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77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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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최저임금 직격탄 맞은 신월동 가방봉제촌

국내 1호 가방협동조합원들의 분투기

▲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박진호씨의 가방봉제공장.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숙련공들이 1일 수백 개의 가방을 만든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양천구 신월사거리 인근 3층 건물 지하실(160㎡)에는 조규남(58)씨가 운영하는 가방봉제공장이 있다. 신월동에는 조씨처럼 건물 지하실을 이용한 크고 작은 가방봉제공장이 줄잡아 300여개에 이른다. 일당 몇만원을 벌기 위해 가정에 재봉틀을 두고 부업(副業)하는 주민까지 합치면 가방봉제업 종사자는 이 일대에만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신월동 일대는 국내서 가장 큰 가방봉제촌으로 불린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가방봉제촌은 도심 개발에 밀려 쪼그라든 지 오래다. 이곳 신월동은 김포공항의 영향으로 개발이 더디고 건물 임대료가 낮아 영세 가방봉제공장이 자리 잡기에 유리한 입지다. 다만 가정에서 봉제 일감을 받아 부업하는 이들은 사업자등록이 없어 정부의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조씨가 운영하는 공장 내부에는 초등학생용 베네통(BENETTON) 가방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방 벽 쪽으로는 가방 봉제에 사용하는 1인용 재봉틀이 설치돼 있고 재봉 기계가 연방 돌아갔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사장 조씨를 포함해 총 4명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은 조씨의 둘째 아들 민우씨. 큰아들은 이곳에서 일하다가 일감이 줄자 새 직장을 찾아 떠났다. 50대 후반의 두 여성은 조씨 부인 박모씨와 그의 친동생이다. 조씨는 기자가 다가가 인사하는 와중에도 재봉 기계를 돌렸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 하루 종일 일했지만 오늘 처리해야 할 물량이 아직 산더미”라고 말했다. 가끔 들어오는 일감이지만 촉박한 납기일을 맞추려면 밤샘 작업이 잦다고 했다. 잠시 재봉 작업을 멈춘 조씨와 공장 안쪽의 비좁은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조씨는 6㎡(2평 미만)가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 앉자마자 담배부터 한 대 입에 물었다.
   
   “일손이 부족해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조씨는 “직원을 두고 일할 수 없어서 가족과 함께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일대 공장에는 월급을 받는 정규 직원이 꽤 많았으나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크게 올라 일용직 직원조차 두기 어렵다. 일감도 꾸준하지 않아 공치는 날이 많아졌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가방업체들이 알아서 외국으로 물량을 뺀다. 올해도 한두 달은 손을 놓고 지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공장을 멈출 수는 없다.”
   
   조씨 고향은 전라남도 진도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왔다. 그때 나이 열다섯. 소년은 서울 구로구에 있는 공장에서 ‘미싱보조’로 2년5개월간 먹고자며 봉젯일을 배웠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봉제업이 괜찮았다. 나는 미싱(재봉틀)을 보조하는 ‘시다’부터 했다. 그 다음 레벨이 시다미싱, 중미싱, 오야미싱 순이다. 오야미싱이 되어야 그야말로 베테랑 숙련공이 되는 거다. 하루에 14~15시간씩 일할 때니까, 일하다가 공장 바닥 치우고 밥 먹고 또 거기서 잤다. 봉제업을 한 지 벌써 43년째다. 그 사이 두어 번 부도를 맞았다.”
   
   
   15세 때 가방공장 미싱보조로 출발
   
   조씨 공장에서 100m쯤 떨어진 건물의 지하에는 박진호씨의 가방봉제공장이 있다. 최근 학생용 가방 등 몇 가지 일감을 수주한 터라 공장에는 7~8명의 일용직 근로자가 재봉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장 내부에는 사람이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가방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최근 결혼 관련업체에서 일하던 박씨 아들도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감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동화된 재봉 기계를 다룰 사람이 없어 아버지를 돕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 봉급 직원을 두고 일했다. 그러나 요즘은 일용직 재봉 근로자를 부리기도 어렵다고 했다. “요즘 하루 일당만 5만원 이상을 주고 일용직을 고용하는데,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실질적으로 일용직 1명당 7만원가량이 든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계속 올린다고 하니까 조만간 일용직 일당이 하루 10만원을 넘게 될 것 같다. 지금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와 일한 지 꽤 오래됐다. 서로 의논을 해봐야겠지만 앞으로는 사람도 줄이고 일하는 시간까지 축소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버티지 못하면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박씨는 직원 10여명을 고용하는 제법 큰 규모의 공장을 운영했었다. 그는 “IMF(국제구제금융)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쉬는 날은 고작 이틀에 불과했다. 돈벌이도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나이키, 쌤쏘나이트, 프로스펙스, 뉴발란스와 같은 유명 브랜드의 가방봉제는 양천구 신월동 봉제공장촌에서 대부분 소화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가방봉제 일감이 저임금 노동력 시장인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가방봉제촌의 위기가 시작됐다. 도심 개발과 임대료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등 떠밀려 신월동으로 몰려든 영세 가방봉제업체 수는 더 늘었다.
   
   현재 박씨 공장에는 일감이 있을 때만 출근하는 일용직이 10여명쯤 된다. 김포에 사는 60대 초반 강모씨도 그중 한 명이다. 강씨는 5년 전만 해도 박씨 공장의 봉급생활자로 일했으나 지금은 일용직이다. 강씨의 말이다. “일하는 시간은 늘어도 상관없다. 일감만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일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일당은 사장님과 우리가 논의해 결정하면 된다. 여기 사정은 우리가 더 잘 안다.”
   
   박씨는 가방봉제업이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고 했다. “30년 이상 이 일을 했고 여기 직원들과도 인연이 오래됐다. 그래서 지금은 돈을 번다기보다 같이 먹고사는 입장이다. 내가 말이 좋아 사장이지, 집에 가져다 주는 돈이라고 해봐야 월 200만원이 될까 말까 한다.”
   
   가방봉제의 마진은 꽤 박한 편이다. 시중에서 15만원 안팎에 팔리는 학생용 가방도 이곳 공장을 거치는 비용은 1개당 2500~3000원에 불과하다. 박씨는 “신월동 인근에 오래된 가방봉제 숙련공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했다. “표본 하나만 던져주면 정말 똑같이 만들 정도로 숙련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건비가 계속 오르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일감마저 외국으로 나가버린 상황이다. 내가 아는 가방 원자재 제공업체들도 최근 3~4곳이 문을 닫았다. 내년에는 정말 사느냐 죽느냐의 고비가 될 것 같다.”
   
   
▲ 재봉틀로 가방을 봉제 중인 조규남 양천가방협동조합 이사장.

   일용직 고용도 어렵게 만든 최저임금
   
   신월동 가방봉제촌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는 지난 7월 1시간당 최저임금을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 인상했다. 향후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기조로 인해 영세 가방봉제공장들은 앞으로 일용직 고용도 힘들어질 전망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까지 오르면 신월동 가방봉제공장 사장보다 일용직 근로자가 버는 돈이 더 많아진다.
   
   특히 가방봉제촌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상공인에게 예산을 지원한다지만 신월동 가방봉제촌의 경우 4대 보험 보장과 같은 제도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라 정부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사업자등록 없이 부업 개념을 일하는 주민은 정부의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있을 때 소상공인과의 대화를 위해 신월동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가방봉제업 종사자들도 참석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내년에 최저임금 8.1%가 인상된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 임금인상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의 경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늘어나는 임금만큼 정부가 보전해준다거나 4대 보험료를 지급해준다거나 세제 지원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이던 2006년 8.1%의 두 배가 넘는 인상률이다. 이들에게 정부 예산을 투입해 임금을 보전해주거나 4대 보험료를 지급해주는 정책적 배려가 과연 가능할까. 가방공장 관계자들은 “최저임금이 얼마까지 오를지, 우리가 무슨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토로했다.
   
   가방공장 운영자들도 최저임금법을 준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 법의 처벌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처벌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가 근로자의 기본 생계비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소상공인들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신월동 한 가방봉제공장에서 만난 80대 초반의 할머니는 공장 바닥에 앉아 가방 멜빵 고리를 끼우는 단순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장이 10년째 일거리를 줘 나야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이 공장 운영자가 최저임금을 지불하고 고용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조사결과도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9월 21일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중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가장 낮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6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단체 행사와 기념품 발주가 줄어 가방산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이후 가방산업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일감 부족 등을 이유로 가방봉제업에서 손을 떼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방봉제공장을 운영하던 최한규씨는 한때 ‘사장님’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한다. 30년 넘에 운영해온 80㎡ 규모의 가방봉제공장은 부인이 맡아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제는 일감이 들어와도 인건비가 비싸 일용직을 쓸 수도 없다. 그럴 때면 최씨가 잠시 공장 일을 돕는다. 최씨는 하루 일당 12만원의 건설 일용직을 선택했지만 공장에서 12시간 일하는 것보다 월수입은 더 낫다고 했다.
   
   공장 문을 닫는 곳도 늘어나는 추세다. 박진호씨 공장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있는 80㎡(25평) 규모의 공장은 최근 몇 달째 셔터가 굳게 닫혀 있다. 가방 멜빵을 주로 재봉하던 또 다른 업체 사장은 최근 공장을 닫고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서울 인근에 기업형 가방봉제공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파주시 등지에는 2300~2600㎡(700~800평) 규모에, 수십 명의 직원을 둔 가방봉제 업체들이 있다. 이 업체의 타깃은 주로 군납용 가방류라서 신월동 영세 공장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 봉제 기술의 달인들이지만 대부분 일용직으로 하루살이 삶을 살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1호 가방협동조합·2세 창업에 기대감
   
   최한규씨는 건설현장 일이 끝나고 나면 신월사거리 근처에 있는 양천가방협동조합으로 향한다. 신월동 가방봉제업 종사자들은 2015년 5월 지역 업체의 영세성을 보완하고 안정적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가방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이 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80여개 공장 운영자들은 군납이나 지방자치단체 입찰 또는 조달사업 참여에 나서고 있다. 최씨는 “국내 가방봉제공장이 모여 있는 마지막 보루인 신월동을 살리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서 조합활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조합 측은 요즘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선 양천구 소재 공립유치원에 3년간 가방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 신월동 관내에 공방을 운영하며 가방사업에 도전하는 시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조합의 가장 큰 소득은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디자인, 원자재 구입, 제품 판매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가방조합 1호 브랜드 란트(LANTT)는 올 연말부터 시중에 유통될 예정이다. 가방 재질과 디자인은 기존 고가 브랜드와 별 차이가 없지만 가격은 3만원대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게 조합 자체의 분석이다. 그동안 신월동 내 영세 가방봉제공장들은 주로 가방 업체가 제공한 샘플과 자재를 받아 봉재만 하는 단순가공에 머물러 왔다.
   
   양천가방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규남씨는 “가격이나 제품에서 경쟁력을 갖춘 조합 브랜드 ‘란트’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는다면 봉제공장 일감이 꾸준히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아직 초기 단계라서 성공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신월동 가방봉제촌에는 조합과 별도로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스타트업을 통해 가방 사업 도전에 나서고 있었다. 아버지 세대가 만든 조합과는 다른 차원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가방조합 장영일 과장의 말이다. “조합 차원에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가방공장 2세들이 모여 신제품을 만들고 시장 평가를 받는 시도를 하고 있다. 30대 초반 친구 5명이 만든 ‘제이오’ 브랜드가 첫 시도였는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름 시행착오를 통해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민우씨 등 가방업계 2세대들은 ‘와디즈’와 같은 온라인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제이오를 만든 신월동 젊은피 5인방 중 3명은 현재 이곳을 떠났다. 그럼에도 30대 예비 가방업체 사장은 신월동으로 진입하는 창업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는 30대 초반의 박모씨도 “단순 재봉 작업은 컴퓨터를 통해 하는데, 그 일을 맡기로 하고 아버지 공장에 들어왔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나아가는 건 우리들 몫”이라고 말했다.
   
   가방업계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유럽의 명품에 버금가는 브랜드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가방협동조합 김재섭 전략팀장의 말이다. “다품종·소량생산 시대를 겨냥한 젊은이들의 도전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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