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81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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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을 노리는 희귀난치병] 루푸스

5년 새 40% 증가… 20~30대 여성 위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48만명이던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 수는 지난해 71만명을 넘었다. 암 환자 수가 103만명인 것에 비춰 의외로 많은 숫자다. 희귀난치성 질환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우리 모두가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대기업 입사가 확정됐었어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무리를 했었나봐요. 어느 순간부터 고열에 시달렸어요. 갑자기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는데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지요. 하혈도 하다가 하루는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쓰러졌어요. 병원에 이송돼서 여러 검사를 해본 결과 ‘루푸스(Lupus)’ 진단을 받았어요. 처음 들어보는 병 이름이었죠.”
   
   18년 동안 ‘루푸스’ 환자로 살아온 김진혜씨의 이야기다. 보통 루푸스라고 불리는 ‘전신홍반루푸스(SLE)’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몸 안의 면역체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인데 면역체계의 공격으로 몸 곳곳에서 염증이 생기는 병을 루푸스라고 한다. 낯선 이름만큼이나 환자 수도 많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국내 루푸스 환자는 2만2715명이다. 10만명당 환자 수가 43명 정도로 희귀난치성 질환의 하나로 분류되지만 최근 발병률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2011년 1만6600명에 비해 5년 새 40%가 늘었다.
   
   루푸스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어디에 어느 정도의 염증이 생길지 모르는 병이다. 루푸스의 이름에서 증상을 짐작할 수도 있다. 루푸스는 라틴어로 ‘늑대’라는 뜻의 단어인데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피부에 늑대에 물린 것처럼 붉은 발진이 일어난다는 것에서 따온 이름이다.
   
   피부 질환은 루푸스 환자에게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다. 얼굴이나 목, 가슴 부위의 피부가 붉게 변하기(紅斑)도 하고 탈모가 급격히 진행되기도 한다. 관절염, 근육통 같은 통증은 매우 흔하다. 병이 악화될 경우 신장에도 염증이 생기는데 루푸스 환자의 40~70%가 단백뇨, 신장염 같은 신장 질환을 앓는다. 뇌 부분에 염증이 생기면 신경증이나 뇌졸중, 수막염, 인지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폐에 염증이 생기면 폐렴을 앓게 된다. 혈관염이 생기기도 하고 혈소판이 감소하면 위중한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합병증을 앓아 한 가지 증상이 약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에서 병이 악화될지 모른다.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푸스 환자들이 평생을 염증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약물치료로도 충분히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서창희 아주대 의대 교수(류마티스내과)는 “예전에는 2년 생존율이 50%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이었지만 지금은 5년 생존율이 90~95%에 달하는 질병으로 평생 관리를 해야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말했다. 루푸스 환자들은 평생 약을 먹으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김진혜씨의 18년 투병 생활을 들어보자.
   
   “처음에 루푸스 진단을 받고 회사에 병가(病暇)를 냈어요. 한 달 정도 약을 먹고 관리를 하다 보니 증상이 괜찮아지더라고요. 다시 회사에 복귀를 했습니다.”
   
   입사 초기 건강문제로 병가를 냈다는 사실을 만회하고 싶었던 김진혜씨는 열심히 일했다. 야근도 도맡아서 할 정도였다. “제가 앓는 병이 어떤 병인지 잘 몰랐어요. ‘약 먹으니까 낫네’라고 방심한 거죠. 혈관염이 발생했고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면서 짓무르기 시작했어요. 머리가 뭉텅이로 빠져서 다시 나지 않게 됐어요. 28살, 29살 병을 얻은 지 5~6년 되던 때였죠.”
   
   김진혜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화된 증상이 좀처럼 낫지를 않았다. 특히 피부 질환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심할 때는 외출도 안 했는데 하더라도 눈 코 입을 모조리 가리고 선글라스까지 낀 채로 밖에 나가곤 했어요. 사람들이 흉측한 제 얼굴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죠.”
   
   
▲ 지난 5월 10일 ‘세계 루푸스의 날’ 행사 장면. photo GSK

   환자 90%가 여성
   
   김씨의 경험에서 루푸스 질환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루푸스 환자의 90%는 여성, 그중에서도 20~30대 가임기 여성이 70%이다. 루푸스의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대개 세 가지 원인이 꼽힌다. 루푸스 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배상철 한양대 의대 교수(류마티스내과)는 몇 년 전 루푸스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일부 규명해내기도 했다.
   
   “루푸스는 유전되는 질병이 아니지만 유전자 변이에 의해 일어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추가됩니다. 자외선은 루푸스를 발병시키는 가장 큰 환경적 요인 중 하나입니다. 피부발진을 일으키죠. 바이러스도 한 원인이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스트로겐, 여성호르몬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발병률이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가임기 여성의 발병률이 높다는 것은 몇 가지 문제를 불러온다. 가장 먼저 루푸스 때문에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특히 개인의 질병 때문에 업무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루푸스 환자의 경력단절은 더욱 흔한 일이다. 김진혜씨 역시 경력단절 여성이다.
   
   “루푸스 질환의 특징은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고 잘 관리하기만 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치료 후에 돌아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매우 많아요.”
   
   김씨는 두 번째 발병 후에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곳이 1997년 설립된 루푸스 환자 모임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이다.
   
   “피부가 짓물렀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에서 환자들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군요. 협회의 홈페이지 웹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점차 제가 할 일을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협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0년이 흘렀습니다.”
   
   김진혜씨는 순탄하게 일이 진행된 경우다. 많은 루푸스 환자들은 경력단절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적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한국 사회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인식도 낮지만 성인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관심도는 거의 없다. 루푸스뿐만 아니다. 대다수 희귀난치성 환자들은 질환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일을 환자 스스로 떠맡아 해결하고 있다. 병을 치료하는 일은 약을 먹어 증상을 완화시키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고 사회에 편입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안전망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20~30대 여성의 경력단절은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평생을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살아야 하는 루푸스 환자에게 직업훈련, 적응상담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협회뿐이다.
   
   “여기에 와서 비로소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고쳤다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이유도 없이 어느 날 평생 앓아야 하는 병에 걸렸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방황하던 환자들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진혜씨가 전해준 것처럼 루푸스 환자의 대다수는 우울증 같은 정신적 문제도 겪는다. 루푸스의 주된 증상이 피부 질환인 만큼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20~30대 여성 중에는 대인기피증에 걸리는 사람도 더러 있다. 결혼을 앞두고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는 이영미(가명)씨는 결국 결혼식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온 얼굴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는데 도저히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식을 취소하고 혼인신고만 한 채로 살고 있는데 한동안은 심한 우울증에 걸려 일주일에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였죠.”
   
   루푸스의 주된 치료제인 스테로이드 제제가 정신적 문제를 부추기기도 한다. 현재 의학기술로는 루푸스를 완화하는 데 스테로이드 제제만 한 치료제는 없다. 증상이 심각할 경우 하루에 60㎎에 달하는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제제를 투약하기도 하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찮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테로이드 제제는 얼굴, 목, 상체에 살이 찌게 한다. 골다공증도 쉽게 유발하고 종종 스테로이드에 의한 우울증이나 정신이상도 가져온다. 그래서 많은 경우 스테로이드성 약물은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서창희 아주대 교수는 “경증이거나 증상이 완화된 루푸스 환자는 약한 면역억제 효과가 있는 항말라리아제, 소염제를 일상적으로 복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항말라리아제나 소염제도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신약과 새로운 치료기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대다수다.
   
   실제로 최근 60년 만에 스테로이드 이외의 루푸스 치료제로 인정받은 생물학적 치료제 ‘벤리스타’가 출시되었고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이 이를 이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건당국으로부터 희귀난치성 질환의 치료제와 치료기술이 인정받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푸스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배상철 한양대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루푸스 질환자는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는데 대다수 질환자가 가임기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푸스 환자들의 건강한 임신과 출산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약제로 부작용을 겪는 극히 소수의 환자를 제외하고 루푸스 환자들이 임신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거의 없다. 루푸스 질환이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 질병도 아니다. 다만 전신의 염증 반응에 주의해야 하는 질환의 특성상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출산과 산후처리를 매우 신중하게 전문적으로 다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루푸스 환자 중에는 아이 두셋을 건강하게 낳아 잘 기르는 환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루푸스 질환에 대한 오해와 부족한 사회적 관심 때문에 루푸스 환자들의 대다수가 선뜻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해마다 루푸스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2만~3만명에 달합니다. 이들이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임신과 출산을 포기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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