5년 이내 재범을 저지르는 소년범은 지난해 1만9508명으로 전체의 22.3%였다. 이는 최근 10년간 평균 재범률(22.9%)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소년범은 2016년 8만8403명으로 10년 전인 2007년 11만6135명보다 24% 줄었다. 2009년 13만4155명까지 늘었다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대구소년원 김현옥 계장은 “실제로 직업교육이나 각종 인성교육을 통해서 심적 변화를 겪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2009년부터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학생들이 새로운 꿈을 찾아 열심히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소년원에서 출소해 현재 대학생으로 새 삶을 살고 있는 박지형(가명·20)씨의 이야기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하자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싫어 바깥으로 나돌았다. 그러다가 그는 15살 때 처음 절도죄로 10호 처분을 받고 전주소년원에 들어갔다. 그는 2년 가까이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번엔 지나가는 학생들의 휴대폰을 빼앗거나 훔쳐 되팔았다. 결국 17살 때 대구소년원에 10호 처분을 받고 들어왔다. 두 번째 소년원 생활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교사들과 사회복지사들로부터 전에 없던 관심을 받게 된다.

박지형씨의 말이다. “대구소년원에서 실시하는 각종 상담과 교육을 통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따뜻한 관심의 힘이 매우 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대학 진학이란 목표가 생겼고, 검정고시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올해 대구 소재의 모 대학교에 입학해 1학기 학점 4.4점을 받으며 장학생이 됐다. 그는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죗값을 치르면서 깨닫는 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따끔한 가르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구소년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오후 일과 시간에 축구를 하는 모습. ⓒphoto 대구소년원
대구소년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오후 일과 시간에 축구를 하는 모습. ⓒphoto 대구소년원

교화제도의 효과

박지형씨의 말대로 교화제도를 통해 변화하는 소년범들도 늘고 있다. 소년범 교정과 관련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 경남 창원의 ‘청소년 회복센터’다. 청소년 회복센터는 부모 등 가족을 대신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법원에서 소년법상 1호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 중 일부 아이들이 이곳에서 돌봄을 받는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 관할 지역에 처음으로 설치됐다. 비행청소년들에게 ‘호통판사’라고 불리는 천종호 부장판사(부산가정법원)가 제안했다. 아이들은 센터의 도움 아래 학교에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기술을 습득한다. 2015년 전국 19세 미만 소년범의 재범률이 12%를 넘어섰을 때, 창원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소년범의 재범률은 8.51%에 그쳤다.

소년범의 폭력과 흉악범죄도 줄어드는 추세다. 폭력범은 2016년 2만1317명으로 2007년 3만1920명보다 33% 감소했고, 흉악범도 지난해 437명으로 2007년 1403명이었던 10년 전보다 69%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등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미성년자가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수법이 잔인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대구소년원 김현옥 계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죄를 저지른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각종 폭력 및 선정적인 인터넷 프로그램에 노출된 경우가 많아요. 어른들이 돈벌이로 만든 자극적인 영화나 인터넷 방송에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빠지는 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단순히 아이들 탓을 하기보단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고쳐가야 할 점도 많습니다.”

폭행죄로 소년원에 들어온 김민석(가명·18)군은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 역시 폭행 가해자였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많이 안타까워요. 가해자가 각종 SNS에 폭행 사실을 알리는 것도 다 관심받고 싶어서거든요.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짜 부모님과 선생님의 따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왔을 때 학교나 집에서 따끔하게 혼냈더라면, 그 지경까지는 안 됐을 겁니다. 저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공감능력이 많이 부족했어요. 학교와 집을 벗어나 또래 애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판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법 폐지 논란은 대구소년원에서도 큰 화젯거리다. 이정수(가명·16)군은 소년법 폐지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여기에 들어온 애들 대부분은 사실 생각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많아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처벌수위를 고려하고 죄를 지은 경우는 막상 별로 없어요. 소년법 폐지에 대해서 죄를 지은 입장에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여기 모인 애들도 자신의 죗값은 치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어렸을 때 상처입고, 관심을 못 받고 자란 경우가 많아요.”

오후 5시30분이 되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학생들은 줄을 맞춰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을 가기 위해서는 이중으로 된 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저녁 메뉴로 돼지국밥, 소시지전, 오이양파무침이 나왔다. 학생 1인당 식대는 하루 5199원으로 1식의 원가는 1733원이다. 소년원에서는 주어진 예산안에서 최대한 영양가 있는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식당 한구석에 가림판이 세워진 곳이 보였다. 가림판 안쪽에 놓인 식탁에서는 새로 입소한 소년범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소년범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의자가 식탁에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의자를 이용한 폭행사고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생들은 배식을 받은 음식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저녁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생활관으로 돌아가 휴식시간을 갖는다. 보통 이시간에는 TV를 시청하거나 일기를 쓰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학생들은 생활관으로 돌아가기 전 기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처음 기자를 이방인 취급했던 그들도 이제는 할 말이 많다는 듯 아쉬워했다. 석양이 드리워진 소년원을 나서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한 소년범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봤을 때는 반듯한 모습으로 꼭 인터뷰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반성하고 변하도록 노력할게요.”

권기한 대구소년원장

“소년법 폐지보다 소년범을 만든 근본 문제 해결이 먼저”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소년법 폐지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년원에 모인 학생들은 부모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이번 소년법 폐지 논란을 통해 소년범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권기한 대구소년원장이 ‘소년법 폐지 논란’을 두고 한 말이다. 권 원장은 올해 1월 대구소년원장에 부임해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권 원장은 학생들 사이에서 읍내정보통신학교장이라 불린다. 이전까지 그는 법무부 울산준법지원센터(보호관찰소) 소장을 역임했다. 권 원장이 소년법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소년법을 폐지하면 형법으로 아이들 범죄를 다루게 되기 때문에 결국 소년법에서 다루는 소년보호처분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울산준법지원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보호관찰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했다.

보호관찰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구금시설에 가두는 대신 지역사회로 돌려보내 이들의 지역사회 재통합과 재범방지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시행하는 제도다. 권 원장의 말이다. “소년원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일차적으로 가족에게 상처받거나 방치돼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를 저질러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궁극적으로 이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년범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이 곱지 않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처럼 미성년자가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잔인한 범죄들이 최근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어서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가해자의 인권보호는 중요치 않다는 네티즌의 의견이 대다수다. 이에 대해 권 원장은 “가해자 인권보호의 찬반을 따지기보다는 소년범들이 다시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나서서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성 회복은 기본적으로 밥상교육에서 출발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구소년원에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환경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03년에도 촉법소년(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의 기준 연령을 두고 헌법소원 심판까지 청구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형사미성년자를 14세로 규정한 형법 제9조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권 원장은 1989년에 만들어진 유엔(UN)의 아동권리협약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협약은 어린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 보호, 참여의 권리 등을 담고 있다. 37조는 18세 미만 사람이 유죄를 받더라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는 것을 금하고 있고, 40조에는 유죄를 인정받은 아동이 사회에 복귀해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 원장은 소년범들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이번 기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관심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내쫓긴 아이들이 갈 곳은 건전한 장소들이 아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가해자 인권보호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