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6일 임시공휴일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로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 하행선이 정체를 빚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5월 6일 임시공휴일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로 경부고속도로 천안IC 부근 하행선이 정체를 빚고 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정부가 추석 민생대책의 일환으로 추석 연휴 3일간 전국고속도로 무료화를 확정하면서 한국도로공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속도로 유지운영 재원인 통행료 수입 직접 감소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무료화로 평소 추석보다 많은 차량이 고속도로로 몰릴 것으로 예상돼 고속도로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광복절 앞날인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당일에 한해 최초 시행됐다. 지난해에도 어린이날 하루 뒤인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당일에 한해 적용됐다. 추석명절 연휴 3일간,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재정고속도로를 비롯해 16개 민자(民資)고속도로 전체 통행료가 면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첫 고속도로 무료화 시행 당시 하루 통행료 감소액은 약 196억원(재정 146억원, 민자 5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무료통행 때 면제금액은 186억원(재정 143억원, 민자 43억원)에 달했다. 하루 감면액을 190억원으로 잡고 3일치로 단순 계산해 봐도 약 570억원이다. 국토부 측은 “재정고속도로 450억원, 민자고속도로 120억원 등 총 570억원의 통행료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번 통행료 감면에는 16개 민자고속도로가 모두 참여하는 터라,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 국고(國庫)에서 보조하는 금액도 더 늘 것으로 보인다.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10개와 11개 민자고속도로가 통행료 무료화에 참여했다.

국내에서 고속도로는 고속주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익자를 대상으로 요금을 받는 식으로 운영 중이다. 요금을 통해 무분별한 고속도로 이용을 억제하는 대신 국도나 지방도는 무료통행을 하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을 무료화하면 열차나 버스를 타려던 사람들이나 일반도로 이용을 고려하던 귀성객들이 너도나도 고속도로로 차를 끌고 나오는 것이 불가피하다. 국토부가 고속도로 무료화를 시행하는 근거가 ‘교통정체로 고속서비스 제공이 불가피한 만큼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인데, 고속도로 무료화가 오히려 교통정체를 초래하는 역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토부는 또 “고속도로 무료화를 하면 톨게이트 정체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행 통행권 방식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통행료 무료화를 하더라도 고속도로 이용방식은 기존과 동일하다. 진입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고, 도착요금소에서 통행권을 제출하는 형태다. 통행권을 뽑기 위해 톨게이트 입구에서 차량속도를 줄이는 것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톨게이트 진입정체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하이패스 역시 평소 이용방식과 동일하고 요금만 ‘0원’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속도 변화가 없다. 국토부 측은 “국고보조해야 하는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정산 때문에 통행권 발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버스 이용객은 혜택 전무

고속도로 무료화 혜택이 영세 서민들이 아닌 자동차가 한 대 이상 있는 중산층 이상에만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자동차가 없어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편으로 귀성해야 하는 진짜 서민들은 통행료 무료화 혜택이 전무하다. 통행료 면제에 따라 버스요금이 인하되는 것이 아니라서다. 고속도로 무료화로 인한 혜택은 고스란히 버스운송업자 몫이다. 오히려 고속도로 요금 무료화로 인해 평소 명절보다 많은 차량이 몰리면서 버스 이용객들은 더 오랜 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할 공산이 크다.

16개 민자고속도로의 통행료 감소분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도 논란이다. 특정도로 이용자들을 위해 도로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통행료를 보조하는 격이라서다. 민자고속도로 건설운영 원칙인 수익자부담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고속도로 무료화로 자동차 운행에 사실상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억제하고 열차나 버스 같은 다중이용 교통수단으로 흡수하려는 그간의 정책적 노력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고속도로 무료통행은 일본에서 실시한 이후 부작용으로 폐지한 낡은 정책이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고속도로 무료화와 휴일요금 1000엔(약 1만원) 상한제를 내걸고 집권했다. 하지만 실시 2년 만인 2011년 3·11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재정위기에 봉착하면서 고속도로 무료화 실험을 사실상 중단했다. 국토교통성은 재원조달·고속도로운영적자·수익자부담약화·교통정체·환경오염 다섯 가지를 폐지 이유로 밝혔다. 실제 무료화 실험 2년간 고속도로 통행량이 20.2%가 증가했는데, 이 중 8%가 무료화로 나온 자동차였다.

이 같은 이유로 도로공사는 2015년 고속도로 무료화 첫 시행 때부터 내심 부정적 입장이었다. 이런 입장을 반영해 당시 박근혜 정부는 광복절 연휴 3일간 무료통행을 실시하려던 당초 방침에서 한발 후퇴해 8월 14일 임시공휴일 하루만 무료통행을 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올해 추석연휴 고속도로 무료화는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에서 공언했던 부분이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것이다. 직접 수입 감소가 불가피한 도로공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김학송 전 사장이 지난 7월 7일 ‘도로의 날’에 사퇴를 표명하면서 국토부의 무리한 요구에 이견을 표할 마땅한 창구조차 없다.

문제는 추석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조치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토부는 유료도로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향후 설·추석 등 명절 3일 연휴 무료화를 적용할 수 있도록 대못을 박았다. 한국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경차·장애인 50% 감면, 화물차 야간통행료 최대 50% 감면 등 공익목적의 통행수입 감소분만 연간 2800억원가량”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18일부터는 전기차와 수소차도 고속도로 통행료 50% 감면혜택을 주고 있다. 그나마 이런 통행료 감면은 경차 이용 장려, 화물차 물류비 감소, 전기차·수소차 보급 활성화 같은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정책 효과조차 의심스럽다.

이미 전국 각 지자체에서는 고속도로가 아닌 터널, 다리 등 유료도로까지 통행료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지자체 재정이 열악해 민자로 유료도로를 놓았는데, 통행료 면제가 유료도로까지 확대되면 통행료 수입 감소분을 지자체에서 토해내야 할 판이다. 도로공사 후임 사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도 이강래 전 의원, 강기정 전 의원 등 하나같이 정치인 출신이라 향후에도 세금으로 선심 쓰기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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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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