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병원 한 번 갈까 말까 할 정도로 건강하게 살았어요.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손이 떨리기에 처음에는 늙어서 그런가 보다 했죠.”

30년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임하고 평온한 노후를 보내던 김종오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2004년의 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는 류머티즘관절염 진단을 내렸다. 약을 먹고 몇 달이 지났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는 똑바로 걷는다고 걸었는데 계속 옆으로 걷게 되더라고요. 젓가락질이 힘들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다리도 마찬가지였어요.”

병원과 담당의사를 옮겨 다시 진찰을 받았다.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손목 수술을 하고 난 다음날 병원에서 몸을 일으키던 김씨는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수술받은 팔은 물론 다리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손목이 문제가 아니었다. 급히 MRI 검사를 받아본 결과 김씨는 ‘후종인대골화증’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름도 어려운 후종인대골화증은, 간단하게 말해 목뼈의 인대가 딱딱하게 변하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병을 말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추(中樞)가 되는 척추신경을 지탱하는 목뼈에는 뼈를 보호하고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는 인대가 붙어 있다. 목 앞쪽 인대는 전종인대라고 한다. 목뼈 뒤 척추관 바로 앞에 붙은 인대를 후종인대라고 부른다. 후종인대가 돌처럼 굳어버리면서 척추신경을 압박하며 생기는 게 후종인대골화증의 주요 증상이다. 후종인대골화증 유병률이 유독 높은 일본에서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한·중·일 3국에서 유병률이 높다는 것, 중장년 남성에게 조금 더 높은 확률로 발병해 전체 환자의 70% 정도가 남성이라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후종인대골화증의 증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어느 신경이 얼마만큼 압박되느냐의 차이다. 대개 손이 떨리고 저리는 증상부터 시작한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자신은 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옆으로 걷는 게걸음을 걷기도 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단추를 채우거나 젓가락질을 하는 일상생활도 불가능해진다. 배변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환자도 많고 남성 환자 중에는 성기능 장애를 겪는 환자도 더러 있다.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다 보니 후종인대골화증의 증상은 다른 질환 때문인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손목터널증후군이나 류머티즘 관련 질병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남성 환자들은 전립선과 관련된 질환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을 때가 있다.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지가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도 있다. 인대의 골화가 진행되면 척추신경을 완전히 압박해 사지가 마비된다.

환자수 기준 따라 지원도 못 받아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해 바로 알려면 골화(骨化)와 골화증(骨化症)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최근 일선 정형외과에서도 ‘골화’를 진단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교통사고나 다른 정형외과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목뼈에 ‘골화’가 보인다고 진단받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골화와 골화증은 다르다. 인대가 골화된다고 해서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 사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생기는 건 아니다. 후종인대골화증 치료의 권위자로 알려진 조용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요즘 의사들도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화된 것만 보이면 ‘골화증’이라고 환자에게 알려주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골화가 골화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조금 골화된 상태로 지낼 수 있습니다. 경미한 수준에서의 골화는 ‘보균자’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는 2만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우연히 골화 여부를 알게 된 ‘골화 인지’ 환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실제 증상이 나타나 수술을 하고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의 수는 훨씬 적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환자 수가 중요한 이유는 후종인대골화증이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돼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정받으면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이 돼 진료비에 대한 본인부담률이 10%로 줄어든다. 보건복지부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인정하는 기준은 대략 세 가지다. 발병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으며, 환자 수가 2만명 이하일 것. 문제는 세 번째 기준이다. 환자 수를 일률적으로 정하다 보니 발병률이 높아지거나 질병 코드가 애매하게 집계되는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희귀난치성 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병이나 크론병 같은 질환이 그렇다. 환자가 늘어나면서 희귀난치성 질환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했는데 이들 질환이 원인은 물론 치료법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난치성 질환인 만큼 환자와 의사 집단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후종인대골화증의 경우에는 실제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와 일종의 ‘보균자’ 환자가 구분되지 않아 소수의 중증 환자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사례다. 보균자나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나 모두 같은 질병 코드를 부과받기 때문에 건강보험상에서는 환자 수가 2만명을 초과하는 것으로 집계되는 것이다. 후종인대골화증 치료 기술이 발전했고 의료보험 보장성도 확대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은 상당하다.

후종인대골화증의 치료 방법은 한 가지다. 적절한 시점에 수술을 받는 것이다. 수술은 골화된 인대가 신경을 압박하지 않게 척추관을 넓혀주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예방적인 치료 방법은 없다.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수술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번 진행된 골화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는 데다가 여러 인대에 걸쳐 골화가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번 수술을 받는 사람도 있다. 4, 5번 경추의 인대에서 골화가 생겨 증상이 나타나면 수술을 받고 한참 있다가 또 다른 인대의 골화 때문에 수술을 받기도 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에도 희귀난치성 질환이 아닌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들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조용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가 환우회 모임에 참석해 직접 환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photo 후종인대골화증 환우회
조용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가 환우회 모임에 참석해 직접 환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photo 후종인대골화증 환우회

희망 없는 난치병에 우울증도

모든 후종인대골화증 환자가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골화가 덜 진행된 환자는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에 마비 증상이 나타나버리면 수술을 받아도 별 소용없다. 적절한 타이밍에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관찰해야 한다.

환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증상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지난 2015년 후종인대골화증 진단을 받은 이현준씨가 그런 사례다. 이씨는 처음에는 손저림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알기 위해 여러 검사를 하다가 후종인대에 골화가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지만 수술을 할 만큼 명확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당분간 정기검진만 받기로 했다. 이현준씨 입장에서는 희망 없는 난치성 질환이 악화되지 않기만을 기다리는 셈이 됐다.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 같았어요. 언제 어떻게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고 근본적인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분노, 우울감, 무기력함 때문에 무척 고생했습니다.”

실제로 후종인대골화증 환자 중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후종인대골화증은 진행성 질환이다.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도 없다. 무기력함, 불안감에 시달리는 환자가 많은 이유다. 게다가 골화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 깨닫는 병의 특성상 대부분 환자는 중장년층이다. 50~60대 환자가 많은 편인데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 이후의 새 삶을 꾸려나가려던 환자들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희귀난치성 질환과 마찬가지로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를 위한 정서적 지원은 없다.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환우회를 꾸려 정보를 나누고 모임을 가지는 것이 전부다. 병명도 잘 안 알려져 있던 시절 설립된 후종인대골화증 환우회(cafe.daum.net/happyazaaza)는 이 분야의 의사들을 초빙해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전국 곳곳의 환자들을 위해 지역 모임까지 가지고 있다. 병을 앓은 지 10년이 된 이종화씨는 환우회의 도움을 받아 정서적 안정을 취한 경우다.

“처음에는 저도 불안감에 마냥 떨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처지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마냥 불안해 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점차 평상심을 찾았습니다.”

환자 자조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는 환자들이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조용은 교수와 같은 전문가가 환우회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환자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친 결과다.

“해마다 척추질환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후종인대골화증도 그중 하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운동치료를 받아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먹어 보아라’ 같은 권유를 받는 환자도 많죠. 하지만 그런 것보다 목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언제든 수술받을 수 있게 몸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후종인대골화증 환자들은 이 병이 “남은 삶을 죽이는 병”이라고 표현한다. 생명을 위급하게 하진 않지만 평범한 삶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래서 환자들은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보다 많은 사람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받기를 바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팔다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런 평범한 저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후종인대골화증에 대한 치료와 지원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 환우회를 설립해 지금껏 이끌고 있는 김종오씨의 말이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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