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이 전면 금지되고, 상벌점도 유명무실해지면서 사실상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통제수단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사회적 합의 없이 너무 급진적으로 학생인권이 강조되다 보니 교실에서 난감할 때가 많아요. 말로 훈육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잘못하면 언어폭력이 될 수 있거든요.” (울산 A초등학교 박모 교사)

“너무 급작스럽게 학생인권과 교권의 위상이 역전됐습니다. 이 둘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학생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교사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교사로서 사명감이 유독 투철했던 한 젊은 후배는 상처받고 결국 교사를 관뒀습니다. 해외로 유학 갔어요. 참 능력 있는 후배였는데….” (서울 K중학교 양모 교사)

“에잇, 요즘 교사들이 누가 아이들 혼내요. 이젠 그런 교사 많지 않아요. 그것도 애정과 관심이 많을 때 얘기죠. 조금만 뭐라고 하면 아이들이 학부모한테 얘기하고, 학부모는 아이 말만 듣고 ‘우리 아이한테 왜 그러셨냐?’며 따지러 오기 일쑤인데 누가 위험을 감수하겠어요. 이젠 듣기 좋은 소리만 합니다. ‘교사는 공무원, 학생은 시민. 고로 교사는 학생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생각해요.” (서울 C고등학교 안모 교사)

“학부모들이 밤 10시 넘어서도, 주말에도 전화를 해옵니다. 밤 9시 이후에는 전화 받기 어려우니 될 수 있는 대로 9시 이전에 달라고 했더니 ‘우리 아이한테 급작스럽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연락하느냐’고 또 따지시고요. 후배 교사 중에는 아예 전화번호 공개를 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어요.” (서울 B중학교 김모 교사)

“’쪽지시험 봐서 2개 이상 틀리면 혼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인권침해라면서 ‘우~’ 하고 야유를 해요. ‘다 너희 인생을 위해서야. 꼭 필요한 개념들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와라’ 했더니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하더라고요.” (경기도 성남 D중학교 박모 교사)

현장교사들의 목소리다. 교권추락은 어제오늘의 이슈가 아니지만 최근 3~5년 새 교권침해가 급격히 늘었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2010년대 초반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와 시기가 겹친다. ‘교권보호’와 ‘학생인권’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교권이 불합리하게 침해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11월 2일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계획안에는 2018~2020년까지 인권친화적 교육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로드맵을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두발 등 개성을 실현할 권리 존중’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보장’ ‘상벌점제도 개선 및 대안마련’ 등에 대한 연차별 추진계획을 담았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학교 측에서 학생의 의사에 반해 두발과 복장을 규제할 수 없고, 학생의 의사에 반해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휴대폰 수거를 할 수 없으며, 절도 사건이 발생해도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다. 요는 학생들은 교복 입은 시민으로서 성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학생인권 강조 이전에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대책수립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지난 11월 3일 교총이 발표한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종합계획 발표에 대한 교총의 입장’에 따르면 △최근 학교폭력과 교권침해의 강도가 더 세져 대책마련이 시급하고 △교육현장에서 학생인권만 강조해 학생생활지도에 더 어려움을 느낀다면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학생인권을 이유로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학생인권조례란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한 조례를 말한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서울, 경기도, 광주광역시, 전북도 등 4개 지역에서 공포됐다. 부산과 인천, 충북도, 경남도, 강원도는 추진 과정에 있다. 이를 둘러싸고 학생인권조례안폐지 및 제정 추진 반대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경남학생인권조례반대 경남연합’이 경남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11월 20일에는 ‘나쁜인권조례폐지네트워크(나인넷)’가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 주민발의기자회견’을 열었다.

경남연합 측은 “(추진 중인 학생인권조례는)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외면”하는 조례라면서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려 기본적인 지식전달의 역할도 점점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인권조례 운운으로 인성교육마저 어렵게 됐다”고 반발했다. 서울의 나인넷 측은 학생에 대한 정당한 지도 거의 대부분을 금지하는 조례는 무책임하고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교권이 무너져 학생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가정에서도 문제를 유발한다며 “(서울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을 방종으로 내몰고 가정을 파괴하며 교권을 붕괴시킨다”고 맞섰다.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방향성은 맞지만

학생인권에 대한 존중은 꼭 필요하고, 당연하다. 인권존중은 선진국의 조건이기도 하다. 방향성에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간 일부 교사의 원칙 없는 체벌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은 꼭 보호받아야 한다.

먼저 학생인권조례에 적극 찬성하는 교사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서울의 K중학교 신모 교사는 “교사 배지를 달면 무조건 존경받아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인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는 학생들에게 소위 ‘갑질’을 하는 교사들이 많다. 어른과 아이는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교사라는 이유로 학생에게 ‘야, 저 쓰레기 주워’’라고 명령할 권리는 없다. 교사의 비언어적 태도에도 갑질이 녹아 있는 경우가 많다. 못마땅한 표정, 한심하다는 표정을 암암리에 학생들에게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해도 되고, 반대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교권침해라고 생각한다. 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학생들의 말대꾸에 분노를 느껴 교권을 침해받았다고 흥분하는 교사들을 많이 본다. 교권침해인지, 교사와 학생 간 갑을관계가 깨지는 것에 대한 분노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의 법제화는 다른 문제다. 학생인권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 상황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및 구체적 실현 계획안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대체적으로 “너무 급진적”이라는 의견이다. 보편적 인권의식이라는 토양 위에 학생인권이 싹터야 했는데, 보편적 인권의식이 심어지기 전에 ‘학생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인권과 학생인권을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교실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인 제도”라는 목소리가 높다. 모범생만 모인 집단, 시민의식이 성숙한 집단에는 학생인권조례를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교실은 온갖 다양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의 집합소다. 한마디의 부드러운 충고로 잘못을 재깍 고치는 아이도 있지만, 백 번 천 번을 타일러도 꿈쩍 안 하는 아이가 있다. 이런 경우 불가피하게 일정 수준의 훈육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체벌은 물론 벌점제도도 사실상 금하고 있어 학생들을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다.

울산 A초등학교 박모 교사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보면 현장을 잘 모르는 이론가들의 탁상행정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 따라서는 체벌이 답인 아이도 있다. 내 경우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는 아주 제한적으로 체벌을 했다. 다만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삼진아웃제였다.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잘못을 했을 경우, 한 번 잘못하면 경고하고, 두 번 같은 잘못하면 부모에게 고지하고, 세 번 잘못하면 부모의 입회하에 체벌을 했다. 예를 들어 약한 친구를 모질게 괴롭히는 아이가 있었다. 툭하면 때려서 입술을 터지게 하고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삼진아웃제를 적용했고, 효과가 컸다. 이 학생의 인권을 먼저 배려해줘야 하나. 피해자 학생의 인권이 먼저 아닌가.”

“미성숙한 아이에게 과도한 자기결정권을 부여했다”는 지적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19세 미만은 미성년자’라는 사회적 합의를 깨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19세 미만에게 음주와 흡연을 금지시키고,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죄를 저질러도 ‘소년법’을 적용해 성인보다 형량을 가볍게 내리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초·중·고교생은 미성숙한 존재이므로 실수를 해도 어느 정도 용인해주고, 일정 수준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통념에서였다. 한 교사는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완전무결한 존재로 가정하고 제정된 것 같아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접근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오모 교사는 “학생인권만 꼭 집어 강조하기 이전에 인권 자체에 대한 교육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은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말한다. 학생인권만큼 교사의 인권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각 구도로 보는 양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오모 교사의 말이다. “학생인권이냐, 교권이냐의 시각은 잘못됐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다. 학생 스스로의 권리를 알고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타인에 대한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충분히 자리 잡았어야 했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1위

학생인권이 강조될수록 교권침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로 증명된다. 교총의 발표에 따르면 교권침해 상담건수는 점점 증가폭이 커지고 있다. ‘2016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상담사례 건수는 572건으로, 10년 전인 2006년 179건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지난 1년간 증가폭은 2015년 488건→2016년 572건으로 20% 가까이 늘었다.

교권침해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가장 많다는 점이다. 교총이 조사한 교권침해 주체별로 보면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267건으로 가장 많았고(46.68%), 처분권자에 의한 부당한 신분피해(132건), 교직원에 의한 피해(83건) 순이었다. 학생에 의한 피해는 58건으로 10.14%에 불과해 많지 않은 편이었다.

11년 차 박모 교사의 말이다. “교권 실추를 피부로 느낀다. 초임 때에는 기본적으로 교사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가 혼나고 오면 ‘우리 아이가 혼날 짓을 해서 혼내셨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교사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 아이 말만 듣고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30년 차인 오모 교사 역시 “교권추락에 있어서 가장 문제는 학부모 같다”고 입을 뗐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아이 말만 듣고 교사를 찾아와 항의하고, 교권위원회 회의 결과 교사의 지도방법이 문제없다고 판명나면 교육청, 교육청에서 안 되면 교육부 식으로 끝장을 보려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교사를 믿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교사를 신뢰하겠나. ‘나 건드리면 집에 가서 다 말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고, 학기 초에 교사에게 ‘1년 동안 지켜보겠습니다’라는 학부모도 꽤 있다. 자괴감이 든다. 여건만 된다면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오 교사는 “학부모 반톡 등 SNS가 이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교사에 대한 과도한 정보가 오히려 교사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는 지적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갈등을 일으키면 대부분 교사가 약자가 된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교사들은 한결같이 “웬만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학교 측에서는 쉬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가 학생을 때리면 크게 문제가 되지만, 반대로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면 처벌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대개의 경우 교사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 학교와 학생 입장을 생각하면 조용히 덮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한 A교사는 폭력적인 학부모로 인해 병원치료까지 받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발단은 교사였다. 학생에 대한 차별이 있었고, 이에 분노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씨년, 죽여버리겠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을 수시로 퍼부어대고, 결국 수업시간에 교실로 찾아가 젊은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아뜯었다. 이를 지켜본 학생도, 당한 교사도 외상스트레스 장애가 심했다. 학생들도, 교사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장기간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담임교사를 대신해 임시담임을 맡은 A교사 역시 스트레스로 과민성대장염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법정다툼까지 갔지만 해당 학부모에게 내린 판결은 ‘폭행죄’였다. A교사의 말이다. “학부모가 학교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려도 쌍욕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한다. 교권은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판사는 교권을 정상참작만 할 뿐이다. 내 주변에는 학부모들한테 심한 욕을 먹고 사는 교사들이 많다. 명예훼손으로 학부모를 고소하는 교사가 얼마나 되겠나. 대부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는다.”

국회에는 ‘교원지위법’ 관련 2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교권침해행위를 한 학생의 보호자에 대한 처벌 규정 보완 △정당한 사유 없이 특별교육 심리치료 미이수 학부모에 과태료 300만원 부과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교육감 고발조치 의무 부과 등을 골자로 한다. 또 하나는 자유한국당 조훈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다.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침해 학생에 대한 징계조치 보완(학교교체 및 전학조치 포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두 건의 개정안은 소관위 심사 단계에 있다.

현 상황의 삐걱거림은 과도기적 현상이다. 학생인권은 방향성은 맞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되어 부작용이 많다. 부작용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단계다. 교사의 인권은 배제한 채 학생인권만 강조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인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인권의식이 강조돼야 한다.

키워드

#심층 취재
김민희 차장대우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