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2년마다 실시하는 ‘사회조사’ 결과를 보자. ‘우리 사회가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9.2%에 그쳤다.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7.1%나 됐다. 이 결과는 2년 전인 2014년에 비해 늘어난 수치다. 당시 같은 질문에 대해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은 64.5%였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2014년 조사에서는 범죄를 가장 큰 불안요소로 꼽은 사람이 19.5%에 그쳤는데 2년 뒤 2016년에는 29.7%가 됐다. 신종 질병, 환경오염이 제일 불안하다는 응답도 조금씩 늘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자녀를 둔 주부 김성희씨는 이 조사 결과에 공감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뉴스를 보기가 무섭게 점점 흉악범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끔찍한 범죄도 많고 이해가 안 가는 범죄자들도 많은데 처벌도 미적지근하고 아예 가해자를 보호해주는 것 같은 사회가 정말 싫어요.”

범죄뿐만 아니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5.9%에 달했다.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56.2%가, 신종 전염병에 대해서는 55.1%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이렇게 답한 사람 중 하나인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인 전유성씨는 최근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강박증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재작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에 잠시라도 외부와 접촉하면 손과 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게 되었어요. 작년에 지카바이러스로 난리가 난 이후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는 통에 못 견딘 가족들의 권유로 정신과에 가서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서울 종로구에서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을 운영하는 신성현씨는 지난 여름부터 여자친구와 함께 채식을 시작했다. “채소와 과일만 먹는 비건(Vegan) 채식주의자가 되자고 결심했고 실행에 옮기고 있어요. 평소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는 뉴스를 보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신씨에게 ‘살충제 계란 파동’은 최근 어떤 사건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사건이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켜기만 하면 살충제 계란 관련 뉴스가 보이기도 했지만 신씨 본인도 어떤 계란을 먹어야 할지, 얼마나 검출이 됐는지 계속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정보 사이에서 믿을 만한 정보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아예 달걀과 유제품 섭취를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신씨는 한국 사회를 “위험한 곳으로 달려가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정말 한국 사회는 위험해졌을까. 대검찰청에서 매년 내놓는 범죄분석 보고서를 보자. 살인범죄는 2009년 1390건이 발생한 이후로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었다. 2015년에는 958건으로 2014년의 938건보다 조금 늘어나기는 했지만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강도범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10년 4402건이었던 강도범죄는 2015년 1472건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폭행·상해범죄는 1년에 발생하는 건수가 20만건 이내로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단 성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 같은 심각한 유형의 범죄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는 데 비해 카메라 같은 전자기기를 이용한 촬영 범죄, 즉 도촬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성추행 같은 범죄가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또 성폭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해 피해 신고가 증가했기 때문에 성범죄 발생건수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옛 국민안전처)에서 발표하는 재난안전 통계도 살펴보자. 2012년 이후로 해마다 자연재해 피해액은 줄어들고 있다. 화재발생 건수도 4만건을 전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119 출동 건수와 구조 인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가 위험해졌다기보다 119 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이유가 더 커 보인다.

이 같은 경향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례적이기도 하다. 지난 9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흉악범죄는 2015년에 비해 4.1% 늘어났다. 특히 살인사건이 많이 늘었는데 해마다 8~10%씩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통계청이 7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영국의 범죄 증가율은 최근 10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에 비해 폭력범죄가 18%, 강도사건이 16%, 살인사건이 26% 증가했다. 통계수치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각종 테러사건을 봐도 그렇다. 미국, 영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의 치안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그러나 안전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OECD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통계에 따르면 ‘밤에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답한 미국인은 73.9%였다. 영국은 77.8%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한국에서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67.7%에 불과했다.

제목만 바꿔 범람하는 나쁜뉴스

‘한국 사회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일반적 인식은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왜 차이가 생겨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요인은 뉴스 때문이다. 이기수 전남대 해양경찰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조사를 해보면 우리가 엽기적이고 충격적이라고 생각하는 잔혹범죄의 사건 수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뉴스를 취급하는 미디어 수가 늘어났고 한 사건을 보도하는 횟수가 증가하면서 잔혹범죄가 늘어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기수 교수와 윤상연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1년부터 5년간 언론에 보도된 잔혹범죄 건수는 매년 5~10건 정도로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사건을 다루는 뉴스의 수는 무척 많아졌다. 2011년에 잔혹범죄 한 건당 뉴스 건수가 202.5건에 그쳤는데 2012년에는 709.3건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2015년에 이르면 1198.4건을 기록했다. 한 사건에 대해 1200개의 뉴스가 나왔다는 얘기다.

인터넷 언론 매체가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12년 1669개였던 인터넷 매체는 2015년 2767개로 늘어났다. 등록만 하면 누구나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연히 인터넷 매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됐다. 설립된 지 6년이 지났지만 5명 남짓한 기자들이 매일 10개씩 생산하는 기사로 운영해가는 한 인터넷 매체의 편집장 얘기를 들어보자.

“일단 매체의 이름을 알려야 하고 네티즌을 유인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 새로운 사실을 찾아 기사를 작성하는 것보다 빨리 생산해낼 수 있는 기사가 중요합니다. 애초에 현장 취재를 하는 기자들도 없고, 저부터가 정통 기자 출신이 아니니까요. 인터넷 언론의 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키워드를 뽑아내서 적당히 우라까이(베껴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겁니다.”

범죄·사고·재난 같은 나쁜 소식에 대한 뉴스, 즉 ‘나쁜뉴스’는 ‘잘 팔리는’ 뉴스다. 구교태 계명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나쁜뉴스는 뉴스 이용량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사회가 불안하다고 생각할수록 뉴스를 찾고, 뉴스를 찾으면서 사회를 더 불안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쁜뉴스는 단순하고 자극적으로 불안한 현실을 알려준다. 한국에서 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던 지난해 경주 지진 발생 당시를 보자. 그때 지진이 없었다면 지진 관련 뉴스 역시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물의 내진설계와 재난 발생 시 행동지침 같은 문제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를 전혀 대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문제지만, ‘사건’이 없으면 재미 없는 훈계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와장창 쏟아지는 유리, 흔들리는 물컵, 울먹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함께 나간다면 흥미로운 뉴스가 될 수 있다.

나쁜뉴스가 얼마나 많이 유포되고 있는지, 현실과 인식을 얼마만큼 괴리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지난 10월 13일은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어금니 아빠’ 이영학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던 날이었다. 이날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 업로드된 기사는 800건이 넘었다.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세상은 안 바뀐다…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 (A매체)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하더니… (J신문)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살인의 원인은 성적 스트레스? “유병장수하세요” (T매체)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살인의 원인은 성적 스트레스? “죗값 충분히 끝까지 치르길” (H매체)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딸은 추행유인·사체유기 혐의로 ‘불구속’ (N매체)

이영학, 사이코패스 성향↑… “검사 결과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딸은 불구속 (H매체)

기사 제목만 바꾼 채로 표현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다수 기사에는 ‘디지털뉴스팀’ ‘온라인뉴스팀’같이 익명의 기자가 등장한다. 새로운 내용도 없다. 하지만 기사 양이 늘어나다 보니 사건의 심각성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범죄뉴스뿐 아니다. 사고와 관련된 뉴스도 그렇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강남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배우 김주혁씨에 대한 기사는 반나절 만에 1300건을 넘었다. 새로운 사실을 실은 기사는 거의 없었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 보도하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키웠다. 사회적 논란에 대한 기사도 반복해서 생산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펴낸 책 ‘인터넷신문의 뉴스 생산 및 유통구조 연구’를 보면 조사 대상 기사 292개 중 58.6%가 기자 이름이 적시되지 않은 기사였다. 기사가 쉽게 검색되도록 검색어를 집어넣거나 제목만 바꿔 다는 어뷰징(abusing)이 기사마다 등장했다. 5줄도 안 되는 기사가 43.2%에 달했고 구체적인 사건 내용 대신 네티즌의 반응으로 구성한 기사도 26.2%였다.

지난 10월 11일 이영학의 사건 현장 검증 장소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10월 11일 이영학의 사건 현장 검증 장소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인터넷 매체만큼이나 비슷한 내용의 기사 양을 늘리는 요인은 종합편성채널의 뉴스프로그램에도 있다. 실제로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면서 같은 주제에 대한 보도 횟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3월 인천에서 8살 초등학생이 10대 여학생에게 무참히 살해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이 있었다. 주범과 공범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린 다음날인 8월 30일 오후 4~5시, 3개의 종합편성채널과 1개의 뉴스전문채널에서 시간차를 두고 공판과 관련된 뉴스를 쏟아냈다. 변호사, 시사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여러 패널이 등장해 공판 내용을 반복하는 뉴스는 이날 아침부터 밤까지 채널을 바꿔가며 계속됐다.

종합편성채널의 패널들이 반복하는 뉴스의 특징이라면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보통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는 정해진 규칙에 맞게 문장을 다듬어 제공되곤 한다. 그러나 뉴스프로그램의 패널이 전하는 정보는 그보다 덜 정제된 경우가 많다. 특히 범죄 뉴스의 경우 범행수법과 동기, 수단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곤 한다.

지난 10월 21일 경기도 용인에서 의붓아버지와 어머니, 의붓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30대 남성에 대해 종합편성채널 뉴스프로그램의 패널이 전한 내용이 그렇다. “안방에서 살해했는데 범죄 현장을 정리하고 사체를 베란다에 내놓았다. 부패하면서 이웃에 들킬까봐 내놓은 것이다.… 아버지 시신은 강원도 횡성에 주차된 렌터카 트렁크에서 발견이 됐는데 살해한 장소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졸음쉼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패널의 말이 끝나자 앵커는 “이런 비참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에 주변 이웃들의 목소리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라며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주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내보냈다. 그러면서 용의자가 어떻게 알리바이를 만들고, 피해자 시신이 어떻게 발견됐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기수 전남대 교수는 구체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치열해진 언론의 경쟁 풍토뿐 아니라 대중의 욕구에도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범죄수사를 다루는 미국 드라마나 범죄영화가 유행하는 등 범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범죄를 단순히 도덕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과정, 수법에 대한 지적호기심이 강해졌는데 언론이 이런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이영학이 저질렀던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로 돌아가 보자. 살인 용의자의 이름이 이영학이라는 사실이 공개됐던 지난 10월 10일부터 11월 2일까지 4000건 넘는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이영학, 드러나는 ‘변태 성향’… 여성 트라우마·성기변형 수술 후 성불구 (E매체)

‘어금니아빠’ 이영학, 수면제 먹은 A양과 24시간 단둘이… ‘성행위 기구’ 발견 (M방송)

용의자의 범행이 얼마나 선정적이고 용의자가 얼마나 변태적인지에만 집중한 언론 보도의 절정은 10월 13일에 나온 ‘이영학, 24시간 음란행위하다 여중생 깨어나 저항하니 살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통신사에서 처음 작성한 이 기사는 그대로 다른 언론사에 배포됐다. 기사는 이영학이 피해자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지난해 1월 부천에서 아동학대로 아들을 숨지게 한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후 은폐해오다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보도를 보면 이영학 사건 못지않게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진 매에 죽어간 아이’라는 감정적인 제목 아래 부모의 범행이 시간대에 맞게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이튿날인 9일 C씨는 친정에 딸을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8시30분쯤 집에 도착한 C씨는 남편이 배가 고프다고 하자 치킨을 주문해 먹었다.… 이어 남편이 도구를 이용해 숨진 아들의 신체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C씨는 필요한 장갑을 갖다 주고 훼손한 시신을 봉지에 담는 등 남편의 범행을 거들었다.… 그러나 냉장고가 너무 좁아 A군의 사체 중 머리와 신체 일부를 냉동실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부천시민운동장 여자 화장실에 버렸다.” (K신문)

정용국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TV 뉴스의 선정성이 시청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지도한 연구에 따르면 선정적인 뉴스는 세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선정적인 뉴스는 시청자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뉴스에 집중하게 만든다. 또 세부적인 내용을 잘 기억하게 하고 사회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모두가 고독하고 불안한 사회

질병이나 식품 안전, 생활 안전에 대한 뉴스는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보도된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지난 8월 15일 처음 경기도 양주시의 한 농가 계란에서 살충제 피프로닐이 검출된 이후 일주일에 걸쳐 매일 살충제 계란이 추가로 검출됐다. 6곳, 25곳, 31곳으로 늘어나는 살충제 검출 농가의 수는 소비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는 전체 농가의 4%에서만 살충제가 검출된 수준이었지만 아예 계란 섭취를 중단한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계란 먹기가 꺼려진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54%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나쁜뉴스는 단지 사회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소수의 끔찍한 범죄 사건들이 여러 매체에서 경쟁적으로 반복해 보도될 경우 사람들은 범죄가 점차 흉악해지고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런 인식은 사회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를 떨어트리고 사회적 유대를 깨트린다”고 설명했다. 최근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강력범죄의 가해자 유형을 보면 매우 다양하다. 낯선 사람(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살인사건)부터 같은 동네에 사는 10대 청소년(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친구 아버지, 아들에 이르기까지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마저 위협적이라는 메시지가 계속 전달된다.

한국 사회가 대표적인 저(低)신뢰 국가 중 하나인 이유는 이런 부정적인 사회인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 OECD의 사회조사(Society at a Glance)를 보면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6.6%에 그쳤다. 통계청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도 “이웃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38.2%에 달했다. “낯선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매우 높아 86.7%였다. 이런 조사 결과로 미뤄 보자면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 채 위험한 사회에 대해 불안해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상황이다.

언론이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보도 태도를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때 언론들은 ‘인권 보도준칙’을 제정해 피해자 인권을 보호하고 대중이 불필요하게 선정적인 정보를 얻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둘러싼 언론보도는 대중이 제대로 된 사회인식을 하는 데에도 지장을 줄 정도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바로잡는 것과 더불어 관련 정부기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경찰, 식약처, 기상청 같은 정부기관은 언론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되 과도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보도준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한국기자협회와 학술단체 등에서 만든 보도준칙은 여러 개 나와 있다. 2004년에 제정된 자살 보도준칙은 자살 방법과 동기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말고 자살 여부를 단정 짓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13년 만들어진 감염병 보도준칙에는 ‘패닉’ ‘공포’ 같은 단어를 가급적 쓰지 말자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지난 봄 전국을 긴장시켰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 당시 언론은 이를 지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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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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