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오전 제1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열린 청와대 집현실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등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6일 오전 제1차 반부패정책협의회가 열린 청와대 집현실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등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검찰 내 적폐청산’이었다. 청와대는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사법연수원 23기)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 직후 지난 정부가 임명한 검찰 수뇌부를 전격 교체했다. 당시 청와대와 법무부는 청산 대상 검찰 간부들에게 ‘우병우 라인’이란 주홍글씨를 붙였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은 김수남 전 총장의 자진사퇴로 공석이 된 검찰 총수에 문무일(연수원 18기) 부산고검장을 임명하면서 마무리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정치검찰의 오명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도 언급하면서 ‘속도감 있고 강력한’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몸 낮춘 검찰, 현안 놓고 정부와 밀월

문무일 체제가 들어선 지 약 3개월, 검찰은 대통령 주문대로 ‘정치’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뤄지는 한풀이식 보복 수사와 상대 진영의 근간을 도려내기 위한 ‘정치검찰’의 행보는 과연 해소됐을까.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에 맞춰 전담 수사팀 확대의사를 밝힌 검찰의 최근 행태를 보면, 위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라는 명제 아래 9년 동안의 보수정권 집권기간 전체를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검찰의 모습은, 과거 정권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이 뇌물과 부패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문무일 체제 검찰이 겨누고 있는 칼끝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문무일 총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접 “수집된 증거가 있다면 (수사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열어놨다.

우병우 라인 숙청과 동시에 진행 중인 지난 정권 국정원 활동에 대한 수사는 ‘적폐청산’이란 본래의 궤도에서 이탈해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정치권력과 결탁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검찰의 구태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검찰의 행보는 그 범위를 넘어섰다는 경고음이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문무일 체제 이후 대통령이 강조한 검찰의 탈(脫)정치화는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그는 “검찰의 정권 종속화는 지난 정권에 비해 몇 배는 더 심해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 근거로 정권 차원에서 더 이상 ‘검찰 개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알아서’ 움직여주는데 청와대와 여당이 먼저 나서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얘기는 나오지만 검찰의 권한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내부 시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다들 얼어 있다. 누구든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움츠러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들이 월급쟁이가 다 됐다”며 “소신도 기개도 사명도 찾아볼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검찰의 정치화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하다”며 “문무일 총장이 너무 유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 수뇌부가 ‘우병우 라인 척결’을 명분 삼아 유능한 중간 간부를 대거 한직으로 내치면서 내부 분위기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관측도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공통적으로, 정권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검찰 수뇌부의 태도에 강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주요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 당사자인 검찰 조직이 ‘패싱’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와 정권의 밀월관계는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찰은 문화계 블랙·화이트리스트 수사, 청와대 및 국정원의 보수단체 지원 의혹 수사, 보수단체의 관제데모 의혹 수사 등 보수진영 전체를 겨냥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수사권 조정(독립)을 놓고 검찰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경찰 전직 수뇌부를 대상으로 한 사건도 포함돼 있다.

요직 진출 ‘박영수 특검’ 멤버들

검찰이 현 정부 구상대로 보수 진영의 뿌리를 뽑으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검찰은 대기업들이 보수단체를 지원한 현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최근 검찰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보수단체를 지원한 내역 제출을 요구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지정한 기간은 보수정권의 집권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이 기간 동안 이뤄진 대기업의 사회공헌 중 유독 보수단체만을 특정해 그 내역의 제출을 요구했다는 건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무일 체제’ 이후 검찰과 정권의 유착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바탕에는 ‘박영수 특검’이 있다.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해 출범한 박영수 특검은, 태생적으로 현 여권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정권교체 이후 이뤄진 인사에서 박영수 특검 멤버들은 검찰 내 요직에 중용됐다. 대표적인 인사가 윤석열 중앙지검장과 한동훈(연수원 27기) 3차장이다.

고검 검사 신분으로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장은 정권교체 직후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최고 요직인 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 파견검사로 호흡을 맞춘 한동훈 부장도, 이어진 중간 간부 인사에서 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했다. 청와대가 신임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후보자 내정 전에 윤석열 중앙지검장 임명을 직접 발표한 사실은 ‘검사 윤석열’에 대한 정권의 신뢰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동훈 부장의 중앙지검 3차장 임명도 파격이다. 그의 전임자는 연수원 22기, 한 차장보다 5기수나 위다. 윤석열 검사장과 한동훈 차장에 대한 검찰 내부 평판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윤 검사장과 함께 일했던 검사 출신 A 변호사는 “말 그대로 진짜 검사”라며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고 했다. 한동훈 차장의 경우는 ‘천재 기획통’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두 사람 모두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승진이 파격적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A 변호사는 “한동훈 차장의 실력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의 3차장 승진은 적어도 두 기수 이상 빠르다”고 촌평했다. 그는 윤석열 검사장의 승진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색깔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라면서도 “그가 평소 가진 ‘코드’가 현 정부와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양원석 뉴데일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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