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
[2484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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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지진 지뢰밭 다세대·다가구 누가 키웠나

▲ 지난 11월 15일 경북 포항지진으로 기둥이 뒤틀린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다가구주택 크리스탈원룸.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8293곳’.
   
   지난 11월 15일, 경북 포항지진(진도 5.4) 이후 일주일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접수된 주택피해 건수다. 이 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중앙수습지원단이 안전점검에 나선 1129채의 민간주택 중 7개 건물은 전면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잠정 결론이 났다. 이 가운데 지진으로 1층 기둥(필로티)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크리스탈원룸(다가구)을 비롯해 무려 6곳이 다세대·다가구주택이었다.
   
   포항지진으로 다세대·다가구주택의 지진 취약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문제는 인구 52만명에 불과한 포항이 아닌 1000만명에 육박하는 수도 서울에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서울시민 절반가량은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시의 주택유형 중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47.7%다. 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알려진 아파트(41.6%)보다 6%포인트가량 많은 수치다. 주택법상 ‘단독주택’은 단독주택·다가구주택·다중주택·공관(公館)을 모두 통칭하는 개념인데, 땅이 부족한 서울은 단독주택의 대부분이 다가구주택이라 봐도 무방하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에서 순수한 단독주택은 10채 중 1채도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 4층 이하로 다세대주택과 거의 모든 부분에서 대동소이한 연립주택(2.9%)까지 합칠 경우, 이번 포항지진때 취약성이 여실히 입증된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이 서울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는다. ‘아파트 공화국’이 아닌 ‘다세대·다가구 공화국’인 셈이다.
   
   한동안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는 듯했던 다세대·다가구주택은 2011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단독주택에 포함되는 다가구주택의 호별 통계를 별도 집계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시 주택건설 실적(인허가 기준)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다세대주택의 급증은 두드러진다. 2008년 한 해(2만1938호)를 제외하고 2만가구 이상 공급된 적이 없는 다세대주택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2011년부터 매년 3만가구 이상 건축인허가가 이뤄졌다. 2015년에는 5만6454가구, 2016년에는 4만5069가구의 다세대주택이 건설됐다. 박 시장이 서울시장에 재선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년 연속 아파트 건설실적을 모두 초과했다. 같은 기간 다가구주택의 건설도 늘어났는데, 2008년까지 1000호를 밑돌던 다가구주택 건설 역시 지난해 6603가구로 급증했다.
   
   다세대주택 건설이 급증하면서 오세훈 시장 때인 2010년 서울시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8%까지 줄었던 다세대주택은 지난해 16.5%까지 솟구쳤다. 이는 지난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내외로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신장세가 놀라울 정도다. 서울시 주택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 수요를 받아내기 위해 다세대가 많이 지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최근 다세대주택이 늘어난 것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많이 건설된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300가구 미만의 단지형 다세대주택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에는 40년 이상 된 낡은 단독주택이 많다”며 “이를 멸실시키면서 다세대·다가구주택으로 바꾸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다세대·다가구주택 시장은 대개 5년 주기로 흐름이 돌아가는데 지난해가 또 한 번의 피크였다”며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다세대·다가구 수요가 늘었고 이를 겨냥한 공급이 급증한 것”이라고 했다.
   
   

   ‘주택 200만호 건설’ 공약 이후
   
   다세대·다가구주택이 지진에 취약한 것은 태생적인 한계 탓도 있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정부 ‘주택 200만호’ 건설을 전후해서다. 1987년 13대 대선을 전후로는 ‘3저(低) 호황’에 돈이 풀리면서 주택가격 급등과 함께 전월세난이 심각했다. 실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연간 집값 상승률은 최고 21%에 달했다. 치솟는 임대료에 반(半)지하 단칸방에서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사고도 빈발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대선 때 ‘주택 200만호 건설’이란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강공을 걸었다. 전두환 정부 출범 직후인 1980년 빈말로 끝난 ‘주택 500만호’ 건설계획을 좀 더 현실화한 공약이었다.
   
   당시 서울과 전국의 주택 총량이 각각 136만호와 700만호가량에 불과한 때였다. 불과 집권 5년 만에 기존의 서울 전체 주택보다 많은 주택을 지어서 공급하겠다는 단군 이래 최대의 주택건설 프로젝트였다. 노태우 정부 당시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전 대구광역시장)과 박승 건설부 장관(전 한국은행 총재) 주도로 추진한 주택 200만호 건설의 핵심은 인구가 집중된 서울 40만호를 포함해 수도권에 90만호를 공급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서울 도심과 20㎞ 떨어진 거리에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가 조성된 것도 이 계획에 따라서다.
   
   하지만 5대 신도시 중 가장 크다는 분당 9만7500호를 비롯, 일산(6만9000호), 평촌(4만2010호), 산본(4만2039호), 중동(4만2500호)을 다 합쳐 봤자 29만3049호에 불과했다. 이에 주공아파트, 시영아파트, 영구임대아파트, 사원아파트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주택을 총동원해 ‘200만호’란 숫자를 맞추다가 결국 1990년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것이 ‘다가구주택’이다. 당시 최초 도입된 ‘다가구주택’은 전두환 정부 때인 1984년 도입된 다세대주택과 겉모습만 놓고 보면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바닥면적은 660㎡ 이하로 동일하고, 층수도 3층 이하로 다세대주택(4층 이하)과 엇비슷했다.
   
   하지만 다가구주택은 주택법상 ‘단독주택’으로 간주됐고,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으로 분류됐다. 이에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 즉 1주택으로 간주돼 주택 추가보유에 따른 세금부담이 없었다. 세부담이 없으니 집주인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놓을 수 있어, 주택 구입능력이 안 되는 임차가구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당시 단독주택의 지하와 창고·옥상을 불법개조해 ‘한 지붕 세 가족’ 식으로 임대하던 것을 ‘다가구주택’이란 법적인 테두리 안에 묶어서 양성화하는 식으로 주택공급을 늘린 ‘신(神)의 한 수’였다. 당시 ‘건설부 지침’으로 도입된 다가구주택은 무려 10년이 지난 1999년에야 건축법상 단독주택의 일부로 정식 편입되기에 이른다.
   
   
   건설부 지침으로 태어난 ‘다가구’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 태어난 다세대·다가구주택은 내진설계 의무화 규제도 비껴갈 수 있었다. 국내에서 내진설계 의무화가 적용된 것은 1988년부터다. 하지만 내진설계 의무화 도입 당시에는 6층 이상, 연면적 10만㎡(약 3만250평) 이상 건축물에만 적용됐다. 자연히 층수가 각각 4층, 3층 이하인 다세대·다가구주택은 내진설계 의무화를 비껴갔다.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적용하면 철근, 시멘트, 모래 등 자재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반면 주택 200만호 건설 당시에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택공사가 이뤄지다 보니 건자재 품귀현상은 물론 품질관리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그전까지 건설현장에서 쓰이던 입자가 고운 강(江)모래 대신, 염분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철근을 녹슬게 만들어 건축물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바닷모래와 중국산 시멘트가 대량 공급된 것도 이때다. 건설인부 구하기가 힘들어 경험이 부족한 미숙련공과 외국인노동자가 비싼 노임을 받고 대량 투입된 것도 이 당시다. 영세 건설업자들이 빠르면 6개월 만에 뚝딱 지어올린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제대로 된 모래와 시멘트, 철근이 공급됐을 리가 만무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추가 신도시 건설은 없다”고 선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찌됐건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은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내인 1992년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다세대·다가구주택은 국내 주택공급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주택 200만호’ 목표달성에 일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부실공사, 일조권, 주차장, 쓰레기, 소방도로, 학교, 놀이터 문제를 비롯해 범죄취약성 등 각종 도시문제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도 저서에서 “1960~1970년대 서울 변두리에 수없이 건축된 이른바 ‘집장사집’은 원래가 환경이 무시된 과밀혼잡 주거집단이었다”며 “다가구주택이란 이름으로 확장고층화되면서 서울 변두리 주거환경은 구제불능 상태로 악화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선임연구위원은 “다가구의 반지하는 원래 대피공간으로 만든 것인데, 불법개조해 주거공간으로 쓰이면서 주거환경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포항지진으로 문제가 드러난 ‘필로티(Piloti)’도 다세대·다가구주택의 주차난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입된 설계다. 당초 면적 기준으로 주차장 면적을 부과하던 다세대·다가구주택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면적에서 아파트와 같은 가구 기준으로 현실화된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에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주차장 확보 의무가 ‘가구당 0.7대’에서 ‘가구당 1대’로 대폭 강화됐다. 주차면적 추가 확보를 위해서는 건축물 지상부에 기둥만 남기면서 공간을 확보한 뒤 기둥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필로티 도입이 불가피했다. 필로티는 좀도둑에 취약한 1층을 비우는 식으로 안전도 강화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이에 각각 4층과 3층 이하로 제한되는 다세대·다가구주택 층수에서 필로티 부분을 제외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다세대·다가구주택 건축주들은 실제로는 5층과 4층으로 건물 높이를 높여 수익을 더 늘릴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에는 기존에 1층 전부를 주차장으로 사용할 때만 필로티 부분을 층고 산정에서 제외해주던 것을, 1층의 2분의 1 이상만 주차장으로 사용해도 층고 산정에서 제외해주는 식으로 필로티 도입을 더욱 장려했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하면서 “주거밀집지역 토지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해지고, 다세대주택 및 다가구주택의 건축이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다세대·다가구주택까지 내진설계 의무가 확대적용된 것은 2005년부터다. 3층 이상, 연면적 1000㎡가 넘는 건축물에까지 내진설계 의무화를 확대 적용했다. 지난해 9월 12일 경주지진(진도 5.8) 이후에는 ‘2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 건물’로 다시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신축되는 모든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내진설계 대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내진설계 의무를 강화했다고 해서 주로 영세 건설업자들이 지어올리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설계도에 따라 정확한 건자재를 사용해 올바르게 시공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건축전문변호사인 법률사무소 집의 원영섭 대표변호사는 “전체 분쟁 의뢰건수의 30%가량이 다세대·다가구에서 발생하는데 주로 시공과정에서 일어나는 시공사, 행정관청과의 분쟁”이라며 “필로티로 주차장을 확보하는 건축업자들은 그나마 착한 사람들로 ‘야매’로 집만 지어올리고 나 몰라라 떠나버리는 업자가 많다”고 했다. 심교언 교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은 120~150㎡(40~50평) 땅만 확보하면 그야말로 찍어 낼 수 있다”며 “설계도 표준화돼 있어 구청 앞의 소위 ‘허가방’이란 곳에 가면 하루 만에 설계를 뽑아준다”고 했다. 건설사가 자기 브랜드를 걸고 짓는 아파트와 달리 누가 지었는지조차도 알기가 어렵다. 최민수 선임연구위원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소규모 주택의 경우 건축주가 직접 건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대부분 구청에 자기가 짓는다고 신고한 뒤 90% 이상이 집장사들에게 도급을 줘서 건축을 한다”며 “이들 중에는 건설면허가 없는 사람이 많은데 나중에 시공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실제 입주하는 세입자들로서도 자신의 안전과 직결된 내진설계 여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아파트로 옮기기 전 임시로 머무르는 곳 정도로만 여긴 탓이다.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는 청약통장 가입자가 2000만명에 달하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튼튼한 집’보다는 ‘싼집’이 우선될 수밖에 없었다. 심교언 교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은 저렴한 주택을 빨리 보급하는 식으로 주택보급률을 끌어올려 주거안정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하지만 주로 벽돌로 쌓아 지진에 취약한 만큼 신축 다세대·다가구주택부터라도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속성장 시대의 종언과 함께 다세대·다가구주택도 역사적 사명을 다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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