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기요양시설 너싱홈 그린힐의 채광 좋은 복도에서 한 노인이 햇살을 쬐고 있다. 이곳의 최고령 환자는 103세, 최연소는 78세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9월 15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기요양시설 너싱홈 그린힐의 채광 좋은 복도에서 한 노인이 햇살을 쬐고 있다. 이곳의 최고령 환자는 103세, 최연소는 78세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회색 꽃모자를 눌러쓴 김명신(가명·102)씨는 창문 너머 초록 잎새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월가든엔 자줏빛 클레마티스가 피어있다.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몸은 가벼워 보였다. 일제치하와 6·25전쟁, 산업화·민주화·정보화 시대를 한몸에 겪어내면서 3남1녀를 번듯하게 키워낸 고단한 육신은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장기요양등급 2급 판정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말을 붙여도 반응이 없다. 그저 빤히 쳐다본다. 다시 말을 걸어본다. “할머니, 모자 예뻐요.” “네.”

예쁜 치매, 천사 치매를 앓는 박창희(가명·85)씨는 인기스타다. “안녕하세요?” “이뻐이뻐.” “할머니 이뻐요.” “하하하하 이뻐이뻐.” 아이처럼 손뼉치며 웃는다. 벙긋벙긋 함박웃음이다. 앞에서 누군가 웃어주면 꼭 따라웃는다. 잇몸만 남은 채 웃는 표정이 꼭 갓난아이 같다. 티없이 해맑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까꿍” 하듯 박씨를 보면 웃게 된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바라보며 웃고, 그 웃음을 보며 또 따라 웃는다.

“할머니 몇 살이세요?” “나요? 오십다섯.” “오십다섯이요?” “아니, 나요? 팔십다섯.” “할머니 뭐 잘하세요?” “달리기 잘해요.” “달릴 수 있어요?” “서서 달릴 수 있어요. 빨라요. 1등.” “노래는요?” “노래 잘해요. 해볼까요? 봄~이 왔네 봄이 와. 봄처녀의 가슴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하하.” “행복하세요?” “행복해요.” “슬플 때 있어요?” “없어요. 맨날 행복해요.” 우리는 다같이 크게 웃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기요양시설 ‘너싱홈 그린힐’에는 65명의 중풍·치매 환자가 살고 있다. 평균연령 91세. 최고령 환자는 103세, 최연소 환자는 78세다. 여성은 57명, 남성은 8명. 10 대 1이 채 되지 않는 성비다. 조혜숙 너싱홈 그린힐 원장에 따르면 다른 요양시설도 성비는 비슷하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이유도 있고, 부부가 생존해 있는 경우라도 할아버지가 아프면 할머니가 돌볼 수 있지만, 할머니가 아프면 할아버지가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65명 중 8명만 남성, 최고령 103세

너싱홈 그린힐이 처음 문을 연 17년 전 환자의 평균연령은 84세였지만 그새 평균연령이 확 늘었다. 이곳에서는 90세는 돼야 노인 소리를 듣는다. 80대는 장년, 70대는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 96세 할머니가 84세 할머니에게 “난 그 나이에 날아다녔어”라며 놀리기도 한다. 103세 이숙자(가명)씨의 아들은 83세. 조 원장은 “아드님이 한번 다녀가시면 몸살이 나신다”고 귀띔했다. 이곳 환자의 상당수는 증손자까지 줄줄이 거느리고 있다. 이숙자씨는 거동은 불편하지만 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조혜숙 원장을 보더니 “하하하하” 크게 웃으며 “반가워, 고마워, 하하하하하” 한다. 요양보호사가 떠먹여주던 죽을 절반 정도 먹던 그는 “배가 불러, 배가 불러” 하며 밥상을 물렸다.

이곳의 치매환자는 70% 정도. 중풍으로 입원해도 나이 들면서 서서히 치매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가 파악되지 않는 1등급 환자부터 약간의 소통이 가능한 2등급 환자,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3급 환자까지 다양하다.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하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3급 이상 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입소 환자 중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갈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90% 정도는 거동이 불편하다. 5% 정도는 병상에 누워있고, 80% 정도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손과 팔의 근육 힘이 약해져 혼자 힘으로 휠체어 운전을 할 수 있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한다. 2인실이든 4인실이든 방마다 전담 요양보호사가 있다. 화장실 갈 때, 식사할 때, 프로그램 참가할 때마다 요양보호사가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다. 수년간 함께 지낸 보호사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환자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챈다. 이곳의 요양보호사는 29명. 간호사 5명, 물리치료사 2명, 사회복지사 2명이 상근직원으로 근무한다. 두 명의 담당의사가 있는데, 치매전문의는 한 달에 한 번, 내과의사는 보름에 한 번 방문진료를 온다. 비상상황이 생기면 올해 도입된 원격진료서비스를 받는다. 화상을 통해 환자와 의사가 1:1로 얼굴을 맞대고 어디가 불편한지 물어보면서 모니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하늘이 유난히 새파랗던 지난 9월 15일, 너싱홈 그린힐로 가는 길은 착잡했다. 찬란한 자연이 눈에 들어올수록 마음이 안 좋아졌다. 붉을락 말락 물들기 시작한 야트막한 앞산과 너싱홈 그린힐 정원에 탐스럽게 심어진 철쭉, 느티나무, 인동, 낙상홍이 싱그러운 생명감을 뿜어대는 모습조차 눈에 거슬렸다. 모순 같았다. 자연은 이렇게 눈부신데 요양시설에서 수인(囚人)의 몸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도 망각한 채 쳇바퀴 같은 삶을 이어나가야 하다니.

그러나 기우였다. 기자가 느낀 슬픔과 안타까움은 제3자의 감상일 뿐이었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정반대였다. 치매노인들은 그저 해맑았다. 백년 가까운 인생살이에서 수십, 수백 번은 겪었을 고통과 고민을 망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은 홀가분해보였다. 분위기도, 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17년 동안 장기요양시설을 운영 중인 조혜숙 원장 역시 표정이 밝았다. 그는 “치매노인들이 이쁘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싱홈 그린힐 외관.
너싱홈 그린힐 외관.

“모르시는 분은 그분들께 기를 다 뺏기지 않느냐면서 회색빛으로 상상하세요. 의외로 그렇지 않거든요. 웃을 일이 너무 많아요. 남편과 둘이 있다고 웃을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이곳에서는 소리 내 웃을 일이 많답니다.”

치매는 본인보다 치매환자를 바라보는 가족이 더 힘든 병이다. 그 아픔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치매환자를 돌보던 가족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간병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비극도 발생한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한국의 정서상 치매 부모를 전문기관에 훌쩍 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증치매환자의 경우 요양원으로 보낼 것을 권한다. 박건우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부모님 혹은 배우자가 치매에 걸렸다면 먼저 병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 요양원 같은 시설에 보내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조혜숙 원장은 “치매 가족들과 요양사들의 태도는 다르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는 치매 간병을 직업이자 사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과는 태도가 다릅니다. 가족 입장에서는 우울할 수밖에 없어요. 나 역시 내 부모가 치매를 앓으면 괴로울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보살펴 드리기 때문에 엉뚱한 말씀을 하셔도 재밌게 받아넘길 수 있어요.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면 집에서는 가족들과 밥도 같이 잘 안 먹는다고 해요. 방 안에서 혼자 드시는 경우가 많죠. 딸이나 며느리가 휠체어를 태우고 식탁으로 모셔와서 같이 먹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곳에 와서 호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치매 3등급 판정을 받고 입소했다가 증상이 좋아져서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뇌의 해마가 쭈그러들어 기억을 못 하고, 복잡한 계산이나 잔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치매노인들은 단순하다. 너싱홈 그린힐 노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이들이 영유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프로그램 역시 그렇다. 칠교와 색칠놀이, 퍼즐과 오목 등 두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통해 지력을 높이고, 체조를 통해 소근육과 대근육, 말단신경을 강화한다. 정답을 맞히거나 반응이 좋으면 막대사탕을 주기도 하고, 꽃모양 쿠폰을 주기도 한다. 알사탕은 삼키면 위험할 수 있으므로 절대 금지. 쿠폰을 모으면 엽전이 쌓인다. 엽전으로는 너싱홈 장터에서 원하는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입소생 나이만 빼놓고 보면 딱 영유아 어린이집이다.

요양등급 노인은 대부분 스스로 시간 운용을 할 수 없다. 주는 대로 먹고, 주어진 프로그램대로 활동한다. 의지가 거세된, 위탁된 삶이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면서 지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셈이다. 너싱홈 그린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24시를 재현해본다.

6:00 기상

오전 6시부터 6시30분이 기상시간이다. 이미 깨어나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노인도 있고, 아직 깨지 않은 노인도 있다. 요양보호사는 기저귀를 갈면서 서서히 어르신들을 깨운다. 휠체어에 태우고 세수를 깨끗이 씻겨 개운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7:10 아침식사

휠체어에 태워 10명 정도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에 모인다. 가급적 많이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많이 접촉하는 것이 좋다. “안녕하세요?” 아침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사를 혼자 할 수 있는 어르신은 많지 않다. 반찬은 잘게 부숴야 삼킬 때 안전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다져서 주면 보기에 좋지 않다. 요양보호사가 어르신들이 보는 데서 먹기 직전에 가위로 잘라준다. 치매를 앓아도 미각은 여전하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 상태에 따라 죽, 연식, 유동식을 먹게 된다.

8:00 티타임 및 자유시간

생강차, 유자차, 커피 등을 어르신 취향을 저격해 제공한다. 다른 기억은 잃어도 음식 취향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난 원두커피.” “난 달달한 커피!” 취향을 꿰뚫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이 차를 한 잔씩 돌린다. 간혹 커피 소동이 발생한다. 단기기억 감소로 발생하는 웃지 못할 사건. 2분 전에 커피 한 잔을 죽 들이켠 할머니가 “나 커피 줘” 한다. 요양보호사는 치매노인들을 대할 때 될 수 있으면 “아까  말씀하셨잖아요.” “아까 그거 이미 하셨잖아요” 식의 말을 하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어르신들의 자존심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어르신, 2분 전에 커피 드셨잖아요.” “내가 언제? 나 커피 줘!” “드셨어요.”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건 카리스마. 조혜숙 원장이 등장하면 어르신들은 이상하게 말을 잘 듣는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르신! 좀 전에 커피 드셨어요. 이제 내일 마실까요?” 어르신이 금세 수긍한다. 대장을 기막히게 알아본다. 티타임이 끝나면 TV도 보고, 오목도 둔다. 색칠놀이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떤다. 거실 한가운데까지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꾸벅꾸벅 조는 어르신도 있다.

레크리에이션 시간, 칠교수업을 앞두고 실습 대학생들의 노래에 맞춰 박수 치는 어르신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레크리에이션 시간, 칠교수업을 앞두고 실습 대학생들의 노래에 맞춰 박수 치는 어르신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9:00 체조

1층 대형홀에 모여 ‘향공(香功)체조’를 한다. 휠체어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체조로 30분 가까이 소요된다. 시작 전 간단한 인지 테스트를 거친다. “어르신, 오늘은 며칠이지요?” “천구백칠십년!” “에이, 다시 생각해보세요.” “이천년?” “에이, 또 틀렸네요. 아시는 어르신 안 계세요?” “이천십칠년 구월 십오일!” “와! 정답이에요. 잘하셨어요. 엽전 드릴게요.”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 동작에 맞춰 체조를 한다. 다리도 올리고 팔도 털고,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체조다. 매일 같은 체조를 하다 보니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어르신도 꽤 된다. 요양보호사가 작은 동작 실수를 하면 귀신같이 지적한다. “그거 아니야! 틀렸어!”

10:00 인지재활 프로그램

환자들의 등급과 상태에 따라 소그룹으로 나누어 활동한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독서토론을 하는 팀도 있고, 유럽의 음악치료요법인 ‘달 크로즈’를 하는 팀도 있다. 달 크로즈는 스위스의 음악교육가 달 크로즈가 창안한 시스템으로, 음악에 맞춘 신체운동이다. 무반응이었던 어르신도 달 크로즈를 통해 움찔거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마침 실습 나와 있는 여주대와 백석대 간호학과 학생들이 재활프로그램을 돕는다.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 드리기도 한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면 학생들은 어르신들을 아기 다루듯 귀여워한다.

12:00 점심식사 및 휴식

13:30 레크리에이션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다같이 1층 대형홀에 모여 그날그날 바뀌는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이날 프로그램은 칠교. 빨강·파랑·초록으로 된 네모·세모 도형 조각으로 사회복지사가 화면에 보여주는 모양을 따라 만들면 된다. 씩씩한 사회복지사가 간단한 인지 테스트를 한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뭐가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금 오후 1시가 넘었는데. 상황분석이 되셔야죠.” “하하하.” “저녁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아니야. 점심이었어.” “잘하셨어요. 점심이지요. 오늘 반찬 뭐 드셨어요?” “미역국이랑 부침개.” “또요?” “해물탕.” “네 잘하셨어요. 어르신 엽전 하나 달아드릴게요. 장터에서 엽전 가지고 물건 사세요.”

어르신들에게 칠교는 꽤 어렵다. 화면대로 척척 배열할 수 있는 어르신은 10%도 되지 않는다. 실습 나온 학생들과 요양보호사들이 슬쩍슬쩍 가르쳐준다. 드디어 완성. 손을 번쩍 든다. “나야 나!” “네 어르신 잘하셨어요. 꽃 하나 드릴게요.” 꽃 쿠폰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한다.

이말숙(가명·98)씨는 치매 2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칠교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사람들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기자를 보더니 “너 누구지?” 하이톤으로 묻는다. 대답도 듣지 않고 또 묻는다. “4학년?” 이어서 말한다. “나 4학년 때 서울대 나온 사람이랑 결혼했어. 나는 동덕이거든. 고려대학교 싫다고 했어.” “남편이 서울대 나왔어요?” “…” 5분 후 실습생한테 묻는다. “너 누구지? 4학년?” 또 반복이다. “나 4학년 때 서울대 나온 사람이랑 결혼했어. 나는 동덕이거든. 고려대학교 싫다고 했어.” 5분 후 조혜숙 원장한테 또 묻는다. “너 누구지? 4학년?”…

오늘은 특별히 막대사탕 하나씩 선물로 나눠줬다. 포장을 스스로 뜯을 수 있는 어르신은 많지 않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돌려보는 어르신도 있다. 포장을 뜯어줬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맛있어” 쪽쪽 빨면서 감탄한다. 여기저기 감탄사가 들린다. “맛있어!” 막대가 달리지 않은 알사탕은 금지다. 삼킬 우려가 있다. 찰떡이나 젤리 등도 고령자들에겐 위험하다. 설기나 기장떡은 괜찮다.

14:30 간식 및 자유시간

생일 당사자가 있으면 생일파티 시간이다. 이곳 어르신들은 생일날이라도 외출이 쉽지 않다. 보통 가족들이 이곳에 와서 생일파티를 한다. 생일상 역시 요양사들이 차린다. 아무 음식이나 먹다간 탈이 날 수 있어서다. 조 원장은 “올해가 마지막 생일이 되실 수도 있기에 그분만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한 분을 위한 상을 차린다”고 했다. 어르신 침상에는 생일파티 사진이 조르르 걸려 있다. 사진의 수가 이곳에 머문 시간이다. 추석을 앞두고 이곳은 비상이다. 어르신들이 가지 못하는 대신 가족들이 이곳으로 오다 보니 많게는 300명이 넘게 방문한다. 요양원 직원들에게 명절휴가는 언감생심, 이곳에서 직접 명절음식을 다 차려낸다고 한다. 명절날엔 빈공간이 없다. 직계가족은 물론 조카손주에 증손자까지 오다 보니 여기저기 북적댄다.

간식시간이 끝나면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한다. 오목을 두기도 하고 퍼즐, 컬러링북, TV 시청 등 제각각이다.

17:10 저녁식사

19:00 취침 준비

이때부터 서서히 숙소에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가장 늦게는 9시에 잠든다. 가능한 한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새벽에 깨지 않는다.

뭐가 진짜 효도일까?

중풍치매 어르신들을 집에서 모시는 것이 좋을까, 요양원(시설)에서 모시는 것이 좋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어르신들과 자식 간 온도 차가 있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 가까이에서 모시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이곳에서 박사님으로 통하는 박숙정(가명·91)씨의 생각을 들어봤다. 공주사대를 나와 교사를 하던 그는 뇌경색으로 중풍을 앓고 있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는 내내 따뜻하고 논리정연했다. 집안 대대로 86세에 생을 마감해 자신도 그럴 줄 알고 ‘죽음맞이 파티’를 연 이야기, 남이장군 후손인 남편을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세상을 떠나보내기까지 이야기, 이곳 입소를 앞둔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야기 등 이야기를 참 찰지게도 했다.

“요양원이 내겐 최선의 종착역이랍니다. 내 집보다 편해요. 애가 다섯인데 하나는 독일에, 하나는 미국에 살아요. 나머지 삼남매는 한국에 있는데 자주 오지 말라고 해요. 나는 편하게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하죠. 명절에 애들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주 힘들었어요. 워커(보행보조기)를 짚고 다니니까 신기해서 증손자들이 이 다리 저 다리 만져서 넘어질 뻔한 적도 많아요. 여기에서 아주 편해요. 영양이랑 칼로리 맞춰서 좋은 음식 딱딱 나오고, 머리 좋아지는 프로그램, 재미있는 활동도 많아요. 이젠 죽음도 겁나지 않아요. 여기에서 가시는 분들을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아주 편안하게 가시더라고요. 더 이상 바라는 거 없어요. 잘 살았으니 이걸로 됐어요.”

인터뷰|조혜숙 너싱홈 그린힐 원장

“치매와 중풍 어르신 분리해야”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너싱홈 그린힐은 명실공히 국가대표급 노인장기요양시설이다. 사설 요양시설이지만 집같이 따뜻한 분위기와 세심한 프로그램으로 1년 내내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라오스·미얀마·태국 등 동남아 국가와 중국 등에서 국가 차원의 견학 요청을 하면 이곳이 1순위로 꼽힌다. 10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조혜숙(64) 원장은 간호사 출신 장기요양시설 운영 1세대다. 장기요양시설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92년, 영국의 휴양도시 본머스(Bournemouth)에서 본 너싱홈에서 영감을 받았다. 60~70대 간호사들이 퇴직 후 전원주택 같은 자신의 집에 10명 정도의 장기요양 환자들을 모신 작은 너싱홈이었다.

“RN(Registers Nurse·공인등록 간호사)을 내걸고 집같이 작은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이런 시설이 들어올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안 들어온다면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는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가정전문간호교육과정을 밟았다. 졸업 후에는 한림대의료원 강동성심병원에서 가정간호사 수간호사로 경력을 쌓았다. 1999년 10월, 노인복지법이 바뀌어 간호사도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의사와 사회복지법인만 운영할 수 있었다. 이듬해 5월에 바로 장기요양시설을 열었다.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그 모습 그대로 전원주택에 연 20병동짜리 작은 요양시설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요양시설이 거의 없었어요. 치매환자도 많지 않아서 무연고노인 등을 국가나 사회복지기관에서 보살펴주는 식이었죠.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요양시설은 전무했어요. 6개월 만에 20병상이 다 찼고 그중 7명이 간호사들의 어머니셨습니다.”

수요가 많아 2년 후 현재 자리로 확장이전 했다. 그런데도 수요를 다 감당 못 하고 있다. 현재 이곳 대기인원만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장기요양시설 운영 18년 차, 개척자의 길을 걸어온 조 원장은 조직의 장을 많이 맡았다. 대한간호협회 가정간호사회 회장, 대한간호사협회 창업특별위원회 위원장, 대한간호협회 노인간호사회 회장을 지냈다. 그에게 정부가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 추친 계획’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는 “국가가 현장을 잘 모르고 정책을 끌고 나가는 측면이 많다”고 꼬집었다. “5200개 장기요양시설 중 85%를 민간이 운영합니다. 큰 시장이죠.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누구나 그 시설을 할 수 있도록 부추겼습니다. 사설 요양시설 건립 시 국가 지원금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는 국가 재산인 것처럼 재무회계 규칙을 사회복지법인과 똑같이 적용합니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시설 운영 이익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도록 합니다. 말이 안 되죠. 이것 하나만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대출금을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조 원장의 지적은 첨예한 이슈다. 인터뷰 당일에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앞에서 노인요양시설운영자들의 시위가 열렸다. ‘장기요양급여수가 현실화 및 재무회계규칙 결사반대’를 내건 시위였다. 조 원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기에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치매와 중풍 환자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풍과 치매 어르신을 한 공간에 있게 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중풍 어르신은 치매 어르신을 보면서 ‘저렇게 정신없어서 어떻게 하나’ 하며 한심해 하고, 치매 어르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중풍 어르신을 괴롭힙니다. 치매는 전문 인력의 전문 서비스가 투입돼야 하지만, 중풍 어르신은 신체 거동의 불편한 부분만 해소해 드리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치매와 중풍 어르신을 같이 있게 할 것인가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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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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