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대항병원 전경.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대항병원 전경.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공기업에 다니는 최은정(29)씨는 지난 8월 여름 휴가를 맞아 미뤄왔던 일을 완수했다. “치질을 앓고 있다는 얘기는 남자친구나 부모님에게도 말하기 힘들더라고요. 병원에 계속 가봐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차마 가지 못했거든요. 인터넷 검색만 하다가 여의사가 있는 전문병원이 있다고 해서 얼른 다녀왔습니다.” 1년 넘게 고민하던 일이 몇 번의 외래 진료 끝에 금세 해결됐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최씨와 같은 것은 아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대장항문 전문병원 대항병원에는 종종 치료 시기를 놓쳐버린 환자들도 찾아온다. “요즘도 지방에서는 ‘치질은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소위 ‘부식제 주사’라는 것을 놓는 무면허 의료인들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이런 부식제 주사를 한참 맞다가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 내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치질로 병원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다 보니 생기는 일인데, 오히려 더 큰 수술로도 완치가 어려운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이두한 대항병원 대표원장의 말이다. 그가 1990년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서울 반포에 대항병원의 전신(前身) 서울외과클리닉을 개원한 이유가 바로 이런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치질 질환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약 65만명이나 된다. 이 중 치질 수술을 받은 환자는 19만3064명이다. 진료 환자 대비 수술 환자가 많은 셈인데 치질 질환의 특성이 이런 통계 수치를 만들었다. 많은 치질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을 숨기거나 임의로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두한 원장이 처음 대장항문 전문병원을 세웠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대장항문 질환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다. “저와 두 명의 동료가 함께 서울외과클리닉을 열며 ‘대장항문 질환 전문’이라는 말을 써붙였을 때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손가락질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항문 질환을 질환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적었고 더욱이 병원에서 치료받겠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이 원장이 놀랄 만큼 급속도로 증가했다. 어디서,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따로 광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환자들이 계속 찾아와 개원 9년 만에 서울 사당동에 확장 개원하게 됐습니다.” 1999년 서울외과클리닉은 서울 사당동으로 자리를 옮겨 ‘대항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장항문 전문병원이 몇 없을 때의 일이다.

대항병원이 개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나라 의료계가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온 이유도 있다. 1980~1990년대에 걸쳐 전국 각 대학에 설립된 의과대학을 통해 의사 수가 늘면서 대형병원에만 쏠려 있던 의료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당장 생명이 위험한 중증 질환 중심으로 병원과 의료계가 움직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살아가는 데 불편함을 겪는,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질환을 치료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두한 원장과 두 명의 동료도 그중 하나였다. 긴 대기시간과 비싼 진료비를 감수하고 진료를 받아도 ‘사소한 질환’ 취급을 받는 대장항문 질환 환자들에게 꼭 맞는 진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대장내시경 촬영 장면.
대장내시경 촬영 장면.

공부하는 의사가 만족도를 높인다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환자들의 발길을 돌리려면 무엇보다 특화된 기술이 필요했다. 기술은 배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두한 원장은 “대항병원이 전문병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늘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항병원이 개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빠짐없이 치르는 일정이 있다.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세미나다.

이두한 원장을 따라 대항병원 지하 1층 자료실로 향했다. 스무 명 남짓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넓지 않은 공간에 여러 종류의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방이었다.

“여기서 매주 한 번 세미나가 열립니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세미나는 강당에서도 열리지만 보통은 여기서 선생님들과 세미나를 갖습니다. 새로 나온 논문을 읽고 검토하고, 수술 사례를 공유하며 토론합니다. 이 시간은 젊은 의사에게는 경험을, 경험 많은 의사에게는 새로운 지식을 주기 때문에 매우 유용해 거의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대항병원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입해 대장항문 질환 치료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대장암 수술 방법 중 하나인 ESD, 즉 대장내시경점막하절제술이 그 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장암 수술은 정도에 따라서 배를 가르는 개복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수술이었다. 큰 용종이 있는 대장을 잘라내 이어붙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환자 부담이 크고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는 내시경 끝에 칼을 부착해 문제의 부위만 도려내는 ESD 수술 기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항병원은 여러 차례 검토를 거친 끝에 2006년 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팀을 일본에 파견 보냈다. 한 달 동안 일본에서 ESD만 공부하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ESD 수술 기법은 큰 성공을 거뒀다. 손바닥 크기만 한 용종도 내시경으로 떼어낼 수 있게 됐다. 환자에게 부담이 덜할 뿐 아니라 재발률도 훨씬 낮아졌다. 요즘은 아예 ESD 방법이 대장암 수술 기법의 주류가 됐다. 그 사이에 대항병원에서는 2500명 넘는 환자가 ESD 수술로 새 삶을 찾았다.

항문 질환에서도 대항병원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늘 배우고 도입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보통 치질 수술은 재발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치질이란 치핵·치루·치열 등 항문 질환을 통틀어서 일컫는 용어다. 치핵은 항문조직이 덩어리져 생기는 질환이고 치열은 점막이 찢어지는 질환이다. 치루는 염증으로 인해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대다수의 치질 환자는 치핵 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두한 원장은 “치핵은 약물로는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항문조직은 워낙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한 데다 치핵은 병변(病變)과 일반 조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걸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치핵이 남아 재발을 일으키는 겁니다.”

방법은 병변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단지 제거하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항문조직을 무턱대고 잘라낼 경우에는 항문이 좁아지고 구멍이 생겨 나중에 변실금 같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항문조직을 훼손하지 않고 점막을 들어내 아래 병변만 정확히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까다로운 수술이 대항병원에 오면 재발률 1%의 성공으로 이뤄진다. “배우고 노력해 습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숫자”라는 게 이두한 원장의 설명이다.

올림푸스사(社)의 최신 내시경 기기.
올림푸스사(社)의 최신 내시경 기기.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ASK’

대항병원은 철저하게 환자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두한 원장이 세미나 때마다 늘 강조하는 단어가 있다. ‘ASK’다.

“대항병원에서 가장 강조하는 단어 ASK는 태도라는 뜻의 attitude, 기술이라는 뜻의 skill, 지식이라는 뜻의 knowledge를 합친 단어입니다. 이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첫 번째 있는 태도, attitude가 제일 중요합니다.”

기술이나 지식은 의사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어떤 경우에도 질환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부족한 의사는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많이들 잊어버리는 것이, 의사를 좋은 의사로 만드는 것은 환자에 대한 태도라는 점이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환자가 의사를 믿고 선택하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 됩니다. 의사는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환자 친화적인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장비, 훌륭한 의사들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환자에게 필요한 병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믿고 찾아올 수 있는 병원이 돼야겠지요.”

병원은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줄곧 고민해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치질 환자는 65만명에 달하는데 20대 여성 환자가 5만명으로 남성 환자(4만명)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했다. 잘못된 배변 습관, 변비 질환 같은 원인 때문에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는 여성 환자는 좀처럼 줄지 않는 추세다. 하지만 대장항문 전문의 중 여성 의사는 소수다.

“대장항문 질환이 외과 질환이라 수술 비중이 높은 데다 질환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여성 의사가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여성 환자를 위해서는 여성 의사가 있어야겠지요. 대항병원은 초창기부터 여성 의사를 영입해 여성전문클리닉을 만들었습니다.”

대장질환 진단을 받으러 대형병원을 찾았다가 다시 치료를 받으러 대항병원으로 오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전문병원으로는 최초로 대장내시경센터도 개설했다. 대항병원의 대장내시경센터에는 15명의 대장내시경 전문의가 상주하며 월 3000여건의 대장내시경을 시행하고 있다. 내시경을 받다가 용종이 발견되면 즉시 절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이 매우 적다.

환자들이 필요한 곳에서 환자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 진료한다는 대항병원의 목표는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몽골, 중국 등지에서 환자 유치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는 그 인구에 비해 의료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대항병원이 처음 개원할 무렵 한국의 상황처럼 대장항문 질환을 미처 신경 쓰지 않다가 큰 병으로 키우는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대항병원은 이들 국가에서도 환자들을 치료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사실 대다수의 대장항문 질환은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질환이 아닙니다. 하지만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질환이죠. 숨기고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치료하려다 보면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질환인 거죠. 대장항문 전문병원으로서 대항병원은 환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두한 원장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대항병원의 곳곳에 그런 생각이 녹아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병원’, 대항병원의 캐치프레이즈다.

인터뷰 | 이두한 대항병원 대표원장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 선물해주고 싶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두한 원장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던 1982년은 의료계에 변화가 일어나던 시점이었다. “죽고 사는 문제에서 조금 벗어나 잘 사는 문제를 고민하던 시점이었죠. 어렸던 저는 ‘잘 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항병원 지하에 위치한 원장실에서 만난 이 원장은 줄곧 웃는 얼굴이었다. 직원들은 그를 두고 ‘둥글둥글한 원장님’이라고 표현했다. “환자에게 늘 좋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원장이 웃으며 던진 말이었다.

그는 맨 처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장항문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있다 보면 암 같은 중증 질환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질환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장항문 질환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의대 동기인 강윤식 전 원장, 김도선 원장과 함께 대장항문 전문병원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는 주변에서 만류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지도교수님은 그냥 외과도 장사가 안 되는데 대장항문 전문 외과를 찾는 환자가 있겠느냐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문을 열자마자 쉴 틈도 없이 환자가 쏟아졌다. 개원 9년 만에 사당동에 9층짜리 새 건물에 ‘대항병원’이라는 이름의 병원도 새로 세웠다. 그러나 병원의 성공과는 별개로 이 원장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항문 질환을 손쉽게 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대장항문 질환을 정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까다로웠다. “그저 병변만 도려낸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정확히 도려내는 방법부터 부작용이 없는 방법, 시간이 흘러 노화가 진행돼도 다른 질환을 유발하지 않는 방법이 늘 새로 제기됐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대항병원에서 정기 세미나 시간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원장은 의사들의 공부를 적극 지원하는 원장이다. 대항병원의 의사들은 수술실적은 물론 학회활동에도 열심이다. “대장항문 질환을 선택하면서 저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해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환들을 정복하지 못하면 더 나은 삶을 주기는커녕 쳇바퀴만 맴돌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이 원장이 최근 관심을 가지는 난치 질환은 변실금이다. 변실금은 그 원인과 치료법이 명확하게 개발되지 않았다. “대부분 노화로 생기는 질환인데 정말 난제입니다. 괄약근을 잘라서 치료하는 방법이 있는데 부작용이 매우 크죠. 어떤 치료방법이 좋을지 연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시간 내에 정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0여년을 대장항문 전문의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없을 수가 없다. 이 원장에게 기억에 남는 환자는 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환자들이다. “여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발전된 편입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지방에서는 잘못된 치료법을 접하고 병을 악화시켜 오는 환자가 많죠. 오늘 아침에도 잘못된 치료를 받은 치핵환자가 내원했습니다. ‘몰랐던 것이 죄’라고 한숨을 쉬는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환자들에게 올바른 치료법을 제공하고 낫지 못하는 환자가 없게 만드는 것,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꿈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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