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지난해 8월, 경기도 용인의 한 중학교 3학년생 A양은 친구 소개로 만난 고교생 B씨로부터 성매매 권유를 받았다. 이후 A양은 약 3개월 동안 20차례 이상 무차별적으로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B씨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끌어모은 30~40대 남성들을 상대로 성매매가 이뤄진 것이다. B씨는 A양이 10대라는 점과 피임도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내세워 성매매 건당 15만~20만원을 받았다. 올해 고등학교로 진학한 A양은 수업을 받는 도중 발열과 함께 극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A양은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후천성면역결핍증인 에이즈(AIDS)로 판정받았다.

# 사례 2

지난 10월 12일 제주에서 조건만남을 미끼로 강도 행각을 벌인 10대들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추석 연휴 동안 스마트폰 앱을 통해 10대 성매매 광고를 올렸고, 이를 보고 연락한 남성들을 한 숙박업소로 유인했다. 남성들은 약속 장소인 숙박업소로 갔다가 10대들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해 돈을 뜯겼다. 10대들이 추석 연휴 동안 남성 6명을 성매매로 끌어들인 뒤 갈취한 돈은 4000여만원에 달했다. 성매매 광고를 올린 10대 학생들은 남자 4명과 여자 2명으로 이 가운데 3명은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3명은 재학 중이었다.

성매매를 한 여학생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고등학생들이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 최근 10대 청소년 성(性) 비행이 잇따르고 있다. 이 모든 범죄가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루어졌다. 가입자 신상정보를 등록할 필요가 없는 채팅 앱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기자가 스마트폰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채팅’이란 검색어를 입력하자 관련 ‘앱’만 100개 이상 검색됐다. 앱 이름은 각각 달랐지만 모두 ‘은밀한 만남’ ‘즉석 만남’ ‘익명 만남’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 포털사이트에 대표적 채팅 앱인 ‘○톡’을 검색하자 조건만남 단속을 피하는 법, 성매매 단속 기간 등을 질문·답변한 내용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이러한 채팅 앱을 즐겨 사용한다는 차대훈(가명·18)군의 말이다. “요즘 고등학생 사이에서 스마트폰에 이런 채팅 앱을 다운 안 받은 친구들이 거의 없다. 실제로 앱을 통해 이성친구를 만나는 친구들이 많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 만큼 짜릿하고 설레는 느낌이 크기 때문에 한때 매일같이 채팅창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가입제한 없는 채팅 앱 100개 이상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가족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2016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를 조장하는 앱은 317개, 관련 웹사이트는 10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매매 조장 앱 317개 가운데 278개(87.7%)는 본인인증 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연구원이 19세 미만 청소년 198명을 대상으로 성매매 실태를 파악한 결과 응답자 173명 중 107명(61.8%)이 조건만남 경험이 있다고 했다.

조건만남을 한 청소년의 74.5%가 채팅 앱과 채팅사이트를 매개체로 활용했으며 절반에 가까운 48.6%의 학생이 임신 또는 성병 등 신체적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스마트폰 채팅 앱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는 상태다.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의 말이다. “채팅 앱 등이 청소년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규제나 법령이 하나도 마련돼 있지 않다. 하루빨리 법을 만들고 관련 전담팀 등을 구성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의 에이즈 감염은 시간 문제였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청소년들도 어른에게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실제 10~20대 에이즈 감염자는 10년 새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12일 성일종 의원(자유한국당)은 질병관리본부가 제출한 에이즈 발생 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에이즈 신규 감염자는 200만명으로 2000년(310만명)보다 35% 줄었다. 반면 2016년 국내 에이즈 신규 감염자는 1062명으로 2000년(219명)보다 늘어났다. 10대 신규 감염자는 2006년 13명에서 2016년 36명, 20대는 158명에서 360명으로 증가했다. 10~20대 감염자를 합칠 경우 10년 새 171명에서 396명으로 2.3배나 늘었다. 전체 감염자 중 10대 비율도 2000년 0.7%에서 2016년 3.3%로 늘었다. 20대는 22.3%에서 33.8%로 급증했다. 에이즈는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10대에 감염돼 20대에 감염 사실을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병 사각지대 놓인 청소년들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채팅’으로 검색하면 관련 ‘앱’이 수백 개가 검색된다.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채팅’으로 검색하면 관련 ‘앱’이 수백 개가 검색된다.

10대의 성병 문제는 비단 에이즈뿐만이 아니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들은 성병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팀이 2014년 국내 청소년보호센터와 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 중인 12∼19세 237명(남 208명, 여 29명)을 대상으로 성병균 감염 여부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들을 소변 검사한 결과 56.1%(133명)가 1개 이상, 35.5%(54명)는 2개 이상 성병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3개 이상과 4개 이상 성병을 갖고 있는 경우도 각각 9.2%(14명), 3.3%(5명)에 달했다. 보호관찰은 범죄인을 교도소 등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하면서 개선·갱생시키는 제도다.

검출된 성병균은 유레아플라스마 파붐(24.1%), 마이코플라스마 호미니스(17.3%),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13.9%), 트리코모나스(0.8%) 순이었다. 모두 요도에 염증을 일으켜 배뇨 시 통증, 분비물, 피 섞인 소변 등을 동반하는 비임질균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전립선염, 고환염, 골반염, 불임 등을 초래한다. 클라미디아 등의 성병균은 산모에게 자연유산이나 조산을 일으킬 수 있다. 전통적 성병인 임질균 감염자는 1.7%(4명), 매독은 0.8%(2명)였다. 조사를 주도한 이재갑 교수는 “조사 대상 청소년의 64.1%가 성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나 성관계 때 콘돔을 사용했다는 응답은 27.6%에 그쳤다. 청소년에게 실제적인 성교육과 적절한 치료 기회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말대로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대상 성교육은 보건교사가 1년에 약 17시간 이상 실시하는 내용이 전부다. 성교육 내용 역시 남녀 신체구조의 차이, 성윤리 등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으로만 구성돼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6억 원을 들여 2015년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시대착오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표준안에는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표준안은 교육부가 연령대별 성교육을 체계화하겠다며 만든 ‘성교육 가이드라인’이다.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2013~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의 성교육 경험률은 75.7%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교 1학년의 성교육 경험률은 84.9%인 데 반해 고등학교 3학년은 61.0%로 낮은 수준이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교육을 받은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2009년 발간한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세부터 성교육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5~8세, 8~12세, 12~15세, 15~19세 등 각 연령대에 따른 성교육 지침서가 있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다. 만 4세부터 성교육, 15세부터는 피임을 교육한다. 중학교 때부터 학생들에게 사용이 가능한 콘돔을 무료로 나눠준다. 핀란드는 1970년부터 성교육을 필수 교과로 채택하고 있다. 미국 역시 유치원 때부터 성교육을 하는 등 이른 나이부터 체계적인 성교육을 실시한다. 캐나다는 학교에서 역할극을 통해 위험 상황 대처법을 알려주고 위생적인 자위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성인용품점 앞에는 청소년만 이용할 수 있는 콘돔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photo 연합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성인용품점 앞에는 청소년만 이용할 수 있는 콘돔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photo 연합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 등장

우리나라 역시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성지식이 부족한 10대 청소년들이 피임약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사후피임약은 다량의 호르몬을 투입해 임신을 막지만 부작용이 커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구매가 가능하다. 일반 피임약에 비해 포함된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의 농도가 약 10배 정도 높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사후피임약을 구매해 오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이 발표한 피임약 자료에 따르면 2014년 2억3424만정이었던 전체 피임약 공급량은 2015년 2억5248만정, 2016년 3억976만정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후피임약 공급량은 172만정에서 145만정으로 감소한 반면, 사전피임약 공급량은 2억3424만정에서 3억976만정으로 증가했다. 2013년 659건이었던 피임약 부작용 보고건수는 2016년 958건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16년 한 해 동안 30대의 피임약 부작용 보고건수가 476건이었고 40대가 288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2016년 10대 청소년의 피임약 부작용 보고건수도 19건에 달했다. 심지어 10대 미만에서도 8건의 피임약 부작용 보고사례가 있었다. 피임약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유방통이 있으며 그 외에 두통, 복통, 생리주기 변화 등이 있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15~59세 남녀 6500명을 대상으로 피임제 사용실태, 부작용 발생 등에 대해 실시한 실태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급피임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여성)이 36%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에게 사후피임약 대신 차라리 콘돔 등 다른 피임 방법을 이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성일종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별 분만 및 유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19세 분만 인원이 1936명에 달한다. 또한 18세 이하 청소년 분만 인원도 1399명으로 나타나 19세 이하 분만 인원은 총 3335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유산의 경우에도 19세가 243명, 18세 이하 청소년이 230명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0대 청소년들의 피임 문제를 더 이상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예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보급하기 위해 나선 기업도 있다. 소셜벤처기업 ‘인스팅터스’는 직접 개발한 콘돔을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배달해주는 ‘프렌치레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업체는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초 인스팅터스는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서울 신논현·이태원, 광주 충장로, 충남 홍성에 설치했다.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콘돔 가격은 2개들이가 100원. 이 콘돔은 식물성 원료만 사용하고 동물 실험을 진행하지 않은 제품만 받을 수 있는 ‘비건(vegan)’ 인증을 받았다. 자판기에 별도의 연령 인식 시스템은 없어서 어른들이 몰래 콘돔을 뽑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콘돔을 몰래 뽑아가는 성인들이 늘어나자 해당 업체는 청소년 콘돔자판기 판매 방식을 바꿨다. 벽보에 적힌 카카오톡으로 청소년들이 연락을 하면 관계자가 직접 콘돔을 전달해주고 있다. 당시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박진아 인스팅터스 공동대표가 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콘돔이 필요한데 구할 수 없어서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판기 설치 초기에는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왜곡된 인식 탓에 꺼리는 곳이 많았지만, 이제는 학교에도 설치해 달라는 제안이 접수될 만큼 긍정적인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용인의 한 여학생의 에이즈 감염사건으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10대들의 성문제는 심각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0대 성매매 규제 법 강화와 함께 성교육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선진국에서처럼 학교에서 피임기구 사용법, 성병 예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의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청소년의 성관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의 말이다.

“현재 이뤄지는 청소년 성교육은 대부분 콘돔 사용 등 임신하지 않는 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부모나 학교가 청소년의 성관계를 지나치게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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