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77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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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 카이스트 입학처장 이승섭 교수의 특급 처방

“대학 서열화를 차별화로 바꿔야 한다”

김민희  차장대우 minikim@chosun.com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우리나라 교육을 알면 알수록 ‘이건 아닌데’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학생과 유학생, 카이스트 교수와 두 아들의 학부모, 입학처장을 거치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한번 만나시죠.”
   
   이승섭(55)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전공 교수는 여러 차례 탄식했다. 그는 지난 2월까지 4년간 카이스트의 입학처장을 지냈다. 학종(학생종합생활기록부)의 문제점을 묻는 전화 인터뷰에 1시간 가까이 답변을 하고도 “이건 진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 교육에 대해 “마음의 병이 깊어 열이 펄펄 나는 아이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열제만 주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카이스트 입학처장을 지내면서 그는 반(半)교육운동가가 됐다. 진짜 인재상을 되묻는 책(‘카이스트는 어떤 학생을 원하는가’)을 자처해 내고, 초·중·고교를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짜 공부란 무엇인지’ 특강을 한다. 기자는 대전에 있는 그에게 교육의 첨예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종종 의견을 물었고, 그때마다 이 교수는 열변을 토했다. 지난 9월 25일 서울 중구의 한 한식당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권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말투로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 통화할 때마다 절박함이 느껴지더라. 피 토하는 심정으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토로하던데. “10여년 전부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누적돼왔다. 터진 듯하다. 카이스트는 명실공히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곳 아닌가.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고1, 고3 두 아이를 키우면서 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입학처장을 맡으면서 문제점이 보였다.”
   
   - 결론부터 묻자. 잘못된 한국 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뭘까. “수십 년간 교육 전문가들이 다양한 교육제도를 들여왔지만 맥을 못 췄다. 입시라는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는 나에게 맞는 대학과 전공은 없고, 내 점수에 맞는 대학과 전공이 있을 뿐이다. 전국 1등을 한 학생은 어디를 갈까? 아마 서울대 의대를 갈 거다. 대학의 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입시 위주의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을 서열화 대신 차별화해야 한다.”
   
   - 대학을 차별화한다니. “대학원 중심 대학, 학부 중심 대학, 혼합형 대학 식으로 3~4그룹으로 나누는 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원 중심 대학은 학부 정원을 확 줄여서 교수와 대학원생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자대(自大) 대학원 진학률을 20~30% 정도로 줄이는 거다. 예를 들어 보자. 대학원 중심 대학인 카이스트 대학원을 가고 싶은 학생이 있다고 치자. 자대 대학원 진학률을 제한하면 카이스트 학부를 나오는 것보다 다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미국은 자대학 출신을 대학원생으로 들이는 인브리딩(inbreeding·근친교배)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하버드대 나와서 하버드대학원 가는 것이 어렵다. 차라리 하버드대 나와서 스탠퍼드대학을 가는 편이 더 쉽다. 미국에서는 제자를 기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벌, 족벌을 만든다는 이유다.”
   
   - 인문학 중심 대학, 공대 중심 대학 식으로 나누는 건 어떤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분야별로 대학을 특성화하는 건 좀 조심스럽긴 하다. 어쨌든 대학을 ‘서열화’가 아니라 ‘차별화’하자는 것이 요체다. 공부와 연구를 계속 하고 싶은 학생은 대학원에 가서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학입시가 교육의 중간 단계가 되면서 대학이 진정한 교육기관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또 대학에 목매지 않게 되고.”
   
   - 의외다. 대학에 대대적인 매스를 들이대자는 제안인데, 대개 대학 측에서는 교육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대학만의 자체 생태계를 만들길 원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나.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아니다. 각 대학만의 자체 생태계는 게임의 룰이 분명할 때 가능하다. 지금은 게임의 룰 자체가 없다. 체급이 서로 다른 선수를 한 링 안에 몰아넣고 싸우라고 하는 상황이다. 사슴과 원숭이, 얼룩말과 사자를 한 우리에 넣어둔 상태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서로서로 피해를 본다. 싸움의 왕인 사자 역시 행복하지 않다.”
   
   - 대학계의 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출신의 프리미엄이 암암리에 상당한데.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나도 서울대 출신인데 그건 서울대 나온 사람만이 안다. 입학처장을 지내면서 우수한 인재를 카이스트로 유치해야 했다.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어하는 학부모를 자주 접한다. 서울대 나온 부모를 설득하기 더 쉽다. 서울대를 안 나온 학부모는 환상이 있어서 어떻게든 보내려 하지만, 서울대 나온 부모는 나와 봐야 별거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교수의 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명문 대학에 더 좋은 교수가 많지 않나. “그렇게 보긴 어렵다. 교수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서울대, 카이스트 교수가 타 대학 교수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선후배 중에서 교수가 된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실력 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교수에게는 똑똑한 제자가 있고, 저 교수에게는 없고의 차이다.”
   
   - 카이스트 입학처장을 하면서 가장 역점을둔 부분은. “이미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앞으로 잘할 아이를 뽑으려 했다. 초·중·고교 때 너무 열심히 공부하다가 대학에 올라와서 지쳐 떨어지는 학생보다 자신이 원하는 전공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는 학생들을 원한다. 다시 말해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학생을 뽑으려 했다. 그래서 전교 1등이 탈락하고 6등이 뽑히기도 한다.”
   
   - 공부에 지쳐 떨어지는 아이들이 많은가. “종종 있다. 부모들이 ‘우리 ○○,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좀 쉬렴’ 식으로 말한다고 한다. 교수로선 굴욕이자 모욕이다.”
   
   - 모욕감마저 드나. “그렇다. 대학이야말로 학문의 전당 아닌가.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곳에 와서 공부를 안 하겠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입시 공부하느라 소진되어서 여력이 없는 거다.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출신 카이스트 입학생의 4년간 성적 변화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2013년 입학생을 대상으로 뽑은 통계다. 1학년 때에는 영재고 출신이 성적이 가장 높지만 학년이 오를수록 점점 떨어져 4학년 때에는 일반고 출신에 역전되더라.”
   
   - 왜 그런 건가. “영재고 출신 상당수가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정석을 푼다고 한다. 그런 아이가 공부에 무슨 재미가 있겠나.”
   
   - 영재고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보나. “질문 하나 내겠다. 곰탕, 칼국수, 영재고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정답은 ‘없다’다. 곰탕에 곰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듯, 영재고에 영재가 없다. 하지만 영재고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한다. 다만 일반 학교에 적응이 어려운 극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처럼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재고를 딱 하나만 남겨두고 없애야 한다고 본다. 지금처럼 영재고가 8개나 되면 특수교육이 아닌 수월성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카이스트가 원하는 인재상은 △과학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열정과 도전의식이 있어야 하며 △높은 주인의식과 협력정신으로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하며 △윤리의식을 지니고 인류를 위해 환경을 생각하는 학생이다.
   
   - 인재상을 보니 너무 완벽하다. 카이스트야말로 모범생이 아닌 괴짜 과학도를 품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숨은 보석을 가려내는 것. 지금은 확실히 도발적인 모험을 하는 아이들이 적어진 것 같다.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것이 ‘특기자 전형’이다. 특정 분야에 영재성을 나타나는 학생들을 위한 전형이다. 특별한 아이를 뽑아서 멘토 교수가 맞춤형 교과과정을 설계해 가르치는 거다. 엑스맨 같은 튀는 인재도 중요하지만, 카이스트는 국가가 설립한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기여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어떻다고 보나. “역사적으로 보자. 조선시대에는 선비, 왕의 신하, 관리 양성이 교육의 목적이었고, 일제 때는 국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 양성이 필요했다. 광복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가장 바라는 인재상은 이순신 장군? 세계적인 작가? 유명한 셰프?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못 나온다. 현 교육제도에서 배출되는 최고의 인재상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사람이라고 본다. 어렸을 때 아주 똑똑했고, 자라면서 정의감에 불타던 아이가 조직에 들어가 조직의 논리에 충실한 인재.”
   
   -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대학교수의 역할은 뭘까. “교수 20년 차다. 내가 교수가 돼 보니 너무 좋더라. 내 방이 있고, 사람들이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러주고. 그런데 어느 순간 섬뜩했다. 교수로서의 권한을 하나둘 알게 되는 순간 무서웠다. ‘내가 과연 교수가 될 자격이 있나’ 하는 자성을 했다. 교수로서의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고, 리더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다. 기자는 어떤가. 머리 좋고 글 잘 쓰는데 정의감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글을 못 써도 차라리 정의감 있는 기자가 낫지 않나.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품고 학생들에게 휴지 줍기부터 시켰다.”
   
   - 휴지 줍기라니. “나는 100점 만점에 110점 강의를 했다. 나머지 10점은 휴지를 주워야 패스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휴지 줍기 미션을 달성한 후 금요일에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이런 거 하지 말고 ‘휴지’라고만 써서 보내라고.”
   
   - 휴지 줍기를 통해 기대한 효과는. “상식과 양심을 체득하게 하고 싶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또 하나, 나는 기말고사를 ‘테이크홈 이그잼(takehome exam·재택시험)’으로 치렀다.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 맞추기 쉽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양심을 믿었다. 컴퓨터를 여는 순간부터 딱 두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고 출력해서 봉인한 후 금요일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교재에 정답이 나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절 보지 말라고 하면서. ‘커닝해서 A+를 받을 수 있겠지만, 못 믿을 사람은 딱 하나, 네 자신이야’라고 말해뒀다. 이제까지 1500명 이상이 이런 식으로 시험을 치렀다. 학기별로 7번 정도 시험을 치르는데, 편차가 고른 편이다. 기말에 성적이 확 올라가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딱 3명만 이상했다.”
   
   - 그 3명은 어떤 경우인가. “한 아이는 두 시간 동안 풀지 못할 분량의 답안을 써 냈다. 불러서 ‘할 말 없니?’ 물었더니 2시간 동안 풀었다고 하더라. ‘그럼 알았다. 이걸 통해 네가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만 했다. 한 아이는 묻자마자 ‘교수님 죄송합니다’ 하더라. 한 아이는 빵점짜리 답안지를 제출했다. 컴퓨터를 켜서 문제를 봐 버렸는데 배가 아파서 문제를 거의 못 풀었다고 하더라. 이 아이의 양심을 높게 사서 다른 방식으로 평가해줬다.”
   
   - 마지막으로 입시제도 얘기를 해보자. 진짜 문제는 ‘학종’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어떻게 보나. “정시건 학종이건 다 의미가 있다.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으로 몰리면 안 된다는 거다. 3:7 이상이 되면 안 된다. 어느 쪽이 높든 상관없다. 그건 철학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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