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82호]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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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수수께끼 어선 ‘391흥진호’에 오르다

▲ 지난 11월 4일 오전 경북 울진 후포항에 정박된 흥진호의 외부 모습. 조타실이 2층에 있다.
지난 10월 21일 복어잡이배 ‘391흥진호’(이하 흥진호)가 북한에 나포됐다. 해경에 따르면 흥진호는 복어를 잡으러 울릉도 북동쪽 한·일 공동수역인 대화퇴어장에 갔다가 이날부터 연락이 두절됐다. 정부는 우리 어선이 북한에 피랍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 10월 27일에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선원들을 송환한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발표를 보고 피랍 사실을 알았다. 북한으로부터 풀려난 흥진호는 10월 28일 속초항을 거쳐 울진 후포항에 정박했다. 한국인 7명(선장 포함), 베트남인 3명으로 구성된 흥진호 선원 10명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포항으로 이동해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선장 남모(47)씨는 11월 3일 포항해경의 조사에서 “고의로 북한 해역을 침범해 조업했다”고 진술했다.
   
   북한에서 송환된 흥진호 선원들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됐다. 고의로 북한 해역을 침범한 남측 어선을 나포한 북한이 과거와 달리 6일 만에 선원 모두를 아무 대가 없이 풀어준 점, 어선에서 내리는 선원 전원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마스크를 쓴 점, 통상 젊은 선원을 구하기 어려운 어촌의 선박에서 20~30대로 보이는 선원 여러 명이 내린 점, 보통 12월이 되어야 잡히기 시작하는 복어를 10월 중순부터 잡으러 나섰다는 점 등이 주요 의문점이다. 심지어 마스크를 쓴 선원들이 북측으로부터 파견된 공작원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수수께끼로만 가득한 흥진호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월 3일 오후 늦게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의 후포항을 찾았다.
   
   
▲ 지난 11월 4일 오전 만난 흥진호 선원들. 기관장 A씨(오른쪽)와 베트남인 선원들이 출항 준비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릴 간첩으로 몰잖아요”
   
   11월 4일 오전 10시, 울진 후포항에 정박된 복어잡이배 ‘391흥진호’ 갑판에서 기관장 A씨와 베트남인 선원 3명을 만났다. 지난 10월 28일 후포항에 정박된 흥진호는 본래 후포항 포항해경 후포파출소 앞의 해경전용부두에 있다가 선주 고모씨의 요청으로 일반 부두에 옮겨져 조업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흥진호는 해경의 호위 아래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속초항으로 온 뒤 선원들의 요청에 따라 울진 후포항으로 들어왔다. 선원들은 후포항 도착 직후 포항에 있는 포항해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후포항 부두에 정박돼 있었지만 흥진호는 뭍에서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부두의 콘크리트 길과 평행하게 세워진 어선 네 척 중 두 번째로 바깥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흥진호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앞의 어선 두 척을 걸어서 넘어가야 했다. 앞의 어선들을 넘어서자 보이는 배 갑판에는 뜻밖에도 흥진호 선원 네 명이 있었다. 갑판 위로는 천장이 있고 그 위에는 푸른색 천이 덧대어 있었다. 먼 바다로 조업하러 나갈 때 만날 풍랑을 막기 위해서였다.
   
   선원들은 다시 조업을 하기 위해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후포항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어선의 출항이 금지된 상태였다. 이들 중 가장 선임자로 보이는 남성 한 명만이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외국인이었다. 이날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판 한쪽에 놓인 지름 10㎝ 정도의 푸른색 호스에서는 끊임없이 맑은 물이 나와 갑판의 이물질을 씻어내고 있었다.
   
   선원들 중 가장 선임자인 A씨는 50대로 보였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한 그는 흥진호의 기관장이었다. 옆면에 흰색 줄이 그려진 검은색 바람막이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A씨는 아무런 보호구 없이 전동 칼날이 움직이는 그라인더를 다루고 있었다. 그라인더에서 튀는 불꽃이 이따금 그의 맨얼굴에 튀었다. “국민들이 궁금해하는데 흥진호 선원으로서 한마디만 해 달라”며 답을 부탁하자 그는 “국민들은 무슨… 우릴 간첩으로 몰잖아요”라고 답했다. 벌겋게 녹슨 장도리로 못을 내려치는 그는 이후 어떤 질문을 던져도 “모른다”고만 답했다.
   
   A씨를 제외한 나머지 선원 3명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동남아계로 보이는 그들에게 “베트남에서 왔냐”고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 목장갑을 끼고 있는 그들은 한쪽에 이국적인 곡조의 음악을 틀어둔 채 제각기 복어를 잡는 바구니에서 미끼를 떼어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검은색 바구니에 무수히 담긴 흰색 낚싯줄에 꿰인 손톱만 한 크기의 생선 조각들을 부지런히 떼어내 다른 바구니에 담는 작업이었다. 정어리 종류로 보이는 등푸른생선 조각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선원 중 한 명은 이따금 바구니에 담긴 생선 조각 수백 개를 어선 옆 바닷물로 쏟아부었다.
   

   베트남인 선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명은 “(납북됐다 풀려난 뒤 후포항으로 들어올 때) 누가 마스크를 쓰라고 시켰냐”는 물음에 말 없이 기관장 A씨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는 한국어가 비교적 유창한 편이었지만 대부분의 물음에 “외국인이라 모른다”고 답했다. 27살과 22살이라고 밝힌 나머지 두 명의 베트남인 선원들은 한국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특히 가장 어린 베트남인 선원은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한지 기자의 여러 질문에 어눌한 우리말로 “한국말 잘 못해요”라고만 답했다. 선장과 기관장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인 선원 5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진호 2층의 배 기관실 바깥쪽 옆면에는 ‘근해연승 38톤’이라고 쓰인 초록색 철판이 붙어 있었다. 아래에 있는 표지판에는 선주, 선장, 기관장의 휴대전화 번호도 검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배 우측 뒤편에는 빨간색과 검은색의 깃발들이 있었다. 후포항에서 만난 어민들에 따르면 이 깃발은 복어잡이배를 의미하는 깃발이라고 한다. 이날 후포항에 정박된 배 중 이 깃발이 달린 배는 흥진호를 제외하면 찾기 어려웠다.
   
   흥진호 선장인 남모씨는 당초 후포항에 돌아온 직후 실시된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대화퇴어장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 측 선박에 나포됐다”고 말했다. 대화퇴어장은 1975년 조성된 어장으로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일부가 포함된다. 주변 해역보다 얕고 플랑크톤이 많아 고기가 잘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이 어장의 절반 정도는 일본 수역에 걸쳐 있다. 서북쪽 인근부터는 북한 수역이다. 11월 3일 포항해경의 조사에서 남 선장은 “고의로 북한에 들어가 조업했다”고 시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남 선장과 선주 고씨에게 벌금과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가할 예정이다.
   
   
▲ 흥진호 조타실 내부 모습.

   다시 조업 나서는 흥진호
   
   흥진호는 경주시 감포읍 선적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모항은 후포항이다. 제주도에서 출발해 후포항에 들른 뒤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항해 대화퇴어장 인근에서 어업을 했다. 실제로 선박운영에 필요한 돈을 대는 선주 고씨는 제주도 출신이다. 반면 기자가 만난 흥진호의 선장과 기관장은 모두 경상도 말씨를 썼다. 선주 고씨는 흥진호의 이전 선장으로 현재는 흥진호를 운영하는 자금을 대고 있다.
   
   후포항에는 장화를 신고 부두를 다니는 20~30대 정도의 동남아계로 보이는 선원이 흔히 보였다. 하지만 젊은 한국인 선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흥진호가 정박된 바로 앞 부두에서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오징어잡이배에서 일한다고 밝힌 그는 “후포항에는 한국인 선원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에는 집어등(集魚燈)을 밝힌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한창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징어를 잡을 낚싯줄에 미끼를 꿰는 늙수그레한 선원의 모습도 보였다. 위판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맘때 후포항에서 흔히 거래되는 해산물은 대게, 홍게, 오징어 등이다. 11월 4일 오전 4시쯤 후포항 여객터미널 인근 경매장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 어민은 “작년 이맘때는 복어가 많이 잡혔는데 올해는 아직 안 잡힌다”고 말했다. 그의 앞에 놓인 붉은 고무통 여러 개에는 돌가자미, 쥐치, 성대 등의 연근해 어종이 종류별로 나뉘어 가득 담겨 있었다.
   
   흥진호가 북한 해역으로 들어가기 전인 10월 21일, 흥진호가 통신 가능한 지상의 관계국 중 마지막으로 교신한 곳은 포항어업정보통신국이다. 수협이 운영하는 어업정보통신국은 담당하는 어선과 24시간마다 한 번씩 교신하면서 선박의 위치를 파악한다. 후포항 부두에 있는 후포수산어업정보통신국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이응택 후포어통국 대리는 “흥진호는 위치보고를 포항어통국에 하고, 사후보고도 포항에 하는 선박”이라고 말했다.
   
   11월 4일은 토요일이었지만 후포파출소에는 흥진호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10여명의 직원이 빈자리 없이 1층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해경 관계자는 “상부로부터 행정처분이 결정돼 내려오기 전까지 흥진호는 다시 출항해 조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흥진호 선장 남모씨
   
   “할 말 많지만… 빨리 혐의 인정해야 끝나지”
   
   지난 11월 4일 낮 12시쯤 ‘391흥진호’ 기관실에서 선장 남모(47)씨를 만났다. 그는 전날 포항에서 실시된 해경의 조사에서 “복어를 잡으려고 고의로 북한 수역에 들어갔다”고 자백하고 후포항으로 와 막 흥진호로 돌아온 길이었다. 이마가 벗겨진 곱슬머리에 통통한 체구를 하고 검은색 안경을 쓴 남 선장은 혐의를 인정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빨리빨리 혐의를 인정하고 조업과 법적 대응을 하려고 조사를 끝냈다”고 답했다. 다음은 이날 후포항 부두에서 남 선장과 나눈 일문일답.
   
   - 북한 원산항에 갔던 것이 사실인가. “맞다. 저기 외국 애들(베트남인 선원)한테 다 물어봐라. 생각보다 북한도 잘살더라. 여기서 듣던 거하고 다르더라. 건물도 고층빌딩도 많고.”
   
   - 동명호텔에서 묵은 것으로 보도됐는데, 호텔 내부는 어땠나. “내부 시설, 인테리어는 안 좋았다. 건물 자체가 부실해 보이고. 부실공사한 것처럼 보였다.”
   
   - 식사는 어땠나. “밥은 한정식으로 나왔다. 반찬도 바꿔가면서 나왔다.”
   
   - 후포항으로 들어올 때 왜 마스크를 썼나. “선원 아내들이 지병이 있다. 우리가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 병이 있는 아내들이 놀랄까봐 얼굴을 가렸다.”
   
   - 선주와는 언제부터 알았나. “같이 배를 탄 지 오래됐다. 1995년에 선주는 기관장, 나는 취사장으로 한 배를 같이 탔다.”
   
   - 어떻게 흥진호 선장을 맡게 됐나. “선주가 몸이 안 좋다. 최근에 후종인대 골화증 때문에 수술을 했다. 그래서 내가 배를 타다가 이렇게 됐다.”
   
   - 해경에서 GPS 복원해 위치추적한다고 하는데. “GPS 복구한다고 하지만 복구 못 한다 그건. 증거로 못 쓴다.”
   
   - 항적기를 끈 이유는 무엇인가. “한자리에서 계속 조업을 하면 항적을 하루 작업하고 하루 지우고 해야지, 계속 안 지우면 화면에 남아 정신이 없다. 공책에 연필로 막 그은 것같이 된다.”
   
   - 다른 배들도 항적을 지우나. “하루 작업하고 하루 지우고 한다.”
   
   - 항적기 외에 해경이나 어통국에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다른 장치도 끈 것이 사실인가. “껐다. AIS(Auto Identification System·선박자동식별장치)도 껐다.”
   
   - AIS를 끈 이유가 무엇인가. 복어가 안 잡혀서 껐나. “….”
   
   - 북한 해역이란 것을 알고 들어갔나. “알았다. 그 동네는 빠삭한데.”
   
   - 어떤 배에 잡혔나. “중국 저인망 어선이다. 저인망 어선인데 안에는 북한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북한이나 뭐 인민군 같은 사람들이 보여서, 위장한 해적인 줄 알았다. 저인망 어선으로 위장한 해적선이구나 해서 겁이 나가지고 전속력으로 도망가다가 잡혔다.”
   
   - 어선인데 그렇게 빨랐나. “잘 나가더라. 100t인가 120t인가 되던데.”(흥진호 38t)
   
   - 도망가면서 왜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나. “배가 바로 붙어 있는데 피할 방법이 없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배가 전속력으로 달려갈 땐 살짝만 (키를) 놓아도 배가 넘어가버린다. 사람하고 마찬가지다. 100m 전속력으로 달릴 땐 살짝 밀어도 넘어져버리지 않나.”
   
   - 흥진호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가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청장이나 높은 사람들 자리가 위태로울 판인데 (내가) 빨리빨리 시인해야지. 국회의원들 비판에 윗사람들이 견디질 못해 가지고 계속 압박하는데…. 그래서 어제 가서 (고의로 북한 해역에 들어간 걸) 시인해버렸다. 나 혼자 (고의가 아니라고) 우겨 봐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일이니까.”
   
   - 억울한 점은 없나, 특별히 해명하고 싶다거나. “많이 있지만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기 싫다.”
   
   - 선주도 흥진호가 북한 간 것을 알았나. “선주는 몰랐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행정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작업을 하다가 처분이 내려지면 조업을 정지하고, 벌금 내라면 벌금 내야지. 문제는 선주가 돈을 많이 빌렸다. 어업정지 6개월 이상 내려지면 선주는 망할 것이다. 방법을 좀 강구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더 강하게 ‘강제 감축’을 지시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선주는 망하는 거다. 나도 생활이 어려워질 거고.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변호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그는 기자와 대화를 마친 후 “식사를 해야 해서 이만 간다”며 후포항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다른 선원들, 기관장 A씨와 베트남인 선원 3명이 먼저 들어간 식당이었다. 그는 현금이 부족했는지 식사를 하던 도중 나와 수협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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